옛날부터 제왕(帝王)들이 천하와 국가를 다스림에, 새로 나라를 세운 임금[창업지주(創業之主)]은 초기에는 나라를 다스리기에 바빠서 전적(典籍)과 고사(故事)를 살필 틈이 없고, 수성지주(守成之主)1)
는 선대왕의 옛 법을 그대로 지킬 뿐, 다시 법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1)
수성지주(守成之主) : 창업지주(創業之主), 곧 나라를 처음 세운 군주의 뒤를 이어 나라의 물려받고 지키는 군주를 말한다.
비록 “한나라 고조가 빠뜨린 부분이 없이 치밀하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삼장약법(三章約法)2)
’은 겨우 통치의 틀만 밝혔을 뿐이다. 역사가들이 “당나라는 모든 제도가 구비되어 펼쳐졌다”라고 말들 하지만, 『육전(六典)』3)
을 만든 것은 오히려 중반이 되어서야 가능하였으니 한나라나 당나라만도 못한 나라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2)
삼장약법(三章約法) :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진(秦)의 까다로운 법을 모두 없애고 다만 살인한 자에게는 사형을, 남을 다치게 하거나 도둑질한 자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주기로 약속한 세 가지 법률을 말한다.
3)
『육전(六典)』 :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주례(周禮)』의 6전을 본떠 편찬한 『당육전(唐六典)』을 가리킨다.
삼가 생각하건대, 세조
께서는 천명을 받아 임금이 되어 국가를 중흥하였으니, 그 공적이 창업과 수성을 모두 이룬 것과 같았다. 문(文)과 무(武)를 빛내고 정비하셨으며, 예(禮)와 악(樂)을 갖추고 융성하게 하였는데도 오히려 잘 다스리기를 더욱 부지런히 하고 제도를 만들어 널리 펼치셨다. 일찍이 신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조' 관련자료
“우리 선대왕께서는 깊은 인자함과 두터운 은혜로 넓고도 빼어난 규범(規範)이 법 조문 곳곳에 펴져 있으니, 바로 『경제육전(經濟六典)』의 「원전(元典)」⋅「속전(續典)」⋅「등록(謄錄)」이다. 또 여러 차례 내리신 교지(敎旨)들이 아름다운 법이지만, 관리들이 용렬하고 어리석어 제대로 받들어 행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진실로 법의 과(科)와 조(條)가 너무 번잡하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고 모자람을 짐작하고 서로 통하도록 갈고 다듬어 자손만대의 성법(成法)을 만들고자 한다”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 최항(崔恒), 우의정 김국광(金國光), 서평군(西平君) 한계희(韓繼禧), 우찬성 노사신(盧思愼)
, 형조판서 강희맹(姜希孟)
, 좌참찬 임원준(任元濬), 우참찬 홍응(洪應),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성임(成任), 서거정(徐居正)
에게 명령하시어, 여러 조목을 한데 모아 상세히 살펴 선택한 뒤에 편찬해서 책을 만들되, 번잡한 것을 버리고 되도록 정밀하고 간략하게 하며, 모든 조치는 임금의 결재를 받도록 하였다. 또 영순군(永順君) 부(溥)와 하성부원군(河城府院君) 정현조(鄭顯祖)에게 명하여 책의 출납을 맡도록 하셨다.
'노사신(盧思愼)'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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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완성되어 여섯 권으로 만들어 바치니, 『경국대전(經國大典)
』이라는 이름을 내리셨다. 「형전(刑典)」과 「호전(戶典)」은 이미 반포되어 시행하고 있으나 나머지 네 법전은 미처 교정을 마치지 못했는데, 세조
께서 갑자기 승하하시니 지금 임금[예종
]께서 선대왕의 뜻을 받들어 마침내 하던 일을 끝마치고 나라 안에 반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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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천지가 넓고도 큼에 만물이 뒤덮여 있지 않은 곳이 없고, 춘하추동 네 계절[四時]이 끊임없이 운행함에 만물이 생육(生育)되지 않는 때가 없으며 성인이 법을 만듦에 만물이 흔쾌히 볼 수 없는 것이 없으니, 진실로 성인께서 법을 만드심은 천지와 네 계절과 바이다 같은 것이다.
예로부터 법을 만든 융성함이 주나라만 한 것이 없는데, 『주관(周官)』4)
에서는 육경(六卿)5)
을 나누어 천지와 네 계절에 짝하였으니, 육경의 직책은 하나만 없어도 안 된다.
4)
『주관(周官)』 : 『주례(周禮)』의 원래 이름으로 주나라 관직에 대한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5)
육경(六卿) : 주례(周禮)』에 나오는 천관(대총재), 지관(대사도), 춘관(태종백), 하관(대사마), 추관(대사구), 동관(대사공)의 여섯 장관을 말한다. 이들 육경의 소관을 육전이라 했으며 조선 왕조의 육조(六曹)
역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육조(六曹)' 관련자료
우리 태조 강헌대왕(康獻大王)
께서는 천명과 인심에 순응하시어 나라를 이룩하시고는 법도(法度)를 세우며 기율(紀律)을 마련하시니, 규모가 원대하셨다. 삼종(三宗)
께서는 신성한 생각과 밝으신 지혜로 성대히 법을 제정하여 모두 법도에 맞았으니 천고(千古)에 뛰어났다.
'태조 강헌대왕(康獻大王)' 관련자료
정종, 태종, 세종
께서 서로 이어받아 훌륭한 법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시니 제도가 밝게 갖추어졌다.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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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예종
)께서는 총명하시어 선대왕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그대로 지키며 행하였고, 금과옥조(金科玉條)를 구슬로 새기어 영원히 빛을 남기시니, 아름답고 거룩함이 그지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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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이란 곧 주나라의 육경이고, 그 좋은 법과 아름다운 뜻은 곧 주나라의 「관저(關雎)」와 「인지(麟趾)」6)
이다. 문장과 품격은 알맞게 조화하여 찬란하게 빛나는데, 누가 우리의 『경국대전
』의 제작이 주관⋅주례와 서로 견줄 만하지 않다 하겠는가.
6)
「관저(關雎)」와 「인지(麟趾)」 : 육경의 내용과 정신이 주나라의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이다. 「관저」는 군자가 숙녀를 얻어 즐기는 정경을 읊은 내용으로 『시경(詩經)』 「국풍(國)」 주남(周南)의 첫 장이고, 「인지」는 주나라 문왕(文王) 우비(右妃)가 덕을 닦아 자손 이 모두 그 선행에 감화된 것을 읊은 내용으로 주남의 종장이다.
'경국대전' 관련자료
천지와 사시에 맞추어도 어그러짐이 없고 옛 것에 고증해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먼 훗날 성인이 다시 나타난다 하여도 의혹되지 않을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신성한 자손이 이미 이룩한 법규를 따름에 그르치지 않고 잊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가 문명(文明)으로 다스려질 것이니 어찌 한갓 주나라의 융성함에 비할 뿐이겠는가. 억만년 무궁한 왕업이 마땅히 유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오래될 것이다.
성화(成化)
신 서거정
은 머리를 숙여 절하고 삼가 서문을 쓴다.
명나라 헌종의 연호
5년(기축년, 1469) 9월 하순에 정헌대부 호조판서 겸 예문관 대제학 동지경연사
'동지경연사' 관련자료
'서거정' 관련자료
『경국대전
'경국대전' 관련자료
- 수성지주(守成之主) : 창업지주(創業之主), 곧 나라를 처음 세운 군주의 뒤를 이어 나라의 물려받고 지키는 군주를 말한다.
- 삼장약법(三章約法) :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진(秦)의 까다로운 법을 모두 없애고 다만 살인한 자에게는 사형을, 남을 다치게 하거나 도둑질한 자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주기로 약속한 세 가지 법률을 말한다.
- 『육전(六典)』 :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주례(周禮)』의 6전을 본떠 편찬한 『당육전(唐六典)』을 가리킨다.
- 『주관(周官)』 : 『주례(周禮)』의 원래 이름으로 주나라 관직에 대한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 육경(六卿) : 주례(周禮)』에 나오는 천관(대총재), 지관(대사도), 춘관(태종백), 하관(대사마), 추관(대사구), 동관(대사공)의 여섯 장관을 말한다. 이들 육경의 소관을 육전이라 했으며 조선 왕조의 육조(六曹)
'육조(六曹)' 관련자료
- 「관저(關雎)」와 「인지(麟趾)」 : 육경의 내용과 정신이 주나라의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이다. 「관저」는 군자가 숙녀를 얻어 즐기는 정경을 읊은 내용으로 『시경(詩經)』 「국풍(國)」 주남(周南)의 첫 장이고, 「인지」는 주나라 문왕(文王) 우비(右妃)가 덕을 닦아 자손 이 모두 그 선행에 감화된 것을 읊은 내용으로 주남의 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