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에는 온 나라가 병란을 피하느라 마치 끓는 솥 안에 있는 물고기같이 위급하여, 선문(禪門)의 중들도 모두가 달아났다. 이때에 청허선사(淸虛禪師) 휴정(休靜)
은 묘향산에서 의병
을 일으켰는데, 승려들이 서산대사(西山大師)
라고 존칭한 사람이다. 속성(俗姓)은 최씨이고 그 본관은 전주이다. 행실이 고매하고 율법이 엄하며 석가의 경전에 통달하고 문장에도 능하여, 조정의 사대부
들과도 두루 사귀었다. 그의 뛰어난 제자들이 나라에 널려 있었는데, 이때에 와서 문도 1500명을 규합하여 칼을 짚고 주상을 행재소(行在所)
을 전하니, 건장하고 용감한 승려들이 오지 않는 자가 없었다. 휴정
의 고제(高第)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일어나 권율(權慄)
의 막하에 들어갔고, 유정(惟政)
은 금강산에서 일어났다. 유정(惟政)
은 호는 송운(松雲)
또는 사명산인(四溟山人)
이라고 하였다. 용모가 호걸스럽고 수염을 깎지 아니하였으며, 성품과 도량이 넓고 불전(佛典)에도 통달하였다. 이때 그는 표훈사(表訓寺)에서 강경(講經)을 하고 있었는데, 적병이 산중에 들어오자 중들이 다 도망하였으나, 유정
만은 가부좌하고 움직이지 않으니 적이 보고 감히 달려들지 못하고, 어떤 자는 합장하여 경례를 드리고 가기도 했다. 근왕(勤王)
의 격문
이 산중에 이르자, 유정
이 불탁(佛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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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임시 거처
에 가서 뵈었다. 상이 이르기를, “국난이 이러하니 네가 구제할 수 없겠는가?” 하니, 대사가 눈물을 흘리고 절하면서, “국내의 승도로서 늙고 병들어 소임을 맡을 수 없는 자는 있는 곳에서 분향수도(焚香修道)로 신의 도움을 기도하도록 하고, 그 나머지들은 다 모집해 와서 전장에 나가고자 합니다. 신들이 비록 속세를 떠났으나 국내에서 태어나 성상(聖上)의 은혜와 길러 주심을 입었사오니, 어찌 한 번 죽는 것을 아끼겠습니까. 원컨대 충성을 바치고자 합니다. ” 하였다. 상이 크게 기뻐하여 ‘일국도대선사 팔도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一國都大禪師八道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의 칭호를 하사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그의 무리를 이끌고 순안(順安)의 복흥사(伏興寺)에 주둔하며 팔도의 사찰에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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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하여 나라일에 힘씀
의 교서와 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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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모신 탁자
위에 펴놓고 여러 중을 불러놓고 읽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효유하니, 산중의 중 700여 명이 다 일어나 서쪽으로 근왕하러 떠났는데, 평양에 이르러서는 그 무리가 1000여 명이 되었다. 성의 동쪽에 주둔하여 순안(順安)의 군사들과 서로 긴밀히 구원하는 병력이 되었다. 『대동야승』권37, 「재조번방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