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순찰사 권율
(權慄)이 적병을 행주에서 격파하였다. 당시 경성(京城)에 적들이 모여 주둔하면서 그 기세가 등등하였다. 권율
은 명나라 군사와 연대하여 경성을 탈환하려고 군사를 배치하였다. 선거이(宣居怡)는 전군을 거느리고 금천(衿川) 광교산(光敎山)에 주둔케 하였다. (그리고) 권율
자신은 정병(精兵) 4,000명을 뽑아 양천(陽川)에서 강을 건너 행주산 위에 진을 치고 책(柵)을 설치하여 방비를 하였다. 적은 (우리 군이) 의지할 데 없는 깊은 곳에 들어간 것을 보고 수만 명의 대군을 출동시켜 새벽에 책을 포위하였다. (적이) 울려 대는 징소리·북소리가 땅을 진동하니 온 책 안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권율
은 거듭 영을 내려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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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군사를 나누어 교대로 진격해 왔다. 묘시(卯時)
이 직접 칼을 빼어 물러난 자 몇 사람을 베고, 다시 책을 세워 방어하였다.
오전 5시부터 7시까지
에서 유시(酉時)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에 이르기까지 안팎이 모두 사력을 다해 싸웠다. 우리 군사가 점령한 지역은 높고 험준하였으며, 뒤로는 강벽(江壁)에 막혀 달아날 길이 없었으므로 모두 죽을 각오를 하였다. 적은 올려다보고 공격하는 처지가 되어 탄환도 잘 맞지 않는 데 반해 호남의 씩씩한 군사들은 모두 활을 잘 쏘아 쏘는 대로 적중시켰다. 화살이 마치 비오듯 쏟아지니 적의 기세가 번번이 꺾이곤 하였다. 이에 적이 각자 짚단을 가지고 와 책에 불을 놓아 태웠다. 책 안에서는 물을 길어 불을 껐다. 적이 서북쪽 책 한 칸을 허물자 지키고 있던 승군(僧軍)이 조금 물러났다. (그러자) 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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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이 거의 떨어질 때쯤 수사(水使)
이빈(李蘋)이 배로 화살 수만 개를 실어다 주었다. 적이 결국 패해 후퇴하면서 시체를 네 무더기로 쌓아 놓고 풀로 덮고 태웠는데, 그 냄새가 몇 리 밖까지 풍겼다. 우리 군사가 나머지 시체를 거두어 참획한 것만 130급이나 되었다. 다음 날 사대수(査大受)가 접전한 곳을 와서 보고 말하기를, “외국에 진짜 장군이 있다.”고 하였다. 송경략(宋經略)이 우리나라에 자문(咨文)을 보내 위로하고 추장(推奬)
이 참획한 것이 매우 많으니 조선 인민이 그래도 진작될 수 있겠다.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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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여 장려함
하는 한편 비단과 은(銀)을 상으로 주고 황제에게 알렸다. 황제가 홍려시(鴻臚寺) 관원을 보내 우리나라에 선유(宣諭)하기를, “조선은 본디 강국으로 일컬어졌다. 지금 보건대 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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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이 파주 대흥산성(大興山城)으로 진을 옮기자 적병이 또 침입해 왔다. (하지만) 모두 싸우지 않고 물러갔다. 제독이 이 소식을 듣고 갑작스레 회군한 것에 대해 자못 후회하면서 장세작(張世爵)으로 하여금 이덕형
(李德馨)과 함께 다시 개성에 가서 군량을 비축해 놓고 기다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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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권27, 26년 2월 1일 병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