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경제수취 체제의 확립

부세론

『맹자』 등문공(滕文公) 상편에, “야인(野人)이 없으면 군자를 봉양할 수 없고, 군자가 없으면 야인을 다스릴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옛날 성인이 부세법(賦稅法)을 만든 것은 다만 백성으로부터 수취하여 자기를 봉양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백성이 서로 모여 살게 되면, 음식과 의복에 대한 물욕이 밖에서 공격하고 남녀에 관한 정욕은 안에서 공격하여, 동류일 경우에는 서로 다투게 되고 힘이 대등할 경우에는 싸우게 되어 서로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통치자는 법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서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평화롭게 해 주어야만 민생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그 일은 농사를 지으면서 병행할 수 없는 것이므로 백성은 10분의 1을 세로 바쳐서 통치자를 봉양하는 것이다. 통치자가 백성으로부터 수취하는 것이 큰 만큼, 자기를 봉양해 주는 백성에 대한 보답도 역시 중한 것이다. 후세 사람은 부세법을 만든 의의가 이러한 것을 모르고, “백성들이 나를 공양하는 것은 직분상 당연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가렴주구를 자행하면서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걱정하는데, 백성 또한 이를 본받아서 서로 일어나 다투고 싸우니 화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선왕이 법을 만든 것은 천리(天理)요, 후세 사람이 부세에 폐단을 일으키는 것은 인욕이다. 재신(才臣)과 계리(計吏)로 부세를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인욕을 억제하고 천리를 간직할 것을 생각해야 옳을 일이다.

우리나라 부세법은 조(租)는 토지에서 거두어들이고, 이른바 상요(常搖)잡공(雜貢)은 지방의 소출에 따라서 관부에 바치게 하는데 이는 당나라 조(租)⋅용(庸)⋅조(調)의 전하는 뜻이다. 전하는 오히려 부세가 너무 무거워서 우리 백성이 곤란을 겪는 것을 염려하여, 이에 유사(攸司)에게 명하여 전부(田賦)를 개정하고, 상요잡공을 상정(詳定)하게 해서 거의 중정(中正)의 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조(租)로 말하면, 토지가 개간되어 있는지, 황폐해 있는지를 조사하면 소출의 수효를 계산할 수 있지만, 상요와 잡공으로 말하면 다만 관부에서 바치는 액수만을 정해 놓았을 뿐, 가호에 대해서 무슨 물건을 내는 것이 조가 되고, 인구에 대해서 무슨 물건을 내는 것이 용이라는 것을 나누어서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관리들이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간계를 써서 함부로 수탈하여 백성은 더욱 곤궁해지고 유력자들은 다방면으로 피해서 국가의 재용이 도리어 부족해졌다. 전하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만들어 놓은 부세법의 의의를 아래에서 강구하지 않으니 이는 즉 유사의 책임이다. 다행히 무사하고 한가한 시간을 만났으니 강구하여 시행해야 옳을 것이다.

『삼봉집』권7, 『조선경국전』상, 부전, 부세

孟子曰, 無野人, 莫養君子, 無君子, 莫治野人. 古之聖人, 立賦稅之法, 非徒取民以自奉. 民之相聚也, 飮食衣服之欲攻乎外, 男女之欲攻乎內, 在醜則爭之, 力敵則鬪之, 以至於相殘. 爲人上者, 執法以治之, 使爭者平鬪者和, 而後民生安焉. 然不可耕且爲也, 則民之出乎什一, 以養其上. 其取直也大, 而上之所以報其養者亦重矣. 後之人, 不知立法之義, 乃曰民之供我者, 乃其職分之當然也. 聚斂掊克, 猶恐不勝, 而民亦效之, 起而爭奪, 禍亂生焉. 蓋先王所以立其法者 天理也, 後世所以作其弊者, 人欲也. 才臣計吏之治賦稅者, 當思遏人欲而存天理可也. 國家賦稅之法, 租則一出於田, 而所謂常徭⋅雜貢者, 隨其地之所出而納之官府, 蓋唐租⋅庸⋅調之遺意也. 殿下尙慮賦稅之重, 有以困吾民, 爰命攸司, 改正田賦, 詳定常徭⋅雜貢, 庶幾得中正之道. 然租則驗其田之開荒, 所出之數可稽, 其常徭雜貢者, 但定其官府所納之數, 不分言其有戶則出某物爲調, 有身則出某物爲庸. 吏因緣爲姦, 濫徵橫斂, 而民益困, 豪富之家多方規避, 而用反不足. 殿下愛民定賦之意, 不得下究, 有司之責也. 幸當無事閒暇之時, 講而行之可也.

『三峰集』卷7, 『朝鮮經國典』上, 賦典, 賦稅

이 사료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부세 정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한 것이다. 1394년(태조 3년) 3월 정도전이 왕에게 지어 바친 『조선경국전』의 일부로, 6전(六典)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을 종합적으로 서술하였으며, 그의 경제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정도전은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농업의 진흥과 토지 소유 관계의 전면적 재조정, 부세의 공정과 그 부담의 완화, 빈민 구제를 위한 후생 정책을 주장했으며,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방안으로 국가 비축을 늘리고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산정하며, 부세 제도를 합리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전제 개혁에서도 정도전조준(趙浚, 1346~1405)과 달리 정전제 입장에서 토지의 사적 소유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으며, 나아가 당시 과전법에 대해서도 일대에 행하기는 족한 법제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난날의 사전 개혁에 대한 불만을 부전의 경리편에서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전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었고 그 기반 위에서 조선 건국의 제도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과전법을 폐지하고 이상적인 토지 제도를 주장하고 실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도전은 토지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과전법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경제 사상을 구상하였으며, 이것은 부세의 문제를 다룬 「부전」에 잘 드러난다. 정도전은 공정한 부세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 재정 운영이 새로운 왕조의 실질적인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길로 인식하였다.

부전에서는 국가의 수입과 지출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야 하고, 국가 수입을 늘리기 위해 군현 제도와 호적 제도를 정비하고, 농상(農桑)을 장려할 것을 역설하였다. 국가 수입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국민의 토지 소유를 균등하게 할 것, 병작반수(竝作半收)를 금할 것, 부세를 가벼이 할 것 등을 강조하였다. 국가의 지출 항목으로는 상공(上供)⋅국용(國用)⋅군자(軍資)⋅의창(義倉)⋅혜민전약국(惠民典藥局)을 들었다. 되도록 지출을 억제해 국가의 예비 경비를 많이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부세론은 정도전이 새 왕조가 추구해 나가야 할 조(租)⋅용(庸)⋅조(調) 등 수취 제도의 원칙적인 방향을 논한 글로서, 한편으론 역(役)공물(貢物)의 기준 설정에 대한 고충이 드러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고려말기의 교화론과 생업안정론-이색과 정도전 계열 사대부의 항산⋅항심론을 중심으로-」,『한국사상사학』9,도현철,한국사상사학회,1997.
「정도전의 경제 사상」,『아세아연구』50-3,박홍규,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2007.
「정도전의 인간과 사회사상」,『진단학보』50,한영우,진단학회,1980.
저서
『고려말 사대부의 정치사상연구』, 도현철, 일조각, 1999.
『조선전기사회사상연구』, 한영우, 지식산업사, 1983.
『정도전 사상의 연구』, 힌영우, 서울대학교 문리대 한국문화연구소, 1973.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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