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경제농업 중심의 경제 정책

조선 전기의 벼 재배법

벼의 재배 【밭벼를 덧붙임】

〇 벼 품종에는 이른 벼와 늦벼가 있다. 경종법에는 물갈이 향명(鄕名)은 무삶이】, 마른갈이【향명은 건삶이】와 모종법【향명은 묘종】이 있다. 제초하는 법은 대체로 같다.

〇 올벼의 물갈이 법은 추수 후 논물을 대기 쉬운 기름진 논을 선택하여【무릇 논은 위로부터 물을 대기 쉽고 아래로 뺄 수 있어서 가물면 물을 대고 비가 내리면 물을 뺄 수 있는 곳이 으뜸이다. 물이 흐르지 않고 괴어 있는 곳은 그 다음이나 비가 장기간 내리면 물이 탁하여 모가 썩는다. 비가 내려야 심을 수 있는 높은 곳의 논은 좋지 않다】 갈고, 겨울에 거름을 넣는다【음력 1월에 얼음이 풀린 뒤 인분을 넣거나 혹은 객토를 하여도 좋다】. 2월 상순에 또 갈고 써레【향명은 소을라】로 세로와 가로로 평평하게 고르고 다시 쇠스랑【향명은 수수】으로 흙덩이를 깨뜨려 부드럽게 한다. 파종에 앞서 볍씨를 물에 담가 3일이 지난 후 건져 내어 짚으로 엮은 섬【향명은 공석】에 담아 따뜻한 곳에 둔다. 자주 판로 【향명은 번지】나 고무래【향명은 밀개】로 씨를 덮고 물을 대며 새를 쫓아낸다【묘의 싹이 나올 동안】. 모가 두 잎이 나오면 물을 빼고 손으로 김을 매는데【모가 약하므로 호미를 쓰지 말아야 하지만 물이 말라서 흙이 단단하면 호미를 써야 한다】, 모 사이의 가는 풀을 뽑고 또 물을 댄다【매번 물을 빼고 김을 맨 후 다시 물을 대는데 모가 약할 때에는 얕게, 강할 때에는 깊게 댄다】. 개울물을 대는 곳으로서 비록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곳은 김을 맨 후에 매번 물을 빼고 뿌리를 햇볕에 2일간 쪼였다가 다시 물을 댄다【바람과 가뭄에 잘 견디게 하고자 함이다】. 모가 반 자 정도 자라면 또 김을 매는데 호미로 맨다【모가 튼튼해서 호미를 쓸 수 있다】. 김을 맬 때는 손으로 모 사이의 흙 바닥을 주물러 부드럽게 매야 하며 김매기는 3~4회 한다【곡식이 자라는 것은 오로지 매어 가꾸는 공에 힘입는 것이며, 또 올벼는 자라는 것이 빠르므로 일손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벼가 익어 갈 때에는 물을 뺀다【물이 있으면 더디 익는다】. 올벼의 벼 알은 잘 떨어지므로 익는 대로 수시로 베어야 한다.

〇 늦벼의 물갈이 법은, 음력 1월에 얼음이 풀리면 (논을) 갈고 인분이나 객토를 넣는 것은 올벼에서 하는 법과 같다【올해에 객토를 넣으면 내년에는 인분이나 잡초를 넣도록 하여 서로 엇갈려 실시한다】. 진흙땅이거나 불량한 땅, 수온이 낮은 곳이면 모름지기 새 흙이나 모래흙을 넣고, 메마른 땅이면 외양간 거름과 갈나무잎【향명은 가을 초】을 시용한다. 인분이나 누에똥도 또한 좋다【그러나 많이 얻기가 어렵다】. 3월 상순부터 망종(芒種) 때까지 또 갈아야 하는데【대개 절기보다 늦게 파종하면 결실이 불량하다】 볍씨 담그기, 파종, 복토, 물 대기, 김매기 하는 방법은 모두 올벼에서와 같다【6월 보름 전에 세벌 매는 것이 으뜸이요, 6월 중에 세벌 매는 것이 다음이며,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좋지 않다】.

〇 봄에 가물어 물갈이를 할 수 없을 때는 마땅히 마른갈이로 해야 한다【오직 늦벼를 심어야 한다】. 그 법은 (논을) 간 다음에 곰배【향명은 고음파】로 흙덩이를 깨뜨리고 또 써레【향명은 소흘라】로 가로세로로 평평히 고른 뒤 볍씨 한 말을 잘 썩은 인분이나 오줌재 한 섬에 고루 섞도록 한다【오줌재를 만드는 법은 소 외양간 밖에 구덩이를 파서 오줌을 모아 놓고 여기에 볏짚이나 왕겨, 벼쭉정이 등을 불태워 만든 재를 넣은 후 고루 저어서 만든다】. 볍씨는 넉넉히 뿌리고 새를 쫓아낸다【싹이 나올 동안만】. 모가 미처 자라기 전에 물을 대는 것은 옳지 않으나, 잡풀이 나면 비록 가물어서 모가 마르더라도 매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 【옛말에 이르기를 호미 머리에 스스로 100본의 벼가 있다 하였고, 늙은 농부가 또한 말하기를 모는 사람의 공을 알아 준다 하였다】.

모내기로 재배하는 방법은 물이 있는 논을 선택하되 비록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2월 하순부터 3월 상순 사이에 갈 수 있다. 논마다 10분의 1은 모를 기르고 나머지 10분의 9는 모를 심는다【모를 뽑고 나면 못자리에도 아울러 모를 심는다】. 먼저 못자리로 할 곳을 갈고 방법대로 잘 다스리고 물을 뺀다. 다음으로 연한 버들가지를 잘 썰어서 두껍게 펴서 발로 밟아 넣고 흙을 볕에 쬐어 말린 후에 물을 댄다. 앞서 담근 볍씨는 3일 만에 걸러 내어 짚으로 엮은 섬【향명은 공석】에 하루 동안 두었다가 씨를 뿌리고 판로【향명은 번지】로 씨를 덮는다. 모가 한 움큼 이상 자라면 옮겨 심을 곳을 먼저 간 다음 상수리 나뭇잎을 깐다【향명은 가을초】. 외양간 거름을 펴고 모낼 때에 또다시 갈아 앞에 든 방법대로 잘 다스려 흙이 매우 부드럽도록 한다. 한 그루에 모 4~5본을 넘지 않도록 심을 것이며, 미처 뿌리를 내리기 전에 물을 대는 것은 불가하다【이 방법은 제초하기에는 편리하나 만일 크게 가물면 농사를 망치게 되므로 농가로서는 위험한 방법이다】.

O 벼의 품종은 매우 많으나 대개는 같고 따로 한 품종이 있다. 그것은 밭벼【향명은 묏벼】이다. 높은 지대나 수온이 낮은 곳에 적당하나 너무 건조하면 거둘 수 없다. 2월 상순에 (논을) 갈고 3월 상순부터 중순에 또 (논을) 갈아서 이랑을 만든다. 씨를 넉넉히 뿌린 다음 두둑을 굳게 밟아 준다. 김을 맬 때는 동시에 모 사이의 흙을 덜어 낼 것이나 그 흙을 모에 북돋워 주어서는 안 된다. 만일 메마른 땅이면 잘 썩은 인분이나 오줌재를 섞어서 파종한다. 혹은 밭벼 2푼, 피 2푼, 팥 1푼의 비율로 섞어서도 파종한다【대개 씨를 섞어서 심는 방법은 수재나 가뭄이 들어도 곡식의 종류별로 작황이 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섞어 심으면 모두 잃게 되지는 않는다】.

O 만약 초목이 빽빽하게 무성한 곳을 새로 개간하여 논으로 만들려고 하면 불을 놓아 태운 후 (토지를) 갈고, 3~4년 후 토질의 성질을 살펴서 인분을 쓴다.

O 만약 저습하여 거친 땅은 3~4개월간 물풀이 자랄 때 윤목(輪木)을 써서 풀을 없앤다. 이곳은 흙이 무르므로 좋아지기를 기다려 늦벼를 뿌리고 다시 섭나무 두세 개를 묶어서 소로 끌어 씨를 덮는다. 이듬해에는 따비【향명은 지보】를 사용할 수 있고, 3년이 되면 소로 갈 수 있게 된다【이와 같이 하면 잡초가 나지 않고 수고를 크게 덜게 된다】. 윤목을 만들 때는 단단하고 강한 나무를 써서, 길이는 넉 자 정도로 하고 5각형으로 날카롭게 모퉁이를 만든 후 이것의 양쪽을 심대로 관통시켜 이 심대 양쪽에 줄을 맨다. 아이를 안장 지운 소나 말에 태우고 심대에 맨 줄과 안장 후교(後橋)【향명은 북지(北枝)】와 연결시킨다. 말과 소가 지나가면 윤목의 5각형 모퉁이가 저절로 굴러서 풀을 으깨어 없애고 흙덩이를 깨뜨린다. 만약 매우 습하여 사람이나 소가 빠져 들어가 밟을 수 없는 땅에서는 도리깨【향명은 도리편】를 사용하여 풀을 없앤다. 씨를 뿌리는 일은 한결같이 앞서의 방법과 같다.

『농사직설』 종도조

種稻(附旱稻)

○稻種有早有晩. 耕種法 有水耕【鄕名水沙彌】, 有乾耕【鄕名乾沙彌】. 又有揷種【鄕名苗種】除草之法, 則大抵皆同.

○早稻, 秋收後, 擇連水源肥膏水田【凡水田, 上可以引水, 下可以決去, 旱則灌之, 雨則洩之者, 爲上. 洿下渟水處, 次之, 然久雨泥渾則苗腐. 高處須雨而耕者, 斯爲下矣.】, 耕之, 冬月入糞【正月氷解, 耕之入糞, 或入新土, 亦得.】. 二月上旬, 又耕之, 以木斫【鄕名所訖羅】, 縱橫摩平, 復以鐵齒擺【鄕名手愁音】, 打破土塊, 令熟. 先以稻種, 漬水經三日漉出, 納蒿篅中【鄕名空石】, 置溫處. 頻頻開視, 勿致鬱浥, 芽長二分, 均撒水田中, 以板撈【鄕名飜地】, 或把撈【鄕名推介】, 覆種, 灌水, 驅鳥【以苗生爲限】. 苗生二葉, 則去水, 以手耘【苗弱不可用鋤, 然水渴土强則當用鋤.】去苗間細草訖, 又灌水【每去水而耘, 耘訖灌之, 苗弱時宜淺, 苗强時宜深.】. 如川水連通, 雖旱不渴處, 則每耘訖決去水, 曝根二日後, 還灌水【耐風與旱.】. 苗長半尺許, 又耘以鋤【苗强可以用鋤】. 耘時, 以手挼軟苗間土面, 耘至三四度【禾穀成長, 唯賴鋤功, 且早稻性速, 不可小緩.】. 將熟去水【有水, 則熟遲.】. 早稻善零, 隨熟隨刈.

○晩稻水耕, 正月氷解耕之, 入糞入土, 與早稻法同【今年入土, 則明年入糞或入雜草, 互爲之.】. 其地或泥濘或虛浮或水冷, 則專入新土, 或莎土塉薄, 則布牛馬糞及連枝杼葉【鄕名加乙草】. 人糞蠶沙, 亦佳【但多得爲難】. 三月上旬至芒種節, 又耕之【大抵節晩耕, 種者不實.】. 漬種, 下種, 覆種, 灌水, 耘法, 皆與早稻法同【六月望前, 三度耘者爲上, 六月內, 三度耘者次之, 不及此者爲下.】.

○春旱不可水耕, 宜乾耕【唯種晩稻】. 其法, 耕訖以檑木【鄕名古音波】打破土塊, 又以木斫【鄕名所訖羅】, 縱橫摩平熟治後, 以稻種一斗, 和熟糞或尿灰一石, 爲度【作尿灰法, 牛廏外作池貯尿, 以穀秸及穅秕之類, 燒爲灰, 用所貯池尿拌均.】. 足種驅鳥【以苗生爲限】. 苗未成長, 不可灌水, 雜草生, 則雖旱苗槀, 不可停鋤【古語曰, 鋤頭自有百本禾, 老農亦曰, 苗知人功.】.

○苗種法, 擇水田, 雖遇旱, 不乾處. 二月下旬至三月上旬, 可耕. 每水田十分, 以一分養苗, 餘九分以擬栽苗【拔苗訖, 幷栽養苗處.】. 先耕養苗處, 如法熟治去水. 剉柳枝軟梢厚布訖, 足踏之, 曝土令乾後, 灌水. 先漬稻種, 三日漉入, 蒿篅【鄕名空石】經一日, 下種後, 以板撈【鄕名飜地】覆種. 苗長一握以上, 可移栽之先耕, 苗種處布杼葉【鄕名加乙草】. 或牛馬糞, 臨移栽時, 又耕之, 如法熟治, 令土極軟. 每一科栽不過四五苗, 根未着土, 灌水不可令深【此法, 便於除草, 萬一大早, 則失手, 農家之危事也.】.

○稻種甚多, 大抵皆同. 別有一種曰, 旱稻【鄕名山稻】. 徧宜於高地及水冷處, 然土大燥則不成. 二月上旬耕之, 三月上旬至中旬又耕之, 作畝. 足種訖, 踏畝背令堅. 耘時, 去苗間土, 勿擁地. 若塉薄, 和熟糞或尿灰種之. 或旱稻二分, 稷二分, 小豆一分, 相和而種【大抵雜種之術, 以歲有水旱, 九穀隨歲異宜. 故交種則不至全失.】.

○若新墾草木茂密處爲水田者, 火而耕之, 三四年後, 審其土性用糞.

○若沮澤潤濕荒地, 則三四月間, 水草成長時, 用輪木殺草. 待土面融熟後, 下晩稻種, 又縳柴木兩三箇, 曳之以牛覆其種. 至明年可用耒【鄕名地寶】, 三年則可用牛耕【稂莠不生, 大省鋤功.】. 其輪木之制, 用堅强木, 長可四尺, 爲五銳隅, 兩頭貫木環, 以繩繫環. 令兒童騎粧鞍牛或馬, 以繫環繩結鞍後橋【鄕名北枝】兩旁. 牛馬行, 則其輪木五銳隅, 自回轉殺草破塊. 若沮甚人牛陷沒, 不可入蹈之地, 用栲栳【鄕名都里鞭】殺草. 下種, 一如前法.

『農事直說』 種稻條

이 자료는 1429년(세종 11)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에 수록되어 있는 벼 재배법과 관련한 내용이다. 『농사직설』은 세종의 명을 받아 편찬된 책이다. 각 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지역 내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농부들의 농사법을 직접 듣게 하고, 이를 모아 간행하였다. 그 이전에 중국 측 농서가 일부 편찬되었으나, 우리 풍토와 맞지 않아 그 대안으로 간행한 것이다. 『농사직설』은 벼 재배법 이 외에도 종자의 선택과 저장 방법, 땅을 가는 방법, 삼의 파종과 재배, 기장과 조의 재배, 콩과 팥의 재배 등 모두 10개 항목으로 되어 있다.

벼 농사는 고려 후기에 많이 확산된 가운데 주로 물을 댄 논에 씨를 뿌려 벼를 재배하는 수경 직파법(水耕直播法)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고려 후기 성리학의 전래와 함께, 성리학이 기반하고 있는 중국 강남 지역의 농법이 함께 수용되었다. 원래 고려 시대 벼 재배를 비롯한 농업은 한지 농업(旱地農業)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기술적으로는 중국 화북 지방 농법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강남의 농법을 수용하면서 그 장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강남 농법은 벼농사에 일대 진전을 이루었다고 평가될 정도로, 벼농사의 기술을 상당히 진전시킨 농법이었다. 강남 농법이 형성된 중국의 강남 지역은 강우량이 풍부하고 하천 또한 많아 벼농사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지역이었다. 강남 농법은 벼농사와 관련하여 물을 이용하는 수리(水利) 시설이나 논밭에 거름을 주는 시비(施肥) 기술을 크게 개선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몇 년에 한 번씩 토지를 쉬게 하는 휴한법의 제약을 극복하였으며, 모내기라고 하는 이앙법(移秧法)을 성립시켰다.

고려 후기에 유입된 강남 농법은 이를 실제에 적용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져서, 조선 전기『농사직설』은 이러한 노력을 대폭 반영하였다. 『농사직설』을 보면 당시 벼농사의 주류는 여전히 건답 직파법(乾畓直播法)이기는 하였다. 건답 직파법은 볍씨를 본 논에 바로 뿌려서 농사를 짓다가 우기(雨期)에 물을 대어 본격적으로 농사를 행하는 것이었다. 다만 고려 후기 이후 지속적인 농법 개량이 이루어져 휴한법에서 해를 거르지 않고 토지를 연속으로 경작하는 연작법으로 변화하였다. 이런 가운데 『농사직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황무지를 물을 쉽게 댈 수 있는 수전으로 개간하고 이를 매년 채소와 곡식을 경작할 수 있는 토지로 숙전(熟田)화하는 기술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저습지가 수전으로 변화되면서 수전의 면적이 점차 늘어났다.

『농사직설』이 편찬되던 조선 전기에는 이앙법이 널리 보급되지 못하였다. 이앙법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인 수리 시설의 한계 때문이었다. 우리의 전통 수리 기술은 산의 계곡을 막아 개울물을 모아 사용하는 제언(堤堰) 방식이었다. 그러나 보급에 한계가 있어 조선 전기에 삼남 지방에서조차 그 혜택을 보는 수전은 6분의 1 정도에 그쳤다. 이후 냇물과 닿아 있는 기슭에 둑을 쌓아 물을 보관하는 천방(川防) 방식이 점차 보급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와 같은 수리 시설의 한계로 이앙법은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경상⋅강원 두 도에서만 제한적으로 시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 노동력이 부족하여 제초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사용하거나 특수한 토양 에서만 어쩔 수 없이 이용되었다. 또한 조정에서는 농사 시기를 놓친다는 이유로 이앙법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농사직설≫과 15세기 수전농업의 실태」,『인하사학』7,김상태,인하역사학회,1999.
「조선전기의 수도작법고」,『동양문화연구』11,이호철,경북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1984.
저서
『조선시대 농법 발달 연구』, 염정섭, 태학사, 2002.
『조선유교사회사론』, 이태진, 지식산업사, 1989.
편저
「농업기술의 발전」, 위은숙, 국사편찬위원회, 1996.
「농업과 농업기술」, 이호철, 국사편찬위원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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