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는 반드시 성심으로 도를 향하고, 세속의 잡다한 일로써 자기의 뜻을 어지럽히지 않은 뒤에야 학문의 기초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중략)……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데는 구용(九容)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으며, 학문을 진취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데는 구사(九思)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다. 이른바 구용(九容)이란 다음과 같다.
걸음걸이는 무겁게 하라[足容重]. 【거동을 가볍게 하지 마라. 만약 어른 앞을 지나갈 적에는 여기에 구애되지 않아야 한다.】 손가짐을 공손히 하라[手容恭].【손은 아무렇게나 놓아 두어서는 안 된다. 일이 없을 때는 단정히 모으고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눈 모양은 단정히 하라[目容端]. 【눈을 바르게 두어야 하고 흘겨보거나 간사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 입은 가만히 다물라[口容止].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말소리는 조용히 하라[聲容靜]. 【소리와 기운을 잘 가다듬어야 하며 재채기나 가래 등의 잡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머리 모양은 항상 똑바로 두라[頭容直]. 【머리를 항상 곧게 하고 몸을 반듯이 세워야 하며 한쪽으로 기울이거나 비스듬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숨쉬기를 정숙히 하라[氣容肅]. 【숨쉬기를 잘 조절하고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설 때는 덕스럽게 하라[立容德]. 【한쪽으로 비뚤어지게 서지 말고 똑바로 서서 덕스러운 기상이 있어야 한다.】 얼굴 모습은 장엄하게 하라[色容莊]. 【얼굴 모습을 가다듬고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이른바 구사(九思)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밝게 보기를 생각할 것[視思明]. 【보는 데 가려짐이 없으면 환하여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총명하게 듣기를 생각할 것[聽思聦]. 【듣는 데 막힘이 없다면 분명하여 듣지 못하는 것이 없다.】 안색은 온화하게 하기를 생각할 것[色思溫]. 【안색은 온화하게 하여 노한 기색이 없음이다.】 모습은 공손히 할 것[貌思恭]. 【몸에 단정하지 않은 데가 없는 것이다.】 말하는 데는 충(忠)을 생각할 것[言思忠]. 【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충신(忠信)하지 않음이 없음이다.】 일하는 데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할 것[事思敬]. 【한 가지 일이라도 경건하게 하지 않음이 없음이다.】 의문이 있을 때는 묻기를 생각할 것[疑思問]. 【마음에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선각에게 나아가 아낌없이 모르는 것을 묻는다.】 분할 때에는 어려움이 닥칠 것을 생각할 것[忿思難]. 【성이 나거든 잘 다스려 이성으로 억제하여야 한다.】 이득을 얻으면 의에 합당한지를 생각할 것[見得思義]. 【재물을 보거든 의리인지 이익인지를 분명히 가려 의에 합당한 연후에 취해야 한다는 것.】 항상 구용⋅구사를 마음에 두고 몸가짐을 추슬러 잠시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또 앉는 한쪽에 써 두고 수시로 쳐다보아야 할 것이다.
예가 아니거든 보지 말며[非禮勿視], 예가 아니거든 듣지 말며[非禮勿聽], 예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며[非禮勿言], 예가 아니거든 움직이지 마라[非禮勿動]는 이 4가지 말은 수신(修身)하는 요점이다. 예와 예가 아닌 것을, 초학자로서는 분별하기 어려우므로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여[窮理] 밝혀야 한다. 이미 아는 데에서 힘써 행하기만 하면 도의 경지에 반 이상은 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 있으니, 만일 평소에 공손하게 거하고 공경스럽게 일을 처리하며 충(忠)으로 남을 대하면 이를 학문이라 할 것이니, 글을 읽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밝히고자 해서일 뿐이다.
의복은 사치스럽게 입어서는 안 되니 추위를 막는 정도면 된다. 음식은 맛있는 것을 찾아서는 안 되니 주림을 면할 정도면 된다. 거처는 안락한 것을 구해서는 안 되니 병이 나지 않을 정도면 된다. 오직 학문에 대한 노력과, 마음을 바르게 함과, 예의를 법도에 맞게 지키는 일은 날마다 힘쓰고 힘써야 하며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사욕을 이기는[克己] 공부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절실하다. 이른바 사욕[己]이라는 것은 내 마음이 좋아하는 바가 천리(天理)에 합당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반드시 내 마음이 색(色)을 좋아하는가, 이(利)를 좋아하는가, 명예를 좋아하는가, 벼슬을 좋아하는가, 편안하게 지내기를 좋아하는가, 잔치하며 놀기를 좋아하는가, 진기한 보배를 좋아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모든 좋아하는 것들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한 번에 모든 것을 깨끗이 없애 버려 싹도 남겨 두지 않은 뒤에야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 비로소 의리에 합당하여 이겨 낼 사욕이 없게 될 것이다.
말 많고[多言] 생각 많은 것[多慮]이 마음에 가장 해로우니, 일이 없으면 정좌(靜坐)하여 존심(存心)하고, 남들을 접대할 때는 마땅히 말을 가려서 간결하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 때에 맞게 말하면 말이 간결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 간결한 자는 도에 가깝다. 선왕의 법복(法服)이 아니면 감히 입을 수 없고, 선왕의 법언(法言)이 아니면 감히 말할 수 없으며, 선왕의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할 수 없는 것이니, 이를 일생토록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학문하는 자는 한결같이 도를 향해야 할 것이니, 외물에 지배되어서는 안 되니 바르지 못한 외물은 일절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야 한다. 고을 사람들이 모여서 만일 바둑⋅장기⋅쌍륙 등의 노름을 하거든 눈길도 주지 말고 물러나야 할 것이며, 창기(倡妓)들이 가무하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피해 가야 할 것이다. 고을의 큰 모임에서 고을 어른이 억지로 붙잡아 피해 물러날 수 없거든, 자리에 있더라도 용모를 바로 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서, 간성(奸聲)과 난색(亂色)이 나를 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잔치에서 술을 마시더라도 잔뜩 취하지 않도록 하고 알맞게 마신 뒤에는 그만 마시는 것이 좋다. 음식은 적당히 먹어야 하니, 마음껏 먹다가 기(氣)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 말과 웃음은 간결하고 신중히 해야 하며 시끄럽게 떠들며 법도를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 행동거지는 차분해야 하니, 엄벙덤벙하여 몸가짐을 흩뜨려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처리해야 하고, 글을 읽을 적에는 정성을 다해 이치를 따져야 한다. 이 2가지 외에도 정좌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고요한 가운데 복잡하게 일어나는 생각이 없이 항상 깨어 있어 멍청해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경으로 마음을 곧게 하라[敬以直內]”는 말이 이와 같은 뜻이다.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안팎이 같아야 하며 그윽한 데서도 드러난 데서와 같이 하며, 혼자 있을 때에도 여러 사람이 있을 때와 같이하여, 이 마음을 사람들이 맑은 하늘의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 항상 “한 가지 불의를 저지르고,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는다 해도 그것을 하지 않겠다[行一不義 殺一不辜, 而得天下, 不爲]”는 뜻을 가슴속에 간직해야 할 것이다. 경에 거하여[居敬] 그 근본을 세우며, 이치를 궁구하여 선(善)을 밝히며, 힘써 행하여 실천해야 하니, 이 3가지는 평생 해야 할 일이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는 구절과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毋不敬]’는 구절은 일생 동안 쓰더라도 다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벽에 걸어 두고 잠깐이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음을 보존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배움에 진전이 없지는 않은가’, ‘행실에 힘쓰지 않은 점이 있는가’ 하고 매일 자주 점검하여, 이런 점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써서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하고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율곡전서』권27, 『격몽요결』 지신장 제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