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사회향약의 보급

해주 향약

해주향약(海州鄕約)

입약범례(立約凡例)

1. 처음 향약을 정할 때 약문을 동지에게 두루 보이고 그 마음을 바로잡고, 몸가짐을 단속하고, 착하게 살고, 허물을 고치기 위해 약계(約契)에 참례하기를 원하는 자 몇 사람을 가려 서원(書院)에 모아 놓고 약법(約法)을 의논하여 정한 다음 도약정(都約正), 부약정 및 직월(直月)⋅사화(司貨)를 선출한다.

1. 여러 사람들은 나이와 덕망과 학술(學術)이 있는 한 사람을 추대하여 도약정으로 삼고, 학문과 덕행이 있는 두 사람을 부약정으로 추대한다. 약중(約中)에서 교대로 직월과 사화를 맡는데 직월은 반드시 부릴 노복이 있어 사령(使令)이 가능한 사람으로 삼고 사화는 반드시 서원 유생으로 삼는다. 도정과 부정은 사고가 있지 않으면 바꾸지 않고, 직월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교대로 바꾸며, 사화는 1년에 한 번씩 바꾼다.

1. 세 가지 장부를 두어 입약(入約)을 원하는 사람을 하나의 장부에 기록하고 덕업(德業)이 볼 만한 사람을 또 하나의 장부에 기록하며, 과실이 있는 사람을 또 하나의 장부에 기록하여 직월이 맡았다가 매번 모임이 있을 때 약정에게 알려서 각각 그 차례를 매긴다.

1. 처음 규약을 정할 때 서원에 모인다. 【예를 행하는 의식은 뒤에 보인다.】 선성(先聖)과 선사(先師)의 지방(紙榜)을 설치하고 향을 피우며 두 번 절하고는 직월이 맹세를 고하는 글을 가지고 【그 글은 미리 지어서 동약인에게 두루 보인다.】 도약정의 왼쪽에 꿇어앉는다. 도약정과 그 자리에 있는 이가 다 꿇어앉고 직월이 고문 읽기를 마치면 약정 【도약정을 줄여서 약정이라 한다. 뒤에도 이와 같다.】 및 그 자리에 있는 이가 모두 두 번 절한다. 만약 추후로 향약에 참여하려는 자일지라도 모임이 있을 때 선성과 선사에게 예를 마치고 나서 새로 들어온 자는 두 계단 사이의 서편에 꿇어앉고 직월은 또 고문을 가지고 【그 글도 미리 만든다.】 그 왼편에 꿇어앉아서 읽는다. 【약정 이하 및 자리에 있는 이는 꿇어앉지 않는다.】 읽기를 마치면 처음 들어온 자는 두 번 절한다. 그 밖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는 절을 하지 않는다.

1. 뒤를 따라 입약(入約)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먼저 규약문을 보여 두어 달 동안 잘 생각해서 스스로의 판단에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힘써 실행할 수 있다고 헤아려 본 뒤에 가입하기를 청한다. 가입을 청하는 이는 반드시 단자를 갖추어 참여하기를 원하는 뜻을 갖추어서 모임이 있을 때 진술하고 사람을 시켜 약정에게 올리며 약정은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허락할 만하다고 한 뒤에야 답장을 띄워 다음 모임에 참여하도록 한다. 만약 서로 알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먼저 몸조심을 하지 않은 자가 들어오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규약문을 베껴 자세히 읽어서 그 뜻을 알게 하고 규약문에 의하여 한두 해 동안 몸을 다스려서 선을 행하고 허물을 고쳐 착해진 것을 여러 사람이 명백하게 알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신청하게 한다.

1. 같은 약원(約員)은 한 달 건너 초하룻날에 모이니 즉 1월⋅3월⋅5월⋅7월⋅9월⋅11월의 초하룻날이다. 초하룻날 사고가 있으면 미리 기일을 정하되 초순이 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약원이 먼 지방에 살면 한 해에 한두 번씩 모이고 기타 길사(吉事)와 흉사(凶事) 때의 모임은 임시로 날을 정한다.

1. 모임이 있을 때 병으로 참여할 수 없으면 반드시 사유를 갖추어서 단자(單子)를 만들어 그날 이른 아침에 자제를 시킨다. 【자제가 없으면 일 보는 종을 시킨다.】 직월(直月)에게 올리게 하여 여러 사람에게 돌려 보인다. 만약 고의적인 핑계로 빠진 것이 밝혀지면 직월이 약정에게 고하여 규약을 위반한 것으로 논하고 만약 먼 지방에 사는 자라면 단자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1. 선적(善籍)악적(惡籍)은 모두 스스로 향약에 참여한 뒤부터 기록하고 그 이전에는 과실이 있었더라도 모두 말소하여 다시 논하지 않고 반드시 예전 그대로 고치지 않은 뒤에야 장부에 기록한다. 악적에 기록된 것은 허물을 고친 것을 명백히 안 뒤에야 모임 때 공론으로 말소하고, 선적에 기록된 것은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말소하지 않고 반드시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형제에게 우애하지 못하거나, 음간(淫姦)으로 금령을 범하거나, 부정한 재물을 취하여 몸을 욕되게 하는 등의 크게 패륜한 행실이 있은 뒤에야 선적에서 말소하고 약에서 쫓아낸다.

1. 직월이 만약 같은 약원의 착한 행실이나 악한 행실을 들으면 상세하게 묻고 실정을 알아서 사사로이 장부에 기록하였다가 모임이 있는 날 뭇사람에게 보고한다. 만약 직월이 알고도 고하지 않으면 약정과 부약정이 그 까닭을 문책하여 규약을 위반한 것으로 논하고, 약원의 과실을 기록한 것이 말소되지 않은 것이 세 번이 되도록 끝내 고치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약에서 쫓아내되 약에서 쫓겨난 자가 스스로 뉘우치고 허물을 고치면 다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 【처음 들어오는 예(例)와 같다.】

1. 처음 향약을 세울 때 약에 참여한 사람은 각각 무명 한 필, 삼베 한 필, 쌀 한 말씩 내어 사화(司貨)에게 위임하여 서원에 간직해 두고, 근실한 재직(齋直)을 선발하여 그 출납을 맡겨 뒷날 길사나 흉사 때 구휼(救恤)하는 자금으로 삼는다. 또 매년 11월의 모임 때는 같은 약원들이 각각 쌀 한 말씩 내어서 사화에게 맡기면 사화는 거두고 저장하는 것을 맡아 용도에 댄다. 만약 쓰고 남는 것이 있으면 백성에게 놓아서 10분지 2의 이식을 받아 사창법(社倉法)과 같이 하고, 부족하면 같은 약원이 적당히 헤아려 출자를 더하여 보충한다. 베는 거둬들인 것을 이식을 놓지 말고 용도가 다하려 하면 또 각각 한 필씩 내서 용도에 충당하게 한다. 만약 쌀의 저축이 점점 많아지면 베로 바꾸어서 저축해도 되지만 여러 해 동안 묵어 저축한 것이 점점 여유 있게 되면 물자를 거둘 일이 있을 때 같은 약원에게 거두지 않고 사화가 저장한 것으로 쓴다. 추후로 향약에 들어온 자도 처음에 세운 약원의 예(例)에 의하여 쌀과 베를 낸다.

1. 경사(慶事)에 기증할 때는 예(禮)의 크고 작은 데 따라 예물의 다소(多少)를 정하는데, 많으면 무명 다섯 필과 쌀 열 말, 그 다음은 무명 세 필과 쌀 다섯 말이며, 적으면 무명 한 필과 쌀 세 말로 한다. 대과(大科) 급제와 같은 경우가 대례(大禮)이고 생원⋅진사가 그 다음이며, 그 나머지 아들의 관례(冠禮)나 처음 하는 벼슬, 품계가 오르는 따위가 소례(小禮)이다. 혼례에는 무명 세 필과 쌀 다섯 말을 부조한다.

1. 상사(喪事)에는 물건을 부조함이 있고, 몸으로 일 돕는 것이 있는데 물건으로 부조할 때 만약 약원의 상사라면 초상에는 사화가 약정에게 고하여 삼베 세 필을 보내고, 같은 약원들은 각각 쌀 다섯 되와 빈 거적때기 세 닢씩 내어서 치상(治喪)을 돕는다. 또 제물(祭物)을 보낼 때는 사화가 소장한 무명 다섯 필과 쌀 열 말을 부장(賻狀)을 갖추어서 같이 보낸다. 장례를 지낼 때는 각각 힘센 종 한 명을 보내되 사흘 양식을 지니고 가서 일을 돕게 한다. 만약 약원의 부모의 상(喪)이라면 초상에 삼베 두 필을 보내고 약원들은 각각 쌀 서 되와 빈 거적때기 두 닢씩 내고 다음으로 무명 세 필과 쌀 다섯 말을 부조한다. 장례에는 각각 힘센 종 한 명씩 보내되 이틀 양식을 지니고 가서 일을 돕게 한다. 만약 처자(妻子)의 상이라면, 【아들의 나이가 열 살 미만이면 조문(吊問)하고 부물은 없다.】 초상에는 삼베 한 필을 보내고 약원들은 각각 쌀 한 되와 빈 거적때기 한 닢씩 내며 다음으로 무명 한 필과 쌀 서 말을 부조한다. 장례를 지낼 때는 각각 힘센 종 한 명씩 보내되 하루 양식을 지니고 가서 일을 돕게 한다.

1. 불이 나서 그 집을 다 태운 경우에는 약원들이 의논하여 지붕에 덮을 풀 세 마름과 재목 두 조(條) 씩 각각 내고 또 힘센 종 한 사람씩 보내되 사흘 양식을 지니고 가서 집 짓는 일을 돕게 한다.

1. 같은 약원의 상사에 제물을 보낼 때는 약원들이 각각 쌀 서 되를 내어 술⋅반찬⋅떡 등을 준비하는데 기일 이전에 미리 모아야 한다.

1. 같은 약원으로서 한 고을에 살지 않으면 대개 길사나 흉사에 친히 가지 않고 다만 글을 갖추어 약원들이 연명하여 사람을 보낸다. 이를테면 급제인 경우에 보내는 물품은 무명 다섯 필, 생원진사인 경우에는 무명 세 필로 하고, 그 외 작은 경사에는 글만 보내고 물품은 없다. 보낼 물품이 있으면 하인을 보내고 하인이 없으면 반드시 믿을 만한 자를 고용하여 품값을 주어 보내며 보낼 물품이 없으면 글은 인편으로 전해 보낸다. 상사에도 친히 가지 못하고 다만 부물과 같은 약원이 연명한 조장(弔狀)을 갖추어 보낸다. 같은 약원 당사자의 상이라면 부물로 무명 다섯 필과 삼베 세 필을 보내고, 부모의 상에는 부물로 무명 세 필과 삼베 두 필을 보내고, 처자의 상에는 무명과 삼베 각 한 필 씩 보낸다. 약원 당사자의 상에는 반드시 약원 중에서 어리고 젊은이를 보내되 제사를 올릴 제물을 싸 가지고 가서 제를 지내게 하는데 그 제물은 약원들이 각각 쌀 서 되를 내어 준비해 보낸다. 그 나머지 규휼(救恤) 등의 일은 다 힘이 닿을 수 없다. 【힘이 닿을 수 있으면 해도 된다.】

1. 다른 지방에 사는 약원이 약원 중의 길사나 흉사를 들으면 다만 글을 써서 축하와 위문을 하되 사람을 보내기도 하고 인편으로도 하는데 각기 형편에 따라서 한다. 다만 약원인 당사자의 상사에 만약 여러 사람을 따라서 같이 제물을 보내지 못했으면 반드시 스스로 전에 올릴 제물을 갖추어 제를 지내야 한다. 장사한 뒤라면 묘에 가서 하되 반드시 제문을 갖춘다. 그 외 구휼하는 등의 일은 힘이 미칠 수 없다. 【힘이 닿을 만한 것은 해도 된다. 】

1. 다른 지방에 사는 약원은 매년 쌀을 낼 수 없으니 3년에 무명 한 필을 내거나 3년에 삼베 한 필을 내되 돌려 가면서 내는 것을 상례로 한다. 그 나머지 불시에 물품을 모으는 등의 일에 다 참여할 수 없다.

1. 약원의 모임에서 물품을 모으는 것이나 일을 돕는 일들은 다 직월이 맡는다. 대개 모임이 있을 때는 직월이 약정이나 존자(尊者)의 집에 친히 가서 까닭을 물은 뒤에 【여기에 존자는 직월의 나이로 계산한 것이다.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부약정에게 통고하고 【부약정이 직월보다 어른이면 역시 친히 가야 한다.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한곳에 모여 그 기일을 정하고 회문(回文)을 돌려 약원에게 통고한다. 부약정과 직월이 같이 서명한다. 【약정은 서명하지 않는다.】 약원이 부약정보다 나이가 많은 자면 회문으로 쓰지 않고 약정도 회문으로 쓰지 않으며 직월이 친히 가서 기일을 고한다. 약원의 대부분이 일이 없으면 비록 두세 사람이 일이 있어도 모인다.

길사나 흉사에 기증과 부물이 정한 수량이 있는 경우에는 직월이 사화에게 통고하여 예에 의거하여 단자(單子)를 갖추어, 직월과 사화가 먼저 서명한 뒤에 부약정에게 서명을 받고, 서명이 끝나면 직월이 약정의 집에 가지고 가서 서명을 받아 사화(司貨)가 보관하고 있는 쌀과 베를 보낸다. 만약 더 보내야 할 것이 있으면 직월과 사화가 부약정과 함께 약정의 집에 가서 의논해서 결정한 뒤에 비로소 단자를 갖추어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서명한다. 만약 회문을 하여 물품을 모을 적에 그 수량이 이미 정해진 것은 직월이 상례에 따라 회문을 쓰고 일이 급한 경우에는 회문을 두 벌 써서 동서(東西)로 나누어서 거두는데 직월이 먼저 서명하고 나서 부약정에게 서명을 받고 곧 약정의 집에 가지고 가서 서명을 받는다. 이런 회문에는 비록 존자라도 모두 서명한다. 만약 물품을 거두어야 하거나 그 수량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라면 직월이 반드시 부약정과 함께 약정의 집에 가서 그 수량을 의논하여 정한 뒤에 회문을 낸다.

약정도 스스로 정하기 어려운 것은 모임이 있을 때 여럿에게 물어서 의논하여 정하고 만약 일이 급하면 직월을 시켜 약원 중의 존자(尊者) 다섯 사람에게 물어서 자세히 참작 의논하여 정하게 한다. 일을 도와주는 것을 감독하려면 직월은 일하는 장소에서 떠나지 못하며 그 태만한 것을 단속하되 나오지 않은 이는 장부에 기록한다. 일을 도울 때도 회문(回文)을 내는데 위의 예와 같이 하고 한꺼번에 와서 일을 돕게 할 것이며 먼저 하고 뒤에 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일을 직월이 규약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부약정이 바로잡고 부약정이 바로잡지 못하면 역시 규약을 어긴 것으로 논죄해야 한다.

『율곡전서』권16, 잡저, 해주향약

海州鄕約

立約凡例

一. 初立約時, 以約文徧示同志, 擇其願操心檢身, 遷善改過, 以參約契者若干人, 會于書院, 議定約法, 選定都副約正及直月司貨.

一. 衆推一人有齒德學術者, 爲都約正, 以有學行者二人副之. 約中輪回爲直月司貨, 直月必以有奴僕可使令者爲之, 司貨必以書院儒生爲之, 都副正非有故則不遞, 直月每會輪遞, 司貨一年輪遞.

一. 置三籍, 凡願入約者, 書于一籍, 德業可觀者, 書于一籍, 過失可規者, 書于一籍, 直月掌之, 每會以告于約正而授其次.

一. 初立約時, 會于書院. 行禮之儀, 見後. 設先聖先師紙榜, 焚香再拜訖, 直月持誓告之文, 右文預撰, 徧示同約. 跪于都約正之左, 都約正及在位者皆跪, 直月讀告文畢, 約正都約正省文稱約正. 後倣此. 及在位者皆再拜. 若隨後參約者, 則亦於會時, 禮先聖先師畢, 初入者跪于兩階閒少西, 直月亦持告文, 文亦預撰跪于其左讀之. 約正以下及在位者不跪. 讀畢, 初入者再拜. 他在位者不拜.

一. 凡隨後願入約者, 必先示以約文, 使之數月商量, 自度必能終始力行, 然後乃請入. 請入者, 必具單子, 陳其願參之意, 於會集時, 使人呈于約正, 約正詢于衆, 以爲可許, 然後乃答書, 使於後會得參. 若相知未熟之人及先不操持者願入, 則必使謄寫約文, 熟讀解義, 依約文治身一兩年, 待衆人明知遷善改過, 然後乃請入.

一. 同約之人, 每閒一月朔日一會, 謂正月三月五月七月九月十一月之朔日也. 朔日有故, 則預定期日, 不出初旬, 可也. 若約員居于遠地, 則一歲一再至, 若其他慶弔之會, 則臨時定日.

一. 凡會集時, 有病故不能參, 則必具由成單子, 其日早朝, 使子弟, 無子弟則使幹奴. 呈于直月, 傳示諸位. 若明知託故, 則直月告于約正, 論以犯約, 若居遠地者, 則不必呈單子.

一. 凡善惡之籍, 皆自參約後書之, 約前雖有過失, 皆許令洗滌, 不復論說, 必仍舊不改, 然後乃書于籍. 惡籍則明知改過, 然後於會集時, 僉議爻周, 善籍則雖有過, 亦不爻, 必有不孝父母, 不友兄弟, 淫姦犯禁, 贓汚辱身等大段悖理之行, 然後乃爻善籍而黜約.

一. 直月若聞同約善惡之行, 則細詢得實, 私作簿記, 於會日衆中告之. 若直月知而不告, 則約正副正詰其故, 論以犯約, 約員籍過未爻, 至三而終不改, 則僉議黜約, 黜約者內訟悛改, 則許令復入. 如初入例.

一. 初立約時, 參約之人, 各出綿布麻布各一疋米一斗, 委司貨藏于書院, 擇齋直謹幹者, 掌其出入, 以爲後日慶弔救恤之資. 又每年十一月會時, 同約各出米一斗, 委于司貨, 司貨監收藏之, 以續用度. 若用之有餘, 則糶米于民, 取其息十分之二, 如社倉之法, 若用之不足, 則同約僉議, 量宜加出以補之. 布則不斂散, 用之將盡, 則又各出一疋以足用. 若米積漸多, 則亦可貿布以儲, 若年久儲蓄漸裕, 則有可裒物時, 不收合于同約, 可以司貨所藏用之. 隨後入約者, 亦依初立約例出米布.

一. 凡慶事有贈, 以禮之大小, 定幣之多少, 多則綿布五疋米十斗, 次則綿布三疋米五斗, 少則綿布一疋米三斗, 如及第爲大禮, 生進次之, 其餘冠子筮仕加階之類, 爲小禮. 若婚禮則助以綿布三疋米五斗.

一. 凡喪事, 有賻物, 有助役, 賻物者, 若約員之喪, 則初喪, 司貨告于約正, 送麻布三疋, 同約各出米五升, 空石三葉, 以助治喪. 又於致奠時, 以司貨所藏綿布五疋米十斗, 具賻狀同呈. 臨葬, 各出壯奴一名, 齎三日糧往役. 若同約父母之喪, 則初喪送麻布二疋, 同約各出米三升, 空石二葉, 次賻以綿布三疋米五斗. 臨葬, 各出壯奴一名, 齎二日糧往役. 若妻子之喪, 則子年未滿十歲則弔而不賻. 初喪, 送麻布一疋, 同約各出米一升, 空石一葉, 次賻以綿布一疋米三斗. 臨葬, 各出壯奴一名, 齎一日糧往役.

一. 凡失火, 盡燒其家者, 則同約僉議, 裒蓋草各三編, 材木各二條, 且出壯奴一人, 持三日糧, 往助構屋之役.

一. 同約員之喪, 致奠時, 同約各出米三升, 備酒饌餅果, 須先期預裒.

一. 同約之人, 非居一鄕, 則凡慶弔, 不能親往, 只送人具書同約連名. 若及第則贈物綿布五疋, 生進則綿布三疋, 其餘小慶, 則只致書無贈. 有送物則專伻人, 若無可送之人, 則必雇可信者, 給價以送, 無送物則因便傳送. 若死喪, 亦不能親往, 只送賻物, 具弔狀同約連名. 當身之喪, 則送賻綿布五疋, 麻布三疋, 父母之喪, 則送賻綿布三疋, 麻布二疋, 妻子之喪, 則送綿布麻布各一疋. 當身之喪, 則必遣約中幼少者, 齎奠資致奠, 奠資則同約各出米三升備送. 其餘救恤等事, 皆力所不能接也. 力所可接者, 或可圖之,

一. 同約居異鄕者, 聞約中吉凶之報, 則只具書慶弔, 或專人, 或因便, 各隨其情勢. 但於約員當身之喪, 若不能隨衆同致奠, 則必自具奠物致奠. 已葬後則奠于墓, 必具祭文. 其餘救恤等事, 則力所不能接也. 力所可接者, 或可圖之.

一. 同約居異鄕者, 則不能於每年出米斗, 只於三年出綿布一疋, 又三年出麻布一疋, 循環爲常. 其餘不時裒物等事, 則皆不能參也.

一. 凡約中會集裒物助役等事, 皆直月掌之. 凡當會集, 直月於約正及尊者之家, 皆親進問故, 此所謂尊者, 則以直月之年訃之. 後倣此. 然後通于副正, 副正於直月爲尊者, 則亦當親進. 後倣此. 會于一處, 定其期日, 出回文通諭. 副正直月同署名. 約正則不署. 若約員於副正爲尊者, 則不書于回文, 約正亦不書于回文, 直月當親進告期. 約員大槪無故, 則雖數三人有故, 亦可會也. 若慶弔贈賻有定數者, 則直月通于司貨, 依例具單子, 直月司貨先署名後, 受署名于副正, 訖, 直月持進約正家受署名, 以司貨所藏米布送之. 若有可加送者, 則直月司貨, 須與副正進約正家議定, 始具單子, 自下次次署名. 若回文裒物, 而其數前定者, 則直月依例書回文, 若事急者, 則書回文二度, 分東西收合, 直月先署名, 後受署于副正訖, 乃持進約正家受署. 此回文則雖尊者皆書. 若當裒物而其數不定者, 則直月必須與副正, 詣約正家, 議定其數, 然後乃出回文. 約正亦難於自定者, 則於會時, 詢衆定議, 若事急者, 則使直月稟于約中尊者五員, 參詳定議. 若董役則直月不離役所, 檢其怠慢未到者則籍之. 凡助役時, 亦出回文如上例, 使之一時助役, 不可先後. 此等事, 直月不能如法, 則副正糾之, 副正不能糾, 則亦當論以犯約.

『栗谷全書』卷16, 雜著, 海州鄕約

이 사료는 1574년(선조 7년)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한 후 실시했던 향약 조문이다. 우리나라 향약은 중국 송나라의 남전 여씨(藍田呂氏) 문중에서 그 향리를 교도하기 위해 만든 여씨향약(呂氏鄕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를 주자가 가감⋅증보하여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으로 만들었다. 기본 덕목은 덕업상권(德業相勸)⋅과실상규(過失相規)⋅예속상교(禮俗相交)⋅환난상휼(患亂相恤) 등이었다. 이 덕목은 중종(中宗, 재위 1506~1544)조광조(趙光祖, 1482~1519)⋅김식(金湜, 1482~1520) 등의 건의로 향약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유학자들 사이에 널리 파급되었고, 이후 이황(李滉, 1501~1570)이이 등에 의해 우리 실정에 맞게 재조정되었다.

특히 이이해주향약(海州鄕約)이황예안향약에 비해 체제와 내용이 훨씬 구체적이어서 한국 향약으로서는 가장 완벽한 유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주향약은 그 기반을 향토 연대 의식에 두고 있다. 이이가 1574년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한 후 지역민을 위한 사창(社倉)을 설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약을 실시하였다. 당시 향약 내용은 해주향약해주일향약속(海州一鄕約束)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의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 내용에 의하면 조직의 임원인 약장⋅유사(有司) 등은 양반에 한하여 직임을 주었고, 장무(掌務)고직(庫直)사령(使令) 등은 실무직으로 서얼이나 천인 중에서 뽑아 임명하게 하였다.

특히 악적(惡籍)에 오르는 행동을 명확히 규정하였다. 부모 등에게 윤리 규정에 어긋난 행위를 한 자는 물론이고, 삼촌이나 형에게 욕을 한 자와 친상을 당하고 한 달이 못 되어 술을 마신 자, 상복을 입고 술에 취한 자, 하인을 시켜 제사를 지내게 한 자, 부모 앞에서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자, 말을 타고 가면서 부모를 보고도 내리지 않은 자, 바깥에서 상전을 욕한 자, 상전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자 등이 여기에 해당되었다.

만일 악적에 오른 사람이 발생하면 상벌⋅차상벌⋅중벌⋅하벌의 4등급으로 나누어 각기 다르게 벌을 주었다. 그 가운데 최고 형벌인 상벌의 사례를 보면, 상벌을 손도(損徒)라 해서 허물을 뉘우치고 사죄의 잔치를 베푸는데 과일 다섯 가지 이상, 탕 세 가지 이상을 차려 열 사람 이상이 참석하면 사죄를 받아들이게 하였다.

위의 4가지 벌 외에도 윤리를 어지럽히거나 상전을 모해한 종, 마을에서 내쫓긴 손도와 대화한 자 등은 먼저 타이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관가에 고발해 죄를 다스린다. 또한 하인으로서 사족(士族)을 보고도 절을 하지 않은 자와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자 등 그 규정은 무려 100가지가 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부 규정을 마련한 해주향약이이가 5개월 정도 봉직한 뒤 황해도 감사 자리를 내놓았기 때문에 원래 취지와는 달리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이해주향약은 뒷날 퇴계 이황예안향약과 더불어 향약 운동의 모델이 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근세 향촌제도의 성립과 촌락사회의 구조적 변화」,『백산학보』18,고승제,백산학회,1975.
「율곡 향약의 사회적 성격」,『학림』5,김무진,연세대학교 사학과,1983.
「율곡 이이의 향약 변용; 서원향약과 해주향약을 중심으로」,『홍익사학』창간호,김승태,홍익대학교 사학회,1984.
「율곡향약의 정신과 그 영향에 대한 고찰」,『명대논문집』7,김영돈,명지대학교,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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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향약의 구성과 그 조직-주자향약과 퇴계⋅율곡향약을 대비하여-」,『이홍직박사회갑기념 한국사학논총』,정형우,논총간행위원회,1969.
저서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정진영, 한길사, 1998.
편저
『조선시대사회사연구사료총서』, 김인걸 외, 보경문화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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