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사회사회 정책과 사회 제도

신문고 설치

고(告)할 데가 없는 백성으로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품은 자는 나와서 등문고(登聞鼓)를 치라고 명령하였다. 의정부에서 상소하기를, “서울과 외방의 고할 데 없는 백성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소재지의 관사(官司)에 고하였으나, 소재지의 관사에서 이를 처리해 주지 않는 자는 나와서 등문고를 치도록 허락하고, 등문(登聞)한 일은 헌사(憲司)로 하여금 추궁해 밝혀서 아뢰어 처결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것을 펴게 하소서. 그리고 그 중에 사사로움을 끼고 원망을 품어서 감히 무고(誣告)를 행하는 자는 반좌율(反坐律)을 적용하여 참소하고 간사한 것을 막으소서” 하여, 그대로 따르고, 등문고를 고쳐 신문고(申聞鼓)라 하였다.

태종실록』권2, 1년 8월 1일(정사)

교서를 내렸다. 교서에서 말하기를, “나는 부덕(否德)한 사람으로 대통[丞緖]을 이어받았으니, 밤낮으로 두려워하면서 태평(太平)에 이르기를 기약하여 쉴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눈과 귀가 샅샅이 미치지 못하여 옹폐(壅蔽)의 근심에 이르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이제 옛 법을 상고하여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한다. 모든 정치의 득과 실, 민생의 편안함과 근심됨을 아뢰고자 하는 자로서, 의정부에 글을 올려도 위에 아뢰지 않는 경우에는 즉시 와서 북을 치라. 말이 쓸 만하면 바로 채택하여 받아들이고, 비록 말이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용서하겠다. 무릇 억울함을 펴지 못하여 호소하고자 하는 사람은, 서울 안에서는 주무 관청에, 외방에서는 수령⋅감사에게 글을 올리되, 이들이 따져서 다스리지 아니하면 사헌부에 올리고, 사헌부에서도 따져 다스리지 아니한다면, 바로 와서 북을 치라. 원통하고 억울함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위의 관사(官司)에서 따져서 다스리지 아니한 자는 율(律)에 따라 죄를 줄 것이요, 백성으로 월소(越訴)한 자도 또한 율(律)에 따라 죄를 논할 것이다. 혹시 반역을 은밀히 도모하여 나라[社稷]를 위태롭게 하거나, 종친과 훈구(勳舊)를 모해(謀害)하여 화란(禍亂)의 실마리를 만드는 자가 있다면 여러 사람이 직접 와서 북치는 것을 허용한다. 말한 바가 사실이면 토지 200결과 노비 20명을 상으로 주고 관직이 있는 자는 3등을 뛰어 올려 녹용(錄用)하고, 관직이 없는 자는 곧바로 6품직에 임명할 것이며, 공사 노비양민(良民)이 되게 하는 동시에 곧바로 7품직에 임명하겠다. 그리고 범인의 집과 재물과 종과 우마(牛馬)를 주되 많고 적음을 관계하지 않을 것이나, 무고한 자가 있다면 반좌율(反坐律)로써 죄줄 것이다. 아! 아랫사람의 정(情)을 상달(上達)케 하고자 함에 금조(禁條)를 마련한 것은 범죄가 없기를 기약함이니, 오직 중외(中外)의 대소 신료(臣僚)와 군민(軍民)들은 더욱 조심하여 함께 태평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라”

의정부에서 상소하기를, “신문고는 순군(巡軍)의 영사(令史) 한 명과 나장(螺匠) 한 명으로 지키게 하소서. 와서 치려는 사람이 있으면 영사는 달려가 관리에게 고하여 그 북을 치려는 사유를 물어, 만약 역적을 음모한 일이면 바로 치게 하고, 또 정치의 득실과 원통하고 억울함을 펴지 못한 등의 일에 대하여서는, 그것이 월소(越訴)가 아니면 실정을 자세히 물어서 사실을 진술한 말을 받아들이고, 즉시 나장에게 그의 주소를 알게 한 뒤에 북을 치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먼저 북을 치게 한 뒤에 사람을 시켜 그 사는 곳을 알게 하라” 하였다.

태종실록』권3, 2년 1월 26일(기유)

命無告之民銜冤抑者, 進擊登聞鼓. 議政府上疏曰 : 京外無告之民, 以其冤抑, 告所在官司, 所在官司, 不受治者, 則許令進擊登聞鼓, 其所登聞之事, 令憲司推明, 申聞決折, 以伸冤抑. 其中挾私懷怨, 敢行誣告者反坐, 以杜讒佞. 從之, 改登聞鼓爲申聞鼓.

『太宗實錄』卷2, 1年 8月 1日(丁巳)

下敎書 敎曰 予以否德, 纉承丕緖, 夙夜祗懼, 期致乂安, 罔敢或遑. 然而耳目有所不及, 恐致壅蔽之患, 爰稽古典, 設申聞鼓. 凡欲告政治得失⋅民生休戚者, 呈議政府, 不爲申聞, 卽來擊鼓. 言之可用, 卽加採納, 雖或不中, 亦且優容. 凡欲告冤抑未伸者, 京中主掌官, 外方則呈守令監司, 不爲究治, 則呈司憲府, 司憲府不爲究治, 乃來擊鼓. 冤抑灼然. 上項官司, 不爲究治者, 照律坐罪; 越訴者, 亦行照律論罪. 或有陰謀不軌, 將危社稷, 謀害宗親勳舊, 以階禍亂者, 許諸人直來擊鼓. 言之有實, 賞田二百結⋅奴婢二十口, 有職者超三等錄用, 無職者直拜六品, 公私賤口, 許通爲良, 直拜七品, 仍給犯人家舍財物奴婢牛馬, 不拘多少, 其有誣告者, 抵罪反坐. 於戲! 下情欲其上達, 設禁期於無犯, 惟爾中外大小臣僚軍民人等, 尙其敬愼, 共享隆平之樂.

議政府上疏曰, 申聞之鼓, 俾巡軍令史一名, 螺匠一名守之. 有來擊者, 令史奔告官吏, 問其所擊之故, 若陰謀不軌之事, 卽令擊之, 又政治得失 冤抑未伸等事, 非其越訴, 則備問其情, 收納招辭, 卽以螺匠知其所居, 然後乃許擊鼓.

上曰 使先擊鼓, 然後使人知其所居.

『太宗實錄』卷3, 2年 1月 26일(己酉)

이 사료는 1401년(태종 1년) 신문고 설치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 사료에 따르면 신문고 설치는 고할 데 없는 백성이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호소하도록 하기 위해 시행한 것이었다.

이는 중국의 제도를 본받은 것으로 중국 요임금이 아랫사람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감간지고(敢諫之鼓)를 두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중국에서는 남조와 당나라를 거치면서 조당(朝堂)에 등문고를 설치했으며, 송나라와 명나라에도 계승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401년 7월 송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등문고를 설치하였다 같은 해 8월 신문고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1월에 신문고를 통한 청원⋅상소⋅고발 등의 처리 규정을 마련하였다. 그러다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때 왕에게 전하는 말로 ‘신(申)’자가 부적격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한때 승문고(升聞鼓)로 이름을 바꾸기도 하였다.

신문고는 처음에 대궐 안 문루에 설치하고 순금사(巡禁司)가 관리하다 의금부 당직청으로 옮겼다. 소원(訴寃)할 때 서울은 주무관사에 올리고 지방은 관찰사에게 올렸는데, 그렇게 한 뒤에도 억울한 일이 있으면 사헌부에 고하고, 그래도 억울하면 신문고를 쳐서 왕에게 직접 알렸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과 사뭇 다른 것이었다. 중국은 황제에게 직접 알리는 것이 아니라 사간(司諫)⋅정언(正言) 등 관리에게 알리는 방식이었던 데 비해 우리나라는 사헌부를 거쳐 해결되지 못한 것을 최종적으로 왕에게 직접 고하게 하였다. 신문고는 한때 폐지되었다가 1471년(성종 2년) 12월 다시 설치되었고, 또다시 폐지되었다가 1771년(영조 47년) 11월 복구되는 등 여러 차례 치폐를 거듭하였다.

그런데 신문고에는 일정한 규제가 뒤따랐다.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무조건 북을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절차를 거쳐 허락을 받게 함으로써 실제로는 소수 지배층이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조선 시대에 민의를 상달(上達)하는 대표적인 수단이었음은 틀림없다. 다만 이서(吏胥)⋅하인이 그의 상관이나 주인을 고발한다거나, 품관(品官)⋅향리⋅백성 등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발하는 경우, 또는 타인을 매수⋅사주하여 고발하게 하는 자 등에 대해서는 벌을 주도록 규정하였다. 그리고 상소 내용도 제한하여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때 편찬된 『속대전(續大典)』에 의하면 자기 자신에게 관한 일, 부자지간에 관한 일, 적첩(嫡妾)에 관한 일, 양천(良賤)에 관한 일 등 4건사(四件事)와, 자손이 조상을 위하는 일,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일, 아우가 형을 위하는 일, 노비가 주인을 위하는 일, 기타 지극히 원통한 내용에 대해서만 신문고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한국적 전통성과 시민적 덕성-부민고소금지법과 세종의 고뇌-」,『세종시대 문화의 현대적 의미』,심희기,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8.
「1771년 신문고의 재설치에 대하여」,『력사과학』,주성철,,1994.
「조선초기 수령 고소 관행의 형성과정」,『한국사연구』82,최이돈,한국사연구회,1993.
「민소(民訴)의 활성화와 민본정치」,『역사비평』37,한상권,역사문제연구소,1997.
저서
『조선시대 민중의 시위 문화-신문고에서 복합상소까지』, 배항섭, 서해문집, 2008.
『조선후기 사회와 소원제도 : 상언⋅격쟁 연구』, 한상권, 일조각, 1996.
『한우근전집 7-조선시대의 언권』, 한우근, 한국학술정보㈜, 2001.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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