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문화조선 전기의 교육과 과거

과거 응시 자격

제과(諸科)

3년에 한 번씩 시험을 본다. 시험 전년(前年) 가을에 초시(初試)를 보고 시험 당해 초봄에 복시(覆試)와 전시(殿試)를 본다. 문과(文科)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이하가 응시한다 【무과(武科)도 같다】.

생원진사시는 통덕랑(通德郞) 이하만이 응시하는 것을 허가한다. 【수령은 생원진사시에 응시하지 못한다】.

영구히 임용할 수 없는 죄를 범한 자(罪犯永不叙用者), 장리(贓吏)의 아들, 재가(再嫁)하거나 행실이 어긋난[失行] 부녀의 아들 및 손자, 서얼 자손은 문과, 생원진사시에 응시하지 못한다. 그 도(道)에 살고 있지 않는 자나 조사(朝士)로서 현직에 있는 자는 향시(鄕試)에 응시하지 못한다. 【만약 왕명을 받아서 휴가를 받은 자면 이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 무과도 같다】.

시장(試場)은 2⋅3개소를 둔다. 응시자가 시관(試官)과 상피(相避)의 입장에 해당되는 자는 다른 시장에서 응시해야 하고, 아버지가 복시(覆試)에 응시하면 아들은 피한다. 【무과도 같다】.

음양과(陰陽科)의 천문학(天文學)은 천문학 생도 이 외에는 응시할 수 없다.

문과는 10년에 한 번씩 중시(重試)를 본다. 【당하관(堂下官)만 응시를 허(許)한다. 액수(額數)와 시험방법은 그때 그때 왕에게 아뢰어 왕명을 받아[禀旨] 정한다. 무과도 같다】.

경국대전』권3, 「예전」, 제과

장리의 아들 및 손자에게는 의정부육조⋅한성부⋅사헌부⋅개성부(開城府)⋅승정원⋅장예원(掌隷院)⋅사간원(司諫院)⋅경연(經筵)⋅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춘추관⋅지제교(知製敎)⋅종부시(宗簿寺)⋅관찰사⋅도사(都事)⋅수령의 직(職)을 주지 못하고, 행실이 어긋난[失行] 부녀(婦女) 및 재가(再嫁)한 부녀의 소생은 동반직(東班職)서반직(西班職)에 서용하지 못하되 증손(曾孫) 대에 이르러서는 위에서 든 각 관사(官司) 이외의 관직에 서용하는 것을 허(許)한다.

경국대전』권1, 「이전」, 경관직

諸科

三年一試, 前秋初試, 春初覆試殿試. 文科則通訓以下.【武科同】

生員進士則通德以下許赴.【守令則勿許赴生員進士試】

罪犯永不叙用者, 贓吏之子, 再嫁失行婦女之子及孫, 庶孽子孫, 勿許赴文科生員進士試. 非居本道者, 朝士見在職者, 勿許赴鄕試. 【若承差受假者, 不在此限. 並武科同】

試場置二⋅三所. 擧子與試官應相避者赴他所, 父赴覆試者子避. 【武科同】

陰陽科天文學則本學生徒外, 勿許赴

文科, 十年一重試. 【堂下官許赴. 額數及試法, 臨時稟旨, 武科同】

『經國大典』卷3, 「禮典」, 諸科

贓吏子及孫, 勿授議政府, 六曹, 漢城府, 司憲府, 開城府, 承政院, 掌隷院, 司諫院, 經筵, 世子侍講院, 春秋館, 知製敎, 宗簿寺, 觀察使, 都事, 守令職, 失行婦女及再嫁女之所生, 勿叙東西班職, 至曾孫方許, 以上各司外用之.

『經國大典』卷1, 「吏典」, 京官職

이 사료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이전(吏典)과 예전(禮典)에 수록된 과거에 관한 규정이다. 과거는 중국에서 587년경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인 958년(광종 9년)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이후 조선은 건국하면서 새로이 문⋅무산계제(文⋅武散階制)를 실시하고 문과와 아울러 무과도 실시하면서 양반 관료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태조(太祖, 재위 1392~1398)는 즉위 교서를 통해 문⋅무 양과의 운영과 고려 과거제의 유풍인 좌주문생제(座主門生制)와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없앰과 동시에 관학을 육성하여 과거제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게 하였다.

이후 1417년(태종 17년) 윤5월에는 예조에서 성균관과 문과와의 관계를 명시한 규정인 신과거법(新科擧法)을 제정하면서 생원은 ‘입학의 문’, 급제는 ‘입사(入仕)의 길’이라는 원칙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조선 시대 과거 제도는 대체로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때 정비되었고, 이것이 『경국대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경국대전』에 기록된 과거에 대한 응시 자격은 법제상으로 천인만 아니면 결격 사유가 없는 이상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평민양인(良人)의 응시 자격을 보장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응시할 수 없다고 규정한 법조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민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신분을 상승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여러 사회 경제적 이유로 인하여 문과와 무과, 생원진사시양반들이, 잡과에는 중인들이 응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천인, 서얼 자손, 영불서용(永不敍用)의 죄를 지은 자, 재가녀(再嫁女) 및 행실이 바르지 못한 부녀[失行婦女]의 자손 등에게는 과거의 응시 자격을 주지 않았다. 태종 때 만들어진 ‘서얼 금고법’에 의해 양반의 첩 자손은 영원히 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는데, 양첩의 자손에 한하여 1553년(명종 8년)부터 손자 때부터 문과와 무과 응시 자격을 주기로 하였다. 다음으로 영불서용(永不敍用)의 죄를 지은 자란 범죄를 저질러 영영 관직에 임명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자, 즉 현직 관료로서 범죄인에 대한 재판을 일부러 질질 끈 자와 고문하여 치사하게 한 자, 공물대납하는 자를 일컫는다. 기타 중죄에 해당하는 경우로 사직을 위태롭게 한 모반죄, 종묘⋅능침⋅궁궐을 파괴한 대역죄, 국가를 배반하고 외국과 몰래 통한 모역죄, 부모나 남편을 죽인 강상죄, 인신 위조죄, 관물을 유용하거나 남의 재물을 불법으로 탐낸 관리인 장리 등이 있었는데 이들의 자손 역시 응시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문과 응시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나 원적(原籍)에 없는 자, 도목(都目)에 없는 자는 과거 응시를 제한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쇠퇴해진 관학을 재건하기 위해 1651년(효종 2년) 도목제를 실시했는데, 서울과 지방의 유생을 소학⋅가례⋅사서 중 1서를 고강하여 일정 수준 이상이면 사학 또는 향교에 분속시켜 면역의 특전을 주는 한편, 청금록에 들어 있지 않은 자에게는 과거 응시를 금하였다. 또 유벌(儒罰)을 받은 자, 기복(朞服) 이상의 상을 당한 자도 응시가 제한되었다. 부모의 상을 당하거나 승중손이 조부모의 상을 당한 자는 3년이 끝날 때까지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초시 합격자가 상을 당하였을 경우 거주지 수령의 공문을 받아 예조에 제출하면 다음의 복시에 바로 응시할 수 있었는데, 이를 진시라 하였다. 현직 관료, 종친 등에게도 과거 응시를 제한하였다. 현직 관료의 경우 건국 초에는 소과(小科)는 참하관 이하, 대과는 당하관 이하에게 응시 자격을 주었으나, 1472년(성종 3년) 이후부터 소과(小科)는 정5품 통덕랑 이하, 대과는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 이하에게 응시 자격을 주었다. 이 외에도 공상인(工商人), 신량역천인(身良役賤人)과거에 응시 제한이 있었다.

이 기록 외에 『경국대전』의 이전 제과조에는 과거 급제자의 품등 수여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문과의 경우 갑과 1등은 종6품을 주고 나머지는 정7품을 주었다. 그리고 을과는 정8품을, 병과는 정9등을 주도록 규정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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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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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
「학제와 과거제」, 조좌호, 국사편찬위원회,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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