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문화조선 전기의 교육과 과거

서원의 남설

경상 감사 임담(林墰)이 치계하기를, “우리나라에 서원(書院)을 세운 것이 가정(嘉靖) 연간에 시작되었는데, 맨 처음 창건된 것은 열 군데에 불과하였으니 모두 조정에 보고하고 향사(享祀)의 예전(禮典)을 밝게 거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력(萬曆) 이후에는, 사당을 세운 것이 해마다 더욱 많이 불어나서 고을마다 즐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폐단이 널리 퍼져 심지어는 논의가 공정하지 못한 데까지 이르러, 혹 벼슬이 높은 사람이면 향사하고, 혹 세력 있는 집안사람이면 향사하여, 서로 다투어 제사지내는 것을 일삼아 이것을 가지고 서로 자랑하며, 또 그로 인하여 사사로이 명예를 세움으로써 배척과 훼방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선비들이 옛 성현의 도를 본받지 않고 세도(世道)가 날로 무너져서, 어진 이를 높이고 덕을 숭상하는 의리가 사당(私黨)으로 바뀌는데도 조정에서는 묻지도 않고 관리들은 금하지도 못하여, 습속이 점점 투박해지니 진실로 한심스럽습니다.

중국에서는 유현(儒賢)이나 명신(名臣)으로 향사의 예전을 베풀기에 합당한 자에 대해서, 독학관(督學官)이 자세히 조사하여 반드시 먼저 조정에 보고한 다음에야 사당을 세워서 향사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새로 사당을 창건하는 일에 대해서는 일도(一道)의 선비들이 함께 의논한 다음, 본관(本官)에 서장(書狀)을 바쳐 낱낱이 감사에게 보고하고 다시 조정에 상주하여 비준을 얻어야만 허가를 해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사적으로 서로 다투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이런 폐단은 다른 도(道)에서도 모두 그러하니, 한번 바로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정으로 하여금 여기에 관한 일을 성헌(成憲)으로 만들어서, 각 도 각 읍이 일체 이 법을 준행하게 하소서” 하였다.

이담의 치계를 예조에 하달하니 예조 판서 이식(李植) 등이 회계하기를, “서원을 설치하는 것은 당초에 학문을 하고 심신을 수양하는 선비들을 대우하기 위한 것이니, 사당을 세우고 높이 받들어 향사할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한 시대에 밝게 알려져서 사표(師表)가 될 만한 사람을 해당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선비라는 사람들은 학문을 일삼지 않고, 향사되는 사람은 혹 당치 않은 인물이기도 하여, 사원(祠院)은 많으나 사문(斯文)은 더욱 침체되니 진실로 한심스럽습니다. 지금 이 장계에서 논한 것이 실로 일리가 있으니, 지금부터 새로 창설하는 곳에 대해서는, 모두 본조(本曹)에 보고하여 조정에서 함께 의논해서 공론이 허가를 내린 다음에 창설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또 각 도의 사원에 대하여 일찍이 본조에서 공문(公文)을 보내서 물어 보았던 것은 향사되고 있는 선현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였는데, 향촌 사람들이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서 많이 기피해 버리고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심한 자에 대해서는 자세히 조사하여 향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또한 타당합니다. 타도의 감사들에게도 일체 이런 내용을 주지시키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인조실록』권45, 22년 8월 4일(기미)

慶尙監司林墰馳啓曰 我東方書院之作, 始於嘉靖年間, 厥初創建, 未過十所, 俱聞於朝, 明擧祀典, 逮至萬曆以後, 廟宇之作, 歲益浸盛, 比邑相望. 其流之弊, 至於論議不公, 或官貴則祀之, 或族大則祀之, 競事俎豆, 以相誇詡, 因之以私立名譽, 排訐隨之. 士不師古, 世道日壞, 尊賢尙德之義, 轉成私黨, 朝廷莫之問, 官吏不能禁, 習俗偸薄, 誠極寒心.

中朝則儒先⋅名臣合在祀典者, 督學按察, 必先報聞, 然後方許立祀. 今後係干新創祠宇, 則一道士林通議之後, 呈書本官, 枚報監司, 轉稟朝廷, 得準乃許, 俾無私自乖爭之弊. 臣竊見, 此弊他道無不皆然, 不可不一番停當. 請令朝廷, 着爲成憲, 使各道各邑, 一體遵行事.

下禮曹, 判書李植等回啓曰 書院之設, 初爲待學問靜修之士, 而其立祠尊祀者, 則必以一時所明知, 可爲師表者當之. 今則不然, 爲士者不事學問, 所祀者或非其人, 祠院雖多, 斯文益晦, 誠可寒心. 今此狀啓所論, 實爲有見, 自今新設處, 皆令轉報本曹, 通議朝廷, 公論準許然後, 創設爲當. 且各道祠院, 曾自本曹行移憑問, 欲知所祀先賢誰某, 而鄕人自知不足, 多諱而不報. 其中最甚者, 按考勿祀亦當. 請他道監司處, 一體行會, 上從之.

『仁祖實錄』卷45, 22年 8月 4日(己未)

이 사료는 1644년(인조 22년) 8월 경상도 관찰사 임담(林墰)이 당시 서원의 난립에 따른 폐단을 국왕에게 보고한 글이다. 1542년(중종 38년) 풍기 군수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순흥에서 고려 학자 안향(安珦, 1243~1306)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이듬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명명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 세워졌다.

이후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대부터 붕당 정치와 관련해 서원은 점차 그 역할을 증대해 나갔다. 서원은 기존의 교육기관인 향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그 대신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많은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그리하여 명종(明宗, 재위 1545~1567) 이전에는 29개에 불과하였으나, 선조 대에는 124개,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대에는 무려 한 도에 90여 개를 헤아릴 정도까지 번창하였다.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인조(仁祖, 재위 1623~1649) 대에 서원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던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이 기간 동안 서원은 집권 세력의 도학적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자파계 인물의 제향처나 사림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재 양성소로서의 역할 및 사림 간의 상호 결속을 위한 장소로서 기능하였다.

서원이 정치⋅사회적으로 주목되며 그 역할이 커진 것은 이른바 산림 세력이 본격적으로 조정에 진출하는 17세기 중반 이후부터다. 특히 인조반정 이후 김집(金集, 1574~1656)송시열(宋時烈, 1607~1689)송준길(宋浚吉, 1606~1672)로 대표되는 산림 세력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집권의 명분과 도학적 정통성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자신들의 학적 연원인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이이(李珥, 1536~1584)성혼(成渾, 1535~1598)김장생(金長生, 1548~1631) 등을 모시는 서원을 계속 설립하였고, 사액도 받았다. 그 결과 1659년(효종 10년) 윤3월에는 무려 8개 서원이 한꺼번에 사액을 받기도 하였으며, 현종(顯宗, 재위 1659~1674) 대에는 사림의 청액 운동이 촉발되었다. 이후 숙종 대에는 서원의 설립은 물론이고 서원사액화 과정에서 극단적인 당파적 편향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인 집권 시기에는 남인계 인물을, 서인 집권기에는 서인계 인물을 배향하는 원⋅사에 사액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화되어 갔다. 또한 17세기 중반 이후 서원이 급격히 남설(濫設)되면서 폐단이 노출되자 설립과 사액에 대한 국가적 통제책이 수립되고 이에 대한 권한은 지방관에 귀속되었다.

지방관으로 대표되는 관권에 대해 서원의 유림이 일정하게나마 자유로운 향촌 내 활동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가의 공적 승인인 사액을 받는 것뿐이었다. 더욱이 숙종 때에 이르면, 잦은 정변 속에 각 정파마다 자파 서원을 통해 집권의 명분이 되는 도학적 정통과 명분론을 확보하고, 동시에 자파 세력을 확대하고자 서원 건립에 물질적⋅행정적 지원을 하였는데, 사액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형태였다.

서원의 남설 또는 누설(累設)은 정부의 중대한 고민거리가 되어 1644년(인조 22년)에는 서원 설치를 허가제로 전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657년(효종 8년)에는 서원을 누설한 자는 처벌하는 규정을 발표하였다. 이후에도 정부는 서원을 계속해서 정비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큰 성과는 보지 못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선후기 재지사족의 동향과 유림의 향촌지배」,『조선시대사학보』7,이정우,조선시대사학보,1998.
「17~18세기 재지 노⋅소론의 분쟁과 서원건립의 성격」,『진단학보』88,이정우,진단학회,1999.
「조선후기 서원의 성격변화와 서원정책」,『배종무총장퇴임기념 사학논총』,이해준,간행위원회,1994.
「17∼18세기 서원⋅사우에 관한 시론」,『한국사론』2,정만조,,1975.
저서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조선시대 서원연구』, 정만조, 집문당, 1997.
편저
「서원건립운동」, 이수환, 국사편찬위원회, 1998.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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