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년 4월 초4일, 손자 숙길(淑吉)
이수봉의 아명
에게 글을 읽으며 스스로 배워서 익히라고 일렀지만 게으름을 피워 이렇다 할 성과가 없기에 해 질 무렵 등잔에 불을 밝히고 가르쳤다. 사마온공(司馬溫公)
북송(北宋) 때의 학자이며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편자인 사마광(司馬光)을 말함
이 ‘한가(漢家)
중국 한나라
의 정치는 고(古)에 미치지 못한 곳에서 끝났다’고 논한 대목에 이르러 “한나라의 정치는 옛날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끝났다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숙길은 “한나라의 정치는 끝내 옛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다시 내 견해가 옳다고 하자 숙길이 성질을 부려 밤에 그것에 대해 가르쳤다. 하지만 숙길은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분하다는 듯이 “제가 풀이한 것같이 해야 많이 뒤떨어졌다는 뜻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화가 나서 책을 밀쳐놓고 대꾸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늙은 아내에게 손자의 잘못을 깨우쳐 주어야겠다고 말했다. 손자를 불러 앞에 엎드리게 하고 말부릴 때 쓰는 채찍 손잡이로 엉덩이와 종아리를 30대 때렸는데, 겁을 먹고 숨 막힐 듯 놀라기에 매질을 멈추었다. 또 초10일 밤에는 글을 읽으며 익히려고 하지 않아 꾸짖고 그 이유를 말하라고 했다. 그러나 손자는 베개위에 엎드려 아무 말이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대나무로 만든 화살대로 등과 엉덩이를 때렸더니 숨을 잘 쉬지 못해 그만두었다. 19일에도 살펴보고 학문을 익히도록 타일렀지만 따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화가 나서 지팡이를 집어 들고 사정없이 종아리를 때렸다. 차고 있던 칼이 지팡이에 맞아 부러졌다.
그 일을 다시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에는 늘 어여삐 여기고 안타깝게 생각해서 차마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지만, 지금 글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어찌하여 성급하게 화를 내고 자애롭지 않음이 이 지경이 된 것인가. 할아비의 난폭함을 진심으로 경계한다. 손자도 지나치게 게으름을 피워 날마다 익히는 것이 고작 몇 장이다. 서른 번 읽으라고 하면 따르지 않고 열다섯 번이나 열 번 정도에서 그만두고 만다.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며 읽으라고 일러도 끝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할아비와 손자가 함께 실수를 저질러 그칠 때가 없으니 반드시 할아비가 죽은 후에야 멈출 것이다. 아아,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어 읊는다.
이 늙은이가 하나밖에 없는 손자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문을 완성하여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것
글을 읽을 때 스스로의 생각으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할까 걱정되어
뜻을 풀이하기 전에 반드시 본래의 의미를 가르쳐 주거늘
손자는 어찌 가끔 지극히 오만한 대답을 하는가.
앞으로 누가 날마다 가르쳐서 익힐 수 있게 하겠는가.
손자가 예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는다면
인륜에 어긋나지 않게 내 은혜를 갚을 것이다.
『양아록』, 노옹조노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