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서에는 도(道)를 기재하고 역사서에는 일을 기록하니, 경서는 공자가 깎아서 정하고 지어서 만들어 이미 만세에 가르침을 드러냈습니다. 역사서는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
『사기(史記)』를 지은 전한 시대 역사가
과 반고(班固, 32~92)
『한서(漢書)』를 지은 중국 후한 초기의 역사가
이하 작자들이 하나둘이 아니어서, 대대로 각각 책이 있어 넓고 넉넉하며 어지럽게 기록되었습니다. 학자들이 비록 10년 동안 공력을 다하여도 오히려 두루 읽지 못하는데, 하물며 인주(人主)
임금
는 날마다 만 가지 일이 있으니, 다시 어느 겨를에 두루 볼 수 있겠습니까? 선정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 역대의 역사서를 모으고 두루 여러 책에서 채택하여 그 요긴한 것을 모아서, 위로는 쇠한 주나라에서 시작해서 아래로는 오계(五季)1)
에 이르기까지 장편을 지어 『자치통감(資治痛鑑)』이라고 부르니, 진실로 사가의 나침반입니다. 자양(紫陽)의 주부자(朱夫子)
1)
오계 :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 사이의 시기인 오대(五代). 당나라 말기의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후주(後周)가 있었던 시대이다.
주희(朱熹, 1130~1200)를 높여 부르는 말
가 그것을 이용하여 『강목』을 지었는데, 문장이 간략하면서도 기사가 더욱 갖추어져서 경계함이 밝아지고 기미가 드러났으니 『춘추』의 근엄한 뜻을 깊이 얻었습니다. 후에 작자가 있었지만 모두 두 사람의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으로부터 기자를 지나 삼한에 이르기까지 고증할 만한 문적이 없었으며, 아래로 삼국에 이르러 겨우 역사책이 있었지만 대강 간략함이 매우 심하였고, 게다가 근거도 없고 경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들을 더하였습니다. 후에 작자들이 서로 이어서 모으고 지으니 전사(全史)가 있고, 사략(史略)이 있고, 절요(節要)가 있었지만, 그러나 본사(本史)의 소략하고 빠진 부분을 또 다시 답습하였습니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시켜 33세대를 전하면서 거의 500년을 지났는데, 비록 국사(國史)가 있었지만 중간에 기재한 것이 너무 번잡하거나 간략하여 자못 사실과 같지 않은 것이 있었고, 또한 빠뜨리고 누락시키는 실수를 면치 못하였습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태조 강헌대왕
은 운에 응하여 나라를 연 뒤 옛날의 도적(圖籍)
은 하늘이 내리신 성학으로 경사(經史)에 마음을 집중하여 일찍이 좌우에 일러 말하기를, “우리 동방에 비록 여러 역사책이 있지만 가히 『자치통감』에 비길 만한 장편 통감은 없다고 하면서, 사신(詞臣)에게 명하여 장차 교정하고 바로잡으려 했으나 일이 마침내 시행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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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호적
을 거두어 들여 비부(秘府)
왕실 도서관
에 간직하도록 하였습니다. 삼종(三宗)
태종⋅세종⋅문종
이 서로 이어서 문치가 더욱 높아지자 관을 설치하고 국을 열어 『고려사』를 편찬하니, 이른바 ‘전사’라는 것이 있고, 이른바 ‘절요’란 것이 있어서 사가의 제작이 이에 점차 갖추어졌습니다. 세조 혜장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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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상 전하[성종
]께서는 대통을 이어받고 선왕의 계책을 뒤따라서 달성군 신 서거정
, 행호군 신 정효항, 참의 신 손비장, 행호군 신 이숙감, 전 도사 신 김화, 교리 신 이승녕, 사의 신 표연말, 전적 신 최부, 박사 신 유인홍 및 신 이극돈 등에게 『동국통감
』을 찬수해 올리라고 명하였습니다. 신 등은 모두 용졸하여 재주가 삼장에 모자라는데, 삼가 윤명(綸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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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명령
을 받들게 되니 떨려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삼국 이하 여러 사책에서 뽑아내고, 중국 역사에서 가려낸 것을 더하여서 편년체를 취하여 사실을 기록하였습니다. 범례는 한결같이 『자치통감』에 의거하였고 『자치통감강목』의 필삭한 취지에 따라, 번다하고 쓸모없는 것은 삭제해서 요령만 남겨 두려고 힘썼습니다. 삼국이 함께 대치하였을 때는 삼국기(三國紀)라 칭하였고, 신라가 통합하였을 때는 신라기(新羅紀)라 칭하였으며, 고려 시대는 고려기(高麗紀)라 칭하였고, 삼한 이상은 외기(外紀)라 칭하였습니다. 상하 1400년 동안 국세의 나누어지고 합친 것과 국운의 길고 짧은 것과 임금이 거행한 일의 득실과 정치의 쇠퇴⋅융성하였던 것을 솔직하게 쓰지 않은 것이 없으며, 명교를 소중히 하고, 절의를 높이며, 난적(亂賊)을 토벌하고, 간신과 아첨하는 이를 주살(誅殺)한 것과 같은 데에 이르러서는 더욱 근엄함을 더하여 거의 권장과 경계를 드리워서 후세에 교훈이 되게 하였습니다. 선유가 논단한 것이 있으면 모두 취하여 써 넣었고, 간혹 또한 신 등이 억측으로 논변한 것을 첨부하였으나 극히 경망하고 참람하여 작자의 반열에 나란히 놓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신은 또 가만히 생각하건대, 기자가 구주(九疇) 의 학문으로 팔조(八條)의 가르침을 폈으니, 당시에 반드시 행동과 말한 것을 기록하는 관원을 두어서 가언과 선행을 갖추어 기록하였을 것인데, 지금은 모두 없어져서 전하는 것이 없습니다. 삼국의 것은 저속하고 허황되며, 고려의 것은 간략하고 난잡하게 되어 있으니, 비록 반고(班固)
책으로 꾸며 올리오니, 혹시 소간(宵旰)3)
의 여가에 때때로 살펴보시어, 지난 세대의 치란흥망의 자취를 거울 삼아서 오늘날 좌우의 경계로 삼도록 하시고, 더욱 옛일을 상고하시는 성덕에 힘쓰신다면 그 지극한 다스림에 반드시 조금이나마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화(成化)
16) 7월 26일 순성 좌리공신 가선대부 광원군 겸 동지의금부사 세자우부빈객 신 이극돈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서문을 올립니다.
32~92. 중국 후한 초기의 역사가
나 사마천에게 손을 빌린다 하더라도 오히려 글을 꾸미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물며 신 등처럼 명망이 없는 비루한 지식으로 어찌 능히 융성한 위임을 우러러 본받아 한마디 말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우선 좁은 소견으로 여러 자료를 모아 순서를 매겨 57권으로 편성하고2)
2)
서문에는 57권으로 편성한다고 했으나, 현재 전하는 『동국통감
』은 56권 28책이다.
'동국통감' 관련자료
3)
소의간식(宵衣旰食)의 줄임말.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을 입고 해가 진 후에 늦게 저녁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천자가 정사에 부지런함을 뜻한다.
명나라 헌종의 연호
을사년(1485, 성종
'성종' 관련자료
『동국통감
'동국통감' 관련자료
- 오계 :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 사이의 시기인 오대(五代). 당나라 말기의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후주(後周)가 있었던 시대이다.
- 서문에는 57권으로 편성한다고 했으나, 현재 전하는 『동국통감
'동국통감' 관련자료
- 소의간식(宵衣旰食)의 줄임말.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을 입고 해가 진 후에 늦게 저녁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천자가 정사에 부지런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