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篇)은 주로 유가(儒家)의 의리의 바른 것을 말하여 이씨(二氏)
노자(老子)와 석가(釋迦)
를 타일러서 그들의 잘못을 알게 한 것이다. 이(理)라는 것은 마음이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덕(德)이요, 기(氣)는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오(於), 목목(穆穆)한 그 이여! 천지(天地)보다 앞에 있어, 기는 이로 말미암아 생기고 심(心)도 또한 품수(稟受)하였도다.
【오(於)는 탄미(歎美)하는 말이요, 목(穆)은 지극히 맑음이다. 이 이는 순수하고 지극히 선하여 본래 잡된 바가 없으므로 탄미하여 말하기를 오목(於穆)이라 한 것이요, 나[我]라는 것은 이(理)가 자기를 일컬은 것이다. 앞서 심과 기를 말함에 바로 나[我]⋅나[予]라 이르고, 이곳에는 이를 표적(標的)하여 탄미한 후에 나라 일컬었으니, 그것은 이가 공정한 도(道)로 그 존귀함이 상대가 없어서, 이씨(二氏)가 각각 편벽된 소견을 지켜 서로 피아(彼我)를 구별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것은 이가 심과 기의 본원이 되는 것을 말한 것이니, 이 이가 있은 후에 이 기가 있고, 이 기가 있은 후에 양기(陽氣)의 경청(輕淸)한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음기(陰氣)의 중탁(重濁)한 것은 아래로 엉겨 땅이 된 것이다. 사시(四時)가 이에 유행하고 만물이 이에 생겨나니, 사람이 그 사이에 있어 천지의 이를 온전히 얻고 또 천지의 기를 온전히 얻어,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존귀하므로 천지와 더불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천지의 이가 사람에게 있어서는 성품이 되고, 천지의 기가 사람에게 있어서는 형체가 되며, 심은 또 이와 기를 겸하여 얻어 한 몸의 주재(主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가 천지보다 앞에 있어 기가 이로 말미암아 생기고 마음도 또한 품수하여 덕(德)이 된 것이다. 】
심이 있고 이(理)가 없으면 이해에만 달려갈 것이요, 기만 있고 이가 없으면 혈육의 몸뚱이만 가지고 의식도 없이 움직이며 금수와 한길로 돌아갈 것이니, 아아, 그 중에서 조금 다를 자가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준연(蠢然)은 지각이 없는 모양이요, 기희(幾希)는 적다는 것이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지각(知覺)과 운동(運動)의 준연(蠢然)한 것은 사람이 동물과 같으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순수한 것은 사람이 동물과 다르다”라고 하였다. ○이는 사람이 금수와 다른 바는 그 의리가 있기 때문이니, 사람이고서 의리가 없으면 그 지각하는 바가 정욕과 이해의 사사로움에 지나지 않을 뿐이요, 그 움직이는바 또한 준연(蠢然)히 한갓 살아 있을 따름이니, 비록 사람이라고 하나 금수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것이 유자(儒者)가 존심(存心)⋅양기(養氣)하는 데 반드시 의리로써 주(主)를 삼는 까닭이다. 저 석(釋)⋅노(老)의 학은 적멸(寂滅)과 청정(淸淨)을 숭상하여 비록 이륜(彛倫)의 중대한 것과 예악(禮樂)의 아름다운 것도 반드시 제거하여 없애고자 한다. 그 흉중에 욕심이 없는 자는 이해에 달려가는 자와 다른 듯하나 천리의 공정함을 주장하여 사람 욕심의 사사로움을 제재할 줄 알지 못하므로, 그 일상 언행이 매양 이해에 빠지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욕구하는 바가 삶보다 더한 것이 없고,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심한 것이 없는데, 이제 그들의 학설을 보건대, 석씨는 반드시 사생(死生)에서 벗어나려 하니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노씨는 반드시 오래 살기를 구하고자 하니 이는 삶을 탐하는 것인즉, 이해(利害)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그 가운데에 의리(義理)의 주장함이 없으니, 효연히 얻음이 없고 명연(冥然)히 알지 못하니, 이는 구각(軀殼)에 존재된 것이 혈육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 네 구절은 비록 범연(泛然)히 중인(衆人)을 가리켜 말한 것이나, (석씨⋅노씨) 이가(二家)의 실지 병통에 절실하게 맞는 것이니, 독자는 상세히 살펴야 한다.】
저 어린아이가 포복(匍匐)하여 우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측은한 정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유자는 정념(情念)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방금 어린아이가 우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누구나 놀랍고 측은한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측은한 마음은 인(仁)의 단서이다” 하였다. 이는 측은한 정이 내 마음의 고유(固有)한 데 근본하는 것을 밝혀 석씨(釋氏)의 생각을 없애고 정(情)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밝힌 것이다. 대저, 사람이 천지의 호생(好生)하는 마음을 얻어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른바 인이다. 이 이치가 실지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으므로, 어린아이가 우물로 기어들어감을 보면 그 측은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서 막지 못하나니, 이 마음을 미루어 확충하면 인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이며, 사해(四海)의 안을 모두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자는 정념(情念)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천리(天理)가 나타나는 자연을 따를 뿐이니, 어찌 석씨의 정념(情念)이 일어나는 것을 두렵게 여겨 억지로 제어하여 적멸(寂滅)에 돌아갈 따름인 것과 같으랴!】
죽을 자리에 죽는 것은 의가 몸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니, 이러므로 군자는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루는 것이다.
【『논어』에 이르기를, “뜻을 품은 선비[志士]와 인을 품은 선비[仁人]는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침이 없고,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룸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의가 중하고 생명이 경한 것을 말하여 노자의 기만 키우고 생(生)을 탐하는 실수를 밝힌 것이다. 대개 군자가 실제의 이치를 보아 얻으면 마땅히 죽을 자리를 당하여는 그 몸이 차마 하루라도 삶을 편안히 여기지 못하나니, 사생(死生)이 더 중한가, 의리가 더 중한가? 그러므로 유자는 임금이나 어버이의 어려움을 구할 때는 신체와 생명을 버리고 달려가는 자가 있으니, 노씨의 한갓 수련에만 종사하며 삶을 탐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성인(聖人)이 지나가신 천년에 배움이 거짓되고 말이 방잡(厖雜)한지라, 기로써 도를 삼고 마음으로써 종(宗)을 삼는 도다.
【방(厖)의 뜻은 난(亂)과 같다. ○이들 이단(異端)의 학설이 성행하게 된 까닭은 성인의 세상이 이미 멀어져 도학
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씨는 기가 이에 근본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기로써 도를 삼고 있으며, 석씨는 이가 심에 갖추어져 있음을 알지 못하고 심으로써 종(宗)을 삼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노씨⋅석씨) 이가에서는 스스로 무상고묘(無上高妙)하다고 말하면서도, 형이상(形而上)이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마침내 형이하(形而下)만을 가리켜 말하여 천근(淺近)하고 우활(迂闊)하며 편벽된 가운데에 빠지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도학' 관련자료
의롭지 못하고 장수하면 거북이나 뱀 따위일 것이요, 눈 감고 앉아만 있으면 흙이나 나무와 같은 형해(形骸)일 뿐이다.
【갑연(瞌然)은 앉아 조는 모양이다. 앞의 두 구절은 노씨(老氏)를 책망한 것이요, 뒤의 두 구절은 석씨(釋氏)를 책망한 것이다. 곧 앞 장에 심만이 있고 이가 없으며, 기만 있고 이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 장은 범연히 여러 사람을 말한 것이요, 이 장은 오로지 이씨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내[我]가 너[爾]의 심에 주재하고 있으면 형철(瑩澈)하고 허명(虛明)할 것이요, 내가 너의 기를 기르면 호연(浩然)의 기가 생길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나는 나의 호연한 기를 잘 기른다”라고 하였다. ○이는 성인의 학(學)이 안팎으로 오고 가며 기르는 공(功)을 말한 것이다. 의리로써 심을 간직하여 함양하면 물욕(物欲)에 가려짐이 없어 전체(全體) 가 허명(虛明)하고 대용이 어그러지지 않을 것이요, 의를 모아 기를 길러 확충하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剛)한 기가 호연히 스스로 생겨 천지에 가득 찰 것이다. 본말이 겸비되고 내외가 서로 양(養)하는 것이니, 이는 유자의 학이 바른 것이 되어 이씨(二氏)가 편벽된 것과 같지 않은 것이다.】
선성(先聖)
공자
의 가르침에 ‘도(道)에는 두 갈래로 높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심이여, 기여, 공경하여 이 말을 받을지어다. 【호씨(胡氏)가, 『예기(禮記)』의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땅에는 두 임금이 없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도(道)에는 2가지 길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도술이 하나로 돌아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윗글에서 논한 바가 모두 성현의 유훈(遺訓)에 근본한 것이요, 나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며, 그 도(道)의 존귀함이 더불어 둘이 될 것이 없어 심(心)과 기(氣)의 비할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심과 기를 특별히 불러 경계하였으니 그 권권(拳拳)히 열어 보인 뜻이 지극히 깊고 간절하다. 】
『삼봉집』권10, 『심기리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