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후기정치붕당 정치와 탕평 정치

붕당 정치에 대한 비판

아! 붕당이란 이름이 생긴 지는 벌써 오래다. ……(중략)…… 옛적 구양수(歐陽脩)의 글을 보면 붕당이란 멀리 당우와 은⋅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략)…… 그런데 온 나라 사람이 전부 붕당에 참여해서 둘⋅셋⋅넷으로 나뉘어 2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지나도록 합하지 못하고, 사정과 역순의 분별에 대해서 또한 끝내 말을 밝히고 논의를 세우지 못한 것이 바로 우리이다. 또 이것은 고금의 붕당을 통틀어서 더없이 크고 더없이 오래고, 더없이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면 여덟 가지 원인이 있으니, 도학을 너무 존중하는 풍토가 하나요, 명분을 너무 엄하게 여긴 것이 둘이요, 문사(文詞)가 지나치게 번거로운 것이 셋이요, 형옥(刑獄)이 너무 조밀한 것이 넷이다. 대간(臺諫)이 너무 준엄한 것이 다섯이요, 관직이 너무 맑은 것이 여섯이요, 벌열(閥閱)이 너무 성행한 것이 일곱이요, 평화로움이 너무 오래 지속된 것이 여덟이다. ……(중략)…… 이 여덟 가지는 실로 당론의 유래로 그 득실이 서로 같으니 나는 여기에서 어느 당에 치우쳐서 말한 것이 아니다. ……(하략)……

『당의통략』 원론

嗚呼, 朋黨之名, 所由來遠矣. ……(中略)…… 歐陽修之論朋黨, 自唐虞殷周始. ……(中略)…… 若夫舉一國之衆, 而分而爲二爲三爲四, 歷二百餘年之久, 而不復合, (其)於邪正逆順之分, 亦卒無能明言而定論者, 惟我朝爲然. 其亦可謂古今朋黨之至大至久至難言者歟. 竊甞論之, 其故有八, 道學太重, 一也, 名義太嚴, 二也, 文詞太繁, 三也, 刑獄太密, 四也, 臺閣太峻, 五也, 官職太淸, 六也, 閥閱太盛, 七也, 承平太久, 八也. ……(中略)…… 夫是八者, 黨論之所由來也, 而其得失則彼此均焉, 吾非爲一偏之黨而言之也. ……(下略)……

『黨議通略』 原論

이 사료는 조선 말기 학자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이 지은 당론서(黨論書)인 『당의통략』의 「원론(原論)」이다. 이건창은 그의 아버지 이상학이 지은 『국조문헌(國朝文獻)』에서 붕당 정치와 관련한 내용만을 발췌하여 『당의통략』을 구성하였다. 이 책은 선조(宣祖, 재위 1567~1608)부터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대에 이르는 각 왕대별로 주요한 사건을 기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1575년(선조 8년) 동서 분당의 원인으로 김효원(金孝元, 1532~1590)과 심의겸(沈義謙, 1535~1587)의 대립을 소개한 것에서 시작하여‚ 1755년(영조 31년)까지 약 180년 간의 붕당 정치 흐름을 기술하고‚ 말미에 「원론」을 부기(附記)하였다.

이건창은 소론계 명문 출신이다. 그러나 중인 출신 지식인들과도 교유 관계를 폭넓게 가지면서 조선 왕조의 양반 정치에 대해 일정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당의통략』은 소론의 입장이 개입되어 있는 한계점이 있지만, 다른 당론서에 비해 연대기별로 주요한 사건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정치의 흐름을 개관하면서 중요 정쟁을 정리한 『당의통략』은 여러 계층을 포괄해 붕당 정치의 정치 현상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양반 중심 정치를 청산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조선 후기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전체 본문 내용의 절반 이상이 숙종 시기에 해당하는데, 이는 숙종 대에 붕당 정치가 치열하게 전개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노론소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소론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소 분당의 원인에 대해 소론윤증(尹拯, 1629~1714)의 입장을 지지하고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크게 비판하는 점이나, 신임옥사(辛壬獄事)에서의 노론 측 잘못을 부각한 점 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건창은 「원론」에서 중국의 역대 붕당사를 간략히 언급한 다음‚ 붕당의 원인을 제시한 뒤 명분과 예절[名節]을 지나치게 숭상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실용에 힘쓰는 것이 붕당의 폐해를 극복하는 한 방법임을 강조하였다.

이건창이 본 당쟁의 요인은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도학을 너무 존중하는 풍토[道學太重]가 있었다고 보았다. 도덕의 강조가 지나쳐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곧 비난의 대상이 되고, 인간의 도덕적 타락을 용서하지 못하는 정도가 심화됨에 따라서 그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명분을 너무 엄하게 여겼다[名義太嚴]는 것이다. 공자 이래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논리였다.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가 조선 왕조로 들어오면서 더욱 심해져서, 상대편을 소인이라 지목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반드시 명분을 빌려 난적(亂賊)으로 몰아넣으려 했다는 것이다.

셋째, 문사가 지나치게 번거로웠다[文詞太繁]고 보았다. 조선조의 붕당 갈등은 대개 문사와 관련이 있었다. 처음에는 말[言]을 가지고 책망하다가, 나중에는 글만 지적하여 책망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기록된 것은 없애고자 하여도 없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꼬집어 죄주는 것은 아주 오래되고도 교묘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넷째, 형옥(刑獄)이 너무 조밀하였다[刑獄太密]는 것이다. 이는 형벌이 너무 엄혹했음을 의미한다. 고문으로 관련 없는 사람까지 연좌시켜 상대 붕당을 섬멸하는 방법이 시행되었다는 의미이다.

다섯째, 대간(臺諫)이 너무 준엄했다[臺閣太峻]는 것이다. 본래 대간을 두는 것은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여 기강을 바르게 하고, 임금이 하는 일의 시비를 가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덕을 이루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간이 경중과 대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일에 참견하여 당벌(黨伐)로 일을 삼으니, 이러고서야 임금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고 무리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다.

여섯째, 관직이 너무 맑았다[官職太淸]는 것이다. 관리의 청렴을 지나치게 요구하여 그것이 상대를 비난하고 죄주는 구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곱째, 벌열(閥閱)이 너무 성행했다[閥閱太盛]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문벌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떤 이해관계보다도 깊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중이나 혈연에 대한 집착이 어느 다른 가치보다도 소중했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그 무엇보다 치열했다. 이러한 문벌의 이해관계는 늘 이웃과의 충돌을 수반했고, 그 과정에서 붕당 간의 반목이 심화되었다고 보았다.

여덟째, 평화로움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다[昇平太久]는 것이다. 맹자도 “적이 없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라고 했다. 조선 왕조의 경우 개국 이래 200년 가까이 밖으로 외침이 없고 안으로 권신들이 틈을 노려보는 일이 없어 평화가 지속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대부들이 붕당으로 의론이 나뉘어 무리를 짓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건창이 제기한 붕당의 원인은 조선 사회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붕당 발생의 원인을 조목조목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 식민 사학자들은 이건창이 원론에서 제기한 붕당 발생의 여덟 가지 이유를 식민주의 사관 창출에 악용하였다. 붕당 정치는 조선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등장한 특수한 정치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식민 사학자들은 당쟁에 관한 부정적 평가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여 식민 지배를 정당화고자 하였다. 시데하라(幣原垣)의 『한국정쟁지(韓國政爭志)』(1907)를 필두로 일본인 학자들은 조선 왕조의 역사를 당파성이 강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주장하는 당파성론은 일제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또 다른 억지에 불과하다. 이러한 식민 사관은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으나, 1970년대 이후 조선 시대 정치사, 사회사를 적극적으로 고찰하는 연구자들이 등장하면서 극복되기 시작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붕당정치’론 비판; 조선시대 당쟁의 성격」,『정신문화연구』29,김용덕,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6.
「당파성론 비판」,『한국사시민강좌』1,이태진,일조각,1987.
저서
『조선후기 ‘탕평’ 연구』, 박광용,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16∼18세기의 유소와 공론정치』, 설석규, 경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조선 후기의 정치 사상』, 유미림, 지식산업사, 2002.
『조선중기 사림정치구조연구』, 최이돈, 일조각, 1994.
편저
『조선후기 당쟁의 종합적 검토』, 이성무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관련 사이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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