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후기사회신분제의 동요

납속 사목

진휼청(賑恤廳)에서 아뢰기를 “노인직을 두고, 관직을 더 마련하고, 벼슬을 높여 주는 일 등의 문서를 올봄에 각 도로 나눠 보내서 1만여 석의 곡식을 모아 흉년이 든 백성들을 도와주는 데 보탰습니다. 금년 충청, 경상, 전라의 삼남 지방의 흉년은 작년보다도 심하니 벼슬을 임명하는 값[職帖]을 낮추지 않으면 응모(應募)할 사람이 반드시 줄어들 것이므로 신 등이 여러 번 상의하여 각 항목별로 공명첩의 가격을 줄였으며, 5도(道) 향교의 유생들에게 면강(免講) 가격도 본 도의 풍흉에 따라 차등을 두고 마련하였습니다. 아울러 별단을 작성하여 올립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별단(別單, 별도로 첨부한 문서)

노직첩(老職帖)

1. 나이 60세 이상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된 자는 쌀 납부를 5석에서 1석을 감하여 4석으로 함.

1. 나이 70세 이상으로 통정대부가 된 자는 납미 3석을 그대로 둠.

1. 나이 80세 이상으로 통정대부가 된 자는 납미 2석을 그대로 둠.

1. 이미 통정이 됐다가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된 자는 납미 3석에서, 1석을 감하여 2석으로 함.

서얼허통(庶孽許通)

1. 양첩(良妾) 자식의 허통은 납미 4석을 그대로 둠.

1. 천첩(賤妾) 자식의 허통은 납미 6석을 그대로 둠.

추증첩(追贈帖)

1.직장(直長), 참군(參軍), 금부도사, 별좌(別坐) 등은 납미 5석에서 3석을 감하여 2석으로 함.

1.정랑(正郞), 좌랑(佐郞), 감찰(監察) 등은 납미 6석에서 3석을 감하여 3석으로 함.

1.통례(通禮), 첨정(僉正) 등은 납미 8석에서 4석을 감하여 4석으로 함.

1. 판결사(判決事)는 납미 15석에서 10석을 감하여 5석으로 함.

1.참의(參議)는 납미 17석에서 11석을 감하여 6석으로 함.

1.동지(同知)는 납미 20석에서 14석을 감하여 6석으로 함.

1.좌⋅우윤(左右尹)은 납미 20석에서 13석을 감하여 7석으로 함.

1, 참판(參判)은 납미 22석에서 15석을 감하여 7석으로 함.

1.지사(知事)는 납미 25석에서 17석을 감하여 8석으로 함.

1.참하(參下)에서 오⋅육품에 오른 자는 납미 3석에서 2석을 감하여 1석으로 함.

1. 5⋅6품에서 삼품에 오른 자는 납미 3석에서 2석을 감하여 1석으로 함.

1. 3⋅4품에서 당상관에 오른 자는 납미 3석에서 1석을 감하여 2석으로 함.

1. 당상관에서 가선대부에 오른 자는 납미 4석에서 2석을 감하여 2석으로 함.

1. 가선에서 정2품의 하계(下階)인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른 자는 납미 5석에서 3석을 감하여 2석으로 함.

1. 참판, 참의는 사족(士族)에게만 허용하고 참하로서 보다 높은 품계를 받기를 원하는 자는 품수(品數)에 따라 더 바칠 것(加納).

가설실직첩(加設實職帖)

1. 찰방(察訪), 별좌(別坐), 주부(主簿) 등은 납미 12석에서 2석을 감하여 10석으로 함.

1. 판관(判官)은 납미 15석에서 4석을 감하여 11석으로 함.

1. 첨정(僉正)은 납미 18석에서 5석을 감하여 13석으로 함.

1. 부정(副正)은 납미 21석에서 7석을 감하여 14석으로 함.

1. 통례(通禮), 통정(通正)은 납미 24석에서 9석을 감하여 15석으로 함.

1.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는 납미 40석에서 10석을 감하여 30석으로 함.

1. 동지(동지중추부사)는 납미 50석에서 10석을 감하여 40석으로 함.

이상은 가설직(加設職)을 제수하되 사은(謝恩)과 봉증(封贈)1) 은 한결같이 정식 관리의 예(例)에 따르며, 다만 사족(士族)에게만 허가하고, 천인양민으로 군역(軍役)이 있어야 할 자에게는 허가하지 않는다. 첨지와 동지는 사족양민을 물론하고 허가하되 양민사족에 비하여 10석을 더 내야 한다.

1.출신(出身)으로서 만호첩(萬戶帖)을 받고자 하는 자는 납미 4석에서 1석을 감하여 3석으로 함.

1. 출신으로서 첨사첩(僉使帖)을 받고자 하는 자는 납미 6석에서 2석을 감하여 4석으로 함.

1. 승인(僧人)이 환속(還俗)한 뒤에 충정(充定)되고 싶지 않은 자는 납미 5석을 그대로 둠.

1. 이미 상으로 관직을 받아(賞職) 통정대부, 절충장군(折衝將軍)이 되어 가설동지(加設同知)를 받고자 하는 자는 납미 40석에서 15석을 감하여 25석으로 함.

1. 이미 상직으로 가선대부가 되어 가설동지를 받고자 하는 자는 납미 30석에서 15석을 감하여 15석으로 함.

1. 이미 통정대부, 절충장군이 되어 가설첨지(加設僉知)를 받고자 하는 자는 납미 20석에서 10석을 감하여 10석으로 함.

1. 이미 가선대부, 통정대부가 되어 호군(護軍)의 교지를 받고자 하는 자는 납미 2석, 사직(司直)을 받고자 하는 자는 납미 1석으로 함.

1. 이미 노직(老職)으로 통정대부, 가선대부가 되어 가설첨지, 가설동지를 받고자 하는 자는 앞서 납입한 수량만 감해 줌.

정원 외의 교생(校生)으로 10년 동안에 한해 과거 시험에서 강서(講書)를 면해 줌

1. 전남좌도(全南左道) 교생 납미 5석

우도(右道) 교생 납미 4석

1. 경상도 교생 납미 4석

1. 충공좌도(忠公左道) 교생 납미 5석

우도(右道) 교생 납미 4석

1. 황해도 교생 납미 8석

1. 평안도 교생 납미 10석

액외교생(額外校生)으로 종신토록 면강(免講)함.

1. 전남좌도 교생 납미 10석

우도 교생 납미 8석

1. 경상도 교생 납미 8석

1. 충공좌도 교생 납미 10석

우도 교생 납미 8석

1. 황해도 교생 납미 13석

1. 평안도 교생 납미 15석

비변사등록』권21, 현종 2년 8월 4일

1)봉작(封爵)과 증직(贈職)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봉(封)’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증(贈)은 죽은 사람에게 관직을 하사하는 것을 뜻한다.

賑恤廳啓曰, 老職⋅加設⋅贈職等帖文, 今春分送各道, 募得萬餘石之穀, 以補賑救之用矣. 今年三南凶歉, 甚於上年, 職帖之價, 若不減數, 則應募之人必少, 故臣等反覆相議, 各項帖價, 次次量減, 五道校生免講之價, 隨其本道豐凶, 亦爲差等磨鍊. 竝爲別單書入之意, 敢啓. 答曰, 允.

 別單

老職帖

一, 年六十以上爲通政者, 納米五石內, 減一石存四石.

一, 年七十以上爲通政者, 納米三石仍.

一, 年八十以上爲通政者, 納米二石仍.

一, 已爲通政而爲嘉善者, 納米三石內, 減一石存二石.

 庶孽許通

一, 良妾子許通, 納米四石仍.

一, 賤妾子許通, 納米六石仍.

 追贈帖

一, 直長⋅參軍⋅禁府都事⋅別坐, 納米五石內, 減三石存二石.

一, 正郞⋅佐郞⋅監察, 納米六石內, 減三石存三石.

一, 通禮⋅僉正, 納米八石內, 減四石存四石.

一, 判決事, 納米十五石內, 減十石存五石.

一, 參議, 納米十七石內, 減十一石存六石.

一, 同知, 納米二十石內, 減十四石存六石.

一, 左⋅右尹, 納米二十石內, 減十三石存七石.

一, 參判, 納米二十二石內, 減十五石存七石.

一, 知事, 納米二十五石內, 減十七石存八石.

一, 參下陞五⋅六品者, 納米三石內, 減二石存一石.

一, 五⋅六品陞三品者, 納米三石內, 減二石存一石.

一, 三⋅四品陞堂上者, 納米三石內, 減一石存二石.

一, 堂上陞嘉善者, 納米四石內, 減二石存二石.

一, 嘉善陞資憲者, 納米五石內, 減三石存二石.

一, 參判⋅參議, 只許士族爲白乎矣, 參下以願受高品者, 計其品數加納爲白齊.

 加設實職帖

一, 察訪⋅別坐⋅主簿, 納米十二石內, 減二石存十石.

一, 判官, 納米十五石內, 減四石存十一石.

一, 僉正, 納米十八石內, 減五石存十三石.

一, 副正, 納米二十一石內, 減七石存十四石.

一, 通禮正, 納米二十四石內, 減九石存十五石.

一, 僉知, 納米四十石內, 減十石存三十石.

一, 同知, 納米五十石內, 減十石存四十石.

以上加設職除授爲白乎矣, 謝恩⋅封贈, 一依正官例, 而只許士族爲白乎旀, 賤人及良民之應有軍役者, 則勿許. 僉知⋅同知, 則毋論士族⋅良民, 竝許爲白乎矣, 良民則比士族加納十石爲白齊.

一, 出身願受萬戶帖者, 納米四石內, 減一石存三石.

一, 出身願受僉使帖者, 納米六石內, 減二石存四石.

一, 僧人還俗後勿定軍役者, 納米五石仍.

一, 已爲賞職通政折衝而願受加設同知者, 納米四十石內, 減十五石存二十五石.

一, 已爲賞職嘉善而願受加設同知者, 納米三十石內, 減十五石存十五石.

一, 已爲通政⋅折衝而願受加設僉知者, 納米二十石內, 減十石存十石.

一, 已爲嘉善⋅通政而願受護軍官敎者, 納米二石, 願受司直者, 納米一石.

一, 已爲老職通政⋅嘉善而願受加設僉知⋅同知者, 只減前納之數爲白齊.

 額外校生, 限十年免講.

一, 全南左道校生, 納米五石.

    右道校生, 納米四石.

一, 慶尙道校生, 納米四石.

一, 忠公左道校生, 納米五石.

    右道校生, 納米四石.

一, 黃海道校生, 納米八石.

一, 平安道校生, 納米十石.

 額外校生, 終身免講.

一, 全南左道校生, 納米十石.

  右道校生, 納米八石.

一, 慶尙道校生, 納米八石.

一, 忠公左道校生, 納米十石.

    右道校生, 納米八石.

一, 黃海道校生, 納米十三石.

一, 平安道校生, 納米十五石.

『備邊司謄錄』卷21, 顯宗 2年 8月 4日

이 사료는 1661년(현종 2년) 8월 4일에 제정된 납속(納贖)에 관한 규정과 규칙 등을 정한 ‘납속 사목(納贖事目)’이다. 납속이란 군량(軍糧) 등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거나 변란으로 인한 국가 재정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또는 흉년 시 굶주린 백성 구제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한 특혜를 내걸고 백성들에게 일정량의 곡식 등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 납속은 조선 전기부터 시행되었지만 대상은 노비에게만 국한되었고, 그 액수도 후기에 비해 상당히 많은 많을뿐더러 공식적으로 제도화되지는 못하였다. 납속임진왜란 당시 군량미를 모으는 과정에서 제도화되기 시작하여, 전쟁이 끝난 뒤에도 궁궐이나 성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재정과 물량을 확보하려고 계속 실시하였다.

납속에는 특전의 종류에 따라 노비 신분을 해방시키는 납속면천(納粟免賤), 양인에게 군역 의무를 면제해 주는 납속면역(納粟免役), 양인 이상을 대상으로 품계(品階), 특히 양반의 경우 실제 관직까지 제수하는 납속수직(納粟授職) 등이 있다. 이 같은 특전을 부여하는 문서로는 면천첩(免賤帖)⋅면역첩(免役帖) 외에도 교생이 강경시험(講經試驗)에서 떨어지면 군역에 나가게 되므로 강경을 면제해 주는 교생면강첩(校生免講帖), 향리의 역을 면제해 주는 면향첩(免鄕帖) 등이 있었다. 그 밖에도 품계와 관직을 기록한 관리 임명서로 이를 받는 자의 이름 쓰는 난을 비워 두는 공명고신첩(空名告身帖)이 있는데, 여기에는 훈도첩(訓導帖)⋅노직당상첩(老職堂上帖)⋅추증첩(追贈帖)⋅증통정첩(贈通政帖)⋅가설실직첩(加設實職帖), 그리고 서얼허통첩(庶孼許通帖) 등이 발행되었다. 사료로 제시한 ‘납속 사목’에서 보듯 관직의 제수부터 면강에 이르기까지 최소 1석에서 최대 40석까지 납미(納米)의 규모도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납속이 대규모로 자주 시행되면서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납속책을 통해 신분 상승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를 통한 신분 상승은 서얼향리에 한정되지 않고, 천인의 경우에도 재력만 있으면 일단 양인이 되었다가 다시 양반이 될 수 있었다. 특히 기근으로 인한 재정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정부가 발매한 공명첩은 재력 있는 비양반층이 양반 신분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비양반층이 납속을 통해 품계나 관직을 취득했더라도 그 다음 세대인 아들은 품계나 관직 취득 이전의 신분과 직역을 세습하고 있으므로 양반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납속책의 일환으로 공명첩이 계속 발급되면서 신분제 동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역사 속의 소빙기」,『역사학보』149,김연옥,역사학회,1996.
「조선후기 신분제 동요의 일고찰; 납속책, 공명첩 발급을 중심으로」,『논문집』1,문수홍,동국대학교 경주대학,1982.
「조선 현종⋅숙종대의 납속제도와 그 기능」,『대구사학』45,서한교,대구사학회,1993.
「조선 선조대 납속책의 시행과 변화」,,정지영,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93.
저서
『대기근-조선을 뒤덮다』, 김덕진, 푸른역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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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첩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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