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묻기를, “근래의 이른바 천학이라는 것이 옛날에도 있었습니까?” 하므로, 대답하기를 “있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위대하신 상제(上帝)께서 지상의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를 내리셨으니, 그 변함없는 본성을 따라서 그 올바른 도리를 실천한다면’ 하였으며,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문왕(文王)께서는 삼가고 조심하여 상제를 잘 섬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 유업(遺業)을 보전하리라’ 하였으며, 공자(孔子)는 ‘천명(天命)을 두려워한다’ 하였고, 자사(子思)는 ‘하늘이 명한 것을 일러 성(性)이라 한다’ 하였으며, 맹자(孟子)는 ‘마음을 보존하여 본성(本性)을 배양하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일이다’ 하였다. 우리 유자(儒者)의 학문 또한 하늘을 섬기는 것에 불과하다. 동중서(董仲舒)가 이른바 ‘도(道)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온 것이다’는 것이 이것이다”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유자의 학문이 진정 하늘을 섬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대가 서양 사람들의 학문을 배척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므로, 대답하기를, “이른바 하늘을 섬기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이쪽은 정당하고 저쪽은 사특하다. 그래서 내가 배척하는 것이다”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 서사(西士)가 동정(童貞)의 몸으로 수행을 하는 것은 중국의 행실이 독실한 자들도 능히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또 지식과 이해가 뛰어나서 하늘의 도수를 관측하고 역법(曆法)
을 계산하며 기계와 기구를 만들기까지 하였는데, 아홉 겹의 하늘을 환히 꿰뚫어보는 기구와 80리까지 날아가는 화포(火炮) 따위는 어찌 신비스럽고 놀랍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 인조
때 사신 정두원(鄭斗元)이 장계하기를, ‘서양 사람 육약한(陸若漢)이 화기(火器)를 만드는데, 80리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는 화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였다. 약한은 바로 이마두(利瑪竇)의 친구이다.】 그 나라 사람들은 또 능히 온 세계를 두루 다니는데, 어느 나라에 들어가면 얼마 안 되어 능히 그 나라의 언어와 문자를 통달하고, 하늘의 도수를 측량하면 하나하나가 부합하니, 이는 실로 신성한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이미 신성하다면 왜 믿을 수 없단 말입니까?” 하였다.
'역법(曆法)' 관련자료
'인조' 관련자료
이에 대답하기를, “그것은 과연 그렇다. 그러나 천지의 대세(大勢)를 가지고 말한다면, 서역은 곤륜산(崑崙山) 아래에 터를 잡고 있어서 천하의 중앙이 된다. 그래서 풍기(風氣)가 돈후하고 인물의 체격이 크며 진기한 보물들이 생산된다. 이것은 사람의 배 안의 장부(臟腑)에 혈맥이 모여 있고 음식이 모여서 사람을 살게 하는 근본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중국으로 말하면 천하의 동남쪽에 위치하여 양명(陽明)함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운을 받고 태어난 자는 과연 신성한 사람이니,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주공(周公)⋅공자(孔子) 같은 분들이 이들이다. 이것은 사람의 심장이 가슴속에 있으면서 신명(神明)의 집이 되어 온갖 조화가 거기서 나오는 것과 같다. 이를 미루어 말한다면 중국의 성학(聖學)은 올바른 것이며, 서국(西國)의 천학은 그들이 말하는 진도(眞道)와 성교(聖敎)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말하는 바의 성학은 아닌 것이다” 하였다.
『순암집』권17 「잡저」 천학문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