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후기문화성리학의 교조화와 그에 대한 비판

양반들의 유교적 생활

○무릇 효제는 우리 가문에 대대로 전해 오는 덕업이다. 가족을 보존하고 집안을 화목하게 하는 데는 효제가 근본이 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

『초려전집』(중간본), 정훈, 서

○돌아가신 부모님 두 분께 한 번 제사지내는 경비는 벼 1섬으로 계산하면 된다. ……(중략)…… 좋은 논 24마지기에서는 공부(公賦, 세금)를 빼고 벼 14섬을 얻을 수 있다. 이 정도의 논을 장만하여 종가에서 주관하며, 가을에 수확한 것을 별고에 저장하였다가 사용하고, 친진(親盡)이 되면 묘전으로 삼는다.……(중략)…… 요즈음 가난한 집에서 제수를 많이 준비하고자 하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 혹 참례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는데, 비록 아주 간략하더라도 정결하게 준비하는 것이 그냥 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초려전집』(중간본), 정훈, 사당지의

○……(중략)……【대개 표석의 앞면에 ‘모공모씨지묘’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세월이 오래 지난 뒤에도 자손들이 자기 부모와 조상의 묘소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벼슬하는 집안은 재산의 여유가 있어서 돌에 새기는 것이 가능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무익한 일을 해서는 안되므로 그 조상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손들이 몸으로 수고하고 재산을 낭비하는 것을 보고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초려전집』(중간본), 정훈, 묘제지의

○장사 지내는 예법은 정성을 다하고, 애통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다해야 할 따름이다. 길흉화복에 대해서는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

『초려전집』(중간본), 정훈, 상장지의

○비록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어 이자를 받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대개 부자는 곡식이 있고 가난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서로 꾸어 주고 관례에 따라 돌려받는 것이 의에 크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위급한 사정을 불쌍히 여기지는 않고 잘 갚을 사람만을 골라 빌려 주면, 이것은 궁핍한 사람을 구휼하여 도와주는 도리가 아니다.

『초려전집』(중간본), 정훈, 관혼지의

○혼례에 구차하게 부귀를 흠모해서는 안 된다. ……(중략)…… 처음 혼사에 관한 논의가 있을 때, 반드시 따져보고 판단해야 한다. 언약이 된 다음에는 비록 다른 사정이 생겨도 신의를 저 버리고 약속을 어겨서는 안 된다. ……(중략)……【이것 또한 운명이다. 비록 폐질이라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의리를 모르고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짐승이나 오랑캐가 하는 짓이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초려전집』(중간본), 정훈, 부우지비

○孝悌者吾家世傳之業也. 保族宜家此其根本, 守而不失其各勉焉可也.

『草廬全集』(重刊本), 庭訓, 序

○考妣二位一祭之需以正租一石計之. ……(中略)……稍好水田二十四斗落種地, 除公賦可得租十四石, 買置宗家主之, 秋斂藏之別庫以爲用, 親盡則幷爲墓田. .……(中略)……今貧家欲備饌而不給仍或廢闕, 雖甚簡略務自精潔不猶愈於已乎.

『草廬全集』(重刊本), 庭訓, 祠堂之儀

○……(中略)……【盖表石前面曰某公某氏之墓, 最切於人事. 久遠而子孫可以識其考妣之所藏也. ……(中略)…… 仕宦之家有餘財足以刻石者可也, 貧窮者勿爲無益之事, 使先靈見其子孫勞費而有所憂惱也.】

『草廬全集』(重刊本), 庭訓, 墓祭之儀

○謹其送終之禮, 盡其哀敬之心而已. 至於吉凶禍福, 姑待天命可也.

『草廬全集』(重刊本), 庭訓, 喪葬之儀

○雖有餘饒切, 不可與人求息也. 蓋觀富者有穀, 貧者無食, 相與許貸, 隨例收償, 不至大害於義. 然不恤人之緩急, 擇其善償者而給之, 已非賙窮之道.

『草廬全集』(重刊本), 庭訓, 冠昏之儀

○昏娶勿苟慕富貴. ……(中略)……初議時必量度. 至於言定之後, 雖有他故, 不可棄信違約也. ……(中略)……【此亦命也. 雖廢疾無奈何. 無義無信禽獸夷狄之道, 此不敦爲也.】

『草廬全集』(重刊本), 庭訓, 不虞之備

이 사료는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1607~1684)가 1677년(숙종 3년) 영변의 유배지에서 후손들에게 남긴 일종의 경계의 글이다. 유언과 같이 쓰여 있으나 일반적인 가훈과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일반적 가훈이 추상적인 명제를 적어 놓은 것이라면 이유태의 「정훈(庭訓)」은 실제적인 생활 규범집으로 구체적인 삶의 방법을 지시하고 있는 방법론에 가까운 것이다.

이유태는 조광조이이(李珥, 1536~1584), 김장생(金長生, 1548~1631)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나 과거를 통한 관리의 길을 포기하고 은둔하면서 학문 도야와 교육 활동에 힘을 기울이는 유학자의 삶을 살았다. 이에 그가 쓴 「정훈」에는 유교 사상의 윤리적 실천 이념으로서 예와 효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 한편 「정훈」은 일상생활에서 실천을 중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계획적이고 현실적인 가정 경영관을 살펴볼 수 있어 당시의 생활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도움이 되고 있다.

「정훈」의 구성은 서문(序文)과 아울러 총 19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101쪽이다. 항목을 살펴보면, 1, 사당지의(祠堂之儀), 2. 시제지의(時祭之儀), 3. 기제지의(忌祭之儀), 4. 묘제지의(墓祭之儀), 5. 상장지의(喪葬之儀), 6. 거실지의(居室之儀), 7. 제산지의(制産之儀), 8. 숭절지의(崇節之儀), 9. 불우지의(不虞之儀), 10. 매전지의(買田之儀), 11. 치포전지의(治浦田之儀), 12. 가연지의(家宴之儀), 13. 대빈지의(待賓之儀), 14. 화수지의(花樹之儀), 15. 관혼지의(冠婚之儀), 16. 사상지계(四喪之契), 17. 거향지도(居鄕之道), 18. 대고구지도(待故舊之道), 19. 처세지도(處世之道) 등이다.

이 가운데 사당지의로부터 상장지의까지는 조상을 섬기는 방법과 관련한 조항들로 유가 사상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데, 조상을 받드는 제사 시기, 제수용품과 비용, 준비할 때의 수칙 등이 기록되어 있다. 거실지의로부터 관혼지의는 가정 경제와 관련한 조항들로 가계 운영과 치가(治家)의 방식을 보여 주며 가정 경제를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도록 자세히 계획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한 해의 총수입과 총지출을 따져 생활할 것을 제시하는 한편 학문하는 방법과 효율적인 농사법까지 세밀하게 일러 주고 있다.

가연지의와 화수지계는 친족과의 관계를 강조한 조항이고, 대빈지의로부터 처세지도는 대인 관계 및 사회 생활에 관한 조항들이다. 사회생활을 주제로 향리에서 언행을 조심하고 친구 사귀기를 조심히 할 것, 처세 방법으로는 경전을 제일의 공부로 삼도록 권하고 있다. 한편 후손들에게 과거 공부를 권유하는 것으로 보아 이유태가 처한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그의 「정훈」은 가정생활의 세세한 여러 측면과 친족과 향리까지 포함하는 사회활을 포괄하고 있어 조선 시대 양반들의 생활 양식을 고찰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온 나라가 양반되기; 조선후기 유교적 평등화 메커니즘」,『사회와역사』63,김상준,한국사회사학회,2006.
「조선후기 향촌사회에서 ’유교적 전통’의 지속과 단절-향촌 사족의 거향관 변화를 중심으로-」,『한국사론』50,김인걸,서울대학교 국사학과,2004.
저서
『조선시대 문학 예술의 생성 공간』, 강명관, 소명출판, 1999.
『고문헌의 조직과 정보활용』, 강순애, 아세아문화사, 2006.
『한국 유서(類書)의 서지학적 연구』, 김영선,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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