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후기문화성리학의 교조화와 그에 대한 비판

대중화된 유교 윤리

……(전략)…… 고금의 예서(禮書)가 자세하고 간략함이 같지 않아서, 지나치게 자상한 것은 번잡한 단점이 있고, 지나치게 간략한 것은 단순함이 탈이다. 오직 『가례(家禮)』는 주자(朱子)가 옛것을 짐작하고 지금 것을 통달한 제도로서, 진실로 하나하나 준봉함이 마땅하나 그 절목 사이에 간혹 소략한 곳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선유(先儒)들은 완성된 책이 아니라는 말도 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사계(沙溪) 선생1)은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는 『가례』를 조술하되 여러 설을 참고하여 『상례비요(喪禮備要)』라는 책을 지었다. 그러나 그 책에도 오히려 다 갖추지 못한 것이 있어서 지금 한결같이 예에 따라서 주자의 본문을 주로 하여 옛 예학을 참고하고 선유의 설로 정정해서 생략된 것을 보충하였고, 또 관례(冠禮)와 혼례(婚禮)를 덧붙여 하나의 책으로 합쳤으니, 대저 살펴보기 편하게 하고자 함이다. ……(하략)……

『사례편람』, 범례

1)조선 중기 학자이자 문신인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을 말한다. 『상례비요(喪禮備要)』⋅『가례집람(家禮輯覽)』⋅『전례문답(典禮問答)』⋅『의례문해(疑禮問解)』 등 예학(禮學)과 관련한 저술을 많이 남겼다.

……(前略)…… 古今禮書詳略不同, 太詳者失於煩, 太略者傷於簡. 惟家禮則是朱夫子酌古通今之制, 固當一一遵奉. 然其節目之間, 或不無疏略處, 先儒多以未成書爲言. 故沙溪先生於喪祭禮祖述家禮, 參證諸說, 作爲備要之書. 然其爲書猶有所未盡備者, 今一依其例以朱夫子本文爲主, 參之以古禮訂之, 以先儒說以補其闕略, 而又添入冠婚二儀, 合爲一書, 蓋爲其便於考覽 ……(下略)……

『四禮便覽』, 凡禮

이 사료는 『사례편람(四禮便覽)』 중 「범례(凡例)」의 한 부분이다. 『사례편람』은 조선 중엽의 학자이자 낙론계에 속한 이재(李縡, 1680~1746)가 관혼상제(冠婚喪祭)의 4례(四禮)에 대해 저술한 가례서이다. 이재는 이이(李珥, 1536~1584)김장생(金長生, 1548~1631), 송시열(宋時烈, 1607~1689), 김창협(金昌協, 1651~1708)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학맥을 계승하여 성리학과 예학에 정통했는데, 특히 『주자가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후학들이 이를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이재의 사상과 노력이 『사례편람』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재가 살았던 당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당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시기다. 이재의 가족과 인척이 이러한 당쟁으로 생을 달리했고, 그 자신 또한 온갖 어려움을 당하였다. 이재는 5세 때 아버지인 이만창을 여의고 중부(仲父)인 이만성(李晩成, 1659~1722)을 부모와 스승으로 삼아 자랐는데, 과거에 급제한 이후 이만성이 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사망하자 정계에서 물러났다. 이재의 어머니 여흥 민씨는 인현왕후의 언니였으며 외조부인 민유중(閔維重, 1630~1687)은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외손으로 신임옥사 이후 노론의 의리론을 주도하였다.

이재는 서인 노론의 정통을 잇는 가계를 배경으로 김창협과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을 이어 낙론의 종장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영조 중기 이후 신임의리가 재확인되고 노론이 정권을 주도하게 되면서 노론 내부의 갈등이 호락논쟁으로 가시화되었다. 이재는 윤봉구(尹鳳九, 1681~1767)와 심설 논쟁을 벌였을 뿐 아니라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의 심성론을 비판하는 한천시를 지어 낙론의 학설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노론의 도통을 강조하는 저술과 편찬에도 주목하였다. 송시열의 주장을 반영하는 『율곡전서』의 편찬은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송시열소론인 박세채(朴世采, 1631~1695)가 정리한 율곡 문집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여 수정을 요구하자, 이재는 『율곡전서』를 편찬함으로써 송시열의 유명을 잇고 이이의 정통을 계승했다는 확고한 명분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어 사망하던 해인 1746년(영조 22년)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송시열의 예학을 토대로 『사례편람』을 편찬함으로써 낙론이 노론 정통 예학의 계승자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으리라 판단된다.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들어가면서 주자의 위상이 크게 확대되어 『주자가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으나, 당시 사대부 및 일반 서민 사이에서는 중국의 풍토에 의거한 가례를 그대로 따라 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주자가례』의 내용이 주자의 만년설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항상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이재는 『주자가례』를 준칙으로 하고 사계(沙溪) 김장생의 『상례비요(喪禮備要)』를 틀로 하여 유가 선현들, 곧 사마온공(司馬溫公), 문중자(文中子), 송시열 등 제가(諸家)의 예설(禮說) 및 당시의 예제(禮制)와 세시풍속을 보충하고 상제에 혼례를 첨가하여 현실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사례편람』을 편저하였다. 가례와 함께 『사례편람』의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는 김장생의 『상례비요』 역시 『주자가례』를 주로 하여 예학의 고서를 참고하는 형태로 서술되었는데, 『사례편람』은 이러한 『상례비요』의 편찬 방식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상례비요』에 대한 수정과 보완 또한 목적으로 하였다.

이 사료에 나타나듯이 저술의 목적을 김장생을 중심으로 연구된 가례의 학문화를 보다 더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간편하면서도 실천적인 가례의 생활화를 도모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례편람』이라는 서명에서 알 수 있듯이, 관혼상제의 4례를 쉽게 찾아보고 활용하기 위해 만든 책으로, 이재의 실천 중심적인 예론이 그대로 드러나는 저술이다.

『사례편람』은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지면서 낙론계 학자들이 주로 인용하였다. 이재의 후손들이 교정을 보고 간행하는 과정에서 운석(雲石) 조인영(趙寅永,1782~1850)의 발문이 첨부되었는데, 이것은 낙론계와 19세기 세도 정치 권력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사례편람』은 여러 판본으로 재간행되면서 조선 말기를 지나 일제 강점기에도 널리 활용되었다. 이렇듯 『사례편람』은 조선의 대표적인 의례서이자 조선 의례의 전형으로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온 나라가 양반되기; 조선후기 유교적 평등화 메커니즘」,『사회와역사』63,김상준,한국사회사학회,2006.
저서
『寒洲 李震相과 俯宇 郭鍾錫』, 불함문화사 편, 불함문화사, 2001.
『주자학의 철학적 특성과 그 전개양상에 관한 연구-퇴⋅율사상 형성과 관련하여』, 이동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퇴계와 지눌의 심성론에 관한 연구』, 이시온,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퇴율 성리학의 비교연구-퇴율의 사상 입장을 중심으로 하여』, 채무송,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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