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후기문화실학의 발달과 국학 연구의 확대

홍대용의 과학 사상

실옹(實翁)은 말하기를, ……(중략)…… “천체가 운행하는 것이나 지구가 자전하는 것은 그 세가 동일하니, 분리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소. 다만 9만 리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이처럼 빠르며, 저 별들과 지구와의 거리는 겨우 반 경밖에 되지 않는데도 몇천만억의 별들이 있는지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은하계 밖에도 또 다른 별들이 있지 않소. 우주 공간은 끝이 없으니, 별의 숫자 역시 한정이 없을 것이오. 별들이 우주 한 바퀴 도는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너무나 멀어서 헤아릴 수가 없소. 하루 동안에 운행하는 빠른 속도를 계산해 보면 번갯불이나 탄환으로도 이에는 비하지 못할 것이니, 정교한 역산가(曆算家)도 능히 계산할 수 없고 지극히 말 잘하는 자도 능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오. 천체가 운행한다는 말이 이치에 맞지 않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소. 다시 또 묻겠소. 세상 사람들이 천지를 말할 때 지구가 공중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서 삼광(三光)이 둘러싸여 있다고 보는 것 아니겠소?” 하였다.

허자(虛子)가 대답하기를 “칠정(七政)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절후를 측정해 보면 증거가 있으니, 지구가 우주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의심이 없을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실옹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소.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각기 계(界) 아닌 것이 없소. 성계(星界)로부터 본다면 지구 역시 하나의 별에 불과할 것이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계가 공중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이 지구만이 공교롭게 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이럴 이치가 없소. 이렇기 때문에 계 아닌 것이 없고 자전 않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오. 딴 계에서 보는 것도 역시 지구에서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니, 딴 계에서 각기 저마다 중앙이라 한다면 각 성계가 모두 중계(中界)일 것이오. 또 칠정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지구에서 보면 참으로 맞는 말이오. 만일 지구가 칠정의 한복판에 위치했다고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뭇 별의 한복판에 위치했다고 한다면 이는 우물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는 격이오. 이렇기 때문에 칠정의 체(體)가 수레바퀴처럼 자전함과 동시에 맷돌을 돌리는 나귀처럼 둘러싸고 있소.

지구에서 볼 때 지구에서 가까워 크게 보이는 것을 사람들은 해와 달이라 하고 지구에서 멀어 작게 보이는 것을 사람들은 오성(五星)이라 하지만, 사실은 모두 동일한 성계인 것이오. 대개 오성은 해를 둘러싸고 있어 해를 중심으로 삼고, 해와 달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어 지구를 중심으로 삼으니, 금성과 수성은 해와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지구와 달은 이 포권(包圈)의 밖에 있으며, 삼성(三星)은 해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지구와 달은 포권(包圈)의 안에 들어 있소. 따라서 금성과 수성의 안에 있는 수십 개의 작은 별은 모두 해를 중심으로 삼고, 삼성 주변에 있는 4~5개의 작은 별은 모두 각 위성을 중심으로 삼고 있소. 지구에서 보는 관점이 이러하니, 각계에서 보는 관점도 미루어 알 수 있소.

이렇기 때문에 지구는 해와 달의 중심은 될 수 있지만 오성의 중심은 될 수 없으며, 해는 오성의 중심은 될 수 있지만 중성(衆星)의 중앙은 될 수 없는 것이오. 해도 중심이 될 수 없는데, 하물며 지구이겠소”라고 하였다.

담헌서』내집 권4, 보유, 의산문답

實翁曰, ……(中略)…… 其天運地轉, 其勢一也, 無用分設. 惟九萬里之一周, 颷疾如此, 彼星辰之法也, 纔爲半徑, 猶不知爲幾千萬億, 况星辰之外, 又有星辰. 空界無盡, 星亦無盡. 語其一周, 遠已無量. 一日之間, 想其行疾, 震電炮丸, 擬議不及, 此巧歷之所不能計, 至辯之所不能說. 天運之無理, 不足多辨. 且吾問爾. 世人談天地, 豈不以地界爲空界之正中, 三光之所包歟.

虛子曰, 七政包地, 測候有據, 地之正中, 宜若無疑然.

實翁曰, 不然. 滿天星宿, 無非界也. 自星界觀之, 地界亦星也. 無量之界, 散處空界, 惟此地界, 巧居正中, 無有是理. 是以, 無非界也, 無非轉也. 衆界之觀, 同於地觀, 各自謂中, 各星衆界. 若七政包地, 地測固然. 以地謂七政之中, 則可, 謂之衆星之正中, 則坐井之見也. 是以, 七政之體, 自轉如車輪, 周包如磨驢. 自地界觀之, 近地而人見大者, 謂之日月, 遠地而人見小者, 謂之五星, 其實俱星界也. 盖五緯包日, 而以日爲心, 日月包地, 而以地爲心, 金水近於日, 故地月在包圈之外, 三緯遠於日, 故地月在包圈之內. 金水之內, 數十小星, 並心於日, 三緯之旁四五小星, 並心於各緯. 地觀如是, 各界之觀, 可類而推. 是以, 地爲兩曜之中, 而不得爲五緯之中. 日爲五緯之中, 而不得爲衆星之正中. 日且不得爲正中, 况於地乎.

『湛軒書』內集 卷4, 補遺, 毉山問答

이 사료는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 저술한 『의산문답(醫山問答)』 가운데 지구 구형설, 지구 자전설 등과 관련한 내용이다. 『의산문답』은 의무려산(醫巫閭山)에 숨어 사는 실옹(實翁)과 조선의 학자 허자(虛子) 사이에 대화체로 쓰였다. 그가 북경 방문길에 들른 의무려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홍대용의 호는 홍지(弘之)이나 담헌(湛軒)이라는 당호(堂號)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북학파 실학자로 유명한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는 친분이 아주 깊었다.

그는 연행사(燕行使)의 서장관으로 임명된 작은아버지 홍억(洪檍, 1722~1809)의 수행 군관으로 북경을 방문하였다. 60여 일 동안 북경에 머물면서 두 가지 중요한 경험을 했는데, 하나는 항저우[杭州] 출신의 중국 학자들과 개인적인 교분을 갖게 된 일이며, 다른 하나는 북경에 머물던 서양 선교사들을 찾아가 서양 문물을 구경하고 필담을 나눈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서양 자연과학 지식을 널리 소개했는데, 이러한 자연과학 지식은 실학자들의 중국 중심주의를 깨뜨리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과학에 기반한 홍대용의 사상은 일관된 상대주의 입장으로, 그의 사회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첫째, 그는 중국과 조선 또는 서양까지 상대화하여 어느 쪽이 화(華)이고 어느 쪽이 이(夷)일 수 없다며 중국 중심의 화이론을 부정하였다. 둘째, 인간과 자연은 어느 쪽이 더 우월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과거의 인본적인 사고방식을 부정하고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똑같은 것으로 상대화하였다. 셋째, 그는 당시 사회의 계급과 신분적 차별에 반대하고, 교육의 기회는 균등히 부여되어야 하며, 재능과 학식에 따라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과학 사상과 사회 사상 등은 서양 과학과 도교 사상에도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서양 과학의 근본이 정밀한 수학과 정교한 관측에 근거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주해수용(籌解需用)』이라는 수학서를 썼으며, 혼천의(渾天儀)와 서양식 후종 등 여러 가지 천문 관측기구를 만들어 농수각(籠水閣)이라는 관측소에 보관하기까지 하였다.

홍대용의 사상에는 근대 서양 과학과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 또 근대적 합리주의와 도교의 신비주의 사상, 그리고 지구 중심적 세계관과 우주 무한론 등이 때로는 서로 어울리지 못한 채 섞여 혼란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성에도 그는 조선 시대 가장 뛰어난 과학 사상가였다.

한편 조선 후기 국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 중 하나는 성리학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다. 성리학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학문이었으므로, 여기에 심취한 성리학자들은 우리 문화를 중국 문화의 일부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미 이익(李瀷, 1681~1763)소중화주의를 탈피하기 시작했으며, 홍대용정약용(丁若鏞, 1762~1836)도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조선을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민족의 전통과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우리의 역사⋅강토⋅언어 등을 연구하는 국학이 발달하였던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북학파의 대외인식과 북학사상」,『한국사상사학』12,김인규,한국사상사학회,1999.
「홍대용의 과학사상」,『한국학보』23,박성래,일지사,1981.
「화이관과 문명⋅야만관의 사유 접점과 비판적 성찰」,『유교사상연구』35,이경구,한국유교학회,2009.
편저
『중국의 변강 인식과 갈등』, 안병우 외,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7.
「청국과의 관계」, 최소자, 국사편찬위원회, 1997.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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