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후기문화실학의 발달과 국학 연구의 확대

정약용의 지리 인식

김부식(金富軾)은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 사람이다.【고려(高麗) 의종(毅宗) 때임.】 위로 삼국(三國)의 시초와는 1200여 년의 기간인데【한(漢) 선제(宣帝) 오봉(五鳳) 원년(元年)에 혁거세(赫居世)가 개국(開國)하였다.】 조정(趙鼎)⋅장준(張浚)1)과 같은 사람이 위로 위상(魏相)⋅병길(丙吉)2)의 일을 기록할 때 어떻게 자세히 말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우리나라의 고사(古史)는 황당하고 저속하여 하나도 그것을 근거로 할 수 없다. 삼한(三韓)이 어느 곳에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기타 사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일을 말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중국의 역사를 널리 참고하여, 우리나라에 관계된 모든 것은 빠짐없이 찾아내어 여기저기 것을 종합하고 분류하여, 연도를 고찰해서 차례로 편입시켜야만 비로소 종핵(宗核)의 실효를 거둘 것이다. 다만 동사(東史)만을 근거로 하여 구차하게 책을 만들려고 한다면 사실을 빠뜨리거나 연대를 그르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니,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뜻을 둔 자로서는 마땅히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강역고(疆域考)』는 잘 완비된 책은 아니다. 귀양살이 중에 서적이 전혀 없어서 찾아서 기입할 수 있는 자료는 십칠사(十七史) 중에서 『동이열전(東夷列傳)』 4~5권뿐이고, 그 제왕기(帝王紀)⋅표(表)⋅지(志)와 기타 열전(列傳)은 일체 보지를 못하였으니, 어찌 빠지는 것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 전부를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기(史記)』⋅『한서(漢書)』뿐이며, 『동이열전』을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또한 『후한서(後漢書)』⋅『삼국지(三國志)』⋅『진서(晉書)』⋅『위서(魏書)』⋅『북사(北史)』⋅『수서(隋書)』⋅『신당서(新唐書)』뿐이니, 빠뜨리고 그릇되는 것은 면할 수 없는 형편이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와 『성경지(盛京志)』는 비록 전부를 보았으나 이 두 책에 기록된 우리나라 강역(彊域)에 대한 설명은 복잡하게 뒤엉켰으므로 간추려서 바로잡을 수도 없을 정도인데, 더구나 이를 믿고 근거로 삼을 수야 있겠는가.

『성경속지(盛京續志)』는 일찍이 지리책(地理策)주대(奏對)할 적에 잠깐 한 번 보았을 뿐 지금은 자세히 알 수가 없으나 한 번 조사하여 빠뜨린 것을 보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열수(洌水) 이북에서 압록강 이남은 한(漢) 무제(武帝) 이후로 늘 한나라 땅이었는데, 광무제(光武帝) 때부터 살수(薩水) 이북은 고구려에 소속시키고【지금의 안주(安州). 청천강 이북임.】 이남은 한나라에 소속시켰는데, 그 후에 패수(浿水) 이북까지 모두 고구려에 편입되었다.【지금의 대동강 이북임.】 그러나 패수 이남과 한수 이북은 끝내 한나라 관리 관할 하에 들어갔고 위(魏)⋅진(晉)을 지나 북위(北魏) 때까지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동사(東史)를 엮는 자는 패수 이남과 열수 이북의 지역에 대해서는 별도로 한리표(漢吏表)를 만들고, 아울러 그 사실을 기록하여 그 자취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동사에는 모두 이러한 사실이 빠졌으니, 이것은 불완전한 사례 가운데 큰 것이다.

열수는 지금 서울에 있는 강이다. 이 열수 이북은 본래 한나라 땅에 속하였고 이남은 삼한(三韓)으로서, 이 강물은 곧 삼한과 한나라의 경계선이었다. 그러므로 삼한 사람들은 이 열수를 가리켜 ‘한강(漢江)’이라고 한다.

백두산의 원줄기는 몽고 땅에서부터 남으로 1000여 리를 달려와 백두산이 되었고, 그 큰 줄기의 동쪽 지역에 별도로 한 국면을 이루어 다른 지역과 섞이지 않은 곳이 있는데, 우(虞)⋅하(夏)⋅은(殷)⋅주(周) 때는 이를 ‘숙신(肅愼)’이라 하였고, 한나라 때는 ‘읍루(邑婁)’, 당(唐)나라 때는 ‘말갈(靺鞨)’【물길(勿吉)이라고도 하는데, 『위서(魏書)』에 보임.】 송나라 때는 ‘여진(女眞)’, 지금에 와서는 ‘오랄영고탑(烏喇寧古塔)’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이미 한 선제 때부터 엄연히 말갈이란 이름이 나오니, 이는 매우 황당한 것이다. 비유하면 북적(北狄)인 경우 삼대(三代 ) 때는 ‘훈육(葷粥)’, 한나라 때는 ‘흉노(匈奴)’, 당나라 때는 ‘돌궐(突厥)’, 송나라 때는 ‘몽고’라고 하여 종류는 같지만 명칭은 동일하기가 어려운데, 한나라 역사를 엮으면서 돌궐이 침입하였다고 쓴다면 껄껄 웃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김부식 사기(史記)의 크게 잘못된 점으로서 덮어 둘 수 없는 일이다.

마한(馬韓)은 열수 이남의 땅으로 지금의 경기⋅호서⋅호남 지역이고, 진한(辰韓)은 지금의 경상좌도 지역이고, 변한(弁韓)은 지금의 경상우도 지역인데, 최치원(崔致遠) 이하 삼한의 강계를 논한 것은 한결같이 잘못된 점이 많다.

여유당전서』제1집 제14권 문집, 서, 제강역고권단

1)조정(趙鼎)⋅장준(張浚) : 모두 남송 고종 때 사람으로, 금(金)나라의 침입을 막아 공을 세웠으며, 진회(秦檜)가 주장하던 금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다가 모두 유배되었음. 『송사(宋史)』권360~361
2)위상(魏相)⋅병길(丙吉) : 모두 한나라 선제 때의 재상으로 두 사람이 합심하여 정사(政事)를 도와 치적을 많이 남겼음. 『전한서(前漢書)』권74

金富軾者, 南宋高宗時人也.【高麗毅宗時.】 上距三國之始一千二百餘年.【漢宣帝五鳳元年, 赫居世開國.】 如趙鼎,張浚, 上修魏相丙吉時事, 其能詳言之乎. 況東國古史荒誕鄙俚, 一無可據者乎. 不知三韓在何地, 他尙何說.

欲言東事者, 必博考中國之史, 凡屬於東方者, 搜括不遺, 參伍會通, 按年編入, 然後方有綜核之實. 但據東史, 苟欲成篇, 未有不缺漏事實, 詿舛年代者, 此留意東事者, 所宜先知也.

疆域考, 非大備之書. 謫中絶無書籍, 其所得而採入者, 不過十七史中東夷列傳四五卷而已, 其帝紀表志及他列傳, 槪未之見, 何得無缺漏乎. 其全部考檢者, 惟史記漢書而已, 其考東夷列傳者, 亦止於後漢書三國志晉書魏書北史隋書新唐書而已, 缺漏訛舛, 所不免也.

大明一統志盛京志, 雖見全部, 此二書所記東方疆域之說, 䮞駁紕繆, 不勝刊正, 況可以憑據乎.

盛京續志, 曾於地理策仰對時, 瞥一得見, 今不可詳, 要之不可不一番搜括, 以補缺漏.

洌水以北鴨水以南, 自漢武帝以來, 常爲漢地, 始自光武時, 薩水以北屬句麗,【今安州淸川江以北】以南屬漢, 其後浿水以北皆入句麗.【今大同江以北】然浿南漢北, 終爲漢吏所統轄, 歷曹魏馬晉, 降及元魏之世, 莫不皆然. 則修東史者, 不得不以浿南洌北之地, 別立漢吏表, 竝記事實, 以考其跡. 凡所謂東史, 皆缺此事, 此缺典之大者也.

洌水者, 今之京江也. 此水以北, 本係漢地, 此水以南, 乃爲三韓, 此水卽蕃漢割界之限也. 故三韓之人, 指此水曰漢江.

白頭山來龍自蒙古地, 南馳千餘里爲白頭山, 此大幹龍以東之地, 別爲一局, 不與他混, 在虞夏殷周, 謂之肅愼, 在漢曰挹婁, 在唐曰靺鞨,【亦謂之勿吉, 見魏書.】 在宋曰女眞, 在今曰烏喇寧古塔. 乃金富軾三國史, 已自漢宣之時, 儼有靺鞨之名, 此荒唐之甚者也. 譬如北狄, 在三代曰葷粥, 在漢曰匈奴, 在唐曰突厥, 在宋曰蒙古, 種類雖同, 名稱難通, 修漢史者書突厥入寇, 未有不胡盧大笑者也. 此軾史之大誤處, 不可掩也.

馬韓者, 洌水以南, 今京畿兩湖之地也, 辰韓者, 今慶尙左道之地也, 弁辰者, 今慶尙右道之地也, 崔致遠以下, 論三韓疆界, 一往多誤.

『與猶堂全書』第1集 第14卷 文集, 題, 題疆域考卷耑

이 사료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된 「제강역고권단(題疆域考卷耑)」으로, ‘강역고의 책 첫머리[卷耑]에 붙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이 쓴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의 내용에 대한 자서(自序)라 할 수 있다.

『아방강역고』는 정약용이 49세이던 1811년(순조 11년) 10권으로 저술되었고, 72세 되던 해에(1833년) 2권이 보충되어 총 12권의 책으로 나왔으나, 때마다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의 발문을 쓰지는 않았다. 유배 생활을 할 때는 자신의 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여겼고, 2권을 후술하고는 오래전에 쓴 책이라 발문을 쓸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후 「제강역고권단」을 통해 자신의 책이 유배 생활 중에 저술하느라 참고 서적이 부족하였다고 토로하면서, 『아방강역고』에 대한 해설을 붙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은 이 사료에서 고구려를 이은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강역이 한반도에 국한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였다. 그는 『아방강역고』를 통해 우리의 강역이 왜 한반도 안에 고착되어 더 이상 밖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였나를 역사지리학적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지리학, 특히 역사지리학에 대한 관심은 의식의 확대에 따른 우리의 민족의식이 성장한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역사지리학의 효시로 17세기 초 한백겸(韓百謙, 1552~1615)이 저술한 『동국지리지』를 들 수 있다. 한백겸은 그의 책에서 우리나라 고대사 체계를 한강을 경계로 하여 그 남쪽과 북쪽의 이원적 체계로 보았으며, 유교적 명분이 아니라 지리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체계화하려고 노력하였다. 아울러 한백겸은 중국 측 역사서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론을 고증하는 데 힘썼다.

정약용은 바로 이러한 한백겸의 역사지리학을 계승하여 『아방강역고』를 저술하고 고조선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에 비정하는 ‘반도중심론’을 전개하면서, 우리 고대사를 한강을 경계로 하는 남과 북의 이원 체계로 보았다. 그는 일찍이 지리 고증을 열심히 한 『동국지리지』의 저자 한백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존중하였고, 자신도 고증적 방법을 통해 그간 견해 차이가 있어 온 옛 영토 범위와 위치 등 과거의 지리에 대한 역사적 고증에 심취하였다. 여기에서 정약용의 ‘반도 중심론’은 그의 영토 의식을 보여 주며, 한반도 내에 영토를 국한하려는 것은 북벌론 등의 허구적 명분론을 비판하려는 내치적 개혁론과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정약용의 ‘반도 중심론’은 삼한의 영역을 한강 이남으로 하였던 기호 남인의 정치적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17세기 후반 이래 소론계를 중심으로 우리 고대사의 영역을 점차 북방으로 확장해 보려는 것과 아울러 신라가 아닌 고구려 중심의 고대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였다.

『아방강역고』에서 정약용은 기자조선(箕子朝鮮)에서 발해에 이르는 우리나라 강역의 역사를 중국 및 우리나라 문헌을 들어서 고증하고, 자신의 의견을 별도로 첨부하여 그 내력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마한⋅진한⋅변한 등 삼한에 관한 내용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은 한사군(漢四郡)⋅발해⋅북로서북로 등 북방에 대한 강계를 밝히는 데 힘쓰고 있으며, 부족이나 국가 외에도 위치의 비정(比定) 문제가 많은 국내환도위례⋅패수 등에 대하여 상세한 고증을 하고 있다. 또한, 강역의 고증에 그치지 않고 잘못 기록된 지리서의 정정에도 힘쓰고 있다. 즉 『동국여지승람』에 기자의 정전(井田)이 평양부 남외성(南外城) 안에 있다고 기록한 것은 믿을 수 없으며, 기자가 정전제를 시행하였으면 어찌 평양 일부에만 한정되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그리고 당나라의 이적(李勣)이 이곳에 유둔(留屯)할 때에 만든 둔전(屯田)의 유지(遺址)라고 주장하였다. 정약용의 이러한 기록들은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의 『택리지(擇里志)』와 같이 실학자가 저술한 우리나라 역사지리서로서 사료를 비판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서술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조선 후기 역사지리 인식의 흐름은 역사지리학파 여부 및 당색 여하를 불문하고 우리 고대사를 남과 북의 이원적 체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만 여기에 남과 북의 경계를 한강으로 하는가 혹은 보다 북쪽에 두는가, 북쪽의 영역에 만주가 포함되는가 혹은 한반도에만 국한하는가의 차이가 있었는데, 대체로 서인 소론계가 우리 영토를 보다 북방으로 확장해 보려는 견해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입장이건 이러한 이원적 체계로 보려는 시도는 명분론적 역사의식을 벗어나는 데 크게 기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선후기 실학자의 서학의식」,『한국학보』 3,이원순,일지사,1976.
「다산 정약용의 지리론 연구」,『지리학논총』 14,임덕순,서울대 지리학과,1987.
「조선후기 지리학 발달의 배경과 연구전통」,『문화역사지리』4,최영준,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1992.
저서
『조선후기 역사지리학 연구』, 박인호, 이회, 1996.
『조선후기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배우성, 일지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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