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후기문화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서당의 보급과 확산

◦겸성균관 좨주(兼成均館祭酒) 송준길(宋浚吉)이 차자를 올려 말하길,

“지난번 예조의 계사(啓辭)에 따라 신으로 하여금 사학(四學)의 규정을 자세히 헤아려 살펴보고 정하라고 분부하신 일에 대해서는, 이것이 비록 대폭 변혁하는 일은 아니더라도 또한 신이 감히 마음대로 처리할 일이 아닙니다. 그때 곧바로 소장을 올려 지관사(知館事)와 대사성(大司成) 및 예조(禮曹)와 함께 회의하여 전하께 아뢰기를 요청했는데, 조정에 사고가 잇따라 일어나고 지관사도 또한 공무를 집행하지 못하다가 끝내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어 미루어 오다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곧이어 새로운 지관사의 임명은 기약할 수 있겠지만 그의 공무 집행을 기다리는 것도 역시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신도 일이 생겨 이미 전하의 명을 받았어도 오래도록 받들어 이행하지 못한다면 실로 매우 황송하게 될 것입니다. 예조판서 홍명하(洪命夏)와 동지관사 조형(趙珩), 대사성 이정기(李廷夔) 등과 함께 의견을 교환하고 외방의 여러 의논들을 아울러 채택하여 몇 가지 조목을 정해 뒷부분에 기록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더 참작하여 시행하는 데 달렸을 뿐입니다”

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략)……

◦ 지난해 조정의 분부에 따라 지방 향촌이 각기 서당을 세우고 훈장을 두어 가르치니 그 효과가 없지 않았는데, 근래에 다시 없어지고 사라지게 되니 진실로 한스럽다. 그러므로 지금 마땅히 전날의 사목에 따라 타일러 경계하고 시행하되, 그 훈장을 고을로 하여금 공론에 따라 뽑아 임명하고 관청에 고하기를 태학의 장의(掌議)의 예와 같이 하고 각 마을에 나눠 정해서 취학에 편리하게 한다. 관가에서도 편리에 따라 충분히 지원해 주고 수령은 공무 여가에 때때로 직접 찾아가 살피고 그 학도들을 고강한다. 또 감사 및 도사(都事), 교양관(敎養官)도 순행하는 때에 친히 방문하거나 향교서원에 학도들을 모이게 하여 고강하거나 제술을 시험하고, 만일 실제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자는 『대전』에 의해 그 스승에게는 호역(戶役)을 덜어 주고 학도에게는 헤아려 상을 베풀고, 그 성적이 미달하는 자는 회초리로 때려 경계한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자에 대해서는 자세히 참고하여 계문하되, 해당 스승은 승급하여 동몽교관으로 삼거나 딴 직위에 제수해서 장려하는 도리를 보여야 한다.

예조가 이에 의거하여 시행하기를 청하였다. 임금께서 이를 따랐다.

효종실록』권21, 10년 2월 16일(정축)

◦兼成均館祭酒宋浚吉上箚曰, 頃日, 因禮曹啓辭, 四學規制, 令臣看詳勘定者, 此雖非大段變革之擧, 而亦非臣所敢獨擅. 其時卽陳章疏, 請與知館事大司成及禮曹會議啓稟, 而緣朝家事故相仍, 知館事又不行公, 終至辭遞, 以致遷筵至今. 卽者新知館差出, 雖有期, 而待其行公, 則想又未易. 日後, 臣亦有故, 旣承成命, 而久不奉行, 實甚惶悚. 玆典禮曹判書洪命夏⋅同知館事趙珩⋅大司成李廷夔通議, 兼採外間諸論, 定爲數條, 開錄于後, 唯在聖明更加參量而施行之矣. ……(中略)……

◦頃年因朝家分付, 外方鄕村, 各建書堂, 各定訓長, 不無其效, 而近來還爲廢壞, 良可歎也. 今宜遵承前日事目, 申飭修擧, 而其訓長, 令其一鄕, 從公論擇差告官, 一如太學掌議之例, 而分定於各村, 以便就學. 官家十分隨便顧助, 守令公餘, 時時親自往審, 考講其學徒, 監司及都事敎養官, 亦於巡行時, 或親歷, 或使聚會於鄕校書院, 考講或製述, 如有實效表著者, 依大典, 其師長量減戶役, 其學徒量施賞格, 其不能者施楚撻以警之. 其中最表著者, 則參詳啓聞, 其師長陞爲童蒙敎官, 或除他職, 以示勸奬之道. 請依此行之. 從之.

『孝宗實錄』卷21, 10年 2月 16日(丁丑)

이 사료는 1659년(효종 10년) 성균관 좨주(祭主)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이 서당을 세울 것을 건의하면서, 서당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감독할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당은 사설 초등 교육기관으로 글방⋅서재⋅사숙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백성들에 대한 문자 교육뿐 아니라 향촌의 도덕적 향풍(鄕風)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비록 사설 교육기관이기는 했지만 유교적 교화의 근원으로서 교육적, 문화적 의의와 비중이 막중하였다. 이에 서당의 기능을 현실적으로 인정하여 관학 체계로 포섭하면서 교육의 내용을 통제하려는 국가와 지배층의 노력이 이뤄지는데, 송준길의 「향학지규(鄕學之規)」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학규(學規)에서 서당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는 것은 1659년 송준길에게 명하여 ‘서당 학규’를 제정하면서부터이다. 「향학지규」는 「향학사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서당 장려안으로, 조선 정부 또한 서당 설립에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알려 준다. 한편 당시 전국 각지에서 서당 교육이 확산되고 있었음도 알 수 있다.

「향학사목」은 지방 향촌에서 각각 서당을 세우고 훈장을 정하여 유교 교육을 적극 실행할 것과, 지방 수령이 서당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감독하여 성취 정도에 따라 우수한 경우 훈장에게는 조세를 면제해 주고 학생에게는 상을 주며, 특히 능력이 우수할 경우 동몽교관이나 다른 관직을 제수하는 등 서당 교육을 적극 권장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서당 교육의 권장 배경에는 서당이 교육과 교화 기구로서 유교 교화의 중심 기구로 인정받은 결과였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교육을 확대한 서당은 유교 의례의 확산에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서당 설립은 기본 재산이나 인가를 요하는 것이 아니므로, 누구든지 뜻이 있는 사람이면 훈장 한 사람과 방 한 칸으로 설립할 수 있었다. 서당 설립 유형은 훈장 자신이 자기의 생계 혹은 교육 취미로 서당을 설립하는 훈장 자영 서당(訓長自營書堂), 마을에 가세가 넉넉한 이가 자기 집의 자제 및 그 친척을 교육하기 위하여 훈장의 급여를 단독으로 부담하고 세운 서당이나 때로는 이웃의 자제들에게도 무료로 가르쳐 주던 유지 독영 서당(有志獨營書堂), 몇몇 개인이 계를 형성하여 훈장을 초빙하고 계원의 자제를 교육하는 유지 학계 서당(有志學契書堂), 동네 전체가 계를 형성하여 훈장을 두고 교육하는 서당인 동리 학계 서당(洞里學契書堂) 등이 있었다.

서당의 설립 목적은 인륜을 밝히며, 향촌 사회에서 상하 분별과 예법 및 초보적 유학의 전파에 있었다. 그러므로 서당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등 교육기관인 사학(四學)향교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 교육기관이었으나, 실제로는 지방의 청소년들에게 한문의 독해력을 키우고, 유교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과 예법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는 역할을 하였다.

서당은 주로 훈장(訓長)⋅접장(接長)⋅학도(學徒)로 구성되는데, 훈장의 학식 표준은 일정하지 않았다. 강독에서는 경사(經史)와 백가(百家)에 능통한 자가 드물었으니, 대체로 지식수준이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접장은 학도 중에 나이가 있고 학력이 우수하며 품행이 독실한 자를 골라 접(接)의 장으로 하고, 그로 하여금 훈장을 대리하여 주로 초보자인 어린 학도를 가르치게 하였다. 따라서 접장은 학도를 대표하는 한편 훈장을 보조하여 학습을 지도하기도 하였으나, 학습 평가는 오로지 훈장이 할 수 있었다. 학도는 보통 7~8세부터 15~16세의 아동이 중심이었으나 나이의 상한선도 하한선도 없었다.

서당 교육은 강습(講習), 제술(製述), 습자(習字)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강독은 처음에 『천자문(千字文)』으로 시작하여 『동몽선습(童蒙先習)』, 『사자소학(四字小學)』, 『소학』, 사서삼경 등으로 그 수준을 높여 갔다. 그러나 이것은 원칙적인 내용일 뿐 반드시 지켜야 할 교육 내용은 아니었다.

교육 방법의 경우, 강독은 매일 자기 능력에 맞게 범위를 정해 놓고 배우고 반복 학습하였다. 오늘날 학교 교실에서처럼 일률적으로 학습이 진행되지 않고, 학습자의 개인차와 그 능력에 맞게 주로 개인적인 지도 방법으로 진행됐는데, 따라서 똑같은 날 서당에 입학했어도 개인 능력에 따라 교육 내용도 다르고 진도도 달랐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선후기 서당의 사회적 성격」,『역사와현실』16,김무진,한국역사연구회,1995.
「조선후기 향촌사회의 변동과 서당: 서당의 기능확대를 중심으로」,,김영숙,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95.
「조선후기 서당교육의 양면성」,『교육사학연구』4,우용제,서울대학교 교육사학회,1992.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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