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후기문화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판소리의 유행

못가의 정자, 소리꾼 우가의 창을 듣고 지은 부(賦)

우가의 창은 지금에 제일이라.

곡조를 능란하게 다루어 극에 이바지하는 것이 자못 뛰어났네.

속삭이는 소리가 아름다워 규방의 부인이 화를 내고

반항의 소리가 곧바로 위를 향해 푸른 하늘을 능멸하네.

곱기는 떨어지는 꽃 같아 봄바람에 흐르는 것 같고

급하기가 장군이 쏟아지는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나가는 것 같네.

혀뿌리는 목구멍에 있는데 목구멍에는 신이함이 있어

곡을 자유자재로 부르는데 신묘함은 적수가 없네.

못가의 정자는 숲의 날이 어두워져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번잡한 마음이 씻겨서 수레를 탄 나그네 같네.

작은 북에 빗방울 떨어지니 고요함이 거두어지고

외로운 구름이 흘러가니 청산이 가로막네.

취한 몸 가누며 계단을 내려오면서 거듭 고개를 돌려 보니

오히려 여음이 사방의 벽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풍고집』권2, 시, 지정. 청우령배곡희부

禹家唱曲今第一. 謔浪排調供科白. 細語娓娓閨婦嗔. 抗聲直上凌空碧. 麗如落花流春風. 急似將軍冒矢石. 舌根有喉喉有神. 翻腔度曲妙無敵. 池閣不知林日昏. 煩襟滌與乘軒客. 雨點腰鼓寂然收. 孤雲冉冉靑山隔. 下階扶醉重回首. 尙疑餘音繞四壁.

『楓皐集』卷2, 詩, 池亭. 聽禹伶俳曲戲賦

이 사료는 순조(純祖, 재위 1800~1834)의 왕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아버지로서 세도 정치기 실권을 장악했던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문집인 『풍고집(楓皐集)』에 수록된 「지정청우령배곡희부(池亭聽禹伶俳曲戲賦)」이다. 김조순은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는데, 그의 문집인 『풍고집』에서 3분의 1 정도를 시가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문학과 예술 방면에 남다른 취향과 소질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정청우령배곡희부」는 권2에 실린 시로, 당시 판소리 소리꾼 중 우가(禹家)가 소리하는 장면과 이를 듣고 가시지 않는 여흥을 묘사하고 있다.

조선 시대 판소리 창자들은 전승되는 이야기를 근간으로 삼으면서도 특히 흥미로운 부분을 확장⋅부연하여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판소리는 이야기 전체의 흥미나 감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고, 나름의 독특한 서사적 구성 원리, 즉 창과 아니리, 비장과 골계를 엇섞어 배치하여 청중을 작중 현실에 몰입시켰다가 해방하는 방식으로 청중을 자유자재로 울리고 웃겼다. 바로 정서적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 것으로, 이에 몰입된 양상을 김조순의 「지정청우령배곡희부」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서민 경제 발달과 문화적 수준의 향상이 두드러지면서 이를 반영한 민간 음악이 크게 성장하였다. 민간 음악은 풍류방의 민간 풍류와 일반 예능인에 의한 민속악으로 구분되는데, 민간 풍류는 주로 부유한 중인층과 아전들에 의해서 발전되었고, 판소리 같은 민속악은 광대들에 의해서 주도되어 조선 후기의 음악사적 대세를 형성하였다. 판소리 애호가이자 후원자 가운데 중인 계층의 대표적인 인물로 신재효(申在孝, 1812~1884)를 들 수 있는데, 그는 구전되는 판소리 여섯 마당을 기록으로 남기는 한편 판소리 이론을 세우기도 하였다.

판소리는 17세기 말엽 혹은 18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초기에는 내용과 표현이 모두 소박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세속화된 직업적 연희로 성공하기 위해서 창자(唱者)들은 다채로운 이야기와 풍부한 내용 및 음악적 탁월성을 갖추려고 애썼으며, 그 결과 18세기 중엽의 판소리는 매우 높은 수준의 창악으로 발전하였다.

판소리 창자들은 창을 엮어 낼 때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민간에서 전래되어 오던 설화를 윤색⋅개작하는 방향을 택하였다. 그리고 이것들은 창자들의 교류와 사사를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면서 부분적으로 개작되거나 확장되기도 하고, 세련미를 갖추게 되면서 더욱 다양한 내용과 음악적 표현을 축적하였다. 그 결과로 이루어진 판소리 레퍼토리가 열두 마당에 이르렀음을 19세기 초의 문헌인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열두 마당 중에서 현재까지 창으로 전해지는 「춘향가」⋅「흥보가」⋅「심청가」⋅「수궁가」(「토끼타령」 또는 「토별가」)⋅「적벽가」를 전승 오가(五歌)라고 한다. 실전된 일곱 마당 가운데 「배비장타령」⋅「가루지기타령」⋅「옹고집전」⋅「장끼전」⋅「무숙이타령」(「왈짜타령」)은 축약본이 남아 있으나, 「강릉매화타령」⋅「가짜신선타령」은 존재 사실과 내용을 알려 주는 단편적인 문헌 기록만 전한다.

판소리는 18세기 말 이후 양반과 부호층을 청중으로 획득하면서 그들의 기호를 의식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판소리 열두 마당 중 현재 전승되지 않는 일곱 마당이 평민적 해학과 풍자에 철저하였던 데 비하여 전승되는 오가에는 평민적 현실주의 외에도 중세적 가치 의식이 나타나는 점이 이를 설명해 준다. 하지만 그 창자들이 당시의 신분 질서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속하는 부류였으며, 18세기 말까지는 평민층 청중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으므로 판소리에서 평민적 세계관과 미의식은 당연히 주류를 이룬다. 그리하여 중세적 관념과 가치는 대체로 희극적 조롱의 대상이었으며, 평민들의 삶 속에서 체득된 현실주의가 판소리의 주된 요지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한글편지를 통해 본 조선후기 과거제 운용의 한 단면-‘진성이씨 이동표가 언간’을 중심으로-」,『정신문화연구』124,전경목,한국학중앙연구원,2011.
「조선후기 동아시아 어문교류의 한 단면-동경대 소장 한글 번역옥교리를 중심으로-」,『한국문화』27,정병설,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2001.
저서
『한국근현대사회사상사탐구』, 노용필, 한국사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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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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