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후기문화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가사 문학의 발달

봄잠을 늦게 깨여 대나무 창을 반쯤 여니

뜰의 꽃은 활짝 피어 있고 가던 나비는 꽃 위를 머무는 듯

강기슭의 버들은 우거져서 성긴 안개를 띠었구나.

창 앞에 덜 익은 술을 두세 잔 먹은 후에

호탕한 미친 흥을 부질없이 자아내어

백마 타고 금 채찍 들고 기생집을 찾아가니

꽃향기는 옷에 배고 달빛은 뜰에 가득한데

광객인 듯 취객인 듯 흥에 겨워 머무는 듯

이리저리 거닐다면서 기웃거리다가 풍치 있게 섰노라니

비취빛 기와 붉은 난간 높은 집에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비단으로 가린 창을 반쯤 열고 고운 얼굴을 잠깐 들어

웃는 듯 찡그리는 듯 요염한 자태로 머무는 듯하구나.

은근한 눈빛을 하고 녹기금(綠綺琴)1)을 비스듬히 안고

맑고 청아한 노래 한곡으로 봄 흥취를 자아내니

운우(雲雨) 양대상(陽臺上)에 초몽(楚夢)2)이 다정하다.

……(하략)……

「춘면곡」

1)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쓰던 거문고를 말한다. 사마상여는 녹기금으로 「봉구황곡(鳳求凰曲)」을 타서 그 때 마침 과부가 되어 있던, 탁왕손(卓王孫)의 딸 탁문군(卓文君)을 꾀어내었다.
2)초나라 양왕(襄王)이 꿈속에서 선녀를 만났다는 전설을 인용한 구절이다. 운우(雲雨)는 ‘남녀의 정’을 뜻하고 양대(陽臺)는 중국 사천성에 있는 산이다. 양대 위에서 선녀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던 초나라 왕의 꿈이 다정하다는 것으로 남녀 간의 사랑 행위를 비유하고 있다.

春眠을 느즛야 竹窓을 半開니

庭花는 灼灼 가난나븨 머므는듯

岸柳 依依야 셩긔를 워셰라

窓前의 덜고인 슐을 二三盃 먹은 後의

浩蕩 밋친 興을 부졀업시 아여

白馬金鞭으로 冶遊園 가니

花香은 襲衣고 月色은 滿庭

狂客인 듯 醉客인 듯 興을 겨워 머무듯

徘徊 顧眄야 有情이 셧노라니

翠瓦朱欄 놉흔 집의 綠衣紅裳 一美人이

紗窓을 半開고 玉顔을 잠간들러

웃 듯 반기 듯 嬌態여 머므듯

(秋波랄 暗注고 綠綺琴 빗기안고)

淸歌 一曲으로 春興을 아니

(雲雨 陽臺上에 楚夢이 多情다)

……(下略)……

「春眠曲」

이 사료는 중종(中宗, 1488~1544)선조(宣祖, 재위 1567~1608) 연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는 「춘면곡(春眠曲)」의 일부로 『청구영언(靑丘永言)』,『가곡원류(歌曲源流)』 등에 실려 전하는 12 가사 중 하나이다.

학계에 알려진 「춘면곡」은 그 이본(異本)이 다양하다. 이를 전하는 문헌 몇 가지를 들어 보면, 김천택(金天澤)이 엮은 『청구영언』, 편자 미상의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珉英)이 함께 엮은 『가곡원류』 등에 실려 있는 것과, 이 밖에 정양사에서 발행한 『교주가곡집(校註歌曲集)』의 가사, 그리고 한국가사문학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두루마리 본 등 여러 가지다.

이 노래가 이처럼 여러 가집과 고문헌에 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어 온 유명한 가사임을 말한다. 각 이본에서 작품의 행수(行數)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 그 장단이 각기 다르며 노래 사설의 표기 역시 『청구영언』과 『가곡원류』 등의 가사는 국한문(國漢文) 혼용체임에 비해 두루마리 본은 순 한글체이고, 『교주가곡집』에는 한자어에 독음을 표기한 국한문 병기체로 각각 다르다.

작품의 내용은 봄잠에서 깬 어느 사나이가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의 한 미인을 만나 남녀의 정을 나누다가 조물주의 시샘으로 이별을 하고, 헤어짐의 애달픔 속에서 이는 여러 가지 소회와 정서를 노래한 대표적 염정 가사(艶情歌辭)이다. 염정 가사란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가사를 말한다.

조선 전기 가사의 주된 창작자는 송순(宋純,1493~1583)⋅정철(鄭澈,1536~1593)⋅박인로(朴仁老,1561~1642) 등으로 대표되는 양반 사대부 계층이었다. 이들은 혼탁한 세상의 고단함과 갈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연에 묻혀 심성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유학자의 모습들을 표현하면서 자연과 자아의 조화로운 합일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가사는 김인겸(金仁謙, 1707~1772)⋅정학유(丁學游, 1786~1855) 등과 평민 및 부녀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시기 가사 창작에 평민부녀자 층이 등장한 것은 시조에서 작자층이 확대되었던 것과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음풍농월하던 서정 중심에서 벗어나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하고 서사적이며 교훈적인 내용이 가미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으며, 형식적으로도 장형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선후기 악부의 시가관」,『한국문화』12,김대행,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1991.
「조선후기 시가에 나타난 서민적 미의식」,『한국인의 생활의식과 민중예술』,김학성,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1983.
저서
『조선후기 가사의 동향과 모색』, 서영숙, 역락, 2003.
『가사보』, 이주환, 국립국악원, 1966.

관련 사이트

담양군 한국가사문학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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