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흥선대원군의 통치

서원 철폐

8도의 선비들이 서원을 건립하여 명현을 제사하고 ……(중략)…… 무리를 모아 교육시키는데 그 폐단이 백성의 생활에 미쳤다. 대원군은 만동묘를 철폐하고 폐단이 큰 서원을 각도에 명하여 철폐하도록 하였다. 선비들 수만 명이 대궐 앞에 모여 만동묘와 서원을 다시 설립할 것을 청하니, 대원군이 크게 노하여 한성부의 조례(皂隷)와 병졸로 하여금 한강 밖으로 몰아내게 하고 드디어 1000여 개소의 서원을 철폐하고 그 토지를 몰수하여 관에 속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선비들의 기운이 크게 막혔다.

대한계년사』권1, 고종 3년 병인

先是八道士人, 建書院, 祠名賢 ……(中略)…… 聚徒而敎育之, 其末由之弊, 頗有侵凌小民之端. 大院君旣毁萬東廟, 又惡書院之貽弊, 下令各道毁撤之. 士人數萬人, 叩闕請復設萬東廟及書院, 大院君大怒, 令法司皀隷及兵卒驅逐之于江外, 遂毁書院一千餘所, 收其田結屬公. 由是士氣大沮.

『大韓季年史』卷1, 高宗 3年 丙寅

이 사료는 정교(鄭喬, 1856~1925)의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에 등장하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서원 철폐와 관련한 내용이다. 『대한계년사』는 정교가 저술한 편년체 사서로 1864년(고종 1년)부터 1910년 국권 상실 때까지의 시대사로 9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정교는 1895년(고종 32년) 수원 판관과 장연 군수를 역임하고, 이후 독립 협회에 가입하여 서기로 활동한 인물이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祭享)을 위해 설립되기 시작했으며, 사림이 정권을 장악하는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대 이후 붕당정치의 기반 역할을 하였다.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대 이후 급격하게 증설되면서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제향 자격에 의심이 가는 인물이 봉사(奉祀)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사우(祠宇)와의 혼동이 초래되었다. 이로 인해 서원의 질적 저하와 함께 사회적 폐단도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유지 비용을 지방관에게 각출하기도 하고, 양정(良丁)을 불법적으로 피역시켰으며, 교화를 구실로 농민 착취 기구로 전락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집권 후 서원의 대대적 철폐를 시작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왕권의 권위를 높이고 민폐를 줄이는 한편 국가재정에 도움이 되는 서원 철폐 작업에 착수하였다. 첫 번째 단계로 1864년(고종 1년)첩설(疊設)사설(私設) 서원을 조사하여 폐지하고, 불법적 경제 기반을 조사하여 국가 환수의 명령을 내렸다. 다음 해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창건하고 유림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동묘(萬東廟)까지 철폐하라고 명령을 내림으로써 서원 철폐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결국 1871년(고종 8년) ‘1인(人) 1원(院)’ 이외의 서원을 모두 철폐하여 전국에 47개의 서원만 남게 되었다.

서원 철폐 정책의 본질은 지방의 서원을 중심으로 한 향촌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수령-서리로 이어지는 조선 왕조의 관권을 확립하여 서원으로 대표되는 사적 권력을 배제하고 향촌 사회의 운영권을 장악하고자 한 것이다. 서원 철폐에 따라 사원에 소속됐던 토지와 노비향교⋅지방관아 등에 귀속시켰고, 건물의 재목은 건축자재로 재활용하였다. 대원군이 하야한 1873년(고종 10년) 이후 유림들의 복설 요청이 계속되었으나 1875년(고종 12년) 만동묘 복설 이 외에는 모두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에 의해 단호히 거부되었다.

서원 철폐 시기는 경복궁 중건 사업과 병인양요(丙寅洋擾) 등 외세의 침입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원 철폐경복궁 중건에 대한 유림의 조직적 반대를 제어하기 위한 조처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경복궁 중건, 병인양요 등으로 인한 국가재정의 궁핍을 보완하기 위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흥선대원군」,『한국사시민강좌』13,유영익,일조각,1993.
「고종대의 서원 철폐와 양반 유림의 대응」,『한국근현대사연구』10,윤희면,한국근현대사연구회,1999.
「흥선대원군의 정치개혁」,『한국사학』16,이현희,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6.
「19세기 후반 영남유림의 정치적 동향-만인소를 중심으로-」,『지역과 역사』4,정진영,부산경남역사연구소,1997.
저서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편저
「대원군의 내정 개혁」, 성대경, 국사편찬위원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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