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개항과 불평등 조약

조⋅일 통상 장정

……(전략)……

제31관 조선 정부에서는 앞으로 각 통상 항구의 구내를 수축하고, 등탑(燈塔)과 부표(浮標)를 건설해야 하며, 통상 항구에 오는 일본 상선은 톤세(船鈔)로 톤당 225문을 납부하여 그 유지비로 충당해야 한다【단, 몇 석(石)을 실은 선박인가 하는 것은 일본의 6석 5말 5되를 1톤으로 환산한다】. 톤세를 바쳤을 때에는 즉시 해관에서 전조(專照)를 발급하여 4개월을 한도로 하여 그 기간 내에는 마음대로 조선의 각 통상 항구에 가더라도 다시 톤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또 입항한 상선이 하선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할 때에는 이틀 안에 출항하는 경우 톤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비바람을 만나거나 안개가 몹시 끼어 출항할 수 없을 경우에 공동으로 협의하여 그 사유를 해관에 보고해야 한다. 단, 어선은 톤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 상선이 많이 올 때에는 항구를 수축하고 등탑과 부표를 세우는 비용으로 다시 톤세를 개정할 수 있다.

……(중략)……

제37관 조선국에서 가뭄과 홍수, 전쟁 등의 일로 인해 국내에 양식이 결핍할 것을 우려하여 일시 쌀 수출을 금지하려고 할 때에는 1개월 전에 지방관이 일본 영사관에게 통지하여 미리 그 기간을 항구에 있는 일본 상인들에게 전달하여 일률적으로 준수하는 데 편리하게 한다(현재 제반 수출입 양곡은 모두 100분의 5를 과세한다. 조선에서 재황(災荒)으로 식량이 모자라 쌀을 수입하려고 할 경우에는 그때에 가서 면세를 통지한다. 일본에서 재황으로 식량이 모자라 쌀 수출을 요구할 때에도 역시 그때에 가서 면세를 통지한다).

……(중략)……

제40관 본 장정에서 정한 세금과 벌금은 조선 동전으로 납부해야 한다. 혹 일본 은화(銀貨)를 시가에 따라 바꿔 쓸 수 있으며, 멕시코 은화가 일본 은화와 가치가 같을 때에도 역시 바꿔 쓸 수 있다. 제2, 제3, 제4, 제6, 제33관 등 각 관 안에 실려 있는 벌금과 소정 수수료는 500톤 이하의 상선에 대해서 2분의 1을 징수하고, 50톤 이하는 4분의 1을 징수한다.

제41관 일본국 어선은 조선국의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네 도의 연해에서, 조선국 어선은 일본국의 히젠(肥前)⋅치쿠젠(筑前)⋅이시미(石見)⋅나가도(長門)⋅【조선해에 면한 곳】⋅이즈모(出雲)⋅쓰시마(對馬島)의 연해에 오가면서 고기를 잡는 것을 허가한다. 단 사사로이 화물을 무역할 수 없으며,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그 화물을 몰수한다. 그러나 잡은 물고기를 사고 팔 경우에는 이 규정에 구애되지 않는다. 피차 납부해야 할 어세(魚稅)와 기타 세목(細目)은 2년 동안 시행한 뒤 그 정황을 조사하여 다시 협의하여 결정한다.

제42관 본 장정은 조인한 날로부터 100일 이내에 조선과 일본 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100일이 지난 뒤에 시행하며, 종전의 일체 무역 규칙 및 기타 각 조약 가운데 본 장정에 장애가 되는 각 조관은 모두 폐지한다. 단, 현재나 앞으로 조선 정부에서 어떠한 권리와 특전 및 혜택과 우대를 다른 나라 관리와 백성에게 베풀 때는 일본국 관리와 백성도 마찬가지로 일체 그 혜택을 받는다. 본 장정은 시행하는 날로부터 5년을 기한으로 하여 다시 개정하되, 만기 전에 양국 정부는 협의하여 새 장정을 만든다. 협의가 기한이 넘도록 낙착되지 못하는 경우 그 사이에는 우선 본 장정에 따라 처리한다. 또 본 장정 안에 더 보충할 것이 있어 피차 모두 편리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곧 수시로 토의하여 추가한다.

이를 위하여 양국 전권대신이 기명하고 도장을 찍어 증거로 삼는다.

대조선국 개국(開國) 492년(1883) 6월 22일. 전권대신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 민영목(閔泳穆).

대일본국 메이지(明治) 16년(1883) 7월 25일

전권대신 변리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

국회도서관입법조사국, 『입법참고자료. 16-20』 v. 18. 구한말조약휘찬 상, 1964, 152~174쪽

……(前略)……

第三十一款, 朝鮮政府, 日後須將各通商口內修築, 以及建設燈塔浮樁 而日本商船之到通商口者, 應納船鈔每噸二百二十五文, 以充其維持之費.【但其稱裝幾石之船者, 以日本六石五斗五升筭爲一噸】, 如經納船鈔, 卽由海關發給專照, 以四箇月爲限, 在其期內, 任憑隨便, 到朝鮮國通商各口, 無庸再納船鈔. 又有進口商船, 未經起貨, 欲赴他處者, 於兩日內出口, 無庸納鈔. 低遇風雨大霧, 不能開纜, 則應將其事由, 呈報海關. 但漁船不納噸稅. 俟有別國商船多到, 則可公同籌商修築口岸及建立燈塔, 浮樁之費, 再行改定噸稅.

……(中略)……

第三十七款, 如朝鮮國, 因有旱潦兵戎等事, 恐國內缺乏糧食, 欲暫禁糧米出口, 須先期一箇月, 由地方官知照日本領事官, 以便豫將其期, 轉示在口日本商民, 一律遵照.【現在諸穀進出口, 竝行抽五. 如朝鮮災荒缺食, 要米糧進口, 可臨時知照免稅. 日本災荒缺食, 要米糧出口, 亦臨時知照免稅】.

……(中略)……

第四十款, 本章程所定稅餉及罰款, 應以朝鮮銅錢完納. 或將日本銀貨, 照時價換用, 墨洋與日本銀貨同價, 亦可換用. 至第二, 第三, 第四, 第六, 第三十三等各款內所載罰款及規費, 其商船係五百噸以下者, 徵二分之一, 五十噸以下者, 徵四分之一.

第四十一款, 准日本國漁船, 於朝鮮國全羅, 慶尙, 江原, 咸鏡四道海濱, 朝鮮國漁船, 於日本國肥前⋅筑前⋅石見⋅長門⋅【對朝鮮海面處】⋅出雲⋅對馬海濱, 往來捕漁. 但不准私將貨物貿易, 違者. 將本貨入官. 賣買其所獲魚類, 不在此例. 至其彼此應納魚稅及其他細目, 俟遵行兩年後, 核其情況, 更行妥議酌定.

第四十二款, 本章程, 自蓋印之日起, 一百日內, 當經朝鮮⋅日本兩國政府允准, 過一百日後施行, 卽所有從前貿易規則及其他各約中有礙本章程各條款者, 槪歸廢止. 但現時若將來, 朝鮮政府, 有何權利⋅特典及惠政⋅恩遇, 施與他國官民, 日本國官民, 亦卽一體均沾. 至本章程, 自施行之日起, 以五年爲期, 再行改訂, 乃須期滿之前, 兩國政府, 妥議設立新章. 倘有商議逾期未決, 則其間姑照本章程辦理. 又若遇本章程內, 有應要增加之件, 彼此均以爲便, 卽得隨時妥議增訂. 爲此兩國全權大臣, 記名蓋印爲憑.

大朝鮮國開國四百九十二年六月二十二日. 全權大臣督辦交涉通商事務, 閔泳穆.

大日本國明治十六年七月二十五日. 全權大臣辨理公使, 竹添進一郞

國會圖書館立法調査局, 『立法參考資料. 16-20』 v. 18. 舊韓末條約彙纂 上, 1964, 152~174쪽

이 사료는 1883년(고종 20년) 7월 25일 조선의 전권대신인 독판교섭통상사무 민영목(閔泳穆, 1826~1884)과 일본의 전권대신 판리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郎) 사이에 조인된 전문 42조의 「조일 통상 장정(朝日通商章程)」의 일부이다.

조선은 1876년(고종 13년) 일본과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護條規)를 체결하고 근대적 외교 관계를 시작하였다. 당시 서구 각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어 왔던 일본은 자신들의 조약 체결 경험을 십분 활용해 조선에 불평등한 조약 관계를 적용하였다. 조약 체결 후 「조일 무역 규칙(朝日貿易規則)」이 체결되어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 원칙이 확정되면서 조선은 관세 자주권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조일 수호 조규 이후 조선은 청국⋅미국⋅영국 등 주요 강대국과 외교 관계를 확대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청국은 조선이 외국과의 근대적 외교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한편, 조선에서의 전통적인 중화 질서를 근대적 보호국 혹은 식민지국으로 전환시키고자 하였다. 조선은 이러한 청국의 ‘의도’ 하에 근대적 외교 질서를 배워 나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조선은 나름의 근대 경제에 대한 지식과 외교적 역량을 축적했지만, 관세 자주권 등 정당한 외교적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문제점도 심화되었다. 그 결과 조선 정부는 1881년(고종 18년) 부산 두모포에 관세청을 설치하여 관세를 거두고자 했으나, 일본의 강경한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조선은 조약 개정을 위한 외교적 교섭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11월 수신사 조병호(趙秉鎬, 1847~1910)가 35개조의 통상 장정 초안을 가지고 일본과 교섭을 시도했지만, 일본은 조병호가 전권 위임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교섭을 거부하였다. 당시 조선에는 ‘전권 위임’이라는 개념이 없어 일본과의 외교 교섭 과정에서 시종 문제가 되었다.

그 뒤 1883년 7월 조선 전권대신 독판교섭통상사무 민영목과 일본의 전권대신 판리공사 다케조 신이치로 사이에 「조일 통상 장정」이 체결되었다. 장정의 중요 내용은 ① 상선 톤세 징수(제31관), ② 천재⋅변란으로 인한 식량 부족 우려가 있을 때 방곡령(防穀令) 선포(제37관), ③ 관세 및 벌금을 조선 화폐로 납입(제40관), ④ 일본 상민에 대한 최혜국 대우(제42관), ⑤ 장정의 5년간 유효(제42관) 등이다.

제31관은 각 상선에 적재된 화물에 대해 톤당 225문의 관세를 납부하도록 하는 것으로 관세 자주권의 핵심이 되는 조항이다. 대신 일본 상선은 한 번 관세를 내면 4개월에 한해 조선의 항구에 관세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제37관은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으로, 조선의 주요 생산물이자 핵심 식량 자원이었던 쌀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한 조항이었다. 다만, 위 내용처럼 방곡령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한 달 전에 미리 통지해야 하는데, 당시 조선의 행정 체계로는 한 달 전에 미리 곡물가의 변동을 산정하여 체계적인 행정 통지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결과 조선의 지방관들이 수 차례 방곡령을 선포했음에도 매번 일본의 반발에 부딪쳐 소기의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조선의 근해에서 어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였다. 이 조약 결과 일본국 어선들이 조선의 전라도⋅경상도⋅강원도⋅함경도 연해에서 어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제41관). 조선의 어선들도 일본국의 히젠(肥前)⋅치쿠젠(筑前)⋅이시미(石見)⋅나가도(長門)⋅이즈모(出雲)⋅쓰시마(對馬島) 연해에서 어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일본의 어선 혹은 해적선은 조선의 연안에 자주 침범했던 반면 조선의 어선들은 그러한 일이 드물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어업 회사들이 설립되면서 대형 선단이 형성된 반면 한국의 어선들은 아직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조선의 어업에는 실효적인 이익이 없었다.

이 조약을 통해 조선은 「조일 무역 규칙」 이래 행사하지 못했던 일본에 대한 관세 자주권, 식량 통제권, 통화(通貨) 통제권을 되찾았다. 이는 조선 정부가 여러 나라와 근대적 외교 조약을 맺어 나가면서 축적한 국제법에 대한 지식이 맺은 결실이라고 하겠다. 한편 일본은 어장 확대라는 구체적인 이익과 함께 일본 사업체의 조선 진출이란 부차적인 효과까지 누렸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실익을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개항초 대일통상조약상의 관세문제-조일무역규칙과 통상장정을 중심으로-」,『숙대사론』5,박경자,숙명여자대학교,1970.
「조선의 ‘관세문제’와 식민지관세법의 형성」,『사학연구』99,송규진,한국사학회,2010.
저서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 최덕수, 열린책들, 2010.
편저
『구한말 조약휘찬』,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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