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개항과 불평등 조약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조미 조약(朝美條約)

대조선국과 대아메리카 합중국은 우호 관계를 두터이 하여 피차 인민을 돌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므로 대조선국 군주는 특별히 전권대관(全權大官) 신헌(申櫶), 전권부관(全權副官) 김홍집(金弘集)을 파견하고, 대미국 대통령은 특별히 전권대신 수사총병(水師總兵) 슈펠트(Robert W. Shufeldt, 薛裴爾)를 파견하여, 각각 받들고 온 전권 위임장을 상호 대조하여 살펴보고 모두 타당하기에 조관을 체결하여 아래에 열거한다.

제1관 이후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대통령 및 그 인민은 각각 모두 영원히 화평하고 우애 있게 지낸다. 타국의 어떠한 불공평이나 경멸하는 일이 있을 때에 일단 통지하면 서로 도와주며, 중간에서 잘 조처하여 두터운 우의를 보여 준다.

제2관 이번에 통상 우호 조약을 맺은 뒤 양국은 병권 대신(秉權大臣)을 서로 파견하여 피차의 수도에 주재시킬 수 있으며, 아울러 피차의 통상 항구에 영사 등의 관리를 두는데 서로 그 편의를 들어 준다. 이들 관원이 해당국의 관원과 교섭하기 위하여 왕래할 때에는 서로 같은 품급(品級)에 상당하도록 하는 예로 대한다. 양국 병권대신과 영사 등 관원들이 받는 갖가지 우대는 피차 최혜국(最惠國)의 관원과 다름이 없다.

영사관은 주재국의 비준 문서를 받아야만 일을 볼 수 있다. 파견되는 영사 등의 관원은 정규 관원이어야 하고 상인으로 겸임시킬 수 없으며, 또 무역을 겸할 수도 없다. 각 항구에 아직 영사관을 두지 못하여 다른 나라 영사에게 대신 겸임시킬 것을 청하는 경우에도 상인으로 겸임시킬 수 없으며, 혹 지방관은 현재 체결된 조약에 근거하여 대신 처리할 수 있다. 조선 주재 미국 영사 등 관원들의 일처리가 부당할 경우에는 미국 공사(公使)에게 통지하여, 피차 의견이 일치하여야 비준 문서를 회수할 수 있다.

제3관 미국 선척이 조선의 근해에서 태풍을 만났거나 혹은 식량⋅석탄⋅물이 모자라고 통상 항구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졌을 때에는 곳에 따라 정박하는 것을 허락하여 태풍을 피하고 식량을 사며 선척을 수리하도록 한다. 경비는 선주가 자체 부담한다. 지방관과 백성은 가엾게 여겨 원조하고 필요한 물품을 제공한다. 해당 선척이 통상하지 않는 항구에 몰래 들어가 무역을 하다가 잡힌 경우 배의 화물은 관에서 몰수한다. 미국 선척이 조선 해안에서 파손되었을 경우 조선의 지방관은 그 소식을 들은 즉시 명령하여 선원들을 우선 구원하고 식량 등을 공급해 주도록 하며, 한편으로 대책을 세워 선척과 화물을 보호하고, 아울러 영사관에게 통지하여 선원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게 한다. 아울러 배의 화물을 건져낸 일체 비용은 선주나 미국에서 확인하고 갚는다.

제4관 미국 인민이 조선에 거주하며 본분을 지키고 법을 준수할 때에는 조선의 지방관은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대신 보호하고 조금도 모욕하거나 손해를 입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법을 지키지 않는 무리가 미국 사람들의 집과 재산을 약탈하고 불태우려는 자가 있을 경우 지방관은 일단 영사에게 통지하고 즉시 군사를 파견하여 탄압하며 아울러 범죄자를 조사⋅체포하여 법률에 따라 엄중히 처벌한다. 조선 인민이 미국 인민을 모욕하였을 때에는 조선 관원에게 넘겨 조선 법률에 따라 처벌한다.

미국 인민이 상선이나 항구를 막론하고 모욕하거나 소란을 피워 조선 인민의 생명과 재산에 손해를 주는 등의 일이 있을 때에는 미국 영사관이나 혹은 미국에서 파견한 관원에게 넘겨 미국 법률에 따라 조사하고 체포하여 처벌한다. 조선국 내에서 조선과 미국의 인민 사이에 소송이 있을 경우 피고 소속의 관원이 본국의 법률에 의하여 심의하여 판결하며, 원고 소속의 나라에서는 관원을 파견하여 심의를 들을 수 있다[聽審]. 심관(審官)은 예로 서로 대해야 한다. 심의를 듣는 관원[청심관(聽審官)]이 소환하여 심문하거나, 현지에 나가 조사⋅심문하거나, 나누어 심문하거나 검증하려고 할 때에도 그 편의를 들어 준다. 심관의 판결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역시 상세하게 반박하고 변론하는 것을 허용한다. 대미국(大美國)과 대조선국은 피차간에 명확하게 정하였다. 조선이 이후에 법률 및 심의 방법을 개정하였을 경우 미국에서 볼 때 본국의 법률 및 심의 방법과 서로 부합한다고 인정될 때에는 즉시 미국 관원이 조선에서 사건을 심의하던 권한을 철회하고, 이후 조선 경내의 미국 인민들을 즉시 지방관의 관할에 귀속시킨다.

제5관 조선국 상인과 상선이 미국에 가 무역할 때에 납부하는 선세(船稅)와 일체의 각 비용은 미국의 해관 장정(海關章程)에 따라 처리한다. 본국 인민 및 상대 최혜국의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정해진 액수 외에 증가할 수 없다. 미국 상인과 상선이 조선에 와서 무역할 때 입출항하는 화물은 모두 세금을 바쳐야 하며, 그 수세하는 권한은 조선이 자주적으로 한다. 입항세⋅출항세에 관한 항목과 해관이 금지해도 탈루하려는 모든 폐단에 대해서는 모두 조선 정부에서 제정한 규칙에 따른다. 사전에 미국 관원에게 통지하여 상인들에게 널리 알려 준행하도록 한다. 현재 미리 정한 세칙(稅則)은, 대략 민생의 일상용품과 관계되는 각종 입항 화물의 경우 시장 가격에 근거하여 100분의 10을 초과하여 세금을 징수할 수 없으며, 사치품과 기호품인 양주⋅여송연(呂宋煙)⋅시계와 같은 것들은 시장가격에 근거하여 100분의 30을 초과하여 세금을 징수할 수 없다. 출항하는 토산물은 모두 그 가격에 근거하여 100분의 5를 초과하여 징수할 수 없다. 입항하는 모든 서양 화물은 항구에서 정규의 세금을 납부하는 외에 해당 항목의 화물이 내지(內地)로 들어가거나 항구에 있으나 영구히 다른 항목의 세금을 물지 않는다. 미국 상선이 조선 항구에 들어올 때에는 선세(船稅)로 매 톤에 은(銀) 5전을 납부하되 매 선박마다 중국력(中國曆)에 의거하여 한 분기에 한 번씩 거둔다.

제6관 조선국 상인이 미국의 각 처에 갔을 때에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며, 가옥을 세내고 토지를 사고 가게를 짓는 일은 그 편리한대로 한다. 무역 업무에 있어서는 일체 소유한 토산물 및 제조한 물건과 위반 사항을 어기지 않는 화물은 모두 매매할 수 있다. 미국 상인이 이미 개항한 조선 항구에 가서 해당 지역의 정해진 경계 안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며, 가옥을 세내고 토지를 사고 가게를 짓는 일은 그 편리한 대로 한다. 무역 업무에 대해서는 일체 소유한 토산물 및 제조한 물건과 위반 사항을 어기지 않는 화물은 모두 매매할 수 있다. 다만 토지를 빌릴 때에는 조금도 강요할 수 없다. 해당 토지를 빌리는 값은 모두 조선에서 정한 등칙(等則)에 비추어 완납하며 그 빌려 준 토지는 계속 조선의 판도(版圖)에 속한다. 이 조약 내에서 명백히 미국 관원에게 귀속하여 관리해야 할 상인들의 재산을 제외하고 모두 그대로 조선 지방관의 관할에 귀속한다. 미국 상인은 서양의 화물을 내지(內地)에 운반해 판매할 수 없고, 또 스스로 내지로 들어가 토산물을 구매할 수 없으며 아울러 토산물을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운반해 팔 수도 없다. 위반하는 자는 그 화물을 관에서 몰수하고 해당 상인을 영사관에게 넘겨 처벌케 한다.

제7관 조선국과 미국은 피차 논의 결정하여 조선 상인이 아편을 구입 운반하여 미국 통상 항구에 들여 갈 수 없고, 미국 상인도 아편을 구입 운반하여 조선 항구에 들여 갈 수 없으며, 아울러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운반하는 경우에도 아편을 매매하는 무역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 양국 상인이 본국의 배나 다른 나라의 배를 고용하거나 본국의 배를 다른 나라 상인에게 고용되어 아편을 구입 운반한 자에 대하여 모두 각각 본국에서 영구히 금지하고 조사하여 중벌에 처한다.

제8관 조선국이 사고로 인하여 국내의 식량이 결핍될 우려가 있을 경우 대조선국 군주는 잠시 양곡의 수출을 금한다. 지방관의 통지를 거쳐 미국 관원이 각 항구에 있는 미국 상인들에게 지시하여 일체 준수하도록 한다. 다만, 이미 개항한 인천항에서 각종 양곡의 수출을 일체 금지한다. 홍삼은 조선에서 예로부터 수출을 금하고 있다. 미국 사람이 몰래 사서 해외로 내가는 자가 있을 경우에 모두 조사 체포하여 관에 몰수하고 분별하여 처벌한다.

제9관 무릇 대포⋅창⋅검⋅화약⋅탄환 등 일체의 군기(軍器)는 조선 관원이 자체 구입하거나 혹 미국 사람이 조선 관원의 구매 승인서를 갖고 있어야 비로소 입항을 허락한다. 사사로이 판매하는 물화가 있을 경우에는 화물을 조사하여 관에서 몰수하고 분별하여 처벌한다.

제10관 양국 관원과 상인이 피차 통상 지방에 거주할 때에는 두루 각색의 사람들을 고용하여 자기 직분 내의 일을 돕게 할 수 있다. 다만 조선 사람으로서 본국의 금령을 범했거나 피소(被訴)된 자와 연루되어 미국 상인의 주택⋅가게 및 상선에 숨어있는 자는 지방관이 영사관에게 통지하면 파견된 관원이 직접 잡아 가는 것을 허락하고 혹은 영사가 사람을 파견하여 붙잡아 조선에서 파견한 관원에게 넘겨주며, 미국 관원과 백성은 조금이라도 비호하거나 억류할 수 없다.

제11관 양국의 생도(生徒)가 오가며 언어⋅문자⋅법률⋅기술 등을 배울 때에는 피차 서로 도와줌으로써 우의를 두텁게 한다.

제12관 지금 조선국이 처음으로 조약을 제정 체결한 조관은 아직 간략하나 조약을 준수해야 한다. 이미 실려 있는 것은 우선 처리하고 실려 있지 않은 것은 5년 뒤에 양국 관원과 백성들이 피차 언어가 조금 통할 때에 다시 논의하여 결정한다. 상세한 통상 장정은 만국 공법(萬國公法)의 통례를 참작하여 공평하게 협정(協定)하여 경중과 대소의 구별이 없다.

제13관 이번에 양국이 체결한 조약과 이후에 교환할 공문에 대해서 조선은 한문을 전용하고 미국도 한문을 사용하거나 혹은 영문(英文)을 사용하되 반드시 한문으로 주석을 하여 착오가 없게 한다.

제14관 현재 양국이 논의하여 결정하고 난 이후 대조선국 군주가 어떠한 은혜로운 정사와 은혜로운 법 및 이익을 다른 나라 혹은 그 상인에게 베풀 경우, 배로 항해하여 통상무역을 왕래하는 등의 일을 해당국과 그 상인이 종래 누리지 않았거나 이 조약에 없는 경우를 막론하고 미국 관원과 백성이 일체 균점(均霑)하는 것을 승인한다. 이러한 타국의 이익을 우대하는 문제에서, 이것과 전적으로 관련된 조항으로 상호 보답을 규정할 경우, 미국 관원과 백성도 반드시 상호 체결한 보답하는 해당 조항을 일체 준수해야 비로소 우대하는 이익을 동일하게 누리는 것을 승인한다.

위의 각 조항은【대조선국과 대미국의】 대신들이 조선의 인천부에서 논의해 정하고【한문과 영문으로】 각각 세 통을 작성하여, 조문 구절이 서로 같기에 우선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어 증빙함을 밝히고, 양국의 어필(御筆) 비준을 기다려 모두 1년을 기한으로 조선의 인천부에서 상호 교환한다. 이후 이 조약의 각 조항들을 피차 본국의 관원과 상인들에게 널리 알려 다 알고 준수하게 한다.

대조선국 개국 491년, 즉 중국 광서(光緖) 8년 4월 초6일

전권대관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 신헌(申櫶)

전권부관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 김홍집(金弘集)

대미국 1882년 5월 22일

전권대신 해군 총병 슈펠트[薛裴爾]

고종실록』권19, 19년 4월 6일(신유)

朝美條約

大朝鮮國與大亞美理駕合衆國, 切欲敦崇和好, 惠顧彼此人民. 是以大朝鮮國君主, 特派全權大官申櫶全權副官金宏集, 大美國伯理璽天德, 特派全權大臣水師總兵薜斐爾, 各將所奉全權字據, 互相較閱, 俱屬妥善, 訂立條款, 臚列於左.

第一款 嗣後大朝鮮國君主, 大美國伯理璽天德, 竝其人民, 各皆永遠和平友好. 若他國有何不公輕藐之事, 一經照知, 必須相助, 從中善爲調處, 以示友誼關切.

第二款 此次立約通商和好後, 兩國可交派秉權大臣, 駐紮彼此都城, 竝於彼此通商口岸, 設立領事等官, 均聽其便. 此等官員, 與本地官交涉往來, 均應用品級相當之禮. 兩國秉權大臣與領事等官, 享獲種種恩施, 與彼此所待最優之國官員無異. 惟領事官, 必須奉到駐紮之國批準文憑, 方可視事. 所派領事等官, 必須眞正官員, 不得以商人兼充, 亦不得兼作貿易. 倘各口未設領事官, 或請別國領事兼代, 亦不得以商人兼充, 或卽由地方官, 照現定條約代辦. 若駐紮朝鮮之美國領事等官, 辦事不合, 須知照美國公使, 彼此意見相同, 可將批準文憑追回.

第三款 美國船隻在朝鮮左近海面, 如遇颶風, 或缺糧食煤水, 距通商口岸太遠, 應許其隨處收泊, 以避颶風, 購買糧食, 修理船隻, 所有經費, 係由船主自備. 地方官民, 應加憐恤援助, 供其所需. 如該船在不通商之口, 潛往貿易拿獲, 船貨入官. 如美國船隻在朝鮮海岸破壞, 朝鮮地方官, 一經聞知, 卽應飭令將水手先行救護, 供其糧食等項, 一面設法保護船隻貨物, 竝行知照領事官, 俾將水手送回本國. 竝將船貨撈起一切費用, 或由船主, 或由美國認還.

第四款 美國民人在朝鮮居住, 安分守法, 其性命財産, 朝鮮地方官, 應當代爲保護, 勿許稍有欺凌損毁. 如有不法之徒欲將美國房屋業産搶劫燒毁者, 地方官一經領事告知, 卽應派兵彈壓, 竝査拿罪犯, 按律重辦. 朝鮮民人, 如有欺凌美國民人, 應歸朝鮮官, 按朝鮮律例懲辦. 美國民人, 無論在商船在岸上, 如有欺凌騷擾, 損傷朝鮮民人性命財産等事, 應歸美國領事官或美國所派官員, 按照美國律例, 査挐懲辦. 其在朝鮮國內, 朝鮮美國民人, 如有涉訟, 應由被告所屬之官員, 以本國律例審斷, 原告所屬之國, 可以派員聽審, 審官當以禮相待. 聽審官如欲傳訊査訊分訊訂見, 亦聽其便. 如以審官所斷爲不公, 亦許其詳細駁辨. 大美國與大朝鮮國, 彼此明定. 如朝鮮日後改定律例及審案辦法, 在美國視與本國律例辦法相符, 卽將美國官員在朝鮮審案之權, 收回以後, 朝鮮境內美國人民, 卽歸地方官管轄.

第五款 朝鮮國商民竝其商船, 前往美國貿易, 凡納稅船鈔, 竝一切各費, 應遵照美國海關章程辦理, 與征收本國人民及相待最優之國稅鈔, 不得額外加增. 美國商民竝其商船, 前往朝鮮貿易, 進出口貨物, 均應納稅, 其收稅之權, 應由朝鮮自主. 所有進出口稅項及海關禁防偸漏諸弊, 悉聽朝鮮政府設立規則, 先期知會美國官, 布示商民遵行. 現擬先訂稅則大略, 各色進口貨, 有關民生日用者, 照估價値百抽稅不得過一十, 其奢靡玩要等物, 如洋酒, 呂宋煙, 鍾表之類, 照估價値百抽稅不得咼三十. 至出口土貨, 槪照値百抽稅不得過五. 凡進口洋貨, 除在口岸完納正稅外, 該項貨物, 或入內地, 或在口岸, 永遠不納別項稅費. 美國商船進朝鮮口岸, 須納船鈔, 每噸銀五錢, 每船按中歷一季抽一次.

第六款 朝鮮國商民前往美國各處, 准其在該處居住, 賃房買地起蓋棧房, 任其自便, 其貿易工作, 一切所有土産, 以及製造之物, 與不違禁之貨, 均許買賣. 美國商民前往朝鮮已開口岸, 准其在該處所定界內居住, 賃房租地建屋, 任其自便, 其貿易工作, 一切所有土産, 以及製造之物, 與不違禁之貨, 均許賣買. 惟租地時, 不得稍有勒逼, 該地租價, 悉照朝鮮所定等則完納, 其出租之地, 仍歸朝鮮版圖. 除案此約內所持, 明歸美國官員應管商民錢産外, 皆仍歸朝鮮地方官管轄. 美國商民不得以洋貨運入內地售買, 亦不得自入內地採買土貨, 倂不得以土貨由此口販運彼口. 違者將貨物入官, 竝將該商, 交領事官懲辦.

第七款 朝鮮國與美國, 彼此商定, 朝鮮商民, 不准販運洋藥, 入美國通商口岸, 美國商民, 亦不准販運洋藥, 入朝鮮通商口岸, 竝由此口運往彼口, 亦不准作一切買賣洋藥之貿易. 所有兩國商民, 無論僱用本國船別國船, 及本國船爲別國商民僱用販運洋藥者, 均由各本國自行永遠禁止, 査出從重懲罰.

第八款 如朝鮮國, 因有事故, 恐致境內缺食, 大朝鮮國君主, 暫禁米糧出口, 經地方官照知後, 由美國官員轉飭在各口美國商民一體遵辦. 惟於已開仁川一港, 各色米糧, 槪行禁止. 運出紅蔘一項, 朝鮮舊禁出口, 美國人如有潛買出洋者, 均査挐入官, 仍分別懲罰.

第九款 凡砲位鎗刀火藥鉛丸一切軍器, 應由朝鮮官自行釆辦. 或美國人奉朝鮮官准買明文, 方准進口. 如有私販, 査貨入官, 仍分別懲罰.

第十款 凡兩國官員商民, 在彼此通商地方居住, 均可僱請各色人等, 勷執分內工藝. 唯朝鮮人遇犯本國例禁, 或牽涉被控, 凡在美國商民寓所行棧及商船隱匿者, 由地方官照知領事官, 或准差役自行往挐, 或由領事派人拿交朝鮮差役. 美國官民不得稍有庇縱掯留.

第十一款 兩國生徒往來 學習語言文字律例藝業等事, 彼此均宜勷助, 以敦睦誼.

第十二款 玆朝鮮國初次立約所訂條款, 姑從簡略, 應遵條約, 已載者, 先行辦理, 其未載者, 俟五年後, 兩國官民, 彼此言語稍通, 再行議定. 至通商詳細章程, 須酌照萬國公法通例, 公平商訂, 無有輕重大小之別.

第十三款 此次兩國訂立條約, 與夫日後往來公牘, 朝鮮專用華文, 美國亦用華文, 或用英文, 必須以華文註明, 以免岐誤.

第十四款 現經兩國議定嗣後, 大朝鮮國君主, 有何惠政恩典利益, 施及他國, 或其商民, 無論關涉海面行船通商貿易交往等事, 爲該國幷其商民從來未霑, 抑爲此條約所無者, 亦准美國官民一體均霑. 惟此種優待他國之利益, 若立有專條互相酬報者, 美國官民, 必將互訂酬報之專條, 一體遵守, 方准同霑優待之利益. 其上各款, 現經【大朝鮮, 大美】國大臣, 同在朝鮮仁川府, 議定繕寫【華, 洋】文各三分, 句法相同, 先行畫押蓋印, 以昭憑信, 仍俟兩國御筆批准, 總以一年爲期, 在朝鮮仁川府互換. 然後, 將此約各款, 彼此通諭本國官員商民, 俾得咸知遵守.

大朝鮮國開國四百九十一年卽中國光緖八年四月初六日

全權大官經理統理機務衙門事 申櫶

全權副官經理統理機務衙門事 金弘集

大美國一千八百八十二年五月二十二日

全權大臣水師總兵 薛斐爾

『高宗實錄』卷19, 19年 4月 6日(辛酉)

「조미 수호 통상 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은 조선과 미국 간에 체결된 통상 조약이다. 미국은 1844년(헌종 10년) 청국과, 1854년(철종 5년)에는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며 양국의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후 미국은 1866년(고종 3년) 제너럴 셔먼 호 사건으로 조선의 개항에 적극적 관심을 가졌고, 1871년(고종 8년) 포함 외교에 의해 강제로 조선의 개항을 성취하려고 하였으나 무력 충돌로 좌절되었다.

1876년(고종 13년) 「조일 수호 조규」가 체결된 이후 미국은 1878년(고종 15년) 3월 상하원 합동으로 조선 개항 결의안을 가결하였다. 무역상의 이익과 표류하는 자국 선박을 구조하려는 의도였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동아시아 함대 제독 슈펠트(Robert W. Shufeldt, 1850~1934)에게 조선과의 조약을 체결하라는 임무를 부여하였다. 그는 1880년(고종 17년) 3월 일본에 중재를 요청하여, 일본 외상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의 소개장을 가지고 부산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미국과 통교할 뜻이 없으며, 무엇보다 일본의 중재에 의한 교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교섭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때 일본의 중재로 조약이 체결되는 것을 우려하던 청국의 이홍장(李鴻章)이 슈펠트를 톈진(天津)으로 초청하여 조선과의 수호 통상을 알선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 주재 청국 공사 허루장(何如璋)과 참찬관 황준헌(黃遵憲, 1848~1905)을 통해 수신사(修信使)로 도쿄에 파견되어 있던 김홍집(金弘集, 1842~1896)과 접촉하게 했다. 이때 김홍집에게 조선이 미국(美國)과 연합해야 함을 주장한 황준헌의 『조선책략』이 전달되었다.

이홍장과 슈펠트는 톈진에서 조선과 미국의 조약 체결을 의제로 회담을 개시했고, 청국이 중재하기로 하였다. 조미 조약 체결을 위한 예비 교섭은 1881년(고종 18년) 10월부터 시작되었다. 영선사(領選使)로 청국에 파견된 김윤식은 이홍장에게 조선 정부가 조약을 체결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면서, 단 여기에는 청국 관원도 참여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서양과의 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세력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른바 위정척사 운동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때 이홍장은 청국의 의도대로 조약을 체결하고자, 톈진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전권 위임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윤식을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하고 청국과 미국이 마련한 조약 초안만 검토하게 했다.

당시 이홍장의 최대 관심은 미국으로부터 ‘조선은 청국의 속방(屬邦)이다’는 내용을 조약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슈펠트는 이를 강하게 반대하여 결국 1조를 공란으로 비워 두고 대신 조선 국왕이 미국 대통령에게 ‘속방 조회문’을 보내면 미국이 이를 수령하는 것에 합의하였다. 이홍장은 다음으로 거중조정(居中調整) 조문을 명문화했다. 미국을 통해서 러시아와 일본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또 청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강제 받은 통상에서의 불평등성을 완화시키는 조문을 명문화했다. 일상용품 10% 이하, 사치품 등에 대한 30% 이하로 규정된 수입 관세율, 관세 자주권, 미국 상인의 내지 통행금지, 미국 상선의 개항장 간 무역 금지 등을 담았다. 이홍장과 슈펠트는 1882년(고종 19년) 음력 3월 1일, 1조를 공란으로 두고 조약 초안에 서명했다. 이홍장은 조약 초안을 김윤식에게 통보하면서, 세 가지 방침을 전달하였다. ① 조선 정부는 조약 초안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수 없으며, ② 조약 체결 직후 조선 정부는 속방 조회문을 미국 정부에 통보하고, ③ 「조미 조약」 교섭에 청국 관원이 참여한다는 내용이었다.

슈펠트는 청나라 사신 마젠충[馬建忠, 1845~1899]과 함께 인천 제물포에 들어왔다. 조선 측 전권대관 신헌(申櫶), 부관 김홍집은 이홍장과 슈펠트가 가조인한 조약안을 검토하여 홍삼과 미곡 수출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 해 4월 6일 제물포 화도진(花島鎭)에서 14개조로 이루어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 양국 정부는 1883년(고종 20년) 4월 「조미 조약」에 대해 비준을 완료하였다. 이에 따라 푸트(Foote, L. H.)가 초대 주조선 미국 공사로 부임하였고, 조선 정부도 같은 해 6월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을 정사로, 홍영식(洪英植, 1855~1884)을 부사로, 서광범(徐光範, 1859~1897?)을 종사관으로 하는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하였다.

「조미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관에서 조선이 제3국으로부터 부당한 침략을 받을 경우 조약국인 미국은 즉각 이에 개입, 거중조정(居中調整)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이 조항은 이후 체결된 영국, 독일과의 조약에도 동일하게 반영되었다. 조선은 이 조항을 상당히 신뢰하여 조선의 국권이 특정 국가에 훼손될 때 각국에 거중조정을 요청하였다. 1885년(고종 22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 시기, 1894년(고종 31년) 청일 전쟁 발발 직전, 1904년(고종 41년) 러일 전쟁 발발 직후 조선 정부는 미국에 거중조정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거중조정의 실상은 단순한 의견 전달에 그쳤고, 적극적인 중재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제2관은 상호 외교관을 파견하여 상주한다는 것으로, 이에 따라 양국 조약 비준 후 외교관을 교환하였다. 제3관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인 조선 근해에서 조난된 선박의 피난과 원조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제4관에서는 대표적 불평등 조항인 영사 재판권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영사 재판권 제도 조항은 앞서 「조일 수호 조규」의 규정을 잇는 것으로 후일의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의 수호 조약의 모델이 되었다. 조선 영토 내에서 미국 관리의 주관 아래 미국 법을 적용하는 치외법권을 인정한 것이다.

제5관은 수출입 관세에 대한 규정을 명문화하면서 조선에게 관세 자주권이 있다고 밝혔다. 제6관은 조선 내에서 미국인의 상업 활동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조계지 설정, 조계지 내에서의 토지 구입, 임차(賃借)의 자유를 보장하였고, 다만 내지 통상은 부정되었다. 제7관은 아편 무역 금지 조항으로 이후 조선이 체결하는 모든 조약에도 실리게 된다. 제8관은 「조미 조약」에서 조선이 수정 제안하여 삽입한 것으로 홍삼과 미곡 수출을 금지하였다. 홍삼은 조선의 주요 재원으로 사실상 정부의 전매품이었기 때문이고, 「조일 수호 조규」에서 미곡 수출에 따른 폐단을 시정하기 위함이었다. 제14관에서 조선에서 미국에 부여하는 최혜국 대우 조항을 두었다. 「조미 조약」에서 허용되지 않은 권리⋅이권⋅특혜를 조선이 제3국에 허용할 경우 동일 조건으로 미국도 향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혜국 대우 조항은 후일 각국과의 조약에도 등장하였는데, 특히 서양 열강은 이를 근거로 조선이 청국에게 허용한 조약상의 제반 특권을 자신들도 향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조미 조약」은 앞서의 「강화도 조약」이나 후일 구미 열강과의 조약 전범이 된 「조영 조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등한 항목이 많았다. 그것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청국이 조약 초안 작성에 직접 개입했고, 미국이 동아시아에 개입이나 관심 정도가 아직까지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국은 최혜국 대우 조항으로 인해 후일 구미 국가와 같은 조건으로 조선에서의 제반 권리를 향유하게 된다.

「조미 조약」을 통해 조선은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구미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한 이후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와 체결하는 수호 조약은 거의 이 「조미 조약」을 준용하는 등, 국제 외교의 다변화를 가져 왔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미조약 체결 연구」,『동양학』22,김원모,단국대 동양학연구소,1992.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이권 침탈」,『역사비평』17,김정기,역사문제연구소,1992.
「김윤식⋅이홍장의 보정부 천진회담 상; 조미조약 체결(1882)을 위한 조청교섭 」,『동방학지』44,송병기,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1984.
「김윤식⋅이홍장의 보정부 천진회담 하; 조미조약 체결(1882)을 위한 조청교섭 」,『동방학지』45,송병기,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1984.
저서
『개화기 한미 교섭관계사』, 김원모,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3.
『근대한미관계사』, 이민식, 백산자료집, 2001.
편저
『구한말조약휘찬』상, 국회도서관입법조사국, 국회도서관, 1964.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 최덕수 외, 열린책들,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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