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개화와 자주 운동

개화 정치의 이상-박영효 건백서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신(臣) 박영효는 삼가 네 번 절하며 대군주 폐하께 상소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신의 가문은 세신(世臣)의 후예로서 신(臣)의 대에 이르러 부자 형제가 특별히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신의 부자는 폐하께서 내리신 은혜에 감격했고 이에 어떻게 보답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신의 아비인 고(故) 판서 박원양은 항상 신의 형제에게 “온몸을 다하여 임금을 섬기고 마땅히 목숨을 다하여 충성을 바쳐서 국가를 위한 보답의 길을 찾고 위험이나 어려움을 꾀하지 말아라”라고 훈계했습니다. 그때 신은 나이가 적고 배운 바가 모자라 비록 그 말을 들었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만 얼굴을 들고 응답했을 뿐입니다.

성은(聖恩)의 만분의 일이나마 제 마음으로 삼으려 했지만 일의 순리를 헤아리지 못하고 갑신년(1884)에 이르러 멋대로 경솔한 거사를 행했습니다. 그러나 천운과 마음이 어긋나 공적으로는 폐하의 진노를 사고 삼국의 분란을 일으켰으며, 사적으로는 헛되이 신의 부모 형제와 친구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거사는 끝내 나라에 무익했고 신은 인정도 의리도 없는 무리와 같은 자로 낙인찍혔습니다. 그럼에도 나아와 명을 받고 엎드려 벌을 받지 않은 이유는, 그 거사가 사실은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에서 벌인 것이지 찬탈이나 반란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 근세 문명국에서 죄를 따질 때에는 그 사정과 원인을 살피되 모호한 것은 따지지 않으니, 신이 역적으로 처벌되는 것은 부당하며 위로는 성세(聖世)의 덕에 누를 끼치고 아래로는 신의 죽음에 오명을 남길 뿐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명을 어기고 나라를 탈출하여 타국에서 체류했고, 조정의 문명이 계속 새로워져서 신을 역신(逆臣)으로 보지 않을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중략)……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이 말을 역적의 말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받아들이시되 의심하지 마소서. 신이 글을 씀에 있어 마음이 초조하고 혼란스러워 말이 많고 중복되었으며 혹 공경함을 잃기도 했으니, 신은 지극한 두려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개국 497년(1888) 1월 13일

세계의 형세

지금 세계의 모든 나라는 옛날 전국시대의 열국들과 같습니다. 한결같이 병세(兵勢)를 으뜸으로 삼아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병합하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삼키고 있습니다. 또한 항상 군비를 강구하는 한편 아울러 문화와 기술을 진흥하여 서로 경쟁하고 채찍질하여 앞을 다투지 않음이 없습니다. 각국이 자국의 뜻을 공고히 하여 세계에 위력을 흔들어 보고자 하며 다른 나라의 빈틈을 이용하여 그 나라를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폴란드와 터키가 원래 약한 나라가 아니었으면서도 모두 자국의 곤궁과 혼란으로 인해 때로는 분할을 맛보고 때로는 영토를 빼앗겨 다시 흥성해질 기회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비록 만국공법(萬國公法)에 균세공의(均勢公義)가 있긴 하지만 나라에 자립⋅자존의 힘이 없으면 반드시 영토를 빼앗기거나 분할되는 것을 초래하여 나라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공법과 공의는 본래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서양의 개명하고 강대한 나라로서도 역시 패망을 맛보았는데, 하물며 아시아의 개명하지 못한 약소국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대체로 서양인들은 입으로는 법과 도리를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야수의 마음을 품고 있어서 300~4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합병하고 삼켜 버린 지역이 남북아메리카 주⋅아프리카 주⋅남양군도⋅오스트레일리아 주이며 점차 우리 아시아의 땅에 이르러서는 시베리아⋅토사단(土斯坦)⋅인도⋅버마⋅청나라의 흑룡강성⋅홍콩⋅일본의 사할린 섬 등을 빼앗겼다. 아시아는 이미 그 반을 넘게 빼앗겼고 세계 전체로 말하자면 남은 곳이 열 곳 중에 한 곳 남짓합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고 도리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그들의 의도가 과연 어느 곳에 있겠습니까?

이는 아시아주 동부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때이며, 우리 동족이 떨쳐 일어나 국난을 헤쳐 나가야 할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아시아주 민족들은 게으르고 수치를 몰라서 구차히 목숨을 부지해 가고자 할 뿐 전혀 과단성 있는 기상이 없으니 이것이 신이 한심하게 생각하여 탄식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러시아가 동쪽으로 침범하고자 하여 산을 뚫고 길을 열어 동쪽 해안에 도달해 여러 나라의 형세를 살펴본 후 우리에게 군비가 없는 것을 보고 먼저 우리나라의 서북 지방으로 진출하여 함경도⋅평안도를 침략하고 일본해와 황해의 수리(水利)에 의지하여 세 나라의 무릎을 끊어 버려 아시아 주의 화복(禍福)을 쥐고 흔들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일은 이미 끝장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떨쳐 일어나 난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역시 어찌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저 러시아는 비록 군주 독재의 나라이긴 하지만 그 나라의 정치와 법질서는 우리나라보다 나으므로 우리나라의 인민이 일단 그러한 정치와 법질서의 편안함에 안주하게 된다면 다시는 우리 조선의 부흥을 달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인도는 아시아 각국 중에도 국세가 번창하고 영토가 넓은 나라였지만 국내의 혼란과 군비의 결여로 인해 영국에게 점령당했는데 인민들이 영국 정부의 명령을 기꺼이 따르고 스스로의 정부를 세우려고 하지 않는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영국의 법률이 관대하고 정치가 공명정대하여 사람마다 자신의 삶을 편하다고 생각하여 영국의 정치에서 벗어나 다시 혹독한 정치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신이 살펴보건대 아시아 주는 천하의 영기가 모이는 곳입니다. 그런 까닭에 유교⋅불교⋅예수교 및 이슬람교의 교조들이 모두 여기서 출현했습니다. 옛적 흥성했던 시기에는 문명이 없는 땅이 아니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도리어 서구에게 양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생각하건대 여러 나라의 정부가 백성을 노예와 같이 보아 인의예지(仁義禮智)로써 그들을 이끌고 문화와 기술을 가르치지 않은 까닭에 인민이 어리석고 부끄럼을 모르게 되어 남에게 점령당하더라도 치욕이 되는 줄 모르고 재앙이 곧 닥치려 해도 깨닫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정부의 잘못이지 인민의 잘못이 아닙니다.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모든 일을 미리 하면 서고, 미리 하지 않으면 무너지게 될 것이니, 말은 미리 정해지면 막히지 않으며 일은 먼저 정해지면 곤란을 당하지 않고 행동은 미리 정해지면 고통스럽지 않게 되고 방향이 미리 정해지면 곤궁해지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아시아 주의 모든 정부를 위해 도모해야 할 자들이 어찌 구차히 안일하게 시간만 보낼 수 있겠습니까?

2. 법률을 부흥시켜 나라를 안정시키십시오.

……(중략)……

(1) 제반 소송과 크고 작은 죄의 처리는 재판관에게 전담시키되, 임금의 권한이라면서 자의적으로 재판을 해서는 안 됩니다.【모든 인간의 본성은 기쁨⋅성냄⋅슬픔⋅즐거움⋅두려움⋅걱정으로 그 평상심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재판으로 죄를 정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처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혹독한 형벌을 폐지하여 생명을 보호해야 합니다.【법이 혹독한 까닭에 나라의 주권을 외국에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3) 죄인의 처자식까지 죽이는 법을 폐지하여 범죄 당사자만 다스리고 부모⋅형제⋅처자에게는 벌이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4) 죄인을 심문할 때 함부로 형을 가하여 무죄인데도 강제로 죄를 자백 받아서는 안 됩니다.【비록 죄인에게 자백의 다짐을 받고 스스로 그 죄를 아뢰게 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가혹한 형벌로 인해 강제로 허위 자백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5) 크고 작은 모든 죄에 대해 반드시 죄의 증거를 밝혀 죄인이 스스로 자백한 연후에 옥에 가두고 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야만스럽고 미개한 나라에서는 인민이 옥에 갇히고 형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6) 포도청에서 고문하다 사람을 죽인 것을 숨기는 것과 같은 관행을 폐지해야 합니다. 형을 받아 죽은 자의 부모⋅형제⋅처자라 할지라도 그가 옥에 구금되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모르니 어찌 불법적이고 잔인한 정치가 아니겠습니까?

(7) 재판을 하여 형을 결정할 때에는 그것을 비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재판소에 들어가 방청을 하게 하면 재판관이 잔인한 형벌을 사용하고 사사로운 결정을 용납하는 일이 저절로 줄어들 것입니다.

(8) 징역의 법을 정하고 징역 사는 장소를 설치하며, 최고로 중한 죄가 아니면 죽여서는 안 되고 징역을 살게 해야 합니다.

(9) 포도청을 폐지하고 대신 순청(巡廳)에서 관련 규례를 조정하여 경순사(警巡士) 2만 명을 둔다면, 우선 충분히 민심을 계도하고 민간의 사정을 살피며 폭행을 억누르고 위급한 일을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 재상⋅사대부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적인 형벌을 행하는 것을 엄금하여, 비록 자신에게 속한 자식이나 노비라 할지라도 반드시 공적인 재판을 받게 해야 합니다.

(11) 인민으로 하여금 돈을 꾸고 갚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 관한 모든 약속과 증빙의 글을 자세하게 기록하도록 하고, 아울러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게 함으로써 훗날의 재판에 곤란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글의 증거가 모호한 것에 근거하여 재판을 해서는 안 됩니다.

(12) 귀하고 천한 각 계층의 묘소를 각 처에 정하고 다른 곳에 묻는 것을 금하여 무덤으로 인한 송사의 번거로움을 없애고, 한편으로는 훗날의 광산 사무에 곤란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3. 경제로 나라와 백성을 윤택하게 하십시오.

……(중략)……

(1) 관직과 지위를 파는 일을 금지하여 근본을 다스려야 합니다. 관직을 팔면 관리는 반드시 백성의 재산을 탐하여 관직을 사는 데 들인 비용을 메우려고 할 것이며, 지위를 팔면 그 지위는 반드시 천해져서 나라에 공을 세우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관직과 지위를 팔 것 같으면 더러 사기를 원하는 자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부유한 백성에게 관직과 지위를 받을 것을 강요하여 만약 순순히 받지 않으면 포도청에 가두고 협박하여 그 값을 내게 하니, 이것은 강제로 백성의 재물을 뺏는 것과 같습니다.

(2) 군주의 녹봉을 정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황제가 무한한 주권을 갖고 있지만 역시 녹봉이 정해져 있습니다.

(3) 낭비를 절제하고 쓸모 없는 관원을 가려내며 관원의 녹봉을 고쳐서 그 직책에 알맞게 해야 합니다. 관직의 봉록이 적어서 스스로를 구제하기에도 넉넉하지 못하면 반드시 탐욕스럽고 비루한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4) 호구를 상세히 기록하여 세입과 세출을 산출하는 데 편리하게 하십시오.

(5) 호의 차례를 정하여 가호 통제(統家)의 제도를 개정해야 합니다.

(6) 토지세를 다시 조정하고 토지 소유 증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7) 도량형을 통일해야 합니다.

(8) 백성들이 외국인에게 토지를 파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

(9) 법을 정하여 놀고먹는 것을 금지하게 하고, 인건비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만약 인건비를 하나로 통일시켜 정한다면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구별이 없게 되어 부지런히 일해도 그 보답을 받지 못하는 까닭에 반드시 게으른 자와 더불어 똑같이 게을러질 것입니다.

(10) 세금을 적게 걷고 관용으로써 그 법을 실행하여 치우침이 없게 해야 합니다.

(11) 농업과 잠업을 장려하고 영농법과 농기구 사용의 이로움을 가르쳐야 합니다.

(12) 양을 기르게 하여 장차 의복을 만들게 하고, 외국인을 고용하여 양을 기르는 방법을 가르치게 해야 합니다.

(13)육축(六畜)을 의무적으로 기르게 해야 합니다. 비록 소가 많으나 기르지 않는다면 반드시 모자라게 될 것입니다. 말의 수가 적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니 서양 말의 종자를 얻어 번식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14) 공업과 상업을 일으키고 그 방법과 기술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15) 어업을 일으켜 무궁한 이익을 얻게 해야 합니다.

(16) 수렵업(狩獵業)을 일으켜 백성의 위험을 구제하는 동시에 팔 수 있는 훌륭한 품목을 얻게 해야 합니다.

(17) 산림사(山林司)를 설치하여 산림과 하천⋅연못을 수선하고 다스려서 목재⋅땔감⋅수산물의 결핍을 면하게 하고, 또 산과 하천의 사태로 인한 전답의 피해를 막아야 합니다.

(18) 제언사(堤堰司)로 하여금 제방을 고치거나 새로 쌓게 하여 수해를 면하게 하고 물을 댐으로써 가뭄을 면하게 해야 합니다.

(19) 준천사(濬川司)로 하여금 수리(水利)를 다스리게 하여 홍수나 붕괴를 면하게 하고 선박의 통행을 편하게 해야 합니다.

(20) 치도사(治道司)를 두어 항상 길과 다리를 고치게 해야 합니다.

(21) 백성이 개인의 돈으로 물길을 트고 길을 수리하고 다리를 설치하여 해당 장소에서 통행료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22) 내륙과 섬 지방의 황무지를 개척해야 합니다.

(23) 금⋅은⋅동⋅철⋅석탄의 광산을 크게 열고 외국인을 고용하여 감독하게 해야 합니다.

(24) 금⋅은⋅동전을 제조하여 당오전(當五錢)의 폐단을 구제해야 합니다.

(25) 통용되는 화폐를 녹이는 행위를 금해야 합니다.

(26) 통용되는 화폐를 혁파하여 백성의 재산을 침해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예부터 내려오는 관례지만 다시는 행해서는 안 됩니다.

(27) 은행을 설립해야 합니다.

(28) 이자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29) 우정국(郵政局)을 다시 설치해야 합니다.

(30) 주교사(舟橋司)로 하여금 선박에 대한 정책을 다시 일으키게 하고 등대와 부표를 바닷길에 설치해야 합니다.

(31) 백성이 회사를 설립하는 것과 외국의 각 부두에서 장사하는 것을 도와야 합니다.

(32) 백성이 육로 운송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돕거나 아니면 관청에서 직접 설립하여 내륙의 상품 수송을 편리하게 하고, 또한 절도 사건이 발생할 우려를 없애야 합니다.

(33) 경성의 개시장(開市場)을 철폐하고 외국인들을 내보내어, 우리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경영하게 해야 합니다.

(34) 밤에는 도로변에 등을 설치하여, 행인들을 편하게 하고 절도 사건이 발생할 우려를 줄여야 합니다.

(35) 통행금지를 풀어 백성들이 밤에 장사하는 것을 허용해야 합니다.

(36) 관청에서 통용 화폐의 가치와 기타 물품의 가격을 정해서는 안 됩니다.

(37) 어떤 물건이든 대형 상인이 이익을 독점하여 백성의 생활을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단, 처음 시작하는 경우에는 허락할 수 있습니다.)

(38) 홍삼의 판매 금지를 풀어 통역관들이 회사를 세우고 홍삼의 수출을 늘리도록 해야 합니다.

(39) 서북 지방 사람들로 하여금 장백산의 목재를 벌목하게 하고 대신 어린 나무를 심도록 해야 합니다.

(40) 교사를 고용하여 청국의 비단⋅도자기, 일본의 칠기⋅그림⋅조각⋅구리⋅철⋅화훼⋅정원 등의 기술을 인민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41) 인민에게 여관⋅의류점⋅음식점을 많이 설립하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문명국가에서는 이 세 가지가 가장 번성하고 있습니다.)

(42)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빚을 떼어먹을 것 같으면 단지 본래의 죄인에게만 그것을 물어내게 하고 친족이나 이웃을 빈곤에 이르게 하면 안 됩니다. (본래 법인의 부모⋅형제⋅처자라 해도 역시 강제로 빚을 갚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량한 무리들이 욕심을 내거나, 아니면 자식들이 옳지 않은 마음을 품게 됩니다. 따라서 이 법은 반드시 폐지해야 합니다.)

(43) 새롭고 낡은 물건의 매매 규정을 정하여 매매를 편리하게 하고 절도가 발생할 우려를 줄여야 합니다.

(44) 백성 중 장성한 자나 어린이들에게 납세하여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도리를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마음으로 납득하게 한 연후에 농민⋅기술자⋅상인에게 세금을 징수하여 지금의 급한 일에 쓰게 해야 합니다.

4. 백성을 보살펴 건강하고 번성하게 하십시오.

(1) 혜민서에 훌륭한 의사를 초빙하고 의약을 중흥시켜 백성의 생명을 보호해야 합니다.

(2) 활인서에 전염병 치료 병원을 개설하고 그 규정을 엄격히 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하고 병든 사람들을 힘써 구제하고 치료해야 합니다. (혜민서활인서 두 관청은 궁핍한 백성을 구제하고 병을 치료하는 곳이며, 이전 임금들이 백성을 구휼하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쇠퇴하여 유명무실하게 되었으니 진실로 안타깝습니다.)

(3) 궁핍한 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사람들과 장애인들을 구제해야 합니다.

(4) 아이를 버리는 것을 금지하고 법률을 만들어 아이를 양육하게 해야 합니다.

(5) 남자나 여자가 독약을 마시고 죽으려 하거나 자해하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

(6) 부녀자가 독을 마시고 낙태하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

(7) 부귀를 탐하여 자손을 거세시키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

(8) 남편이 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

(9) 자식을 폭력으로 기르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

(10)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옛 풍속에 따라 혼인의 연령을 다시 정해야 합니다.

(11) 아편을 피우는 것을 엄금해야 합니다.【 지금 비록 모든 사람이 아편을 피우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예방하여 금지하지 않으면 반드시 만연하게 되어 인간의 심신을 미혹하고 신체를 상하게 하고 정신에 해독을 끼치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12) 인민들을 교육하여, 만약 전염병에 걸리면 곧 약을 복용해야 하며 무당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야 합니다.

(13) 널리 우두 접종을 시행하여 사람들이 요절하고 소가 전염병에 걸리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신은 일본에서 일본 국민 중 젊은 사람 얼굴에 마마 자국이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일본이 나날이 문명국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증표입니다.】

(14) 궁궐, 민간의 거리, 나라의 시내와 도랑에 이르기까지 깨끗이 하고 분뇨⋅먼지⋅지푸라기 등을 모아 치우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다만 건강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농사에도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궁궐로부터 민간의 거리, 도로, 시내와 도랑에 이르기까지 먼지가 쌓여 언덕을 이루었고 분뇨가 도금한 것 같이 되어 외국인들의 꺼림과 비웃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관상 아주 보기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증발하여 반드시 전염병을 퍼뜨리게 될 것입니다.】

(15) 가옥을 도로선 안에 짓는 것을 금지하고, 미리 곧은 도로의 선을 정하여 가옥의 기초를 세우도록 하며, 도로를 넓혀서 일정한 폭을 유지하게 하고, 가옥의 높이를 높여 일정한 높이를 갖게 함으로써 후일의 폐해를 막고 화재 및 가옥이 더럽고 누추해서 일어나는 피해를 막아야 합니다.【 옛날 집의 방과 지붕은 높고 넓었으며, 천장에는 또한 사각형 구멍이 있어서 악취와 연기를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방과 지붕을 낮고 좁게 만들고 천장의 구멍을 막았는데, 이는 지식이 점차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16) 민간에 화재를 막을 수 있는 도구를 설치하여 화재를 막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7) 옛 풍속에 따라 민가가 밀집된 곳이나 도로가에 나무를 심어 더러운 증기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대기의 좋은 기운을 맑게 해야 합니다.【 공기는 물과 같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18) 수도를 잘 만들어 민간의 길에 물을 대어 줌으로써 백성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하고 화재를 막는 것을 편리하게 해야 합니다.【 무릇 물이라는 것은 세간에서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맑고 깨끗이 하여 사람이 사용하면 건강하고 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의복⋅기구⋅가옥⋅길도 물이 아니면 더러운 것을 씻어 낼 수 없습니다. 또 민간의 가난한 백성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물을 길을 틈이 없으며 혹 문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일이 있을 때나 가물어 우물물이 말랐을 때는 물의 귀함이 금과 같아서 더러운 것을 씻을 수 없게 되어 매우 곤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수도는 몸을 건강하게 보살피는 데 제일 급한 일입니다. 또 물에 독이 있으면 끌어들인 물이나 우물물을 막론하고 모두 그 좋고 나쁨을 검사한 후에 백성들이 먹게 함으로써 병을 면하게 해야 합니다. 황해도 사람들 중에 장님이 많은 것은 또한 물에 독이 있기 때문이니, 깨끗한 물을 끌어들여 그 해로움을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 인민들을 가르쳐 목욕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때때로 몸을 닦게 하여 더러운 것과 전염병을 면하도록 깨우쳐야 합니다.

5. 군비(軍備)를 갖추어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십시오.

(1) 군사학교를 설립하여 종친과 백성들 중에서 준수하고 젊으면서 의기 왕성한 자들로 하여금 교습을 받아 장수와 병졸의 도를 익히게 하시고, 혹은 외국에 보내어 유학하게 해야 합니다.

(2) 먼저 군대를 양성하는 비용을 계산하여 평상시 들어오는 세금으로 그 비용을 나누어 정하십시오. 그런 후에 양병(養兵)을 도모하고 시작하여 불시에 발생하는 급한 난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3) 전국의 군사는 옛날의 법에 따르면 모두 병조(兵曹)에 속합니다. 병조로 하여금 모든 장수들에게 명령하게 하여 군제를 통일해야 합니다.

(4) 군대의 법률을 개정해야 합니다.

(5) 병사를 모집하는 법 및 병사로 복무하는 연한을 개정해야 합니다.

(6) 수군(水軍)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여서 수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故) 통제사(統制使) 이순신수군의 명장이었습니다.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기이했고 병사를 부리는 데 법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세의 사람들은 그 법을 끝내 익혀서 새롭게 만들지 못했고, 배를 손질하여 더욱 정밀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 그 병법과 함선이 함께 없어졌으니 애석한 일입니다.】

(7) 무기고를 보수하고 무기를 수리해야 합니다.【370년 전에 대포를 만드는 기술자인 이장손(李長孫)이 폭발하여 터지는 포를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진천뢰(震天雷)’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는 서양보다 앞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용하여 포상하고 그 무기를 수리하여 더욱 정밀하게 만들지 못한 까닭에 그 모든 것이 쇠퇴하여 이전에도 미치지 못하며 오늘의 극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8) 수만의 군대를 양성하여 잠시나마 충분히 나라 안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9) 함경도와 평안도에 잘 훈련된 병사들을 배치하여 서북쪽의 일에 대비해야 합니다.

(10) 개국 이래 나라를 위해 죽어 간 장수와 병졸의 후손들을 가엾이 여겨 보살피시고, 또한 그 영혼들에게 제사 지내서 장수와 병졸들의 사기를 북돋아 줘야 합니다.

6. 백성들에게 재주와 덕행과 문화와 기예를 가르쳐서 근본을 다스리십시오.

(1) 소학교와 중학교를 세워 남녀 여섯 살 이상의 백성을 모두 학교에 나아가 수업을 받게 해야 합니다.

(2) 성인 학교를 세우고 한문이나 언문으로 정치, 재정, 국내외의 법률, 역사, 지리, 산술(算術), 이화학(理化學) 등의 책을 번역하여 관리 중에서 젊고 의기가 왕성한 사람들을 교육시키거나【 이것은 호당(湖堂)의 전례와 유사하며, 그 이익은 반드시 클 것입니다.】 혹은 팔도에서 장성한 선비들을 뽑아 교육시키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졸업할 때를 기다렸다가 과거 시험을 통해 문관으로 택하여 등용해야 합니다.

(3) 먼저 인민에게 국사⋅국어⋅국문을 가르쳐야 합니다.【 본국의 역사⋅문장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청국의 역사와 문장을 가르치는 까닭으로 인민이 청국을 근본으로 삼아 중시하면서 자기 나라의 제도는 알지 못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를 가리켜 “근본은 버리고 말단을 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외국인을 고용하여 인민에게 법률, 재정, 정치, 의술, 궁리(窮理)와 여러 재주,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5) 활자를 주조하고 종이를 만들며 또 인쇄소를 설립하여 서적을 풍요하고 넉넉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배우고자 해도 서적이 없으면 배울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문명국은 서적이 풍부합니다. 신이 일본에 대해 부러워하는 점은 종이 값이 싸고 활자가 많고 인쇄가 편해 서적이 풍부하고 학교가 많아 학생이 많은 것입니다.】

(6) 박물관을 설립하여 인민의 견식을 넓혀야 합니다.

(7) 인민 중 혹 지식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때때로 군중을 모아 세상일을 연설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고루함을 열게 해야 합니다.

(8) 동서양 여러 나라의 어학을 융성하게 하여 교류⋅친선에 편리하게 해야 합니다.

(9) 규칙을 정하여 인민이 신문국(新聞局을) 설치하여 신문을 인쇄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합니다. (신문이란 것은 조정의 일을 논의하고 관명(官命)을 공고하고 관리의 진퇴와 항간의 소문, 외국의 형세, 학문과 예술의 성쇠, 농사의 풍흉, 물가의 고저, 무역의 성쇠, 민간의 고통과 즐거움, 생사와 존망(存亡), 각종 신기한 이야기 등을 기재합니다. 모든 사람의 이목에 새로운 것을 좇아 그것을 기록하고 혹은 그림을 붙여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 외에도 모든 사람이 각각 신문을 신뢰하여 모든 일을 널리 알리므로 크게 편리하여 비록 방 안에 문을 닫고 있어 문밖 사정을 볼 수 없거나 혹은 수억만 리에 떨어져 고향 소식을 얻을 수 없는 사람도 한 번 신문을 보게 되면 명료하게 세간의 사정을 알게 되어 꼭 직접 사물을 대하는 것 같은 까닭에 인민으로 하여금 널리 듣고 보게 하고 일의 사정을 명확히 알게 하는 것 중에 이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 구미 여러 나라는 신문국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나라의 문명 여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10)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혹은 묻지 않고 묵인하면서 백성들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것이 정당합니다. 다만 화란(禍亂)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당(敎堂)의 건축은 허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7. 정치를 바로잡아 나라를 평정하십시오.

(1) 폐하께서 친히 모든 정사(政事)를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그것들을 관원들에게 각각 맡겨야 합니다.

(2) 어진 재상을 택해 정무(政務)를 전담하게 해야 합니다.

(3) 종실을 숭상하여 종묘사직을 공고히 해야 합니다.

(4) 모든 직무는 그 담당자가 맡도록 하여 정사를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5) 공(公)⋅경(卿)⋅대부(大夫)로 하여금 정무를 다스리게 하고 하급 관리에게는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6) 작은 고을을 합하여 큰 고을로 만들어야 합니다.

(7) 작위와 재물로 공적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으나, 관직으로 상을 줘서는 안 됩니다.

(8) 외국인에게 관직과 직위를 줘서는 안 됩니다.

(9) 붕당들로 하여금 옛 증오를 풀고 서로 혼인하게 하며 정부에서도 그들을 구분하지 말아야 합니다.

(10) 고을의 관리와 재판관은 인망(人望)에 따라 등용해야 합니다.

(11) 현회(縣會)라는 제도를 만들어 백성으로 하여금 백성의 일을 의논하게 하여, 공사(公私) 양쪽이 편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정부의 산림(山林)과 부현(府縣)의 좌수(座首)들은 유학의 가르침에 입각해 백성의 바람에 따라 선발되어 백성과 나라의 일을 함께 의논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정 역시 임금과 백성이 함께 통치하는 풍속이 있습니다. 신이 예전에 듣기로 “다스림과 덕이 융성할 때 산림의 권위는 온 세상을 움직였고 나라의 중대한 일은 반드시 의논을 거친 후에야 정책을 시행했다”고 했습니다. 만약 이 제도를 더욱 확대하여 더욱 정밀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면 문명의 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백성에게 자유의 권리가 있고 임금에게 권위의 한계가 있으면 백성과 나라가 영원히 평화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에게 자유의 권리가 없고 임금의 권한이 무한하다면 비록 잠시 강성한 시기가 있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쇠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에 일정한 틀이 없어 임의대로 판단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12) 청국은 조심스럽게 대하고 러시아와 신중히 화합하며 미국에 의탁하고 일본과 친교하며 영국⋅독일⋅프랑스 등의 나라들과 국교를 맺어야 합니다.

(13) 신뢰로써 외국과 교류하여 배신하지 않으며, 또 더불어 조약을 맺을 때 반드시 신중을 기해 경솔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들은 그 이익과 손해를 대강 알고 있습니다.)

(14) 외국과 교류할 때 주권을 잃거나 국체에 손상을 입혀서는 안 됩니다.

8. 백성에게 합당한 자유를 주어 원기를 배양하도록 하십시오.

(1) 명령에 따라 남자가 첩을 얻는 것을 금지하며 과부가 임의로 재혼하는 것을 허락하십시오.

(2) 양반상민중인⋅서민이 임의로 서로 혼인하도록 해야 합니다. 재주와 덕이 있는 자라면 신분이 천할지라도 높은 관직에 등용하십시오. 이 같이 하면 남녀 귀천의 형세가 반드시 점차 균일해져서 평화로운 기운이 온 나라에 가득할 것입니다.

(3) 때때로 인민으로 하여금, 사람이 사람을 탈 수 없으며 사람을 쓰는 데 짐승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깨우치게 하여 수레⋅말⋅소로 그것을 대신하도록 하면, 점차 그것이 수치임을 알게 되어 스스로 멈추게 될 것입니다.

이상에 나열한 8개 조항은 단지 경성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감히 전국을 함께 논한 것입니다. 이 같은 얕은 견해를 그 누가 모르겠습니까. 다만 아는 사람은 당연히 행할 것이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본 외무성, 『일본외교문서』21권, 292~311쪽

在留日本 臣朴泳孝 謹四拜 上言于統天隆運 肇極敦倫 大君主陛下 伏以臣家 以世臣之裔 至於臣代 父子兄弟 特被寵遇 是以臣父子常感激殊恩 不知所報 臣父故判書 臣元陽 常戒臣兄弟曰 許身事君 忠當盡命 爲國圖報 不避危難 臣以年少學淺 雖聞其言而不解其意 徒以仰答 聖恩之萬一爲心 而不能辨事理之順逆 乃至甲申 擅行輕卒之擧 而運與心違 於公則敢致陛下震怒 而及於三國之紛亂 於私則空致臣之父母兄弟朋友之死戮 而事終無益於國 臣與無仁無義之徒相似矣 豈敢不赴命伏罪 然其由實因於忠君愛國之心 而不因於纂逆亂國之意矣 近世文明之國 裁刑辨罪 務斫其情原 而不以糢糊 則臣不當以逆名處罪 上以累聖世之德 下以汚臣之死 故臣敢違命脫國 逗遛殊域 以待聖朝之文明 郁郁日新 不以臣爲逆臣之時而已

……(中略)…… 伏願聖明 不以此言爲逆臣之言 而釆之無疑 臣臨書表 心忙神迷 語多重疊 言或失敬 臣無任悚懍之至

開國四百九十七年正月十三日(註明治二十一年二月二十四日)

一曰 宇內之形勢

方今宇內萬國 猶昔之戰國也 一以兵勢爲雄 强者幷其弱 大者呑其小 常講武備兼修文藝 相競相勵 無不爭先 各欲逞其志以震威於天下 乘他之釁隙而奪之 故波蘭土耳其 本非微弱之國 然皆因自國之困亂 或見裂 或見削 無復興復之日 雖有萬國公法 均勢公義 然國無自立自存之力 則必致削裂 不得維持 公法公義 素不足以爲恃也 以歐洲文明强大之國 亦見敗亡 況亞洲未開弱小之邦乎 大凡歐人 口稱法義 心懷虎狼 故自三四百年之前 以至于今 其所幷呑者 南北亞米利加洲也 亞非利加洲也 南洋群島也 澳斯太利亞洲也 漸及我亞洲之地 斯非利亞也 土斯坦也 印度也 緬甸也 淸之黑龍江省也 香港也 日本之樺太島也 已過亞洲之半 而以亞洲論之 則其所餘者 不及其所失 以天下論之 則所餘者 十過十分之一 而彼猶不饜 尙耽耽虎視 其志向 果在於何處乎 此亞洲東部興亡盛衰之秋 而我同族奮起排難之時也 然我亞洲之族 懶惰無恥 苟苟偸生 絶無果敢之氣 是臣所以寒心歎息者也 若魯欲東侵 鑿山開道 以及於東海之濱 察諸國之勢 見我無備 而先出於我之西北 略咸平兩道 而據日本海黃海之水利 絶三國之兩膝 而擅亞洲之禍福 則我邦之事已去矣 雖有奮起排難之志 亦不能如之何也 夫魯雖君主獨裁之邦 然其政治法紀 勝於我邦 故我人民 一安其便 則更不樂我朝之興復也 印度雖亞洲中盛大之邦 亦因其內亂無備 爲英所領 其人民樂承英政府之命 不欲自立政府者 無他 英之法律寬 而政治正 人人各安其生 故恐離英政 而再陷苛政也 臣按亞洲 天下靈氣所藂之處也 故儒 佛 耶蘇 及囘囘敎之祖 皆出於此土 古昔盛時 非不文明 然至于近代 却讓歐洲者何也 蓋諸邦之政府 視民如奴隷 不導之以仁義禮智 敎之以文學才藝 故人民蠢愚無恥 雖見領於他 而不知爲恥 禍亂將至 而不能覺 此政府至過也 非人民之過也 中庸云 凡事豫則立 不豫則廢 言前定則不跲 事前定則不困 行前定則不疚 道前定則不究 爲亞洲諸政府謀者 豈可苟安消日哉

二曰 興法紀安民國

……(中略)……

一 凡處訴訟及大小輕重之罪 只任判官裁之 而不可以主權擅裁事【凡人性因喜怒哀樂恐懼憂慮 而失其常 故裁刑判罪 不可不任他人處斷也】

一 廢酷刑 以保生命事【法酷 故失國之主權於外國也】

一 廢孥戮之典 只治原犯 而不可及父母兄弟妻子事

一 考問罪人 不可濫刑 誣服其罪事【雖有捧遲晩 自服其罪之法 然多因酷刑誣服也】

一 凡諸大小輕重之罪 必彰明罪證而自服 然後可以繫獄處刑事 野鄙不開之國 人民繫獄被刑 而不解自己之罪者多也

一 廢如捕廳之隱匿刑殺事 雖被刑殺者之父母兄弟妻子 而不知其繫獄 被殺 豈非無法殘忍之政哉

一 聽訟斷獄 不可秘之 而許衆庶 入場傍聽 則判官欲用酷容私者自減事

一 定懲役之法 設懲役之場 而非最重大之罪 不可殺之 幷使之懲役事

一 廢捕盜廳 而於巡廳 增削其規例 置警巡之士二萬 則姑足以導民心 察民情 制强暴 救窘急事

一 嚴禁宰相 士大夫 以及庶民 各於私家用刑 而雖係自己之子弟 奴婢 必仰公裁事

一 嚴禁宰相 士大夫之行强暴於下類事

一 令人民貸償賣買 凡諸款約證文 務爲照詳 兼捺名印 以便後訟 而文證糢糊者 不可聽訟事

一 定貴賤人民之墓地于各處 而禁埋于他 以除山訟之煩 又便後日之鑛務事

三曰 經濟以潤民國

……(中略)……

一 止賣官鬻位之事 而治其本事 賣官則其官必貧於百姓 以充其所出 賣位則其位必賤 而國無立功之人也 且賣官賣位 或有願買者 然大槪勒授官位於富民 而如不承願 則囚於捕廳而勒捧其價 此與强奪民財同也

一 定君主之祿事 以魯帝無限之主權 亦有定也

一 節浪費 汰庸官 而改定官祿 以稱其職事 官祿薄 而自救不贍 則必生貧鄙之心

一 詳籍戶口 以便量入爲出事

一 定戶之次第 而改定統家之法事

一 改量地租 而設地券事

一 定尺度量衡事

一 禁民之典鬻土地人於外人事

一 設法禁遊民 而不可定其雇價事 如一定其雇價 則勤惰無別 雖勤而無其報 故必與惰者同惰也

一 薄稅斂 寬其法 而無偏頗事

一 勸農桑 而敎民以作農之法 用具之利事

一 令牧羊以圖後日之衣服 而雇外人使敎牧羊之法事

一 務牧六畜事 牛雖多 不畜則必致缺乏也 馬小而不堪於用 則取西方之種 而繁殖可也

一 興工商 而使學習其法術事

一 盛興漁業 以取無窮之利事

一 盛興獵業 以濟民之危 而兼致售品之一大種事

一 置山林司 修治山林川澤 免於材木薪炭及魚鱉之缺乏 又免沙汰山川 而以害田畑事

一 使堤堰司 修築堤堰 以免水害 又儲水以免旱災事

一 使濬川司 常治水利 以免泛濫崩頹 而便舟楫之通行事

一 置治道司 常修道路橋梁事

一 許民以私錢疏水 修道 架橋 而在該處權收貰錢事

一 開拓內地及島嶼之荒蕪事

一 大開金銀銅鐵及石炭之鑛 而雇外人董督事

一 造金銀銅錢 而救當五錢之幣事

一 禁銷鎔通用之錢事

一 不可勒罷通用之錢 而害民之私有事 此雖古例 更不可行也

一 建銀行事

一 制限利息之法事

一 更設郵程(주 - 政?)局事

一 使舟橋司 重興船政 而置燈臺 浮標於海路事

一 助民興商社 而出商于外國各埠事

一 助民設陸運商社 或官設 而以便陸地運輸 且免於竊發之患事

一 撤京城開市 送出外國之人 而使國民營其業事

一 夜設燈于道側 以便行人 而少竊發之患事

一 弛巡邏之禁 而許民夜市事

一 不可官定通用錢相換之位値 及諸物品之價値事

一 勿論何物 不可許都賈 獨沾其利 以困民生事 係始發之者 則可以許矣

一 弛紅蔘之禁 使譯官設商會 而以益其出品事

一 令西北人 取長白山之材木 而代植稚木事

一 雇淸之緞錦磁陶等 日本之漆繪彫刻銅鐵 花卉庭園等 敎師以敎人民事

一 勸人民 多設旅店及衣食之廛事 文明之邦 此三事最盛

一 公私逋債 只使原犯償之 而不可族徵 洞徵 以致一族一洞之貧困 雖係原犯之父母兄弟妻子 亦不可强使之報償事 若不然 則惹赴悖類之慾 而又使子弟 生不良不節之心也 故不可不廢此法也

一 定新舊物賣買之規則 以便賣買 而少竊發之患事

一 敎民壯幼 以納稅保國安民之義 使之心得 然後徵稅於農工商 用於方今之急務事 若不先喩其利害 而猝行其政 則大致騷擾 而怨上也

四曰 養生以健殖人民

……(中略)……

一 於惠民署 騁良醫 重興醫藥 而保民命事

一 於活人署 改設疫癘病院 嚴其規則 使不傳染於他 而謹愼救治其病人事

  惠活兩署 救窮民治疾病之所也 先聖朝恤民之聖政 而挽近衰廢 有名無實 誠可惜也

一 設法救窮困之鰥寡孤獨 及身體不具之民事

一 禁棄兒 而設法養育事

一 禁男女飮毒害命及自傷等事

一 禁婦女飮毒墮胎事

一 禁貪富貴 而除去子孫之腎囊事

一 禁夫之行强暴於其妻事

一 禁養子孫以强暴事

一 禁幼年嫁娶 而依古俗定嫁娶之年限事

一 嚴禁吸鴉片烟事【今雖非人人皆吸 然若不預禁 則必致蔓延 迷人之心神 傷人之身體 而茶毒生靈矣 可不懼哉】

一 喩人民如有疫病 卽可服藥 而不可用巫瞽事

一 普行種牛痘 以救人之夭死及牛疫事【臣於日本 見其人民少壯者 顔有痘痕者甚稀 此日本日進文明之標也】

一 淸潔宮闕庭掖 以及閭巷街道川渠 而可定取除屎尿塵芥之規則 是非徒養生 亦於農務大有益事【自宮殿庭掖 以閭巷街道川渠 塵芥成丘陵 屎糞如塗金 此外人之所大畏 而誹笑者也 不啻所見 極其不美 其蒸發之氣 必釀成疫癘也】

一 禁造家屋于道路線內 而預定直道之線 建屋之基 廣其道路 有一定之幅 高其房屋 有一定之高 以免後日之弊害 而減少焚燒 壅塞汚陋之害事【古家之房屋高濶 而天頂又有大方孔 以出惡臭炭氣 而挽近低窄房屋 而又封天頂之方孔 此因於知識漸乏之故也】

一 置救火具於閭巷 以免焚燒事

一 依古俗 植樹木於人家稠疊處 及街道之側 以除汚穢蒸發之氣 而淸大空之養氣事【空氣爲用與水同也】

一 利水道 分注于閭巷街道 而便人民之需用 而又便於救火事【夫水者 世間不可無之需用物 而淸潤淨潔 人用之 致健壯康旺 且凡衣服器具家屋街道 非水不能以洗滌汚穢也 又閭巷貧民 無行遠方以汲水之暇者 或有不能出門之事者 或旱而井渴之時 則貴水如金 不能洗滌汚穢 大致困難 然則利水道事 養生之第一急務也 且水或有毒 勿論注水井水 皆可檢査其良否 然後可使民服飮 以免疾病也 黃海道民多盲者 亦因水之有毒 則不可不導淸淡之水 以救其害也】

一 喩人民設沐浴之所 時時洗滌身體 以免汚穢瘡疥事

五曰 治武備 保民護國

……(中略)……

一 置兵學校 令宗親及四民之俊秀少壯者 就校習將兵之道 或遣外國 使留學事

一 先筭養兵經費 以通常歲人(주 - 入?) 區劃其用 然後可以營始 以免臨時窘急擾亂事

一 全國之兵 依舊例統屬于兵曹 使之號令諸將 而全一軍制事

一 改定軍中法律事

一 改定募兵之法及在役年限事

一 重興水軍事【我邦三面跨海 必不可無水軍也 故統制使 臣李舜臣 水軍之名將也 創造龜艦 其製甚奇 而用兵有法 然終無講其法 而益新之 修其艦 而益精之 故至今日 其法其艦 共無 惜哉】

一 重修武庫 修繕武器事【三百七八十年前 鑄砲匠 李長孫 創造炸裂砲 名之曰 震天雷 此先於泰西云 我邦非無其人 然不能擧用其人 而褒彰之 修理其器 而益精之 故百事頹敗 不及前日 而至今日之極度也】

一 養兵數萬 姑足以鎭邦內事

一 於咸平兩道 敎閱兵士 以備西北事

一 以特典顧恤 自開國以來 爲國戰亡將卒之後孫 且祭其靈魂 以獎勵將卒之氣事

六曰 敎民才德文藝以治本

……(中略)……

一 設小中學校 使男女六歲以上 皆就校受學事

一 設壯年校 以漢文 或以諺文 譯政治財政內外法律歷史地理及算術理化學大意等書 敎官人之少壯者【此似湖堂古事 而其益必大也】 或徵壯年之士于八道 以敎之 待其成業 以科擧之法試之 而擇用於文官事

一 先敎人民以國史及國語國文事【不敎本國之歷史文章 而但敎淸國之歷史文章 故人民以淸爲本而重之 至有不知自國之典故者 此可謂捨本取末也】

一 雇外國人 敎人民以法律財政政治醫術窮理及諸才藝事

一 鑄活字造紙 而多設印板所 以繁富書籍事【人欲學 而無書籍 則不能學 故文明之國 書籍殷富 臣之所大羡於日本者 紙價賤 而活字多印刷便 而書籍殷富 學校多 而學生衆也】

一 設博物館 以廣人民之見識事

一 許人民 或使有識者 時時聚衆 演說世事 以開其固陋事

……(中略)……

一 定規則 許人民設新聞局 而印賣事 新聞者 評議朝廷之事 及公告官命 官吏進退 市街風說 外國形勢 學藝盛衰 耕作豐凶 物價高低 交易盛衰 民間苦樂 死生存亡 異事珍談 凡人耳目之所新者 逐一記載 或附圖畫 無不詳明 其他人人賴之 廣告凡百之事 大爲便利 故雖閉居一室 不見戶外 或居萬里殊域 不得鄕信 而一見新聞 則瞭然知世間之情 恰如現接其事物 故使人民博聞見 明事情者 莫過於此 是以方今歐美諸邦 以新聞局之多少 較國之文明與否云

一 勿論其敎 或可默許不問 任民自由 然姑不可許建築堂宇 以惹起禍亂事

七曰 正政治 使民國有定

……(中略)……

一 不可 親裁萬機 而各任之其官事

一 擇賢相 專任政務事

一 崇 宗室 以固宗社事

一 凡職掌 當其職 治其政事

一 使公卿大夫治務 而不可任小吏事

一 合小縣爲大縣事

一 賞功以爵位及財寶 而不可以官事

一 不可授官位于外國人事

一 許官吏起服行公事

一 使四色罷舊嫌相婚姻 而政府不可分別之事

一 縣宰及司訟之官 隨人望而登用事

一 設縣會之法 使民議民事 而得公私兩便事 今政府之山林 府縣之座首 皆因於儒敎 隨民望選拔 而協議民國之事 則 本朝亦有君民共治之風也 臣聞前日 治隆德盛之時 山林之權 傾動一世 國之大事 必經議論 然後行政云 若推此法 而廣之 漸瑧益精益美 則可謂文明之法也 凡民有自由之權 而君權有定 則民國永安 然民無自由之權而君權無限 則雖有暫時强盛之日 然不久而衰亡 此政治無定 而任意擅斷故也

一 致謹於淸 愼而和魯 倚托於美 親交日本 結英德法等國事

一 交外國以信 不可違背 且與約必愼 不可輕卒事 臣等槪知其利害矣

一 與外國交 勿失主權 損國體事

八曰 使民得當分之自由 以養元氣

……(中略)……

一 從令禁男子娶妾 而許孀婦任意改嫁事

一 令班常中庶 任意相與婚姻 而如有才德者 雖賤用之於大官事 如此則男女貴賤之勢 必漸至均一 而和氣滿國也

一 時時喩人民 以不可以人乘人 用人如獸之義 而使用車馬牛代之 則漸知其爲恥 而自止也

右八條所列 非但以京都論之 敢擧全國統論也 似此淺見 孰不知之然 行之者 知之者也 不行之者 不知者也

日本 外務省, 『日本外交文書』21卷, 292~311쪽

이 사료는 1888년(고종 25년) 2월 24일 갑신정변 주역으로 일본에 망명 중이던 박영효(朴泳孝, 1861~1939)고종(高宗, 재위 1863~1907)에게 올린 개화 정책을 담은 건백서이다.

갑신정변의 주동자였던 박영효는 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김옥균(金玉均, 1851~1894)서재필(徐載弼, 1864~1951)⋅서광범(徐光範, 1859~1897) 등 정변을 함께한 동료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다. 부마의 위치에 있던 박영효갑신정변 주동자들 중 가장 높은 신분이었다. 박영효가 1926년 잡지 『신민(新民)』에 기고한 「갑신정변」에 의하면, 정변 집행의 총지휘를 담당한 사람은 박영효였다. 정변이 있고 40년이 지난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실을 윤색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여하튼 박영효는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는 가장 주목하며 감시하던 인물이었고, 실제로 송환 요구도 빈번하게 제기되었다.

이에 박영효는 신변의 안전을 확실히 하는 한편 새로운 문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1885년(고종 22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결국 적응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서재필이 노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결국 의사로서 자수성가한 데 비해 개화 정치가로서는 초라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후 일본에서 메이지학원(明治學院)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우면서 망명지에서 개화 사상을 정립해 나갔다

이 글은 박영효고종에게 개화 정책을 제안한 상소로서, 원문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일본외교문서(日本外交文書)』제21권에 「조선국 내정에 관한 박영효 건백서(朝鮮国内政ニ関スル朴詠孝建白書)」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것이 최초인데, 지금까지 각 연구에서 인용되어 온 원문⋅번역문들의 저본이다. 『일본외교문서』에 덧붙여 있는 해설에 따르면, 당시 외무차관이던 하야시 다다스(林董, 1850~1913)가 1894년(일본 명치 27년) 7월 중순 누군가에게 빌려서 열람하던 중, 훗날 참고하기 위해 복사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1894년 7월은 청일 전쟁, 갑오개혁, 박영효의 귀국 등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당시 일본 정부가 조선에 개혁을 요구하는 데 박영효의 의견을 참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상소가 실제로 고종에게 발송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 조선에서 박영효의 위치가 ‘대역부도죄인(大逆不道罪人)’이었음을 감안하면, 설령 박영효가 이를 고종에게 보내려고 했어도 제대로 전달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박영효가 이 상소를 쓴 계기는 1886년(고종 26년) 김옥균이 〈동경일일신문(東京日日新聞〉 1886년 7월 9일자에 게재한 ‘지운영 사건 규탄 상소문(池運永事件糾彈上疏文)’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886년 5월 조선 정부가 통리군국사무아문 주사였던 지운영(池運永, 1852~1935)을 보내 김옥균을 암살하려다 미수로 끝난 사건이 발생하자, 김옥균이 이를 규탄하는 한편 자신이 생각하는 개화 정책의 방향을 밝히는 상소 형식의 글을 발표하였다. 박영효상소김옥균상소에는 유사한 부분이 상당히 많으며, 박영효상소 내용이 더 많을 뿐 아니라 구체적임을 감안할 때, 김옥균상소에 기반해 박영효가 자신의 생각을 확장⋅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자신의 정치적 동지였던 김옥균이 암살 시도를 당했다는 사실과 ‘지운영 사건 규탄 상소문’ 발표 이후 김옥균에 대한 일본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었다는 점이, 박영효가 자신의 글을 공표할 수 없었던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글은 반역자로 낙인찍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서론 격에 해당하는 부분과 (1) 세계의 형세, (2) 법률 개혁 정책(12건), (3) 경제 발전 정책(44건), (4) 의료 보건 민생 정책(19건), (5) 군비 강화 정책(10건), (6) 교육 개혁 정책(10건), (7) 정치 개혁 정책(14건), (8) 민권 신장 정책(3건)으로 구성된다. (1) 세계의 형세는 특별한 정책 없이 세계 정세에 대한 개략적인 서술만 있으며, 나머지는 대략의 취지를 설명한 이후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박영효는 자신의 갑신정변 시도가 “일의 순역(順逆)을 모른 채 경솔하게 저지른 일”임을 자인하고 있다. 또한 “국가에 아무런 이득이 없으며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결과만 얻게 되었다”고 자책하고 있다. 그러나 갑신정변의 시도만은 ‘충군애국(忠君愛國)’에서 나왔으며, 이에 대해 고종이 자신을 신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김옥균상소에 비해 조선 정부 대신들을 비난하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는 반면, 갑신정변에 대한 반성적 표현은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편이었던 박영효의 개인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며, 한편 김옥균은 직접 암살 시도 대상이었던 반면 박영효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1) 세계의 형세에서 박영효는 당시 세계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마찬가지로 열국이 경쟁하는 시대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표현은 이미 1880년경 조선에 유입된 중국의 개화 서적인 『이언(易言)』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김윤식(金允植, 1835~1922)⋅어윤중(魚允中, 1848~1896) 등 외교에 정통했던 관리들도 사용한 바 있어 박영효의 독창적인 생각이라고 하긴 어렵다. 나아가 박영효는 당시 국제법으로서 조선에 소개된 「만국공법(萬國公法)」과 공의(公義)의 원칙이 실제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특별히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당시 청국과 일본이 모두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경계했던 반면 조선 정부는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 이후 강화된 청국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대러 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했다는 것과 사뭇 다른 노선이라고 하겠다.

(2) 법률 개혁 정책으로는 총 14건을 제시하고 있으며, 참혹한 형벌 폐지, 연좌제 및 노륙법(孥戮法) 폐지, 사형 금지, 고문 폐지 등 근대적인 형벌 제도 도입이 주된 내용이다. 한편 포도청 폐지 및 신식 경찰 기구 설립, 재판 제도 완비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 중 연좌제⋅노륙법은 박영효가 실제로 피해를 당한 죄목이며, 이후 독립 협회가 설립된 뒤 가장 먼저 개혁을 요구하며 비판한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2)의 정책 중 가장 먼저 제시된 것은 국왕이 사적으로 재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는 (7)의 정치 개혁 정책과 함께 고종의 군주권을 위협하는 지점으로서 박영효의 정치 구상을 보여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3) 경제 발전 정책은 모든 분야 중 가장 많은 44건의 정책으로 이뤄져 있어 박영효의 주요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제시된 관직 매매 금지 정책과 군주 봉급 확정 정책은 고종에게 정치적 위협이 될 조항으로, 박영효가 이를 첫머리에 배치한 의도를 주목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그 외에 정부가 고가(雇價)를 획일적으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제안과 화폐 가치 및 상품 가격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제안은 경제를 전근대적 통제로부터 독립시켜 발전시키려는 자본주의적 지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민간 상회사를 적극 설립하도록 독려하고 정부가 직접 나서서 상공업을 진흥시켜야 한다는 정책도 물론 포함하고 있다. 한편 이자 소득을 제한할 것과 대형 상인들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제안은 민생 보호를 위해 정부의 통제력을 발휘할 것을 주장한 내용으로, 앞의 정책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4) 의료 보건 민생 정책은 19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질병⋅화재 등 사건 사고에 대한 구제와, 저소득층 및 장애인에 대한 구휼 등이 명시되어 있다. 그 중 주목되는 것은 남편이 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부모가 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용인되었던 가족적 영역에도 ‘인권’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박영효가 민(民)에 대한 공적 책임의 영역을 새롭게 확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도시 내 위생을 강조하는 정책 제안에서 질병과 위생의 문제가 “외국인들의 꺼림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 지적했는데, 이는 박영효의 민생 정책도 외국인의 시선과 기준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5) 군비 강화 정책은 10건이 제시되었으며, 다른 분야에 비해 내용이 소략한 편이다. 주목되는 점은 수군을 다시 일으키고 무기를 갖출 것을 제안하면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장손(李長孫, ?~?) 등 옛 인물을 예시로 들고 있다는 점이다. 개화 정책의 주요 요소가 조선의 예전 정책 및 문화에 반영되어 있었다는 논법은 다른 정책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는 아마도 고종 및 조선 정부 대신들에게 설득력을 행사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훈련된 군사들을 함경도와 평안도에 배치해 서북 지방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제안의 의도가 주목된다. 당시 조선은 청국에 강력하게 종속되어 있던 상황이었고, 따라서 조선과 서북쪽 국경을 형성하고 있던 청국과 국경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한편 박영효가 그 침략성을 우려하던 러시아는 동북쪽인 데다 육로로 침입할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오히려 남방의 거문도를 해군기지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북 지방의 안전을 지키라’는 박영효의 주장은 국제적 분쟁보다는 서북 내의 불온한 시도에 대비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는 신분과 붕당의 차별을 없애자고 주장했던 박영효조차 서북인에 대한 서울 양반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6) 교육 개혁 정책도 10건으로 이뤄졌으며, 서양의 신학문을 가르치는 교육기관 설립하고 남녀노소에게 개방하여 가르칠 것을 제안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 외에 주목할 것은 청국의 문화만 가르치고 조선의 문화는 가르치지 않는 것을 비판하는 민족주의적 담론과, 신문사를 설립하여 국민들을 계도하는 한편 정부의 행위를 감시하도록 하자는 주장이었다. 특히 신문사의 유래⋅기능과 신문의 내용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는 박영효가 한성 판윤이었던 시절 〈한성순보(漢城旬報)〉의 발간 책임자였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7) 왕실에 대한 반역자인 박영효로서는 가장 위험하고 민감한 내용인 정치 개혁 정책은 총 14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고종의 군주권을 제한할 것을 직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황제의 친권이 도리어 민권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신 현명한 재상이 정무를 전담하고 각 대신 및 관료들이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며, 군주가 나서서 직접 정치를 주관한다거나 자의적으로 관리를 임명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군민공치(君民共治)에 대한 논거로 조선 정치계의 전통이던 ‘산림(山林)’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고종 및 조선 정부 관료들의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발언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특유의 논법으로 파악된다. 또한 외교정책으로 “청국은 조심스럽게 대하고 러시아와는 신중히 화합하며 미국에 의탁하고 일본과 친교하라”고 제시한 것은, 당시 사실상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청국의 영향력을 견제한다는 점에서는 일본과 입장이 유사하지만, 일본이 줄곧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위협으로 간주했던 것에 비한다면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한편 이 글의 앞부분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계성 발언을 이미 한 바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박영효의 대러 외교정책은 다소 불분명하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8)의 민권 신장 정책 3건은 남녀 차별, 신분 차별을 철폐하자는 내용이다.

이 사료는 갑신정변의 주동자 중 갑오개혁 이후까지 생존하면서 조선 정부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 박영효의 개화 정책을 통해, 당시 개화파의 정책적 지향 및 조선의 개화 정책 방향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근대로 열린 길-철도-」,『역사비평』75,정재정,역사문제연구소,2005.
저서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박천홍, 산처럼, 2003.
『일제침략과 한국철도 : 1892~1945』, 정재정,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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