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개화와 자주 운동

갑신정변의 정령 14개조

1. 대원군을 즉시 환국하도록 할 것(조공 허례는 의논하여 폐지함)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제정하고, 사람에게 관직을 택하게 하고 관직으로써 사람을 택하지 말 것

3. 전국적으로 지조법(地租法)을 개혁하여 아전들의 부정을 막고 백성의 곤경을 구제하며, 더불어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할 것

4. 내시부(內侍府)를 혁파하고, 그 가운데 우수한 재능이 있는 자는 등용할 것

5. 전후로 부정하여 나라를 병들게 한 것이 두드러진 자는 정죄(定罪)할 것

6. 각 도의 환곡은 영구히 중단할 것

7. 규장각을 혁파할 것

8. 급히 순사(巡査)를 두어 도둑을 막을 것

9. 혜상공국(惠商公局)1)을 혁파할 것

10. 전후로 유배간 자와 금고(禁錮)된 자는 그 사정을 고려하여 석방할 것

11. 4영(營)을 합하여 하나의 영으로 하고, 영 중에서 장정을 뽑아 근위대를 급히 설치할 것(육군대장은 우선 세자궁(世子)으로 한다)

12. 무릇 국내 재정은 모두 호조가 관할하고, 그 외의 모든 재정 관청은 폐지할 것

13. 대신과 참찬(새로 임명한 6명은 지금 그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은 매일 합문(閤門) 안의 의정소(議政所)에서 의논하여 아뢰어 결정하고, 정령(政令)을 반포해 시행할 것

14. 의정부6조 외에 무릇 불필요한 관청은 모두 혁파하고, 대신과 참찬으로 하여금 참작 협의하여 아뢰도록 할 것

갑신일록

1)1883년 11월 전국의 보부상을 관리하는 중앙조직으로, 정부는 이를 통해 전국의 소상인을 통제하려고 하였고, 보부상들은 이를 통해 상권을 독점하려 하였다. 1885년 9월 상리국(商理局)으로 개편되었다.

一. 大院君不日陪還事【(朝貢虛禮 議行廢止)】

一. 閉止門閥 以制人民平等之權 以擇官 勿以官擇人事

一. 革改通國地租之法 杜吏奸而救民困 兼裕國用事

一. 內侍府革罷 其中姑如有優才 通同登用事

一. 前後奸貪病國尤著人 定罪事

一. 各道還上永永臥還事

一. 奎章閣革罷事

一. 急設巡査 以防竊盜事

一. 惠商公局革罷事

一. 前後流配禁錮之人 酌放事

一. 四營合爲一營 營營中抄丁 急設近衛事【(陸軍大將 首擬世子宮)】

一. 凡屬國內則政 惣由戶曹營轄 其餘一切財簿衙門 革罷事

一. 大臣與參贊【(新差六人 今不必書其名)】 課日會議于閤門內議政所 以爲稟定 而布行政令事

一. 政府六曹外 凡屬冗官 盡行革罷 令大臣參贊 酌議以啓事

『甲申日錄』

1884년(고종 21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수구파 대신들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한 개화파는 정변 3일째인 10월 19일 오전에 정령(政令) 14개조를 발표하였다. 이 갑신 정강은 그들의 개혁 구상이 담겨 있는 것으로, 갑신정변의 목적과 지향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자료이다. 이 자료는 김옥균이 집필한 『갑신일록』에 따른 것으로 여러 판본이 있다.

갑신 정령 14개조는 재정과 군사 개혁 및 부국강병 사상을 보여 주며, 나아가 자주독립과 인민 평등권을 주장하는 등 그 내용이 매우 혁신적이다. 또한 국가 제도와 국정 전반을 전근대적 체제로부터 근대적 체제의 방향으로 개혁하여 근대국가 체제를 건설하려 하였다. 갑신 정령은 개화파의 구상만이 아니라 19세기 이후 제반 개혁론이 응축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정령 14개조를 외교, 정치, 경제 영역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외세에 대한 인식은 정령 제1조에 잘 나타나 있다. 임오군란 이후 청에 납치된 대원군을 모셔 온다는 조항은, 대외적으로는 독립국가로서의 대의명분을 세우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대내적으로는 대원군 세력을 위시하여 반청⋅반민씨 세력과 민중의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 세력 규합이라는 현실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 특히 ‘조공 허례’의 폐지 주장은 조공 체제로 상징되는 속방(屬邦)과 종주국의 관계를 폐지하고,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달성하여 완전 자주국을 수립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정령 14개조에는 특히 정치 개혁⋅권력 운영 관련 조항의 비중이 높은데, 제14조에서는 그간 이원적으로 운영되어 왔던 정부 조직을 전통적인 의정부육조(六曹)로 일원화하고, 그 외에 불필요한 관서를 모두 혁파함으로써 의정부육조가 국가 권력의 중심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의정부는 국가 중대 사안을 협의⋅결정하고 정령에 반영하여 시행하도록 하는 최고의 국가권력 기구로 재탄생하며, 육조는 관련 기관의 통폐합을 통해 해당 분야 업무를 일원화하고 운영 방식에 근대적 요소를 도입 적용하려 하였다. 이는 그 동안 비효율적이며 민씨 세력의 집결지인 통리군국사무아문을 폐지함으로써 종래의 이원적인 정부 조직을 정비하려는 것이었다.

국가권력을 집행하는 육조에 대한 운영 구상은 호조의 예에서 잘 나타나 있다. 호조 이외에 재정 관련 기구들을 혁파하여 국가의 모든 재정을 호조로 단일화 하겠다는 것이다. 제11조의 군제 일원화와 근대적 군사 제도 개편도 병조를 중심으로 군사권을 운영하고자 한 의도로 보인다. 이는 통리군국사무아문을 통해 재정과 군사권을 장악한 민씨 세력을 견제하는 한편, 의정부육조 등 전통적 직임에 종사하던 기존 정치 세력과의 연합을 꾀하려는 목적도 다분하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제13조에 보이는 의정소(議政所)이다. 의정소는 권력의 실세인 대신(大臣)과 참찬(參贊)이 모여 국사를 협의⋅결정하는 장소로서, 이곳에서 의결된 사안은 국왕의 재가를 얻어 정령으로 공포⋅시행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의정소는 국가 권력의 전권을 창출하는 산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변 주도 세력이 비상 대권을 부여받아 국가 권력을 주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의결 기구였다. 의정소는 국왕의 권위를 이용하기 위해 궁궐 안에 두었다.

이 외에도 혜상공국⋅내시부⋅규장각 혁파론, 유배⋅금고(禁錮)된 자들의 석방 등도 기본적으로 정치체제 및 권력 운용 방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조항들이며, 권력 구조 개편을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제시된 것들이다. 제4조와 제7조의 내시부와 규장각 혁파는 왕권의 견제와 약화를 의도한 것이었고, 제5조의 경우 탐관오리의 처벌 의도가 반영된 것이겠지만, 민씨 척족 세력과 그 일파를 처단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다. 제10조의 유배⋅금고자의 석방 조항은 갑신정변 당시 이런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대원군 계열과 위정척사(衛正斥邪) 계열의 인물이었던 만큼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정권의 물리적 기반인 군권⋅치안권 확보를 위한 구상은 제8조와 제11조와 나타나 있다.

경제 관련 조항은 4개인데, 대부분 조세 체계를 개편하여 재정을 확보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제12조 호조로의 재정 일원화와 그 외 재정 관련 기구의 혁파 조치는 왕실 재정까지도 호조에서 관할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호조의 운영 방식 또한 근대적 예산 제도에 기초한 것이며, 호조가 총괄하는 국가 재정도 지조법 등 근대적 조세제도를 통해 충당하려 하였다. 환곡의 개혁 조치도 환곡의 진휼 기능을 폐지하고 부세 기능만을 유지하여 국가재정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제9조의 혜상공국 혁파 주장은 혜상공국을 민씨 척족이 장악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경제적 기반을 타파하고 근대적 상회사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문벌 폐지와 인민 평등권 주장은 사회 개혁 측면에서 주목되지만 정치적 성격이 더 강하다.

이상과 같이 갑신정변에 제시된 정령 14개조는 전반적으로 정치체제와 국가권력의 운영 방안, 정치 권력의 장악과 반대파 숙청 등 정치적인 내용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또한 부국강병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로 경제⋅군사적 기반 조성에 중점을 두었다. 청으로부터의 ‘독립’ 주장은 조공 폐지 주장만 들어 있는데, 그런 점에서 갑신정변은 ‘독립’이라는 대외적 과제보다 대내적인 정치 권력 장악과 정치체제 정비, 국가 재정 확보 등에 무게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령에는 지배층과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부국강병 달성을 목표로 하며, 상대적으로 민중에 대한 고려는 미약하였다. 또 정변에 가담한 참여 층의 요구가 군제 개혁안과 내시부 혁파 주장 등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었다. 정령 가운데 ‘인민 평등’, ‘지조법’, ‘순사’ 등 서구⋅일본식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그 내용은 조선의 현실 조건을 고려하여 부국강병에 필요한 내용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또 정령의 개혁안은 기존의 지배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전복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내려는 것이 아니며, 지배 체제 내에서의 근대화를 지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갑신정변 ‘정강’에 대한 재검토」,『동아연구』21,이광린,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1990.
저서
『갑신정변연구』, 박은숙, 역사비평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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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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