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갑오 개혁

교정청의 개혁-의정 혁폐 조건

교정청이 논의해 결정한 각종 폐단 혁파 조항【마을마다 게시하도록 각 도에 알림】

1. 세금 포탈이 많은 아전은 절대 용서하지 말고 곧바로 최고 형벌을 적용할 것

1. 공사의 채무를 막론하고 채무자의 친족에게 징수하는 일은은 일체 거론하지 말 것

1. 지방관이 해당 지역에서 토지를 매입하거나 산소를 차지할 수 없으며, 만약 그 금령을 어길 경우, 토지는 관청 소유로 넘기고 산소는 파서 옮길 것

1. 채무 소송이 30년이 지난 것은 심리를 들어 주지 말 것

1. 각 읍의 향리는 신중하게 뽑아 대장에 이름을 올려 한결같이 순서대로 임명하고, 혹 뇌물을 바쳐 규정을 위반하면 뇌물죄로 다스릴 것

1. 세력을 믿고 다른 사람의 조상 묘를 빼앗는 자는 일체 엄금하고, 묘진(墓陳)1)을 일일이 적발하여 세금을 내도록 할 것

1. 각 고을의 관청 필요 물품은 이미 시가(時價)에 따라 지급하고 있으므로 진상하는 물건도 또한 시가에 따라 내려주어 소위 관지정(官支定)2)은 혁파할 것

1. 보부상 외에 이름을 칭탁하고 무리를 모으는 자는 각별히 엄금할 것

1. 서울의 각 관아의 별복정(別卜定)3)은 반드시 그 경위를 의정부에 보고하고, 혹 사적으로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이는 행위는 반드시 무거운 벌을 내릴 것

1. 토지세를 징수하는 논밭의 원래 결수 외에 결수를 더배정하거나 호포(戶布) 외에 더 거두어들인 것은 모두 통렬하게 금지하고, 만약 드러나는 것이 있으면 즉시 따져서 처벌할 것

1. 서울에 있는 역참(驛站) 관리의 역가미(役價米)4)는 하나같이 옛 규례에 따라 시행하고, 20년 이래로 추가로 마련된 것은 모두 논하지 말 것

1. 민고(民庫)5)를 혁파할 것

『속음청사』권7, 고종 31년 6월 16일

1)무덤을 만들어 황무지가 된 토지를 말한다.
2)관에서 물건 값을 일정하게 매기는 일.
3)어떤 지방에서 나는 물건을 정해 놓은 것 외에 서울의 각 관아, 각 도나 각 군에 바치는 일.
4)실역(實役)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에게 대신 물리는 쌀이다.
5)지방 관청의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지방민에게 받은 돈⋅곡식을 쌓아 둔 창고이다.

六月十六日 校正廳議定革弊條件.【揭付坊曲, 行會各道】

一. 吏逋夥多者, 切勿饒代, 輒施一律事.

一. 無論公私債, 徵族一款, 切勿擧論事.

一. 地方官無得賣土占山於本境, 而若或犯禁, 土則屬公, 塚則掘移事.

一. 債訟過三十年者, 勿爲聽理事.

一. 各邑吏鄕, 愼擇付案, 一以肩次差任, 若或納賄違章, 施以贓律事.

一. 持勢而奪人先壟者, 一切嚴禁, 墓陳一一摘發出稅事.

一. 各邑官需, 旣從時價, 則進排物種, 亦以時價上下, 所謂官支定革罷事.

一. 負褓商外, 托名聚黨者, 各別痛禁事.

一. 京各司別卜定, 必論報政府, 而若或私行歛民, 斷當重竄事.

一. 原結外加排⋅戶布外加歛, 幷痛禁, 若有現發, 直行論勘事.

一. 京郵吏役價米, 一依舊例施行, 二十年以來加磨鍊, 幷勿論事.

一. 民庫革罷事.

『續陰晴史』卷7, 高宗 31年 6月 16日

1894년(고종 31년) 5월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에서 해산한 이후 조선 정부는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5월 12일, 오히려 청⋅일 양국 공동의 조선 내정 간섭 안을 마련한 뒤 이를 청에 제안하였다. 이 제안의 속뜻은, 일본군을 조선에 그대로 주둔시키면서 청과의 전쟁의 단서를 찾으려는 의도였다.

일본의 의도대로 청이 이를 거절하자, 일본은 단독으로 조선의 내정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6월 1일, 일본 공사를 통해 자신들이 만든 내정 개혁안을 조선 정부에 제시하며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일본의 일방적 내정 개혁 요구에 대해 조선 정부는 두 차례 비밀회의를 열어 6월 11일, 독자적인 개혁을 추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추진할 기구인 교정청(校正廳)의 설치를 결정하고 일본의 내정 간섭을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교정청은 민영준(閔泳駿) 등 일부 민씨 척족 세력을 배제하고 김병시(金炳始, 1832~1898)와 심순택(沈舜澤) 등 친청적이면서도 보수적인 관료들이 주도하였다.

교정청은 6월 16일 12개조로 이루어진 「교정청의정혁폐조건(校正廳議定革弊條件)」을 정하고 이를 각 지방에 통보하였다. 주요 내용은 탐관오리를 제거하고 잘못된 조세 수취 제도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동학 농민군폐정 개혁 요구안과 대부분 일치하였다. 그런데 교정청은 ‘모두 구장(舊章)에 따른다’는 원칙하에 과거 폐단에 교정을 가하는 정도의 부분적인 제도 개편에 그쳤다. 이 때문에 그 활동이 과감한 탐관오리의 징계나 개혁 조치로 나아가지 못한 반면, 일본에 대한 조치는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교정청은 불과 며칠 뒤에 벌어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6월 21일) 직후 철폐되어, 개혁안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후 일본의 뜻에 따라 조선 정부는 1894년 6월 25일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설치했고, 김홍집(金弘集, 1842~1896) 친일 내각을 출범시켰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제1차 갑오농민전쟁기 정부의 개혁추진과정」,『한국근현대사연구』3,김명섭,한국근현대사연구회,1995.
「폐정개혁과 갑오개혁의 연관성 규명」,『동학농민혁명과 사회변동』,이이화,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1993.
저서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과 갑오개혁』, 왕현종, 역사비평사, 2003.
『갑오경장연구』, 유영익, 일조각, 1990.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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