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다양하게 전개된 민족 운동

조선 민흥회 선언

각 계급을 망라하여 조선 민족 단일 전선을 조직하여 실업⋅노동⋅종교 등 각 계급을 망라하여 민중의 중심 세력을 만들기로

조선 민족은 정치적⋅경제적으로 모든 고초를 당하여 우리의 공업과 산업은 나날이 파산을 당하며, 도시나 농촌을 물론하고 실업 상태에 빠져 있다. 언론과 출판과 결사와 집회까지 철저한 압박을 당했으나 그러한 불평을 외쳐 줄 만한 민족적 중심 기관이 없으며 민족의 공동 이익을 스스로 옹호하며 스스로 도울 만한 민족적 조직력이 없다. 바야흐로 민족 공동의 이익을 위한 단일 기관의 설립을 요구하는 이 시기를 맞아 경향(京鄕)의 각 계급의 유지와 명제세, 김종협 두 분과 십수 명이 지난 8일 정오에 시내 황금정 1정목 조선 물산 장려회 회관 내에 모여, 조선의 전 지역을 망라한 조선 민족의 단일 전선을 조직하는 동시에 조선의 민족적 유일 기관으로 조선민흥회를 발기하기로 하였다. 우선 발기회를 조직하기 위해 준비 위원을 선거하는 동시에 취지와 선거 위원을 밝혔는데 다음과 같다.

취지

조선 민족의 공동 이익을 위해 분투하고 노력하는 것은 반드시 전 민족적인 각 계급의 역량을 집중한 조직력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조선 민족의 중심 세력이 될 유일한 조직체를 완성하기 위해 조선민흥회 발기 준비회를 조직한다.

결의

하나. 실업⋅교육⋅노동⋅농민⋅언론⋅종교⋅여자⋅청년⋅형평⋅학생 사상 운동 등 각계를 총망라하여 조선민흥회를 조직하기로 하고 준비 위원을 선정하여 각 계급에 교섭하여 발기회를 조직하기로 한다.

하나. 발기회의 날짜는 추후 발표한다.

하나. 조선민흥회의 회명은 공중의 토의에 따라 발기회 또는 창립 대회에서 변경할 수 있다.

하나. 임시 사무소는 황금정 1정목 조선 물산 장려회 회관에 임시로 둔다.

……(하략)……

〈시대일보〉, 1926년 7월 11일

各階級을 網羅하야 朝鮮民族單一戰線을

조직하야 실업, 로동, 종교 등 각계급을 망라하야 민중의 중심세력을 맨들기로

조선 민족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나 모든 고초를 당하야 우리의 공업과 산업은 나날이 파산을 맛나며 도시나 농촌을 물론하고 실업상태에 저 잇스며 언론과 출판과 결사와 집회지 철저한 압박을 당하되 그러한 불평을 불으지저 줄만한 민족적 중심긔관이 업스며 민족의 공동리익을 스스로 옹호하며 스스로 도울만한 민족적 조직력이 업슴으로써 바야흐로 민족적 공동한 리익을 위한 단일긔관의 설립을 요구하는 이를 마추어서 경향의 각계급의 유지 명제세 김종협(明濟世金鐘協) 량씨와 십 수인이 지난 팔일 정오에 시내 황금정 일정목 조선물산장려회(市內黃金町一丁目 朝鮮物産獎勵會)관내에 모여서 전조선 각계급을 망라한 조선 민족의 단일전선을 조직하는 동시에 조선 민족적 유일긔관(朝鮮民族的唯一機關)으로 조선민흥회(朝鮮民興會)를 발긔하기로 하고 위선 발긔회를 조직하기 위하야 준비위원을 선거하는 동시에 취지와선거 위원은 다음과 갓다고

趣旨

朝鮮民族의 共同利益을 爲하야 奮鬪努力함에는 반드시 全民族的인 各階級의 力量을 集中한 組織力의 活動으로서야 可能할 것임으로써 朝鮮民族의 中心勢力이 될 唯一한 組織體를 完成하기 爲하야 朝鮮民興會發起準備會를 組織하기로 함

決議

一. 實業, 敎育, 勞働, 農民, 言論, 宗敎, 女子, 靑年, 衡平, 學生思想運動 等 各系를 總網羅하야 朝鮮民興會를 組織하기로 하고 準備委員을 選定하야 各階級에 交涉하야 期成會를 組織하기로 함

一. 期成會의 日字는 追後發表함

一. 朝鮮民興會의 會名은 公衆의 討議에 依하야 期成會 又는 創立大會에서 變更할 수 有함

一. 臨時事務는 市內黃金町 一丁目 朝鮮物産獎勵會舘內에 置하기 함

……(下略)……

〈時代日報〉, 1926年 7月 11日

이 사료는 1926년 7월 8일 서울청년회와 조선 물산 장려회가 중심이 되어 발기한 조선민흥회의 선언문⋅취지문⋅결의문이다. 선언문에는 당시 조선의 상황에 대해 “도시나 농촌을 물론하고 실업 상태에 빠져 있으며, 언론과 출판과 결사와 집회까지 철저한 압박을 당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민족을 대변할 수 있는 중심적인 기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좌우 합작 운동의 전형적인 논리이다. 취지에서도 ‘전(全) 민족적인 각 계급의 역량을 집중한 조직력’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민족주의 계열이 지향하는 가치(민족)와 사회주의 계열이 지향하는 가치(계급)를 병렬하여, 이를 통합한 운동이 나타나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조선 공산당에서는 처음에는 조선 민흥회를 비중 있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민족 협동전선 결성을 당론으로 결정하고 추진하던 터였으므로 조선 민흥회 발기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 때문에 조선 민흥회를 신간회에 흡수, 합동시키려고 계획하였다. 조선 민흥회는 1927년 2월 11일 발기인 대회를 열고 그 다음 날 창립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2월 11일 열린 발기인 대회에서 신간회와 합치자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이렇듯 조선 민흥회는 신간회가 상징하는 좌우합작 운동의 전신으로서 제4회 코민테른 대회의 의결이 조선의 사회 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 주는 주요 사례이다. 그러나 정작 운동으로서는 큰 성과 없이 종결되었으며, 대신 그 목표와 조직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의 많은 부분이 보다 본격적인 민족 협동 전선인 신간회에 수용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신간회 조직의 배경 연구」,,김은정,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95.
저서
『한인 사회주의 운동연구』, 권희영, 국학자료원, 1999.
『1920년대 민족협동전선연구 :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을 중심으로』, 윤종일,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편저
『한국근대 민족주의 운동사연구』, 역사학회, 일조각, 1997.
『한국사』16(민족해방운동의 전개 2), 이균영 외, 한길사, 1994.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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