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일제의 식민 정책과 민족의 수난

조선 총독 사이토의 문화 정책

지금은 시운(時運)의 추이와 문물의 진보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유럽의 전쟁이 끝나자 인심의 변천이 특히 현저하였다. 이리하여 ○부에서는 관제를 개혁하여 직예총독 임용의 범위를 확장하였고, 경찰 제도를 개정하였으며, 또한 일반 관리 및 교원의 대검(帶劍)을 폐지하여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고, 시정의 간소화 및 교화의 보급을 꾀하였다.

……(중략)……

조선인의 임용 및 대우 등에 관해서도 역시 고려를 하여 각자 그 소임을 얻게 하고, 또한 조선 문화 및 옛 관습으로 진실로 채택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를 통치의 자료로 제공하게 하겠다. 또한 각반의 행정에 쇄신을 가하는 것은 물론 장래 기회를 보아 지방 자치 제도를 실시하여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일반의 복리를 증진시킬 것이다. 바라건대, 관민이 서로 흉금을 털어 협력 일치하여 조선 문화를 향상시킴으로써 문화 정치의 기초를 확립함으로써

……(하략)……

조선 총독부, 『사이토 마코토 문서』1, 고려서림, 1990

諭告(1919년 9월)

今ヤ時運ノ推移文物ノ進步亦○日ノ比ニ非ズ。 加フルニ歐洲ノ戰亂新ニ熄ミ世態人心ノ變遷特ニ著シキモノアリ。是ニ於テカ ○府官ハ官制ヲ改革シテ總督任用ノ範圍ヲ擴張シ警察制度ヲ改正シ又一般官吏敎員等ノ服劍ヲ廢止シ以テ時代ノ進運ニ順應シテ施政ノ簡捷ト治化ノ普及トヲ圖レリ。

……(中略)……

朝鮮人ノ任用待遇等ニ關シ亦考慮ヲ加ヘテ各其ニ所ヲ得シメ又朝鮮ノ文化及舊慣ニシテ苟クモ採ルヘキモノアレハ之レヲ統治ノ資ニ供シ更ニ各般ノ行政ニ刷新ヲ加ヘ且ツ將來機ヲ見テ地方自治制度ヲ實施シテ以テ國民ノ生活ヲ安定シ一般ノ福利ヲ增進セシコトヲ期ス。冀クハ官民互ニ胸襟ヲ披キヲ協力一致朝鮮ノ文化ノ向上セシメ文化的政治ノ基礎ヲ確立シ以テ

……(下略)……

朝鮮總督府, 『齋藤實文書』1, 고려서림, 1990

이 사료는 1919년 9월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조선 통치의 근본을 ‘문화 통치’로 변경하겠다고 선언한 유고(諭告)이다. 유고란 국가의 정책을 일반에게 공지하는 것을 말한다.

3⋅1 운동으로 인한 조선 민심의 동향과 개조 및 민족 자결주의라는 국제 정세의 흐름을 간파한 일제는 무단 통치라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조선을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른바 문화 통치로의 전환이었다. 그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 예비역 해군대장 사이토 마코토의 조선 총독 임용(‘관제를 개혁하여 직예총독 임용의 범위를 확장’)이었다. 사이토는 부임 이래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대체하고, 교원의 대검(帶劍) 착용을 폐지하는 등 문화 통치의 외양을 갖추려고 하였다. 또한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어느 정도 인정하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발행을 허가하기도 하고, 조선인 관리의 임용이나, 도⋅부⋅면에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조선인의 정치적 진출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묘지 규칙 등 이른바 조선인의 원성을 사던 법률을 개정하여 조선의 구관을 인정하는 자세도 취하였다.

사이토의 ‘문화 통치’ 하에서 조선어 신문이 생기고 집회와 결사(청년회 등)가 부분적이나마 허가를 받아 가능하게 되었으며, 조선인의 관리 진출이 늘고 ‘태형’과 ‘묘지 규칙’ 등의 악법이 사라지는 등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개선의 한편에는 궁극적 운동 목적인 독립운동보다 일본 제국 치하에서의 ‘자치’를 꿈꾸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듯 문화 통치는 민족 분열 정책의 일면도 가지고 있어서, 1920년대 이후 지배와 협력과 저항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며 식민지 조선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 왔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근현대정치사상사연구』, 박찬승, 역사비평사, 1992.
『일제하 친일정치운동 연구』, 이태훈,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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