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일제의 식민 정책과 민족의 수난

이광수와 윤치호의 내선 일체 옹호

심적 신체제와 조선 문화의 진로

내선일체는 단순한 정책적 슬로건이 아니라 우리 조선 민중에게는 생활 전체를 의미한다. 나 자신의 사활 문제요, 내 자손의 사활 문제이다. 이러한 중대 문제에 마주치는 것은 인생으로서 극히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나는 아침에 잠을 깬다. 오전 6시의 사이렌이 운다. 이 사이렌은 전 일본 국민이 다 기상하라는 사이렌이다. 종래에는 이러한 일이 없었다. 몇 시에 자거나 몇 시에 깨거나 자유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조국은 전국민이 오전 6시면 일제히 일어나기를 명령한다. 이렇게 아니하고는 중대 시국을 돌파하고 국가가 현재 목적하는 대업을 완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략)…… 그때 또 사이렌이 울었다. ‘무엇일까?’ 아직 이러한 국민 생활에 익숙지 못한 자는 이 사이렌이 오전 7시 궁성 요배(宮城遙拜) 사이렌인 것을 얼른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이렌을 들으면 모든 가족이 사용인(使用人)까지 모두 정결한 곳에 정렬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궁성을 요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있는 곳’에서 하라고 했다. 방에 있던 자는 방에서, 부엌에서 일하던 자는 부엌에서, 길을 가던 자는 길에서. 어디서나 그 자리에서 하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사정만 허락한다면 모든 가족이 일제히 하는 것이 더욱 정성스럽고 또 인상적일 것이다. 나는 마침 곁에 있던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와 둘이서 요배를 했다. 그러고 난 뒤 안방에 갔더니 학교에 가기 위해 미리 밥을 먹던 5학년인 아들, 1학년인 딸, 두 아이가 “(일본어로) 아버지, 지금 사이렌이 궁성 요배 사이렌이에요”라고 내게 일깨워 주었다. 그들은 밥 먹다 말고 궁성 요배를 한 모양이다.

나는 어제 조선 대박람회장에서 정오의 ‘사이렌’을 들었으나 시계를 맞출 것은 기억하고도 묵도할 것은 잊어버렸다. 이 모양으로 나는 아직 국민 생활이 서투르다. 이것이 자리 잡히려면 아마 수년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체 내선일체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재래의 조선적인 것을 버리고 일본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이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2300만이 모두 호적을 들추어 보기 전에는 내지인인지 조선인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그 최후의 이상이다. 그러므로 내선일체가 되고 안 되는 것은 오직 나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루아침에 될 것은 아니지만 우선 일본 국민이 되기에 필요한 것은 빨리 습득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빨리 되면 빨리 조선인에게 행복이 오고 더디게 되면 더디게 행복이 오며, 만일 조선인이 이 공부에 게으르면 마침내 올 것이 안 오고 말 것이다.

그러면 그 시급한 것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무엇보다도 황실에 대한 충성의 정조(情操)를 함양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황실에 대한 감정은 실로 독특한 것이어서 조선인으로서 그 정도에 달하자면 깊고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예전 우리 조상들이 충군애국이라고 하던 그러한 충(忠)이 아니다. 일본인의 충의 감정은 한자의 충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니, 도리어 유대인의 여호와에 대한 충과 비슷할 것이다. 일본인은 내가 향유한 모든 행복을 천황께서 받잡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 토지도 천황의 것이요, 내 가옥도 천황의 것이요, 내 자녀도 천황의 것이요, 내 몸과 생명도 천황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황께로부터 받자온 몸이니 천황이 부르시면 언제나 끓는 물이나 불에라도 뛰어든다는 것이요, 자녀도 재산도 천황께 받자온 것이니 천황께서 부르시면 고맙게 바친다는 것이다. 천황은 살아계신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국이나 유럽의 군주 대 신민 관계와 판이한 점이다. ……(하략)……

매일신보〉, 1940년 9월 4일

내선일체에 대한 소신

……(전략)……

내선일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과 조선 측에서 여러 가지 비평이 있었으나, 나는 그에 관해 네 가지만 이야기하여 내 소신을 밝히고자 한다. 첫 번째, 내선일체라는 것은 이미 병합 당시에 구체화된 것으로 이번에 다시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오류이다. 마치 이번 생애에 태어난 아이가 어른과 똑같아 보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선인도 병합 당시는 단순히 일본 국민으로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20년 남짓 교육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조선인도 병합 이래 29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일본 국민으로서, 일본인과 똑같이 어른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요컨대 병합 이래 29년 간의 총독 정치는 우리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일원화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때문에 총독 정치의 각 단계는 서로 달랐고 정치 그 자체에도 다양한 뉘앙스가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사이토 총독의 통치 목표는 내선 융화(內鮮融化)였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우가키 총독의 시대에 변화되어 자력갱생(自力更生)의 표어가 되었다. 다시 오늘날 미나미 총독의 시대가 되어 내선일체(內鮮一體)의 표어가 통치 목표가 되었으나, 이것들은 각 시대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표어의 변경 그 자체에는 여러 가지 모순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 본질적인 이치는 조선의 민도(民度)를 일본인과 같이 끌어올려 이로써 내선일체를 완성하는 데 있다. 그 때문에 내선일체가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모순도 없으며, 그것은 차라리 당연하다고 말하겠다.

두 번째로, 내선일체는 좋은 것이더라도 제국의 입장에서 특별히 이를 완수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나는 작년 9월 5일 미나미 총독을 만났는데, 미나미 씨는 나에게 조선 청년 지도에 관한 3가지 조항을 써줬다. 그 중 제2항에 “동양인의 동양 건설의 핵심은 내선일체를 완벽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 ……(중략)……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는 현재 일본인보다 열등한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중략)…… 이러한 의문을 완전히 일소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지리적으로 보면 우리 조선은 제국의 대륙 정책상 실로 경시할 수 없는 요충지가 되어 있다. ……(중략)…… 새로운 동아시아 건설의 가능 여부는 실로 내선일체의 완성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이러한 지리적 중요성에서 봤을 때 일본과 조선의 일원화, 즉 우리 조선인이 일본인과 똑같이 동양 건설을 위해 동등한 국민적 의무와 자격을 갖고 매진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긴요한지는, 제국의 대륙 정책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명백한 것이다. 또 경제적으로 봐도 일본의 경제학자가 강조하는 것과 같이, 조선에서 생산되는 미곡은 제국의 국가정책을 수행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중략)…… 나는 조선 민족의 우수한 소질을 항상 확신하고 있다. 근대적인 교육⋅문화⋅자격을 제공해 주면 내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동양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 세계를 지도하기 위해서도 공헌할 수 있는 우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근래의 일을 봐도 세계를 제패한 손기정 군이 우리와 똑같은 반도인인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으며, ……(중략)…… 역시 조선인이 민족적으로 결단코 다른 민족보다 열등하지 않은 체력과 의지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주는 가장 강력한 실례이다. ……(중략)……

세 번째는 조선인 측에서 나온 비평인데, 조선인이 내선일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주장이다. 이는 주로 민족주의적인 편견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에서 봐도 내선일체 이외에 조선인이 나아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내선일체를 거부하면 조선인이 나아갈 방향은 명백히 공산주의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없다. 그러나 이 공산주의를 통해 조선인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결정적으로 이를 배제하고 또 박멸하는 것이 우리가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이는 상황에서 내선일체는 우리 조선인을 위해서도 실로 사활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략)……

마지막으로, 내선일체에 반대하는 논의로 소위 내주선종(內主鮮從)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조선을 식민지로 보는 시각이다. 주지하다시피 일시동인(一視同仁)은 황송하게도 천황 폐하의 성지(聖旨)이며, 우리도 동일하게 천황 폐하의 적자(赤子)라는 자격과 의무가 이 성지에 의해 보장되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을 식민지로 보는 것은 일시동인이라는 성지를 무시하는 형법상 불경죄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중략)…… 국가의 경찰이 간섭할 문제이지, 내가 간여해야 할 일이 아니다. ……(하략)……

『동양지광』, 1939년 4월

心的 新體制와 朝鮮文化의 進路

內鮮一體는單純한 政策的슬로간이아니라이것은우리들朝鮮民衆에 게는 生活全體를意味한다나自身의死活問題요내後孫의 死活問題라이러한 重大問題에마조치기는人生으로서極히稀罕한일이다나는이問題에對하여서어케處理할것인가 나는 아침에 잠을다 午前六時의사이렌이 운다 이사이렌은 全日本國民이 다起床하라는 사이렌이다 從來에는 이러한일이업섯다 멧時에자거나 멧時에거나 自由엿다 그러나 이제부터 祖國은 全國民이午前六時면 一齊히일어나기를 命令한다 이러케 아니하고는 重大時局을 突破하고서 國家가 現在에目的하고잇는 大業을完遂하기가 어렵다는것이다

……(中略)…… 그에  사이렌이 울엇다 ‘무엇일’ 아직 이러한 國民生活에 익숙지못한나는 이 사이렌이 午前七時宮城遙拜의 사이렌인것을 얼는 생각하지못하엿던것이다 이 사이렌을 들으면 全家族이 使用人지도 一齊히 淨潔한곳에 整列하여서 精誠스러운 마음으로 宮城을遙拜하여야 할것이다 毋論 ‘在所’에서하라고 하엿다 房에 잇던者는 房에서 벅헤서 일하던자는 벅헤서 길가던者는 길에서 어듸서나 그자리에서 하란 말이다 그러치마는 事情만許할진대 全家族이 一齊히하는것이 더욱精誠스럽고 印象的일것이다 나는마츰겨테잇던 六歲女兒와둘이서 遙拜하엿다 그러고난뒤에안방에를갓더니學校에가기爲하여서 미리밥을먹던 五學年男 一學年女의兩兒가 ‘お父さん今のサイレン宮城遙拜のサイレンよ’ 하고 내게일워주엇다 그들은 밥먹다말고 宮城遙拜를한모양이엇다

나는 昨日 朝鮮大博覽會場에서 正午의 ‘사이렌’을들엇스나 時計를 마칠것은記憶하고도 黙禱할것을 이저버렷다 이 모양으로 나는 아직國民生活이서틀르다 이것이 자리가 잡히자면 아마數年努力하여야할것인가한다 大體 內鮮一體란 무엇이냐하면 내가 在來의 朝鮮的이런것을 버리고 日本的인것을 배우는것이다 一言以蔽文하면 이것이다 그리하여서 朝鮮二千三百萬이 모다 戶籍을 들어보기 前에는 內地人인지 朝鮮人인지 區別할수업게 되는것이 그最後의 理想이다 그럼으로 內鮮一體가 되고 아니되는 것은 오직 나의 努力如何에 달린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一朝一夕에될것은 아니지마는 우선 日本國民이기에 必要한 것은 星火가티 習得하지아니하면 아니 될것이니 이것이 리 되면 리 朝鮮人에게 幸福이오고 더듸 되면 더듸 幸福이 오고 만일 朝鮮人이 이 工夫에 게을르면 마츰내 올것이 아니오고 말것이다

그러면 그 時急한 것이란무엇이냐 그것은 첫재가 皇室에 對한 忠誠의情操의 涵養이다 日本人이 皇室에對한 感情은 實로 獨特한 것이어서 朝鮮人으로서 그 程度에 達하자면 깁고 만흔工夫가 必要한것이다恒用 우리 祖上네가 忠君愛國이라던 그러한 忠이아니다 日本人의忠의 感情은 漢字의 忠字만으로는 說明할수업는것이니 도로혀 猶太人의 여호아에 對한 感情에 近似할것이다 日本人은 내가 享有한 모든幸福을 天皇서 바는것으로 생각한다 내土地도 天皇의 것이오 내 家屋도 天皇의것이오, 내 子女도 天皇의 것이오 내 몸과 生命도 天皇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天皇로부터 바온 몸이길래 天皇이부르시면 언제나 赴湯蹈火라도 한다는것이오 子女도 財産도 天皇서바온것이매 天皇서 부르시면 고맙게 바친다는 것이다 天皇은 살아게신 하느님이신 문이다 이것이 支那나 歐洲의君主對臣民關係와 判異한點이다 ……(下略)……

〈每日申報〉, 1940年 9月 4日

內鮮一體に對する所信

……(前略)……

內鮮一體の問題に對しては, 內鮮側から色々と批評が行はれて居る樣でありますが, 私はそれらについて四つのことだけを申上げ, 且つ私の所信を披瀝したいと思つて居ります. 第一は, 內鮮一體といへば旣に倂合當時に具體化したものであつて, 今更それを强調する理由が何處にあるかと云ふ所論であります. しかしこれは明らかに謬論であります. 恰かも今生れ出たばかりの子供が, 大人と同樣に見られる事が出來ないと同じく, 我々朝鮮人も倂合當時は, 單に日本國民としての子供に過ぎなかつたのであります. 子供が大人になる爲めには, 二十年に餘る敎育を必要とする樣に, 我々朝鮮人も倂合以來二十九年を經た今日に於て, 始めて日本國民として, 內地人と同樣に大人たる資格を備へる樣になつたと思ひます. 要するに倂合以來二十九年間の總督政治は, 我々朝鮮人を內地人と一元化する爲めの過程であつたのであつて, 隨つて總督政治の各段階が異るにつれて, 政治そのものにも色々のニュアンスがあつた譯であります. 周知の通り齋藤總督の統治目標は內鮮融和にありました. そしてそれが更に宇垣總督の時代に變つては, 自力更生の標語になつたのであります. 更に今日の南總督の時代となつては, 內鮮一體の標語が統治目標となつたのでありますが, これらは各々各時代の事情を反映するものであつて, 標語の變更そのものには色々と矛盾がある樣に見えますが, しかしその本質的な道筋は, 朝鮮の民度を內地人のそれに引上げ, 以つて內鮮一體を完成せんとしたことにあるのであります. それ故に內鮮一體が今になつて問題になつたといふ事には, 何等の矛盾もないのであつてそれは寧ろ當然の道筋であると云はれねばならぬものであります.

第二は, 內鮮一體はいヽことではあるが, 帝國の立場からして殊更にそれを完成せねばならぬ理由がどこにあるかと云ふ疑問であります. 私は昨年九月五日南總督に面接した際, 南さんは私に對して, 朝鮮靑年指導に關する三つの箇條を書いて下さいました, その中の第二項に'東洋人の東洋建設の核心は內鮮一體の完璧にある'といふ事が, 特に强調されて居ます. ……(中略)…… 色々の點からして我々は內地人より今尙ほ劣つて居るのが事實である. ……(中略)…… かやうな疑問を全然一掃するに到りました. 第一に地理的に見て我が朝鮮は, 帝國の大陸政策上, 實に輕視すべからざる要地となつて居るのであります. ……(中略)…… 新東亞建設の可能如何の問題が, 實に內鮮一體の完成如何にかかつてゐると云つても過言ではないのであります. ……(中略)…… 斯う云つた地理的重要性から見まして, 內鮮の一元化, 即ち我々朝鮮人をして內地人と同樣に東洋建設の爲めに, 同等の國民的義務と資格をいて邁進せしめる事が如何に緊要であるかは, 帝國の大陸政策の立場からして極めて自明の事であります. 尙ほ經濟的に見ても, 內地のある經濟學者が强調してゐる通り, 朝鮮産の米穀は帝國の國策遂行上この上なく重大な意義を持つものであつて, ……(中略)…… 私は朝鮮民族の優秀なる素質を常に確信して居ります. 之れに近代的な敎育と文化と資格さへ與へらるれば, 優に內地人と肩を比べて東洋指導は勿論, 世界の指導の爲めにも, 貢獻し得る優秀性を持つて居ると思ひます. ……(中略)…… 尙ほ近年の事を見ても, 世界に覇を唱へた孫基禎君が我々と同じ半島人であることは云ふ迄もないことでありまして, ……(中略)…… やはり朝鮮人が民族的に決して他に劣らない體力と意志力を持つて居るといふ最も力强い實例であります. ……(中略)……

第三には朝鮮人の側から來る批評でありますが, 朝鮮人が內鮮一體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が何處にあるかと云ふ所論であります. これは主に民族主義的偏見の現はれでありますが, しかし如何なる立場から見ましても, 內鮮一體の道以外に朝鮮人の進むべき道が見出され得ますか. 內鮮一體の道を拒否するとすれば, 朝鮮人の進む方向は, 明らかに共産主義以外の何物でもないのだ. だがこの共産主義に依つて, 朝鮮人が少しでも幸福になり得ると思ひますか. 私はそうは思ひません. ……(中略)…… 決定的にこれを排除し且つ撲滅することが, 我々の幸福の道であると信ずる. 斯樣に見て來た場合, 內鮮一體は我々朝鮮人に取つても, 實に死活を決する重大な問題であると云はねばならないと思ひます. ……(中略)……

最後に內鮮一體に反對する議論として, 所謂'內主鮮從'といふ事が云はれて居ます. これは云ふ迄もなく朝鮮を殖民地視する觀方であります. 周知の通り, 一視同仁は畏くも 天皇陛下の御聖旨でありまして, 我々も等しく 天皇陛下の赤子であるといふ資格と義務が, 此の御聖旨に依つて保障されて居る譯であります. それ故に朝鮮を殖民地視することは, 一視同仁の御聖旨を無視する刑法上の不敬罪の問題である. ……(中略)…… 國家の警察が干涉すべき問題であつて, 我々の干與すべきことではない. ……(下略)……

『東洋之光』, 1939年 4月

이 사료는 각각 이광수(李光洙, 1892~1950)와 윤치호(尹致昊, 1865~1945)가 1940년, 1939년 내선일체를 옹호하기 위해 서술한 글이다. 이광수의 글은 궁성 요배(宮城遙拜)라는 소재를 통해 내선일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이광수에게 내선일체란 “내가 재래의 조선적인 것을 버리고 일본적인 것을 배우는 것…… 그래서 조선의 2300만이 모두 호적을 들추어 보기 전에는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그 최후의 이상”이다. 이를 위해 조선인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광수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일본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다. 일본인의 일본 국왕에 대한 충성은 서구 국가들과는 다르며, 유대인의 여호와에 대한 충성(즉 신앙)과 유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이광수가 ‘천황제’의 성격과, 또 일본 제국주의에서 ‘천황제’ 역할과 비중을 명확하게 이해한 증거라고 하겠다.

한편, 윤치호는 내선일체라는 주제에 대해 크게 네 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첫째, 내선일체는 새삼스레 나온 것이 아니라 한일 병합 이후 계속 전개되어온 식민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 둘째, 동양 건설(사실은 동양 정복)을 위한 병참 기지로서 조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셋째, 조선이 내선일체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남은 대안은 공산주의인데 이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점. 넷째, 내선일체가 결국 일본을 주(主)로, 조선을 종(從)으로 설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일시동인(一視同仁)은 황송하게도 ‘천황 폐하의 성지(聖旨)’라는 점이다.

윤치호의 이러한 주장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세 번째와 네 번째다. 세 번째에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이론적 혹은 심정적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결국 내선일체를 수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과거 개항기 러시아에 대한 거부감과 연결될 만큼 뿌리가 깊다.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폭력성 및 계급성은 특히 자본가⋅지주 등 부르주아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마르크시즘에 의해 ‘민중의 아편’으로 규정되어 버린 종교인들을 포함해 광범위한 거부 대상이었다.

네 번째에서 윤치호는 일본 국왕의 성지(聖旨)가 내렸음을 강조하면서 “우리도 동일하게 천황 폐하의 적자(赤子)라는 자격과 의무가 이 성지에 의해 보장되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을 식민지로 보는 것은 ‘일시동인’이라는 성지를 무시하는 형법상 불경죄에 해당하는 문제다. …… 국가의 경찰이 간섭할 문제이지, 내가 간여해야 할 일이 아니다”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이러한 논리가 윤치호의 내심이었을지 혹은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내선일체를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주장하기 위한 가장 최후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일본 국왕의 권위라고 인식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일제는 중국 및 미국과의 제국주의 헤게모니 쟁탈 전쟁을 위해 조선을 병참기지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작업 중 하나가 조선인을 완벽한 제국 신민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만들어진 슬로건이 바로 ‘내선일체(內鮮一體)’였다. 내(內)란 내지(內地), 즉 일본을 의미하며, 선(鮮)은 조선(朝鮮)을 의미한다. 즉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뜻이다. 이러한 종류의 동화 정책은 이미 1931년 만주 사변 때 일만일체(日滿一體)라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내선일체도 그러한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과 일본이 본래 하나라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는 내선동조동근론(內鮮同祖同根論), 즉 일본과 조선은 조상과 뿌리가 같다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 인종학적, 역사⋅문학적 연구 성과들이 동원되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일본 국왕가의 시조로 신도에서 숭배되어 왔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와 단군을 혈통적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단군을 아마테라스의 방계로 규정하고,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朝鮮神宮)에서 단군과 아마테라스를 함께 배향함으로써 신화 단계에서부터 일본과 조선이 동일한 혈통이며, 일본을 중심으로 연합해야 할 역사 공동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부분이 주목되는 이유는 일본 군국주의의 사상적 핵심이 ‘천황제’이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혹은 제국주의란 민족주의의 자기 중심성이 극단적으로 강화⋅외화한 것이며, 이렇게 강력한 민족적 자의식을 만들기 위해 대개의 민족 국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고대사의 사건⋅인물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스스로를 신국(神國)으로 주장하는 데 있어 일본 국왕가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이래 ‘만세일계(萬歲一繼)’를 주장하면서 일본 신도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가장 강력한 형태의 혈통적 민족주의 기제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이른바 전시 체제라고 일컬어지는 군국주의적 통치 시기는 일본 제국주의 확장을 위해 조선을 후방 기지로 활용하면서 명실상부한 ‘민족 말살’을 전제로 한 총력전 체제로 설명할 수 있다. 물자와 노동력 강제 동원, 신사 참배와 궁성 요배 강요, 창씨개명 강요 등이 모두 이 시기에 행해졌다. 식민지 시대를 수탈로 평가할 것인지 근대화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1930년대 이후의 식민 정책만큼은 명백한 수탈과 탄압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시기에 식민지 조선의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이광수와 윤치호는 조선인을 일제의 군국주의적 전쟁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민족 말살’을 전제로 한 내선일체의 정신적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중일전쟁기 조선에서 ‘내선일체론’의 수용과 논리」,『한국사학보』33,김명구,고려사학회,2008.
「일제하 윤치호의 내면세계 연구」,『역사학보』165,김상태,역사학회,2000.
「일제 말기(1938년-45년) "내선일체"론과 전시동원체제」,,최유리,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95.
「이광수의 내선일체 논리 연구」,『어문연구』59,홍기돈,어문연구학회,2009.
저서
『식민지의 적자들 : 조선적인 것과 한국 근대사의 굴절된 이면들』, 공임순, 푸른역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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