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근대정치일제의 식민 정책과 민족의 수난

일본식 성명 강요

제11조 조선인 친족 및 상속에 관해서는 별도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제1조의 법률에 따르지 않고 관습에 따른다. 단 씨(氏), 혼인 연령, 재판상의 이혼, 인지

……(中略)……

상속의 승인 및 재산의 분리에 관한 규정은 예외로 한다.

……(中略)……

씨(氏)는 호주(법정대리인이 있을 경우에는 법정대리인)가 정한다.

……(中略)……

부칙(1939년 11월 제령 제19호)

본령의 시행 기일은 조선 총독이 정한다.

조선인 호주(법정대리인이 있을 경우에는 법정대리인)는 본령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새로 씨(氏)를 설정하여 부윤 또는 읍⋅면장에게 신고함을 요한다. 전항의 규정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는 호주의 성을 씨(氏)로 삼는다.

조선 총독부, 『조선법령집람』, 1940

황국 신민으로서의 신념과 긍지를 가진 한국인 중에서 법률상으로 일본식 씨(氏)를 부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자가 생기게 된 점은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같은 조상, 같은 뿌리인 일본과 한국 두 민족이 혼연일체 되어가는 시점에서 개인의 호칭을 동일한 형식으로 하려는 요망이 대두한 것은, 내용적인 측면과 표리를 이루어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내선일체의 구현이 고조에 달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조선 민사령이 개정되었는데, 그 내용은 여러 가지 사항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 한국인의 진지하고 열렬한 요망에 대하여 한국인이 법률상 일본인식의 ‘씨(氏)’를 부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 개정의 중요한 안목으로, 내선일체의 연선에 따른 친족법상의 획기적 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총독부 법무국, 『씨제도의 해설』, 1940

第十一條 朝鮮人ノ親族及相續ニ關シテハ別段ノ規定アルモノヲ除クノ外第一條ノ法律ニ依ラズ慣習ニ依ル. 但シ氏, 婚姻年齡, 裁判上離婚, 認知

……(中略)……

相續ノ承認及財産ノ分離ニ關スル規定ハ此ノ限ニ在ラズ.

……(中略)……

     氏ハ戶主(法定代理人アルトキハ法定代理人)之ヲ定ム.

……(中略)……

附則(昭和十四年十一月制令制十九號)

     本令施行期日朝鮮總督之ヲ定ム.

     朝鮮人戶主(法定代理人アルトキハ法定代理人)ハ本令施行後六月以內ニ新ニ氏ヲ定メ之ヲ府尹又ハ邑面長ニ屆出ヅルコトヲ要ス. 前項ノ規定ニ依ル屆出ヲ爲サザルトキハ本令施行ノ際ニ於ケル戶主ノ姓ヲ以テ氏トス.

朝鮮總督府, 『朝鮮法令輯覽』, 1940

皇國臣民たる信念と矜持とを抱懷せる半島人の一部に, 法律上內地人式の氏を稱へ度き希望を抱ける者の生ずるに至ったことは豫て余の承知せる所であるが, 同祖同根の內鮮兩民族が渾然一體たらんとする秋に際り, 個人の稱號を同一形式に據らんとする要望の擡頭せることは質と相表裏して形の上に於ても, 內鮮一體の具現が高調に達したものと謂はねばならぬ.

此の度朝鮮民事令が改正せられ其の內容は親族法の諸種の點に亘っているが, 其の内半島人の眞摯且熱烈な要望に對へて半島人が法律上內地人式の‘氏’を稱へ得る途を拓いた點は改正の重要な眼目であって, 內鮮一體の線に沿うた親族法上に於ける劃期的改正であると謂うことが出來る.

朝鮮總督府 法務局, 『氏制度の解說』, 1940

이 사료는 1940년 창씨개명과 관련한 민법인 「개정 민사령」과 조선 총독부 법무국이 간행한 『씨제도의 해설(氏制度の解說)』이란 책자의 일부 내용이다.

일제 말기의 민족 말살 정책 중에서 가장 악명 높고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창씨 개명 정책이다. 창씨 개명은 말 그대로 ‘씨(氏)를 창설하고 이름을 고친다’는 것으로, 곧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 ‘씨’로 바꾸고 이름을 고친다는 의미이다. 한국인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조치였고, 한국인들의 정서상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조치였다.

창씨 개명 정책은 두 개의 제령(制令) 및 기타 부속 법령으로 시행되었다. 「민사령 개정의 건」(1939년 제령 제19호)과 「조선인 씨명 변경에 관한 건」(1939년 제령 제20호)이 바로 가장 중요한 근거 법령이다. 두 제령은 1939년 11월에 나란히 공포되어 1940년 2월 1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바로 「민사령 개정의 건」이다. 1912년 공포된 「조선 민사령」은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부분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1939년의 제19호 제령 역시 이를 부분적으로 개정한 것이었다. 개정안은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중 핵심적인 것이 “서양자(婿養子)⋅이성 양자(異姓養子)의 인정, 가(家)의 호칭으로서 씨(氏)를 붙일 것, 호주는 씨를 설정하여 민사령 시행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신청할 것, 신청서를 내지 않는 경우 호주의 성을 씨로 할 것” 등이다.

1912년 「조선 민사령」이 만들어질 때, 일제는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전통과 관습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민법」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민사’ 영역에서 한국 사회의 관행과 관습을 상당 부분 인정하여 법제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수 차례의 개정을 통해 점차 일본 「민법」 체계를 도입해 갔으며, 마침내 1939년 11월의 개정을 통해 한국의 ‘성’을 일본식 ‘씨’로 바꾸는 조치를 강행하였다. 즉 위 법령 문안에서 보이듯이 ‘씨’에 관한 내용은 “조선의 관습에 따르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를 대신하여 일본 「민법」 제746조 “호주 및 가족은 그 가(家)의 씨(氏)를 칭한다”는 ‘씨’에 관한 기본 조문이 자리하게 되었다.

이 제령을 공배포한 이유에 대하여, 당시 직예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이를 희망하는 한국인이 생겨났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내선일체의 구현”을 위한 것이라 강조하였다. 즉 한국에서 내선일체가 고창되고 있으므로 한국인들이 법적⋅제도적 측면에서도 일본인과 동일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원하는 한국인이 많다고 강변한 것이다.

그러나 직예총독부의 진정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즉 한국의 가족 제도, 특히 부계 혈통에 기반한 가족 집단의 힘을 약화시키고, 일본적 가족 제도를 도입하여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심기 위한 것이었다. ‘가[家, 이에]’ 중심의 일본 사회와 달리 당시 한국에서는 이른바 ‘문중’이라 불리는 부계 혈통의 결속력과 영향력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의 기반을 구성하는 부계 혈통 중심의 친족 조직 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 일본식 사회구조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미나미는 1940년 6월 12일 동경에서 열린 중앙조선협회 주최 오찬에서, “한국의 조상 중심주의는 우리 황실 중심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황실 중심주의 사상의 모범인 ‘씨 제도’를 창설하여 참된 의미의 내선일체를 실현하는 것이 취지”라고 설명하였다. 즉 한국인의 혈족 중심주의를 걷어 내고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황실 중심주의’를 심는 것이 창씨개명의 진정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 제령은 1940년 2월 1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로부터 6개월 내에 이른바 ‘씨(氏)’를 설정하여 행정관서에 신고하게끔 되었다. 직예총독부는 이 조치가 어디까지나 강제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이는 당시 한국인의 반발이 극심함을 의식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고 만료 기간이 다 되어가도 신고 실적이 부진하자 각급 단위에서 노골적인 강요와 강제가 이루어졌다. 한국인의 ‘희망’에 따른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일본식 ‘씨’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신고하는 사람이 많지 않자 다양한 방법으로 강제하였던 것이다. 행정 관서를 총동원한 실질적 강제로 인해 약 80%의 한국인이 ‘씨’를 설정하여 신고하였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령에 따라 기존의 성이 곧 ‘씨’가 되었다.

첫 번째 사료는 1940년에 간행된 『조선법령집람』에 실린 「조선 민사령」 조문의 일부이다. 1939년 제령 19호는 개정령이기 때문에 그 자체 문안만으로는 의미를 알기 어려우므로, 이 개정령을 반영하여 수정된 상태의 「조선 민사령」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다. 다만, 부칙의 내용 중 “본령 시행 후 6개월 이내”는 원문(『조선법령집람』)에는 “본령 시행 전 6개월 이내”로 되어 있으나, ‘1939년 제령 19호’에는 “본령 시행 후 6개월 이내”로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으므로 바로잡았다. 두 번째 사료는 제령 공포 후 직예총독부 법무국에서 발간한 『씨제도의 해설』이란 자료집에 실린 직예총독 미나미의 연설 내용 중 일부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선 총독부 법무국『씨(氏)제도의 해설』(1940)에 대한 해설」,『민족문제연구』1997년 봄,윤해동,경기대학교 민족문제연구소,1997.
저서
『조선 총독부 법제 정책』, 이승일, 역사비평사, 2008.
편저
『창씨개명』, 미야타 세쓰코⋅김영달⋅양태호, 명석서점,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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