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당 선언서
혁명을 앞둔 조선은 불안과 공포에 신음하고 있다. 이 가을을 맞아 폭파·방화·총살의 직접 행동을 주장하며 허무당은 일어난다. 현재 조선은 이중 삼중으로 포악한 적의 박해를 받아 한 발짝도 전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최후의 참혹한 절정에 서있는 2000만 동포의 위기일발의 두려움 속에서 방황하며 죽음에 직면한 민중의 현 상황에 대한 저주가 충천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에게는 희망도 이상도 미래도 아무것도 없다. 포악한 적의 착취와 학대와 살육과 조소와 모욕이 있을 뿐이다. 암흑의 수라장에서 야망으로 혈안이 된 적의 난무가 있을 뿐, 이 전율스러운 상황을 타파하지 않는 한 조선은 영원히 멸망할 것이며 우리의 이상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도 일종의 공상이다.
포악한 적은 정치·법률·군대·감옥·경찰 등으로 멸망한 조선의 명맥을 시시각각 침해하고 있다. 이 전율스러운 광경에 침묵을 지킬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전부 살육되고 있다. 오지 않는 혁명의 봉화를 밝히고 파괴의 의로운 칼을 빼들어라. 의분의 혈기가 있는 자는 분노하며 일어나야 할 시기가 왔다.
어떠한 의의나 가치도 없는 이 참혹한 생에서는 대중을 위해 할 수 있는 반역의 순사(殉死)야말로 통쾌하지 않은가. 우리를 박해하는 포악한 적을 향하여 선전 포고를 하자. 우리를 부인하는 현재의 이 흉포·악독한 것, 뱀·전갈과 같은 정치·법률 및 일체의 권력을 근본적으로 파괴하자. 이 전율스러운 광경을 파괴하는 방법은 직접 행동밖에 없다. 혁명은 절대로 언어나 문자만으로는 가져올 수 없다.
유혈과 전사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합법적으로 현 질서 내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저능아이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맹약하여 폭력으로써 조선 혁명의 완성을 기약하여 허무당을 조직했으며, 혁명 당시 러시아 허무당의 행동을 근거로 하여 우리가 수년 동안 쌓아 온 저주와 원한과 분노를 폭발시킨다.
우리를 착취하고 학대하고 살육하는 포악한 적에 대해 복수의 투쟁을 개시하자. 조선인이 받은 학대·비애를 절실히 느낀다면 누구라도 허무당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라 확신한다. 허무당의 주장에 반대하는 자는 민중의 적이다. 민중의 적은 폭파·방화·총살 등 최후의 수단에 호소할 뿐이다. 포악한 적의 학대에 신음하는 민중이여, 허무당의 기치 아래 집합하라. 그 참혹하고 흉폭(兇暴)한 적을 일거에 격파하라. 최후의 승리는 우리에게 있다. 허무당 만세, 조선 혁명 만세
1926년 1월 1일
허무당
경상북도경찰부 편, 『고등경찰요사』,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