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8⋅15 광복

카이로 선언

카이로 선언(1943. 12. 1)

각 군사 사절단은 일본에 대한 장래의 군사 행동을 협정하였다. 3대 동맹국은 해로와 육로, 항공로로 야만적인 적국에 대하여 끊임없는 압박을 가할 결의를 표명하였다. 이 압박은 이미 증대하고 있다. 3대 동맹국은 일본의 침략을 정지시키고 이를 벌하기 위하여 지금 전쟁을 속행하고 있다. 위 동맹국은 자국을 위하여 하등 이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또 영토를 확장할 아무런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위 동맹국의 목적은 일본국으로부터 1914년 제1차 세계전쟁 이후 일본이 탈취하고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도서를 일체 박탈할 것과 만주⋅타이완 및 펑후 제도와 같이 일본국이 중국인으로부터 훔친 일체의 지역을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고, 일본은 또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앞의 3대국은 조선 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이 자유 독립할 것을 결의한다.

이 목적으로써 위 3대 동맹국은 동맹제국 중 일본국과 교전중인 제국과 협조하여 일본국의 무조건 항복을 받기에 필요한, 어렵고 또 장기적인 작전을 속행한다.

민주주의민족전선, 『조선해방연보』, 1946, 39~40쪽

Cairo Declaration(1943. 12. 1)

The several military missions have agreed upon future military operations against Japan. The Three Great Allies expressed their resolve to bring unrelenting pressure against their brutal enemies by sea, Iand, and air. This pressure is already rising.

The Three Great Allies are fighting this war to restrain and punish the aggression of Japan. They covet no gain for themselves and have no thought of territorial expansion. It is their purpose that Japan shall be stripped of all the islands in the Pacific which she has seized or occupi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first World War in 1914, and that all the territories Japan has stolen from the Chinese, such as Manchuria, Formosa, and the Pescadores, shall be restored to the Republic of China. Japan will also be expelled from all other terr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With these objects in view the three Allies, in harmony with those of the United Nations at war with Japan, will continue to persevere in the serious and prolonged operations necessary to procure the unconditional surrender of Japan.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A Decade of American Foreign Policy: 1941-1949, Basic Documents. Washington, DC

이 사료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뒤인 1943년 11월 23일부터 27일까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수상,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장군 등 연합국 수뇌가 이집트의 카이로에 모여 전후 처리에 관해 협의한 뒤 발표한 「카이로선언」이다.

1943년 3월 워싱턴에서 루스벨트 대통령과 코델 헐(Cordell Hull) 미 국무장관, 앤서니 이든(Anthony Eden) 영국 외상이 만나 한국 문제를 최초로 논의하였다. 회담 주제는 전쟁이 끝난 뒤 만주⋅타이완⋅인도차이나⋅한국 문제 처리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만주와 타이완은 중국에 반환되어야 하며, 인도차이나와 한국은 미국과 중국, 소련의 신탁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 뒤 1943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연합국 외상 회담이 개최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외상 회담에 참석하는 국무장관 헐에게 식민지 국민들에게 ‘신탁 통치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문제’에 관해 합의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소련 외상 몰로토프(V. M. Molotov)는 미국 측 제안을 지지했지만, 영국은 자국의 식민지에 대한 연합국의 국제 공동 신탁 통치에 반대했고, 영국의 단독 위임통치 등의 지배 관계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43년 11월에 열린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시 미국⋅중국⋅소련 3개국에 의한 한국의 국제 공동 신탁 통치안을 제안한 반면에 장제스는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는 성명을 발표하자고 제안하였다. 처칠 수상은 미국과 중국의 제안에 모두 반대하다가, 결국 영국은 한국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판단하여 미국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연합국은 「카이로선언」에서 연합국은 승리하더라도 자국의 영토 확장을 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일본의 남양 군도와 만주, 타이완, 펑후(澎湖) 제도 반환 등을 요구했으며, 일본이 무조건 항복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결의하였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in due course), 조선이 자유 독립할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적당한 시기에’는 미국 루스벨트의 제안을 채택한 것이고, ‘한국이 자유 독립하게 될 것’은 중국 장제스의 제안을 채택한 것이다.

「카이로선언」 바로 그 다음 날인 1943년 11월 28일 루스벨트⋅처칠⋅스탈린 등은 테헤란에서 만나 한국에 대한 신탁 통치안에 대해 다시 거론하였다. 그 뒤 1945년 2월 8일 미국⋅영국⋅소련 대표들이 개최한 ‘얄타회담’에서 일정 기간 미국⋅영국⋅소련⋅중국 4개국에 의한 신탁 통치를 실시한 후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고 합의하였다. 1945년 7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열린 마지막 연합국 회담인 ‘포츠담회담’에서는 한국 문제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7월 26일 공표된 「포츠담선언」에서는 한국이 ‘적당한 시기에’ 독립되어야 한다는 「카이로선언」을 다시 확인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분단의 배경과 고정화 과정」,『해방전후사의 인식』1,김학준,한길사,1979.
「미국의 한국 점령안 조기준비」,『국제정치논총』36-1,이완범,한국국제정치학회,1996.
「카이로선언」,『한미안보연구회 총서2』,정일화,선한약속,2010.
저서
『미군정시대의 국가와 행정』, 김석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6.
『한국분단사』, 조순승, 평민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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