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광복 직후의 국내 정세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선언⋅강령

건국 준비 위원회 선언

1945년 8월 28일

건국 준비 위원회 서기국 9월 2일 발표

인류는 평화를 갈망하고 역사는 발전을 지향한다. 인류사상 공전적(空前的) 참사인 제2차 세계 대전의 종결과 함께 우리 조선에도 해방의 날이 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로서 제국주의적 봉건적 착취와 억압 하에 모든 방면에 있어서 자유의 길이 막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우리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을 계속하여 왔다. 이 자유 발전의 길을 열려는 모든 운동과 투쟁은 제국주의와 그와 결탁한 반동적 반민주주의적 세력에 의하여 완강히 거부되어 왔었다. 전후 문제의 국제 해결에 따라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 민족의 해결은 다난한 운동 역사상에 있어 겨우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디었음에 불과하나니 이 완전한 독립을 위한 허다한 투쟁은 아직 남아 있으며 새 국가의 건설을 위한 중대한 과업은 우리의 앞에 놓여 있다.

그러면 차제에 우리의 당면 임무는 완전한 독립과 진정한 민주주의 확립을 위하여 노력하는 데 있다. 일시적으로 국제 세력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나 그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도와줄지언정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봉건적 잔재를 일소하고 자유 발전의 길을 열기 위한 모든 진보적 투쟁은 전국적으로 전개되어 있고 국내의 진보적 민주주의적 여러 세력은 통일 전선의 결성을 갈망하고 있나니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의하여 우리의 건국 준비 위원회는 결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 준비 위원회는 우리 민족을 진정한 민주주의적 정권에로 재조직하기로 한 새 국가 건설의 준비 기구인 동시에 모든 진보적 민주주의적 세력을 집결하기 위하여 각층 각계에 완전히 개방된 통일 기관이요 결코 혼잡된 협동 기관은 아니다. 왜 그런고 하면 여기서는 모든 반민주주의적 반동 세력에 대한 대중적 투쟁이 요청되는 까닭이다. 과거에 있어서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결탁하여 민족적 죄악을 범하였고 금후에도 그들은 해방 조선을 건설하는 도중에서 방해할 가능성이 있나니 이러한 반동 세력 즉 반민주주의적 세력과 싸워 이것을 극복 배제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강력한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정권은 전국적 인민 대표 회의에서 선출된 인민 위원으로서 구성될 것이며 그 동안 해외에서 조선 해방 운동에 헌신하여 온 혁명 전사들과 특히 그 지향적 집결체에 대하여는 적당한 방법에 의하여 전심적(專心的)으로 맞이하여야 할 것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조선 전 민족의 총의(總意)를 대표하여 이익을 보호할 만한 완전한 새 정권이 나와야 하며 이러한 새 정권이 확립되기까지의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본 위원회는 조선의 치안을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한걸음 더 나가 조선의 완전한 독립 국가 조직을 실현하기 위하여 새 정권을 수립하는 산파적인 사명을 다하려는 의도에서 아래와 같은 강령을 내세운다.

강령

우리는 완전한 독립 국가의 건설을 기함

우리는 전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정권의 수립을 기함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대중생활의 확보를 기함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민주주의민족전선사무국 편, 『조선해방연보』, 문우인서관, 1946

建國準備委員會 宣言

1945년 8월 28일

건국준비위원회 서기국 9월 2일 발표

人類는 平和를 渴望하고 歷史는 發展을 指向한다. 人類史上의 空前的 慘事인 第2次世界大戰의 終結과 함께 우리 朝鮮에도 解放의 날이 왔다. 지난 半世紀동안 우리 朝鮮은 帝國主義 日本의 植民地로서 帝國主義的 封建的 搾取와 抑壓 下에 모든 方面에 있어서 自由의 길이 막히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過去 36年 동안 우리의 解放을 위하여 鬪爭을 계속하여 왔다. 이 自由 發展의 길을 열려는 모든 運動과 鬪爭은 帝國主義와 그와 結託한 反動的 反民主主義的 勢力에 의하여 頑强히 拒否되어 왔었다. 戰後問題의 國際 解決에 따라 朝鮮은 帝國主義 日本의 羈絆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朝鮮民族의 解決은 多難한 運動歷史 上에 있어 겨우 새로운 一步를 내디디었음에 불과하나니 完全한 獨立을 위한 허다한 鬪爭은 아직 남아 있으며 새 國家의 建設을 위한 重大한 課業은 우리의 前途에 놓이어 있다.

그러면 此際에 우리의 當面任務는 完全한 獨立과 眞正한 民主主義 確立을 위하여 努力하는데 있다. 一時的으로 國際勢力이 우리를 支配할 것이나 그것은 우리의 民主主義的 要求를 도와줄지언정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封建的 殘滓를 一掃하고 自由發展의 길을 열기 위한 모든 進步的 鬪爭은 全國的으로 展開되어 있고 國內의 進步的 民主主義的 여러 勢力은 統一戰線의 結成을 渴望하고 있나니 이러한 社會的 要求에 의하여 우리의 建國準備委員會는 結成된 것이다.

그러므로 本 準備委員會는 우리 民族을 眞正한 民主主義的 政權에로 再組織하기로 한 새 國家建設의 準備機關인 동시에 모든 進步的 民主主義的 勢力을 集結하기 위하여 各層 各界에 完全히 開放된 統一機關이요 결코 混雜된 協同機關은 아니다. 왜 그런고 하면 여기서는 모든 反民主主義的 反動勢力에 대한 大衆的 鬪爭이 要請되는 까닭이다. 過去에 있어서 그들은 日本 帝國主義와 結託하여 民族的 罪惡을 범하였고 今後에도 그들은 解放朝鮮을 建設하는 途中에서 방해할 可能性이 있나니 이러한 反動勢力 즉 反民主主義的 勢力과 싸워 이것을 克服 排除하고 眞正한 民主主義의 實現을 위하여 强力한 民主主義 政權을 樹立하여야 할 것이다.

이 政權은 全國的 人民代表會議에서 選出된 人民委員으로서 構成될 것이며 그동안 海外에서 朝鮮解放運動에 獻身하여 온 革命戰士들과 특히 그 指導的 集結體에 대하여는 적당한 方法에 의하여 專心的으로 맞이하여야 할 것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朝鮮 全民族의 總意를 代表하여 利益을 보호할 만한 完全한 새 政權이 나와야 하며 이러한 새 政權이 確立되기까지의 一時的 過渡期에 있어서 本 委員會는 朝鮮의 治安을 自主的으로 유지하며 한걸음 더 나가 朝鮮의 完全한 獨立國家 組織을 實現하기 위하여 새 政權을 樹立하는 産婆的한 使命을 다하려는 意圖에서 아래와 같은 綱領을 내세운다.

綱領

一. 우리는 完全한 獨立國家의 建設을 期함

一. 우리는 全 民族의 政治的 經濟的 社會的 基本要求를 實現할 수 있는 民主主義的 政權의 樹立을 期함

一. 우리는 一時的 過渡期에 있어서 國內秩序를 自主的으로 維持하며 大衆生活의 確保를 期함

朝鮮建國準備委員會

민주주의민족전선사무국 편, 『조선해방연보』, 문우인서관, 1946

이 사료는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일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발표한 선언과 강령이다. 1945년 8월 초, 일본은 자국이 전쟁에서 패배하리라는 것을 감지하고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있는 일본인이 안정적으로 귀국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8월 10일부터 15일 사이, 조선 총독부여운형(呂運亨, 1886~1947)⋅송진우(宋鎭禹, 1890~1945)⋅안재홍(安在鴻, 1891~1965) 등과 치안 유지에 관해 개별적으로 교섭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여운형조선 총독부와 “정치범과 경제범 석방, 3개월 동안의 식량 확보, 치안 유지와 건국 운동을 위한 정치 운동에 총독부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행정권 이양에 합의하였다. 일제는 치안 유지권을 이양하려는 목적으로 교섭을 시작했지만 여운형은 일제와의 교섭을 건국의 초석으로 인식하여 실질적인‘정권 이양’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여운형은 1944년 8월에 결성했던 독립운동 단체인 ‘건국 동맹’에 참여한 사회주의 계열과 중간 좌파 인사들, 그리고 중간 우파인 안재홍 등을 규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이하 건준)를 조직하였다. 건준 위원장은 여운형, 부위원장은 안재홍이었다. 1945년 8월 말, 전국에 144개의 건준 지부가 결성되었고, 북한 지역에서도 조만식(曺晩植, 1882~1950)의 주도 하에 조직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를 주도하는 계층이나 지역에 따라 건준의 명칭과 구성에서 차이가 났다. 하지만 건준이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민중의 자치 조직’이라는 데는 별 차이가 없었다.

1945년 9월 4일 건준 전체 회의가 개최되어 부위원장에 좌파 변호사 허헌(許憲, 1885~1951)이 선출되는 등 집행위원이 개편되었다. 집행위원들은 미국과의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 형태의 조직’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9월 6일 밤 경기 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 인민 공화국 임시 조직법」이 통과되고, ‘조선 인민 공화국’(이하 인공) 수립이 선포되었다. 이렇게 인공 형태로 개편되면서 건준은 9월 7일 ‘발전적으로 해소’하여 인민 위원회 각 지역 지부로 개편되었다.

하지만 조직이 인공으로 개편되면서 문제점도 여럿 불거졌다. 먼저 인공 주석에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내무부장에 김구(金九, 1876~1949), 외교부장에 김규식(金奎植, 1881~1950) 등이 올라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해외에 있었다. 또 인공 내에서 박헌영(朴憲永, 1900~1955)의 조선 공산당 계열 세력이 커져 좌익 조직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어 우익 진영 지도자들의 협조를 얻어 내지 못했다.

1945년 9월 미군이 한반도에 들어오고, 미군정이 직접 통치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맥아더 포고령 1호」가 발표되면서 한반도에서는 미군정기가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그동안 치안과 행정 업무를 담당했던 건준과 인공은 미군정의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1945년 10월 10일 아놀드 군정장관은 남한에서 미군정 외 어떤 형태의 정부도 인정할 수 없으며, 미군정에 도전하는 어떤 세력이나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선언은 인공과 곧 국내에 들어올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겨냥한 선언이었다.

좌우가 연합한 통일 전선 세력의 건국 준비 조직으로 출발한 건준은 1945년 8월 16일 발족한 이후 같은 해 9월 6일 인공이 출범된 뒤 해소될 때까지 치안을 담당하는 등 실질적인 정부의 기능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건준이나 인공, 지역 인민 위원회는 자생적이고 자주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특히 미군정이 자리 잡기 전까지 전국 각 도⋅시⋅군⋅읍⋅면 단위에서 결성된 지역 인민 위원회는 각 지역의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해방직후의 민족통일전선 운동」,『한국현대사』1,윤덕영,풀빛,1991.
「해방직후 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과 활동」,『해방전후사의 인식』2,홍인숙,한길사,1985.
저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서중석, 역사비평사, 1991.
편저
『한국현대사 강의』, 김인걸 외, 돌베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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