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광복 직후의 국내 정세

조선 공산당의 정치 노선-8월 테제

一. 현정세

독일의 붕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2차 세계 대전은 마침내 끝이 나고 말았다. 국제 파시즘과 군벌 독재의 압박으로부터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전 세계 인류는 구원되어 해방과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에 이기었다는 것으로써 만족할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후 여러 가지 국제 문제의 해결과 평화유지를 위한 국제기관의 창설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을 위하여 샌프란시스코회담 포츠담회담이 열리었던 것이다. 이에 국제문제는 어느 정도 바르게 해결되게 되었고 영구는 못될지언정 상당히 오랜 기간의 세계평화를 위한 평화유지기간은 조직된 것이다. 이에 조선의 해방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민족의 주관적 투쟁적인 힘에 의해서라기보다도 진보적 민주주의국가 소련⋅영국⋅미국⋅중국 등 연합국 세력에 의하여 실현된 것이다. 즉 세계문제가 해결되는 마당에 따라서 조선 해방은 가능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한 개로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부분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즉 세계 전체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정도로 국제정치는 발전되었나니 그것은 편협한 국가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오, 2차 세계 대전의 쓰라린 실물 교훈의 덕택이다. 이번 반파시스트 반일 전쟁 과정에 있어서 조선 전체로 보아 응당한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조선의 지주와 민족 부르조아지들이 전체로 일본 제국주의의 살인 강도적 침략적 전쟁을 지지하기 때문이었다. 이들 반동세력은 전시 국가 총동원 체제 밑에서 조선의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일체 근로인민의 진보적 의사를 무시하고 잔인무도한 군사적 제국주의적 탄압을 행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혁명적 투쟁이 대중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약점이다. 여기에서 우리 조선은 민족적 자기비판을 하여야 할 순간에 이르렀다. 이것은 조선이 앞으로는 국제정국에 있어서 진보적 역할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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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조선 혁명의 현단계

오늘날 조선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계단을 걸어가고 있나니 민족적 완전 독립과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이 가장 중요하고 중심 되는 과업으로 서 있다. 즉 다시 말하면 일본의 세력을 완전히 조선으로부터 몰아내는 동시에 모든 외래 자본에 의한 세력권 결정과 식민문화정책을 절대 반대하고 노동인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혁명적 민주주의정권을 내세우는 문제와 동시에 토지문제의 해결이다. 우리 조선사회제도로부터 전(前)자본주의적 봉건적 잔재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자유발전의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우리는 토지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일본 제국주의자와 민족적 반역자와 대지주의 토지를 보상을 주지 않고 몰수하여 이것을 토지 없는 또는 적게 가진 농민에게 분배할 것이오, 토지혁명의 진행과정에 있어서 조선인 중소지주의 토지에 대하여서는 자기경작토지 이외의 것은 몰수하여 이것을 농작자의 노동과 가족의 인구수 비례에 의하여 분배할 것이오, 조선의 전 토지는 국유화한다는 것이오, 국유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농민위원회 인민위원회가 이것을(몰수한 토지)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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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현상과 그 결점

일반적으로 조선의 혁명운동은 국내에 있어서나 국외에 있어서나 운동이 연결을 가지고 통일적 활동을 하지 못했다. 특히 전쟁 시기에 군사적 제국주의적 전시 계엄령적 상황 밑에서 모든 운동은 물론이고 하찮은 자유사상의 언사까지도 극악의 탄압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조선 민족해방운동 특히 그 중에도 조선공산주의운동은 깊이 지하실에서 계속되고 있었으나 표면에 나서지 못한 것이었다. 대중의 지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끊임없이 일어나는 대중적 검거는 비합법적 조직운동을 극도로 「위축」시키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곤란한 환경 하에서도 어쨌든 국제노선을 대중 속에서 실천하는 진실한 의미의 콤그룹의 공산주의운동이 비합법적으로 계속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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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우리의 당면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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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중운동을 전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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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직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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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옳은 정치노선을 위한 양면작전투쟁을 전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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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롤레타리아의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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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으로 수립된 「인민정권」을 위한 투쟁을 전국적으로 전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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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 혁명이 높은 단계로 전환하는 문제

조선의 혁명이 그 발전에 따라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높은 단계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에로 전환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이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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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조선해방 만세!

一. 조선 인민공화국 만세!

一. 조선 공산당 만세!

一. 중국혁명 만세!

一. 만국 프롤레타리아의 조국 쎄쎄쎄르 만세!

一. 세계혁명운동의 수령 스탈린 동무 만세!

이정 박헌영 전집편집위원회 편, 『이정 박헌영 전집』2(미군정기 저작편), 역사비평사, 2004

一. 現情勢

獨逸의 崩壞, 日本의 無條件 降伏으로 二次世界大戰은 마침내 끝이 나고 말았다. 國際파시즘과 군벌獨裁의 壓迫으로부터 戰爭의 苦痛으로부터 全世界人類는 구원되어 解放과 自由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戰爭에 이기었다는 것으로써 滿足할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戰後 여러가지 國際問題의 解決과 平和維持를 爲한 國際機關의 創設이 必要한 것이었다. 이것을 위하여 桑港會談 포츠담會談이 열리었던 것이다. 이에 國際問題는 어느 程度 바르게 解決되게 되었고 永久는 못될지언정 相當히 오랜 기간의 世界平和를 위한 平和維持期間은 組織된 것이다. 이에 조선의 解放은 實現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民族의 主觀的 鬪爭的인 힘에 의해서 보다도 進步的 民主主義國家 蘇⋅英⋅美⋅中 등 聯合國勢力에 의하여 實現된 것이다. 즉 世界問題가 解決되는 마당에 따라서 조선解放은 可能했다. 그러므로 今日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한개로 分離하여 孤立的으로 部分的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즉 世界全體의 立場에서 問題를 해결한다는 정도로 國際政治는 發展되었나니 그것은 偏狹한 國家主義에 대한 國際主義의 勝利를 意味하는 것이오 二次世界大戰의 쓰라린 實物敎訓의 德澤이다. 이번 反파시스트 反日戰爭過程에 있어서 조선 全體로 보아 應當한 自己役割을 놀지 못했다. 그것은 조선의 地主와 民族부르조아지들이 전체로 日本帝國主義의 殺人强盜的 侵略的 戰爭을 支持하기 때문이었다. 이들 反動勢力은 戰時國家總動員體制 밑에서 조선의 勞動者 農民 都市貧民 등 一切 근로인민의 進步的 意思를 無視하고 殘忍無道한 軍事的 帝國主義的 彈壓을 行했다. 그러나 率直하게 말하면 그것은 우리民族의 革命的 鬪爭이 大衆的으로 展開되지 못한 弱點이다. 여기에서 우리 조선은 民族的 自己批判을 하여야 할 모맨트에 이르렀다. 이것은 조선이 앞으로는 國際政局에 있어서 進步的 役割을 놀기 위한 前提條件이 되기 때문이다.

……(중략)……

二. 朝鮮 革命의 現段階

今日 조선은 부르조아 民主主義革命의 階段을 걸어가고 있나니 民族的 完全獨立과 土地問題의 革命的 解決이 가장 重要하고 中心되는 課業으로 서 있다. 卽 다시 말하면 日本의 勢力을 完全히 조선으로부터 驅逐하는 同時에 모든 外來資本에 의한 勢力圈 決定과 植民地化政策을 絶對 反對하고 勤勞人民의 利益을 擁護하는 革命的 民主主義政權을 내세우는 問題와 同時에 土地問題의 解決이다. 우리 朝鮮社會制度로부터 前資本主義的 封建的 殘滓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自由發展의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우리는 土地問題를 革命的으로 解決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日本帝國主義者와 民族的 叛逆者와 大地主의 土地를 報償을 주지 않고 沒收하여 이것을 土地 없는 또는 적게 가진 農民에게 分配할 것이오 土地革命의 進行過程에 있어서 朝鮮人 中小地主의 土地에 대하여서는 自己耕作土地以外의 것은 沒收하여 이것을 農作者의 勞力과 家族의 人口數比例에 依하여 分配할 것이오 조선의 全土地는 國有化한다는 것이오 國有化가 實現되기 前에는 農民委員會 人民委員會가 이것을(沒收한 土地) 管理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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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朝鮮 共産主義 運動의 現狀과 그 缺點

一般的으로 朝鮮의 革命運動은 國內에 있어서나 國外에 있어서나 運動이 連結을 가지고 統一的 活動을 하지 못했다. 特히 戰爭時期에 軍事的 帝國主義的 戰時戒嚴令的 狀態 밑에서 모든 運動은 勿論이고 하치않은 自由思想의 言辭까지도 極惡의 탄압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一般的으로 조선民族解放運動 特히 그 中에도 조선共産主義運動은 깊이 地下室에서 繼續되고 있었으나 표면에 나서지 못한 것이었다. 大衆의 支持가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大衆的 檢擧는 非合法的 組織運動을 極度로 「萎縮」시키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困難한 環境下에서도 어쨌든 國際路線을 大衆 속에서 實踐하는 眞實한 意味의 콤구룹의 共産主義運動이 非合法的으로 繼續했던 것은 事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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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우리의 當面任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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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大衆運動을 展開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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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組織事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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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옳은 政治路線을 위한 兩面作戰鬪爭을 展開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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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푸로레타리아의 헤게모니를 爲한 鬪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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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民族統一戰線의 結成으로 樹立된 「人民政權」을 爲한 鬪爭을 全國的으로 展開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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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 革命이 높은 段階로 轉換하는 問題

조선의 革命이 그 發展에 따라서 부르조아 民主主義 革命이 높은 段階인 프로레타리아革命에로 轉換한다는 것은 가장 重要한 理論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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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朝鮮革命 萬歲!

一. 朝鮮人民共和國 萬歲!

一. 조선공산당 만세!

一. 中國革命 萬歲!

一. 萬國푸로레타리아트의 祖國 쎄쎄쎄르 萬歲!

一. 世界革命運動의 首領 스탈린동무 萬歲!

이정 박헌영 전집편집위원회 편, 『이정 박헌영 전집』2(미군정기 저작편), 역사비평사, 2004

이 사료는 해방 직후 박헌영(朴憲永, 1900~1955)이 제시한 「8월 테제」이다. 조선 공산당의 정치 노선이 담긴 문건으로 정식 제목은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이며, 1945년 8월 20일 서울의 조선 공산당 재건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는 자리에서 박헌영이 제시했고, 향후 조선 공산당의 잠정적 정치 노선으로 채택되었다.

박헌영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 조선 공산당 지도자였다. 1930년대 조선 공산당 창당⋅조직 활동을 하다가 조선 총독부의 탄압을 받았고, 1940년 이후 광주에서 벽돌⋅기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공산당 재건 운동 조직을 지도하였다. 1945년 이후 조선 공산당을 재건한 뒤 건국 준비 위원회, 민주주의 민족 전선 등에서 활동하다가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1946년 9월경 월북했으며, 1948년 9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수립된 뒤 부수상 겸 외무장관 등을 지냈으나 6⋅25 전쟁의 책임을 이유로 숙청되었다.

1945년 8월 20일 경성콤그룹이 개편되어 조선 공산당 재건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위원회에서 박헌영이 작성한 「일반 정치 노선에 대한 결정」문서가 채택되었다. 이 문서가 「8월 테제」로 불리는 문서의 최초본이다.

1945년 9월 8일 박헌영은 장안파 조선 공산당 ‘열성자 대회’에 재건 준비 위원회 대표로 참석하여 「당 통일과 중앙 건설에 대한 보고」를 발표하였다. 같은 해 9월 11일 재건 준비 위원회가 해체되고 조선 공산당이 재건되었다. 이때 박헌영은 중앙 위원의 일원이자 조선 공산당 제1인자인 총비서로 선출되었다. 9월 20일, 조선 공산당 중앙 위원회는 「일반 정치 노선에 대한 결정」을 수정한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를 채택하였다. 이것이 「8월 테제」의 두 번째 본이다. 9월 25일 조선 공산당은 ‘조선 공산당 중앙 위원회’ 명의로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를 소책자로 출판하여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조선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 계열의 지침서가 된 「8월 테제」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먼저 ‘현 정세’인 1장에서는 조선의 해방이 연합국의 승리로서만 가능했다는 것과 세계 혁명 정세가 사회주의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전제하에 국내외 정세를 분석하고 있다.

박헌영은 2장에서 조선 혁명의 현 단계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을 주장하였다. 그 기본 과업으로 민족적 완전 독립, 토지 문제의 완전한 해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8시간 노동제 실시 등을 내세웠다. 또 혁명의 주요한 세력은 ‘노동자, 농민, 도시 소시민과 인텔리겐치아’이며, 혁명의 영도 계급은 ‘프롤레타리아’라고 규정하였다.

3장에서는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현상과 그 결점’이라는 제목 하에 다른 공산주의 파벌에 대해 비판하였다. 4장에서는 대중운동 전개를 위해 노동자⋅농민 투쟁을 조직하고 지도하며, 청년 운동과 여성 운동, 문화 단체 운동, 소비조합 운동, 실업자 운동의 활성화를 주장하였다. 5장에서는 ‘약간의 이론 문제-혁명의 높은 정도로 전환하는 문제’를 설명하면서 조선 혁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환되는 문제를 다뤘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박헌영⋅남로당노선 무엇이 문제인가」,『역사비평』5,정병준,역사문제연구소,1989.
저서
『남로당연구』, 김남식, 돌베개, 1984.
『이정 박헌영 일대기』, 임경석, 역사비평사, 2004.
편저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사』, 한국역사연구회 1930년대 연구반, 한길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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