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광복 직후의 국내 정세

아놀드 미 군정 장관의 조선인민공화국 부인 성명

조선엔 군정부뿐 – 군정장관 아 소장 발표

미군정장관 아놀드 소장은 10일 신문회견 석상에서 ‘명령의 성질을 가진 요구’라고 다음과 같은 발표를 하였다.

“발표 내용의 요점이 어디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그 하급적인 저열한 용어와 00치 못한 태도로 보아 조선의 행정책임자 장관 공식발표 문서로서 인상이 나쁜 것과 그러한 욕설의 용어로 된 문장을 신문에 특히 1면에 일찍이 특재(特載)해 보지 못한 경험과 아울러 이를 그대로 발표함으로서 신문의 일반적인 예절적 교육효과에도 불가하리라는 생각으로 다시 군정당국에 가서 장시간 의견을 말한 바 있었으나, 책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그 발표를 보류하고 다시 11일 정보과장 뉴만 씨를 통하여 논의하였으나 원문대로 발표할 것을 요청하므로 발표문서로서 유감된 점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있는 그대로 여기에 발표하는 터이다.

아놀드 군정장관의 인민공화국 부인 성명

금일 내가 기자제군에게 발표하는 기사 재료는 각 신문 제1면에 특재할 것인바 이는 명령의 성질을 가진 요구이다.

조선이 일본의 기반(羈絆)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물론 축하식과 시위행렬과 웅변대회 등을 개최하여 경축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조선인에게 언론자유, 출판자유를 허(許)한 이상 미숙한 신문편집자로 인하여 간간 우매경솔한 기사도 있을 만한 일이다. 사회의 안녕질서를 교란치 않고 치안을 문란치 않으며 조선정부의 정연한 행정을 방해치 않는 한 이러한 유치한 행동이 비록 노년자의 소위(所爲)라 할지라도 부운유수(浮雲流水)에 부칠 수 있을 것이다.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에는 오직 한 정부가 있을 뿐이다. 이 정부는 맥아더 원수의 포고와 하지 중장의 명령과 아놀드 소장의 행정령에 의하여 정당히 수립된 것이다. 아놀드 군정장관과 군정관들이 엄선하고 감독하는 조선인으로 조직된 정부로서 행정 각 방면에 있어서 절대의 지배력과 권위를 가지었다. 자천자임(自薦自任)한 『관리』라든가 『경찰』이라든가 『국민전체를 대표』하였노라는 대소 회합이라든가 (자칭) 『조선인민공화국』이든가 (자칭) 『조선공화국내각』은 권위와 세력과 실재가 전연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고관대직을 참칭(僭稱)하는 자들이 흥행적 가치조차 의심할 만한 괴뢰극을 하는 배우라면 그들은 즉시 그 극을 폐막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만일 혹종(或種)의 『보안대』가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률에 저촉치 아니하고 유치하나마 성의껏 행동을 하였다면 이제는 해체하고 각기 직장으로 돌아가 과동(過冬)에 필요한 식량과 의복과 주택을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국내에는 정당한 직업과 공정한 급료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의 노무력은 반드시 과동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괴뢰극의 막후에 그 연극을 조종하는 사기한(詐欺漢)이 있어 어리석게도 조선정부의 정당한 행정사무의 일부분일지라도 단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마땅히 맹연(猛然) 각성하여 현실을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출을 당연 정지하여야 할 것이다.

근자에 모 신문에 조선민중을 기만하는 기사가 있다. 즉 1946년 3월 1일에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소집하여 허위선거를 발표한 것이며 또 그 선거에 있어서 반역자를 제하고는 18세 이상의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자유민에게는 투표권 이상 신성한 것이 없다. 이 사리(私利)는 거짓 희망을 주어가며 대중을 유도하는 자칭 정치가의 유희물이 되기에는 너무도 신성한 것이다. 이 선거권은 조선정부가 지도한 방법과 시기에만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비법적(非法的) 선거를 제안한 개인이나 단체는 군정부에 대한 가장 중대한 방해한 반항적 행동이다. 만일 조선민중이 새로 얻은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및 다년간 받은 모든 구속에서 해방된 자유를 귀중히 여긴다면 민중의 도의적(道義的) 지도력을 한층 분발하여 이러한 어리석고 악질의 인물들로 하여금 이상 자유를 유린치 못하게 할 때가 왔다. 조선 인민은 이런 무책임한 인물들로 하여금 국가의 안녕질서를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단연코 엄금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 정부가 가진 권력을 가지고 간섭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

1945년 10월 10일

미군정장관

육군소장 아치볼드 빈센트 아놀드 (Archibald V. Arnold)

〈매일신보〉, 1945년 10월 11일

朝鮮엔 軍政府뿐 – 軍政長官 아 小將發表

美軍政長官 아놀드小將은 十日 新聞會見 席上에서 『命令의 性質을 가진 要求』라고 다음과 같은 발표를 하였다. 發表內容의 要點이 어디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그 下級的인 低劣한 用語와 00치 못한 態度로 보아 朝鮮의 行政責任者 長官 公式發表 文書로서 印象이 나쁜 것과 그러한 辱說의 用語로 된 文章을 新聞에 특히 一面에 일찍이 特載해 보지 못한 經驗과 아울러 이를 그대로 發表함으로서 新聞의 一般的인 禮節的 敎育効果에도 不可하리라는 생각으로 다시 軍政當局에 가서 長時間 意見을 말한 바 있었으나 責任者로부터 直接 談을 듣지 못했기에 그 發表를 保留하고 다시 十一日 情報課長뉴만씨을 通하여 論議하였으나 原文대로 發表할 것을 要請하므로 發表文書로서 遺憾된 點이 있음을 認定하면서 있는 그대로 여기에 發表하는 터이다.

아놀드 軍政長官의 人民共和國 否認 聲明

今日 내가 記者諸君에게 發表하는 記事 材料는 各新聞 第1面에 特載할 것인바 이는 命令의 性質을 가진 要求이다.

朝鮮이 日本의 羈絆에서 解放되었다는 것은 물론 祝賀式과 示威行列과 雄辯大會 等을 開催하여 慶祝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朝鮮人에게 言論自由 出版自由를 許한 以上 未熟한 新聞編輯者로 因하여 間間 愚昧輕率한 記事도 있을 만한 일이다. 社會의 安寧秩序를 攪亂치 않고 治安을 紊亂치 않으며 朝鮮政府의 整然한 行政을 妨害치 않는 한 이러한 幼稚한 行動이 비록 老年者의 所爲라 할지라도 浮雲流水에 부칠 수 있을 것이다.

北緯 38도 以南의 朝鮮에는 오직 한 政府가 있을 뿐이다. 이 政府는 맥아더 元帥의 布告와 하지 中將의 命令과 아놀드 小將의 行政令에 의하여 正當히 樹立된 것이다. 아놀드 軍政長官과 軍政官들이 嚴選하고 監督하는 朝鮮人으로 組織된 政府로서 行政 各 方面에 있어서 절대의 支配力과 權威를 가지었다. 自薦自任한 『官吏』라든가 『警察』이라든가 『國民全體를 代表』하였노라는 大小의 會合이라든가 (自稱) 『朝鮮人民共和國』이든가 (自稱) 『朝鮮共和國內閣』은 權威와 勢力과 實在가 全然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高官大職을 僭稱하는 者들이 興行的 價値조차 疑心할 만한 傀儡劇을 하는 俳優라면 그들은 卽時 그 劇을 閉幕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萬一 或種의 『保安隊』가 安寧秩序를 維持하기 위하여 法律에 抵觸치 아니하고 幼稚하나마 誠意껏 行動을 하였다면 이제는 解體하고 각기 職場으로 돌아가 過冬에 必要한 食糧과 衣服과 住宅을 確保하도록 努力하여야 할 것이다. 國內에는 正當한 職業과 公正한 給料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朝鮮의 勞務力은 반드시 過冬에 필요한 物資를 生産하여야 할 것이다.

萬一 이러한 傀儡劇의 幕後에 그 演劇을 操縱하는 詐欺漢이 있어 어리석게도 朝鮮政府의 正當한 行政事務의 一部分일지라도 斷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마땅히 猛然覺醒하여 現實을 把握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演出을 當然 停止하여야 할 것이다.

近者에 某新聞에 朝鮮民衆을 欺瞞하는 記事가 있다. 즉 1946年 3月 1日에 全國人民代表大會를 召集하여 虛位選擧를 發表한 것이며 또 그 選擧에 있어서 反逆者를 除하고는 18歲 以上의 모든 男子와 女子에게 投票權을 賦與하겠다고 約束한 것이다. 自由民에게는 投票權 이상 神聖한 것이 없다. 이 私利는 거짓 希望을 주어가며 大衆을 誘導하는 自稱 政治家의 遊戱物이 되기에는 너무도 神聖한 것이다. 이 選擧權은 朝鮮政府가 指導한 方法과 時期에만 行使할 수 있는 것이다. 以上과 같은 非法的 選擧를 提案한 個人이나 團體는 軍政府에 對한 가장 重大한 妨害한 反抗的 行動이다. 萬一 朝鮮民衆이 새로 얻은 言論의 自由, 出版의 自由 及 多年間 받은 모든 拘束에서 解放된 自由를 貴重히 여긴다면 民衆의 道義的 指導力을 一層 分發하여 이러한 어리석고 惡質의 人物들로 하여금 以上 自由를 蹂躪치 못하게 할 때가 왔다. 朝鮮人民은 이런 無責任⋅한 人物들로 하여금 國家의 安寧秩序를 威脅하는 일이 없도록 斷然코 嚴禁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 政府가 가진 權力을 가지고 干涉할 必要조차 없을 것이다.

一九四五年 十月 十日

美軍政長官

陸軍小將 에이⋅비⋅아놀드

〈每日申報〉, 1945년 10월 11일

이 사료는 1945년 10월 10일 미군정 장관 아놀드(Archibald V. Arnold)가 발표한 조선인민공화국 부인 성명 내용이다.

1945년 8월 17일 여운형(呂運亨, 1886~1947)을 위원장, 안재홍(安在鴻, 1891~1965)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건국 준비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같은 해 8월 26일 건국 선언과 강령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건국 준비 위원회는 이해관계와 이념적 차이에 따라서 점차 분열하여 안재홍을 중심으로 한 우익 세력이 탈퇴하였고, 그 뒤 좌익 세력이 건국 준비 위원회를 주도하였다.

1945년 9월 6일 건국 준비 위원회는 미군의 진주에 대처하기 위해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를 열어 조선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조선 인민 공화국의 정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경제적으로 완전한 자주적 독립 국가의 건설을 기함. 둘째, 일본 제국주의와 봉건 잔재 세력을 일소하고 전 민족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충실하기를 기함. 셋째, 노동자⋅농민 기타 일체 대중 생활의 급진적 향상을 기함. 넷째 세계 민주주의 제국의 일원으로서 상호 제휴하여 세계 평화의 확보를 기함.

그날 개최된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에서 중앙 의결 기관으로 중앙 인민 위원과 55명, 후보위원 20여 명, 고문 12명을 선출하였다. 이때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주석, 김구(金九, 1876~1949)는 내무부장,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은 외교부장 등으로 명단에 올랐는데, 전국 인민 위원 명단에는 당시 소련에 있던 김일성(金日成, 1912~1994)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해외에 있어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없었고, 동의도 얻지 못하였다. 또 인민 공화국은 박헌영(朴憲永, 1900~1955)의 조선 공산당 계열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우익 진영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였다. 게다가 미국의 경계심을 자극하여 1945년 0월 10일 아놀드(Archibald V. Arnold) 미군정 장관이 조선 인민 공화국을 격렬히 부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 뒤 조선 인민 공화국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지하는 민족주의 계열과 대립하였고, 10월 16일 귀국한 이승만은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를 발족하고 인민 공화국 중앙 인민 위원회 주석 취임을 거절하였다. 12월 12일 남한 주둔 미군사령관 존 하지(John R. Hodge) 장군이 조선 인민 공화국이 정부 행세를 하는 것은 비합법적인 일이므로 단속하겠다고 발표한 뒤에 세력을 잃고 말았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분단의 배경과 고정화 과정」,『해방전후사의 인식』1,김학준,한길사,1979.
저서
『한국분단사』, 조순승, 평민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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