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광복 직후의 국내 정세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주장(정읍 발언)과 한국 민주당의 성명

이승만, 정읍환영강연회에서 단정수립 필요성 주장(1946. 6. 3)

정읍환영강연회에 임석(臨席)한 이승만은 공위(共委) 재개의 가망이 없는 경우의 남조선임시 정부수립과 민족주의통일기관 설치에 관하여 주목되는 연설을 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남방만이라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니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될 것이다. 그리고 민족통일기관 설치에 대하여 지금까지 노력하여 왔으나 이번에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 통일기관을 귀경한 후 즉시 설치하게 되었으니 각 지방에 있어서도 중앙의 지시에 순응하여 조직적으로 활동하여 주기 바란다”

〈서울신문〉, 1946년 6월 4일

소련이 거부하더라도 남한에 중앙 정부수립(1947년 12월 19일)

한민당 담화

한민당(한국민주당) 선전부에서는 19일 만약 소련의 보이콧으로 인하여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된 결과로 수립된 정부라도 정당한 통일중앙 정부가 될 것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삼천만 한인은 다 같이 남북통일정부가 수립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므로 북한에서도 남한과 동시에 유엔 한국 위원단 감시 하에 총선거가 실시되도록 협조하여 주기를 기대하여 마지않는다.

그러나 소련 등 6개국이 이미 유엔 한국 독립안의 보이콧을 선언하고 우크라이나가 위원단의 수락을 거부한 만큼 남북통일총선거 실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만일 이 경우에는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여 한국의 자주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 국제공약과 세계회의에 의거한 최후적인 방법을 채용하여 수립된 이 한국정부는 정당한 통일중앙 정부로 세계만방이 승인할 것이고 중경에 있는 중국정부가 중앙 정부인 것과 같이 이 한국정부만이 삼천만 전 한민족을 대표하여 통치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한국정부는 유엔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세계 공론에 의하여 불법 점거로 말미암아 침범된 영토주권의 회복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동아일보〉, 1947년 12월 20일

李承晩, 井邑歡迎講演會에서 單政樹立 必要性 主張(1946. 6. 3)

井邑歡迎講演會에 임석한 李承晩은 共委再開의 가망이 없는 경우의 南朝鮮臨時政府樹立과 民族主義統一機關設置에 관하여 주목되는 연설을 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제 우리는 無期休會된 共委가 再開될 起色도 보이지 않으며 統一政府를 苦待하나 如意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南方만이라도 臨時政府 혹은 委員會 같은 것을 組織하여 38以北에서 蘇聯이 撤退하도록 世界公論에 呼訴하여야 될 것이니 여러분도 決心하여야 될 것이다. 그리고 民族統一機關設置에 대하여 지금까지 努力하여 왔으나 이번에는 우리 民族의 대표적 統一機關을 歸京한 후 즉시 設置하게 되었으니 각 地方에 있어서도 中央의 指示에 順應하여 組織的으로 活動하여 주기 바란다”

〈서울新聞〉, 1946년 6월 4일

蘇聯이 拒否하더라도 南韓에 中央政府樹立(1947년 12월 19일)

韓民黨談話

韓民黨宣傳部에서는 十九日 萬若 蘇聯의 보이코트로 因하여 南韓에서만 總選擧가 實施된 結果로 樹立된 政府라도 正當한 統一中央政府가 될 것을 强調하여 다음과 같은 談話를 發表하였다.

“三千萬 韓人은 다같이 南北統一政府가 樹立되기를 切望한다. 그러므로 北韓에서도 南韓과 동시에 유엔韓國委員團監視下에 總選擧가 實施되도록 協助하여 주기를 期待하여 마지않는다.

그러나 蘇聯 등 六個國이 이미 유엔韓國獨立案의 보이콭을 宣言하고 우크라이나가 委員團의 受諾을 拒否한 것만큼 南北統一總選擧實施를 期待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만일 이 境遇에는 南韓에서 總選擧를 實施하여 韓國의 自主政府를 樹立하여야 한다. 國際公約과 世界會議에 依據한 最後的인 方法을 採用하여 樹立된 이 韓國政府는 正當한 統一中央政府로 世界萬邦이 承認할 것이고 重慶에 있는 中國政府가 中央政府이든것과 같이 이 韓國政府만이 三千萬 全韓民族을 代表하여 韓國의 統治權을 行使할 것이다. 그리고 이 韓國政府는 유엔의 一員으로 參加하여 世界 公論에 依하여 不法 占據로 말미암아 侵犯된 領土主權의 恢復을 遂行하게 될 것이다”

〈東亞日報〉, 1947年 12月 20日

이 사료는 이승만(李承晩, 1875~1965)과 한국민주당(한민당)이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특히 첫 번째 사료는 이승만의 ‘6⋅3 정읍 발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상회의에서 미국⋅소련⋅영국⋅중국 4개국이 한국에서 5년 동안 신탁 통치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신탁 통치를 실시하기 전에 한반도에 주둔한 미국과 소련 양군 대표자로 미소 공동 위원회를 구성하고, 미소 공동 위원회가 신탁 통치에 필요한 자문 기구로 조선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조직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1946년 3월부터 5월까지 서울 덕수궁에서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 대표는 임시 정부 수립을 위해 미소 공동 위원회와 협의할 한국의 정당과 사회단체를 선정하는 문제부터 의견을 달리하였다. 소련은 모스크바 협정을 반대하는 정당이나 사회단체는 공동 위원회에 참여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소련의 주장에 반대하였다.

이런 가운데 미소 공동 위원회는 1946년 4월 18일 “지금까지 반탁을 주장했을지라도 앞으로 모스크바 협정에 지지를 표명하는 선언에 서명할 경우 협의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공동성명 5호」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김구(金九, 1876~1949) 등 강경파가 이를 거부하자, 4월 27일 미군정의 하지(Hodge) 중장은 “선언에 서명한다고 해서 그 정당이나 단체가 곧 바로 신탁 통치를 찬성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특별성명을 발표하였다. 하지의 성명이 발표되자 우익들은 「공동성명 5호」를 지지하였지만 소련은 하지의 성명이 「공동성명 5호」의 합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반발하였다. 결국 1946년 5월 6일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는 결렬된 후 무기한 휴회되었다.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자 이승만은 ‘남한 단정 수립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하였다. 1946년 6월 3일 전라북도 정읍에서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해야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6⋅3 정읍 발언’이다. 그 뒤 이승만은 6월 5일 전라북도 이리, 6월 12일 서울, 6월 25일 경기도 개성에서 동일한 주장을 제기하였다.

이승만은 1946년 6월 29일 김구를 비롯한 임시 정부계 인사들도 참여한 민족 통일 총본부를 설립하고 총재가 되었다. 임시 정부 세력을 참여시켜 민족 통일 총본부를 결성하는 데 성공한 이승만은 같은 해 9월 7일, 앞으로 자신이 이끄는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와 민족 통일 총본부를 중심으로 단독 정부 수립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1946년 10월 7일 「좌우 합작 7원칙」이 발표되었고, 10월 12일 미군정은 이 원칙에 근거해 입법기관 설치령을 공포하였다. 미군정은 1946년 12월 12일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을 발족하고, 1947년 6월 3일 이를 남조선 과도 정부로 개칭하였다. 이승만은 1946년 12월 미국으로 건너가 “소련이 전 한국을 위한 자유 정부 수립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 명백한 이상 남한에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세워 줄 것”을 호소하고 유엔에 의한 한국 문제 해결을 처음으로 제의하였다. 이에 맞춰 한민당은 1947년 12월 19일 만약 소련의 보이콧 때문에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되어 수립된 정부라도 정당한 통일 중앙 정부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분단의 배경과 고정화 과정」,『해방전후사의 인식』1,김학준,한길사,1979.
저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관계: 이승만⋅김구 시대의 정치사』, 도진순,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7.
『한국 현대민족운동 연구』, 서중석, 역사비평사, 1991.
편저
『해방40년의 재인식』, 송건호 외, 돌베개,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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