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냉전 체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국제 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남북한 총선거 결의안

1947년 11월 14일 결의

(제112호)

(한국총선거에 관한 결의문)

A

총회가 당면하고 있는 한국문제는 근본적으로 한국 국민 자체의 문제이며 그 자유와 독립에 관련되는 것이며, 또한 본 문제는 당해 지역 주민의 대표가 참가하지 않고는 공명정대히 해결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까닭에, 총회는 1. 본 문제 심의에 있어 선거에 의한 한국국민의 대표가 참여하도록 초청할 것을 결의하며, 2. 나아가서 이러한 참여를 용이케 하고 촉진시키기 위하며 또한 한국 대표가 단지 한국의 군정당국에 의하여 지명된 자가 아니라 한국국민에 의하여 사실상 정당히 선거된 자라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조속히 UN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하여 한국에 부임케 하고 이 위원단에게 전 한국을 통하여 여행, 감시,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을 결의한다.

B

총회는, 한국국민의 독립에 대한 요청이 긴급 정당함을 인정하고 한국의 국가 독립이 재설정되어야 하며, 전 점령군은 그 후 가능한 최단기간 내에 철수되어야 할 것을 확신하고, 한국 국민의 자유와 독립은 한국국민의 대표의 참여 없이는 공명정대히 해결될 수 없다는 전술의 결론과 또 선거에 의한 한국국민의 대표의 참여를 용이케 하며, 촉진시킬 목적으로 UN한국임시위원단(이하 위원단이라 칭한다)을 설치한다는 결의를 상기하며, 1. 위원단은 호주, 캐나다, 중국, 「엘살바도르」, 프랑스, 인도, 필리핀, 「시리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의 대표로써 구성할 것을 결정한다.

2. 한국국민의 자유와 독립의 조속한 달성에 관하여 동 위원회와 협의할 수 있는 대표자들을 선출하기 위하여, 1948년 3월 31일 이내에 성년자선거권 원칙과 비밀투표에 의한 선거를 시행하고, 이 대표자들로 하여금 국회를 구성케 하고 한국의 중앙 정부를 수립할 것을 권고하며 각 투표 지구 또는 지역에서 선출될 대표자수는 위원단 감시 하에 시행되어야한다.

3. 다시 선거후 가급적 조속히 국회가 소집되어 중앙 정부를 수립해야 하며 그 수립을 위원단에 통고하여야 할 것을 권고한다.

4. 다시 중앙 정부 수립 직후에 정부는 위원단과 협의하여 아래의 사항을 실시한다.

(a) 보안군을 구성하고 이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군사단체와 유사군사단체를 해산할 것.

(b) 남북한이 군사령관과 민정당국으로부터 정부 여러 기능을 이양 받을 것. 또한,

(c) 가급적 조속히 가능하다면 90일 이내에 점령군이 한국으로부터 완전 철수하도록 점령양국과 절차를 작정할 것.

5. 위원단은 한국 내에서 감시와 협의한 바를 참작하여 한국의 국가독립과 점령군 철퇴를 달성시킬 전기 방침 수행을 용이케 하고 또 촉진시켜야 할 것을 결의한다. 위원단은 그 얻은 바 결론을 첨가하여 총회에 보고하여야 하며 사태의 진전에 비추어 본 결의의 적용에 관하여 중간위원회(이하 소총회라 역함) (만일 설치된다면)와 협의할 수 있다.

6. 위원단이 그 책임을 수행함에 있어 모든 원조와 편의를 이에 제공하도록 관계 각 가맹국에게 요청한다.

7. 한국 독립 완성에 이르는 준비적 과도기간 중에는 총회 결정을 수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 국민의 여러 문제에 간섭함을 삼갈 것과 또한 한국의 독립과 주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철저히 삼갈 것을 모든 유엔 회원국에게 요청한다.

외무부 정무국, 『국제 연합한국관계결의문집』, 1954

The resolution on The Problem of the Independence of Korea (112 II) (November 14, 1947)

A

Inasmuch as the Korean question which is before the General Assembly is primarily a matter for the Korean People itself and concerns its freedom and independence, and

Recognizing that this question cannot be correctly and fairly resolved without the participation of representatives of the indigenous population,

The General Assembly

1. Resolves that elected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People be invited to take part in the consideration of the question

2. Further resolves that in order to facilitate and expedite such participation and to observe that the Korean representatives are in fact duly elected by the Korean people and not mere appointees by military authorities in Korea, there be forthwith established a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to be present in Korea, with right to travel, observe and consult throughout Korea.

B

The General Assembly,

Recognizing the urgent and rightful claims to independence of the people of Korea;

Believing that the national independence of Korea should be re-established and all occupying forces then withdrawn at the earliest practicable date;

Recalling its precious conclusion that the freedom and independence of the Korean people cannot be correctly or fairly resolved without the participation of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people, and its decision to establish a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hereinafter called the "Commission") for the purpose of facilitating and expediting such participation by elected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people,

1. Decides that the Commission shall consist of representatives of Australia, Cannada, China, El salvador, France, India, Philippines, Syria, Ukrai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2. Recommends that the elections be held not later than 31 March 1948 on the basis of adult suffrage and by secret ballot to choose representatives with whom the Commission may consult regarding the prompt attainment of the freedom and independence of the Korean people and which representatives, constituting a National Assembly, may establish a National Government of Korea. The number of representatives from each voting area or zone should be proportionate to the population, and the elections should be under the observation of the Commission;

3. Further recommends that as soon as possible after the elections, the National Assembly should convene and form a National Government and notify the Commission of its formation;

4. Further recommends that immediately upon the establishment of a National Government, that Government should, in consultation with the commission: (a) constitute its own national security forces and dissolve all military or semi-military formations not included therein: (b) take over the functions of government from the military commands and civilian authorities of north and south Korea, and (c) arrange with the occupying Powers for the complete withdrawal from Korea of armed forces as early as practicable and if possible within ninety days;

5. Resolves that the Commission shall facilitate and expedite the fulfilment of the foregoing programme for the attainment of the national independence of Korea and withdrawal of occupying and consultations in Korea. The Commission shall report, with its conclusions, to the General Assembly and may consult with the Interim Committee (if one be established) with respect to the application of this resolution in the light of developments;

6. Calls upon the Member States concerned to afford every assistance and facility to the fulfilment of its responsibilities;

7. Calls upon all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to refrain from interfering in the affairs of the Korean people during the interim period preparatory to the establishment of Korean independence, except in pursuance of the decisions of the General Assembly; and thereafter, to refrain completely from any and all acts derogatory to the independence and sovereignty of Korea.

외무부 정무국, 『국제연합한국관계결의문집』, 1954

이 사료는 1947년 11월 14일 국제 연합(UN, 이하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남북한 총선거 결의안이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 등 3개국 외무장관이 결정한 바에 따라 임시 정부 수립 임무를 맡은 미소 공동 위원회가 두 차례 개최되었지만 결렬되고 말았다. 1947년 8월 28일 미국은 “미국에서 4대국 회담을 열고, 미소의 점령 지역에서 유엔 감시 하에 인구 비례에 따른 임시 입법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국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9월 4일 소련은 미국의 제안을 거부했고, 미소 공동 위원회를 통해 한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것은 미국 때문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소련은 한국 문제를 유엔에 이관하는 것은 모스크바 회담 위반이며 책임 회피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유엔 총회는 미국의 제안대로 한국 문제를 토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소련은 “신탁 통치 없는 독립을 주려면 한국인으로 하여금 외국의 간섭 없이 스스로 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미국과 소련 양군이 1948년 초 동시에 한국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47년 11월 4일 정치위원회 92차 회의에서 미국 대표 존 덜레스(John F. Dulles)는 한국 문제와 관련한 수정 초안을 제출하였다. 11월 5일 정치위원회는 미국의 결의안 초안을 수정 없이 찬성 46, 반대 0, 기권 4로 채택하였다. 소련⋅우크라이나 등 6개 공산권 국가는 한국 대표권 문제를 이유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11월 14일 유엔 총회는 정치위원회 결의를 기초로 유엔 감시하의 남북 총선거안을 찬성 43, 반대 0, 기권 6에 따라 결의안으로 채택하였다.

유엔 총회에서 결정된 남북한 총선거 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인구 비례에 따른 비밀투표에 의한 선거를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실시하여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이들에 의한 국회 구성, 헌법 제정, UN한국임시위원단 설치, 그리고 90일 이내에 점령국과 철군 문제 협의 등이다. 유엔은 한국임시위원단 구성 회원국을 호주, 캐나다, 중국, 엘살바도르, 프랑스, 인도, 필리핀,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 9개국으로 선정했으나 우크라이나 대표는 대표권 문제를 이유로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1948년 1월 8일 8개국 대표로 구성된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 일행이 한국에 입국했고, 소련은 1월 22일 유엔 소련 대표를 통해 협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은 북한에 들어가지 못해 북쪽의 정치 지도자와 만나지 못했으며, 남한에서도 남로당 측 인사와 만나지 못하였다.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서울에 오자 이승만(李承晩, 1875~1965)과 한국민주당은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될 때부터 전개해 오던 단독 정부 수립 운동에 더욱 매진하였다. 김구(金九, 1876~1949)의 한국 독립당과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의 민족자주연맹은 남북통일을 위한 남북회담 개최에 UN한국임시위원단이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은 이런 상황을 유엔 소총회에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유엔은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에서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만이라도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고, 이에 따라 미군정은 3월 1일 남한만의 총선거를 5월 10일에 실시한다고 밝혔다.

결국 남한에서만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5월 31일 제헌 국회가 열렸다. 제헌 국회는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하고 7월 17일 「제헌헌법」을 공포하였으며,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었다.

북한에서도 총선거를 통하여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되, 남쪽에서는 비밀 지하 선거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1948년 8월 25일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9월 2일 평양에서 제1차 조선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북한의 헌법이 제정되었고, 9월 9일 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현대사 산책 1940년대 편』,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이승만과 제1공화국』, 서중석, 역사비평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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