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냉전 체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국제 연합 소총회에서 채택된 남한만의 총선거 결의안(1948. 2. 26)

1948년 2월 26일 소총회결의

(제583호의 A)

(한국 가능지역 총선거에 관한 결의문)

소총회(小總會)는, 국제 연합한국임시위원단(國際聯合韓國臨時委員團) 의장이 표명한 여러 의견을 명심하며, 1947년 11월 14일 총회 결의에서 설정된 계획이 실시될 것과 또 이에 필요한 조치로서 국제 연합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 전역 선거의 감시를 진행시킬 것과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한의 한국 내 지역의 선거 감시를 진행시킬 것이 필요하다고 간주하며, 또한 한국 인민의 자유와 독립이 조속히 달성되도록 국제 연합한국임시위원단과 더불어 상의할 수 있을 한국 인민의 대표를 선출하고, 그 한국 인민의 대표가 국회를 구성하여 한국의 중앙 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선거를 시행함이 긴요하다고 사료하므로, 소총회의 의견으로는 1947년 11월 14일 총회 의결 여러 조항에 따라 또한 그 일자 이후 한국 관계 사태의 진전에 비추어 국제 연합한국임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결의문 제2호에 기술된 계획을 시행함이 동 위원단에 부과된 임무임을 결의한다.

외무부 정무국, 『국제 연합한국관계결의문집』, 1954

The Resolution on the Elections in Korea

(February 26, 1948)

The Interim Committee, Bearing in mind the views expressed by the chairman of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Deeming it necessary that the programme set forth in the General Assembly resolutions of 14 November 1947 be carried out and as a necessary step therein that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proceed with the observance of elections in all Korea, and if that is impossible, in as much of Korea as is accessible to it; and Considering it important the elections be held to choose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people with whom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may consult regarding the prompt attainment of freedom and independence of the Korean people, which representatives, constituting a National Assembly, may establish a National Government of Korea; Resolves That in its view it is incumbent upon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under the terms of the General Assembly resolution of 14 November 1947, and in the light of developments in the situation with respect to Korea since that date, to implement the programme as outlined in resolution Ⅱ, in such parts of Korea as are accessible to the Commission.

외무부 정무국, 『국제연합한국관계결의문집』, 1954

이 사료는 1948년 2월 26일 국제 연합(UN, 이하 유엔) 소총회에서 채택된 「한국 총선거 관련 결의문」이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라 개최된 미소 공동 위원회는 두 차례 모두 결렬되었다. 미국과 소련이 반탁 운동을 벌인 정당과 사회단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 뒤 소련은 미군과 소련군 양군의 철수와 자주적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고, 미국은 유엔을 통한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결국 유엔에 한반도 문제가 상정되었고, 1947년 11월 14일 유엔 총회는 유엔 감시하의 남북 총선거안을 찬성 43 반대 0, 기권 6의 결의안으로 채택하였다. 1948년 1월 9일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은 유엔 결의에 따라 서울에 들어와 총선거 준비를 시작하였다. 위원단은 “관할구역이 한국 전체이며 일부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기회가 이용되어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위원들은 총선거는 점령군 당국에 의해서 실시되어야 하고, 위원단 활동은 문의, 자문, 그리고 통보에 한정한다는 점에 합의하였다.

1948년 1월 22일 소련은 이전에 유엔 총회 토론에서 밝혔듯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설치와 활동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뒤 임시위원단 중 중국, 필리핀, 엘살바도르 대표는 임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여 독립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호주, 캐나다, 인도, 시리아 대표는 영구 분단의 위험성 때문에 단독 선거에 반대하였다.

1948년 2월 6일 결국 임시위원단은 “남한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유엔 총회 결의와 임시위원단 임무에 비추어 타당한가”라는 질문을 유엔 총회 정치 위원회에 전달하였다. 2월 26일 개최된 유엔 소총회에서는 미국이 제출한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안이 찬성 31, 반대 2, 기권 11로 채택되었다. 총회 결의문의 핵심은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한국 지역에서 결의 제2호에 서술된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동 위원단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소련 진영 국가들은 회의와 표결에 불참하였다.

유엔 총회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가 결정되자 남한의 정치⋅사회단체들은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한국 문제를 유엔에 이관하는 것을 반대했던 남조선노동당(약칭 남로당)과 민주주의민족전선 측은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결정되자 ‘2⋅7구국투쟁’이라 불리는 총파업을 전개했고, ‘남조선 단선반대투쟁 전국위원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선거 저지 투쟁을 시작하였다.

반면 남한만이라도 단독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승만(李承晩, 1875~1965)과 한국민주당 등 우익 세력은 선거를 치를 준비를 조직적으로 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실시되었지만, 단선 정부 수용을 반대했던 김규식(金奎植, 1881~1950)과 김구(金九, 1876~1949) 등은 선거에 불참하였다. 5월 31일 국회가 개원되어 제헌 작업이 시작되어 7월 17일 헌법이 공표되었으며,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북한 역시 4월 29일 북조선 인민회의 특별회의에서 헌법 초안을 통과시키고, 9월 9일 최고인민회의 명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립을 선언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현대사 산책 1940년대 편』,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이승만과 제1공화국』, 서중석, 역사비평사, 2007.
편저
『해방전후사의 인식』, 송건호 외, 한길사, 1989~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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