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냉전 체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제1대 국회,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

[시행 1948. 9.22] [법률 제3호, 1948. 9.22, 제정]

법률제3호

반민족행위처벌법

제1장 죄

제1조 일본 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 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와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의 1 이상을 몰수한다.

제2조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 또는 일본 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의 1 이상을 몰수한다.

제3조 일본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제4조 아래의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

1. 작위를 세습한 자

2. 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참의)가 되었던 자

3. 칙임관(勅任官) 이상의 관리가 되었던 자

4.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5.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간부로 활동하였던 자

6.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7. 비행기, 병기 또는 탄약 등 군수 공업을 책임경영한 자

8. 도, 부(府)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의 흔적이 현저한 자

9. 관공리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의 흔적이 현저한 자

10. 일본의 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11.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 부문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데 협력하기 위하여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 저작과 기타 방법으로써 지도한 자

12.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제5조 일본치하에 고등관 3등급 이상, 훈(勳) 5등 이상을 받은 관공리 또는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의 직위에 있던 자는 본법의 공소시효 경과 전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단, 기술관은 제외한다.

제6조 본법에 규정한 죄를 범한 자,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제7조 타인을 모함할 목적 또는 범죄자를 옹호할 목적으로 본법에 규정한 범죄에 관하여 허위의 신고, 위증, 증거인멸을 한 자 또는 범죄자에게 도피의 길을 협조한 자는 당해 내용에 해당한 범죄규정으로 처벌한다.

제8조 본법에 규정한 죄를 범한 자로서 단체를 조직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장 특별조사위원회

제9조 반민족행위를 예비조사하기 위하여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한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위원 10인으로써 구성한다.

특별조사위원은 국회의원 중에서 아래의 자격을 가진 자를 국회가 선거한다.

1. 독립운동의 경력이 있거나 절개를 견수하고 애국의 성심이 있는 자

2. 애국의 열성이 있고 학식, 덕망이 있는 자

……(중략)……

제3장 특별재판부 구성과 절차

제19조 본법에 규정된 범죄자를 처단하기 위하여 대법원에 특별재판부를 부치한다.

……(중략)……

제21조 특별재판관과 특별검찰관은 아래의 자격을 가진 자 중에서 선거하여야 한다.

1. 독립운동에 경력이 있거나 절개를 견수하고 애국의 성심이 있는 법률가

2. 애국의 열성이 있고 학식, 덕망이 있는 자

……(중략)……

대한민국 『관보』 제5호, 1948년 9월 22일

[시행 1948. 9.22] [법률 제3호, 1948. 9.22, 제정]

법률제3호

반민족행위처벌법

第1章 罪

第1條 日本政府와 通謀하여 韓日合倂에 積極協力한 者, 韓國의 主權을 侵害하는 條約 또는 文書에 調印한 者와 謀議한 者는 死刑 또는 無期懲役에 處하고 그 財産과 遺産의 全部 或은 2分之 1以上을 沒收한다.

第2條 日本政府로부터 爵을 受한 者 또는 日本帝國議會의 議員이 되었던 者는 無期 또는 5年以上의 懲役에 處하고 그 財産과 遺産의 全部 或은 2分之 1以上을 沒收한다.

第3條 日本治下獨立運動者나 그 家族을 惡意로 殺傷迫害한 者 또는 이를 指揮한 者는 死刑, 無期 또는 5年以上의 懲役에 處하고 그 財産의 全部 或은 一部를 沒收한다.

第4條 左의 各號의 1에 該當하는 者는 10年以下의 懲役에 處하거나 15年以下의 公民權을 停止하고 그 財産의 全部 或은 一部를 沒收할 수 있다.

1.襲爵한 者

2.中樞院副議長, 顧問 또는 參議되었던 者

3.勅任官以上의 官吏되었던 者

4.密偵行爲로 獨立運動을 妨害한 者

5.獨立을 妨害할 目的으로 團體를 組織했거나 그 團體의 首腦幹部로 活動하였던 者

6.軍, 警察의 官吏로서 惡質的인 行爲로 民族에게 害를 加한 者

7.飛行機, 兵器 또는 彈藥等 軍需工業을 責任經營한 者

8.道, 府의 諮問 또는 決議機關의 議員이 되었던 者로서 日政에 阿附하여 그 反民族的 罪跡이 顯著한 者

9.官公吏되었던 者로서 그 職位를 惡用하여 民族에게 害를 加한 惡質的 罪跡이 顯著한 者

10.日本國策을 推進시킬 目的으로 設立된 各團體本部의 首腦幹部로서 惡質的인 指導的 行動을 한 者

11.宗敎, 社會, 文化, 經濟 其他 各部門에 있어서 民族的인 精神과 信念을 背反하고 日本侵略主義와 그 施策을 遂行하는데 協力하기 爲하여 惡質的인 反民族的 言論, 著作과 其他 方法으로써 指導한 者

12. 個人으로서 惡質的인 行爲로 日帝에 阿附하여 民族에게 害를 加한 者

第5條 日本治下에 高等官 3等級以上, 勳 5等以上을 받은 官公吏 또는 憲兵, 憲兵補, 高等警察의 職에 있던 者는 本法의 公訴時效經過前에는 公務員에 任命될 수 없다. 但, 技術官은 除外한다.

第6條 本法에 規定한 罪를 犯한 者 改悛의 情狀이 顯著한 者는 그 刑을 輕減 또는 免除할 수 있다.

第7條 他人을 謀陷할 目的 또는 犯罪者를 擁護할 目的으로 本法에 規定한 犯罪에 關하여 虛僞의 申告, 僞證, 證據湮滅을 한 者 또는 犯罪者에게 逃避의 길을 協助한 者는 當該 內容에 該當한 犯罪規定으로 處罰한다.

第8條 本法에 規定한 罪를 犯한 者로서 團體를 組織하는 者는 1年以下의 懲役에 處한다.

第2章 特別調査委員會

第9條 反民族行爲를 豫備調査하기 爲하여 特別調査委員會를 設置한다.

特別調査委員會는 委員10人으로써 構成한다.

特別調査委員은 國會議員中에서 左記의 資格을 가진 者를 國會가 選擧한다.

1. 獨立運動의 經歷이 있거나 節介를 堅守하고 愛國의 誠心이 있는 者

2. 愛國의 熱誠이 있고 學識, 德望이 있는 者

……(중략)……

第3章 特別裁判部構成과 節次

第19條 本法에 規定된 犯罪者를 處斷하기 爲하여 大法院에 特別裁判部를 附置한다. ……(중략)……

第21條 特別裁判官과 特別檢察官은 左의 資格을 가진 者 中에서 選擧하여야 한다.

1. 獨立運動에 經歷이 있거나 節介를 堅守하고 愛國의 誠心이 있는 法律家

2. 愛國의 熱誠이 있고 學識, 德望이 있는 者

……(중략)……

대한민국 『관보』 제5호, 1948년 9월 22일

이 사료는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1948년 9월 22일 국회에서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이다.

1948년 8월 5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제40차 본회의에서 김웅진 의원의 발의로 친일파 처단 문제가 다시 논의되었다. 9월 7일 재적 의원 141명 중 103명이 찬성하여 친일 행위자를 처벌하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어 10월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가 구성되었고, 법원에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특별재판관 15명)가, 검찰에 반민족행위특별검찰부(특별검찰관 9명)가 설치되었다. 1949년 1월 12일에는 도 조사부 책임자가 임명되었다.

반민특위 위원장에는 임시 정부 출신인 김상덕(金尙德, 1891~?), 부위원장에는 김상돈(金相敦, 1901~1986), 위원에는 조중현 등 8명이 선출되었다. 반민특위와 특별재판부 구성원들은 대부분 신간회, 임시 정부 등에서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인물들이었다.

1949년 1월 8일 반민특위는 화신재벌 박흥식을 검거하며 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들어갔지만 곧 방해 행위에 직면하였다.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을 반대한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대통령이 반민특위가 체포한 친일 경찰 노덕술을 석방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또 친일파 세력은 특위위원에 대한 협박과 중상모략, 관제 데모와 테러, 감금 등 야만적인 방법을 동원해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하였다.

1949년 6월 2~3일간 ‘국민계몽협회’라는 단체의 주도 하에 ‘국회는 반민특위를 해산하라’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 뒤 반민특위가 국민계몽협회 시위 사건을 이유로 시경 사찰과장 최운하를 체포하자 6월 6일에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였다. 이 사건 이후 반민특위는 경찰에 의해 무장해제 당했고, 특위위원들도 감시당하거나 감금당했다. 마침내 「반민족행위처벌법」의 공소시효를 8월 31일로 정한 한국민주당의 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반민특위 활동은 끝이 났다.

반민특위는 8개월 동안 682건의 친일 행위를 조사하여 영장 발부 408건, 검찰 송치 559건, 기소 221건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조사받은 이들은 대부분 풀려났고, 재판이 종결된 것은 38건이었으며, 실형을 받은 사람은 7명에 불과하였다. 이 7명도 감형, 형집행 정지 등으로 석방되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여러 차례 개정된 뒤 폐지되었다. 먼저 1948년 12월 7일 「반민족행위처벌조사위원회조사기관조직법」이 추가되어 정부, 기타의 기관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 응해야 하고, 조사상 필요에 의해 특별조사위원이 사법경찰 관리를 지휘 명령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을 반대한 이승만 정부와 친일파들이 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계속 개정을 요구하여, 1949년 7월 6일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반민족행위처벌법」 공소시효가 1950년 6월 20일에서 1949년 8월 말로 앞당겨졌다. 이에 김상덕 위원장을 포함한 특별조사위원 전원, 특별재판관 3명, 특별검찰관 3명이 이 개정안에 반대하여 사직하였다.

1949년 9월 22일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기관조직법」과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부속기관법」에 대한 폐지안 및 「반민족행위처벌법」 개정안(특별검찰부, 특별재판부 담당 업무가 대검찰청, 대법원으로 이관)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는 9월 23일 국회를 통과했고, 결국 10월 4일에 반민특위, 특별검찰부, 특별재판부가 모두 해체되었다.

1951년 2월 14일, 공소 계속 중인 사건은 법률 시행일에 공소 취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 폐지에 관한 법률」을 통해 결국 「반민족행위처벌법」은 폐지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해방전후사의 인식』1,오익환,한길사,1979.
저서
『반민특위연구』, 이강수, 나남, 2003.
『반민특위의 조직과 활동-친일파 청산, 그 좌절의 역사』, 허종, 선인, 2003.

관련 이미지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의 활동

관련 사이트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