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4⋅19 혁명과 민주당 정부

민주당 정부 장면 국무총리의 국회 시정연설

장총리(張總理) 민원(民院)서 시정연설(施政演說)

……(중략)……

내각책임제 정치하에서 행정부에 부과된 책무를 유감없이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먼저 행정부 내의 기강 확립에 주안점을 두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로서는 공무원에 대한 정리(整理) 요강을 작성하여 본분을 지키지 못한 공무원을 과감히 정리하여 적재적소의 원칙 아래 새로운 일꾼으로 이에 대치(代置)하는 한편, 감찰위원회법(監察委員會法), 공무원재산등록법 등 강력한 특별법의 시행으로 기강을 바로잡는 동시에 공무원의 정신훈련을 통해서 자율적인 곽청(廓淸)을 도모하려는 바이며, 경제 제일주의를 지표로 삼는 행정부의 시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전국민의 굳은 결의와 일부 특수층의 자숙을 강조치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의 중요한 시책을 말하자면 첫째로 국제외교에 있어서 UN 가입을 위한 선전정책의 수립과 이에 대한 다대수 UN 회원국가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모든 힘을 기울일 것이며, 직업외교관제도의 확립과 함께 외교 진용을 쇄신 강화해야 할 것으로 믿어서 유능한 인재로서 초당파적인 적격자를 해외 공관장에 임명할 방침이다.

또한 국토통일문제는 UN 총회의 결의가 우리의 주권을 존중하는 한 이에 협조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UN 감시 하의 남북한을 통한 총선거를 실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

한일관계의 정상화 또한 긴절(緊切)한 문제이므로 과거 이 정권의 대일 감정외교를 지양하고, 평등과 상호존중의 원칙 아래 진지한 회담을 통하여 현안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국토방위를 위한 군사면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에서 군을 엄중히 중립시킴으로써 군기를 확립시키고, 둘째로 군의 조직 및 편성의 검토 조정으로 인사와 군수체제의 개선을 도모하여 국방 예산의 합리적인 절약을 기하고자 한다. 셋째로는 장병의 처우개선과 정군(整軍)을 행하여 사기를 진작하여 군내의 기강을 확립하려는 것이다. 넷째로는 우방과의 공동방위의 테두리 안에서 연차적으로 감군을 실시할 계획 아래 군의 장비를 정예화하도록 추진하고자 한다.

내무 및 법무 행정에 있어서는 법질서의 확립으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3⋅15 부정선거 관련자의 처단과 부정축재 처리에 있어서는 혁명정신에 입각하여 현행법을 적정(適正)히 활용하여 왔으며, 부정선거 원흉의 처단은 이미 공소제기와 구형을 한 터이므로 법원의 엄정한 판결이 있을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경찰중립화를 위한 법률안은 이를 조속한 시일 내에 통과시켜 민주경찰체제를 확립하여야 하겠다.

또한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의 육성 강화를 목표로 함과 아울러 지방의회의 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의장의 선거가 시급하므로, 개정될 지방자치법의 시행절차가 끝나는 대로 지체 없이 선거를 실시할 방침이다.

다음은 경찰 기구의 개편과 함께 대검찰청 안에 중앙수사국을 발족시켜 각종 정보기관을 연결 조정하는 한편 과학적인 수사 방법으로 공산괴뢰무장간첩의 남침 방지와 색출은 물론 범죄 수사의 완벽을 기하려고 하는 바이다.

경제 부문 행정에 있어서는 사회복지의 증진을 최대 목표로 하여 급속한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경제 제일주의를 실천하려 한다.

신정부가 기도하는 바는 첫째로 과거 부패 정권이 취해 온 관권 경제와 불균형한 산업 구조 등을 지양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영관리기업체의 운영을 합리화하며, 외국원조재원의 효율적인 배분 운영은 물론 외국원조나 정부 보유(保有) 달러의 부정 관리와 은폐 보조를 일소하기 위하여 환율의 현실화 등 획기적인 혁신을 단행할 것이며, 둘째로는 농어촌 중심의 투융자 계획을 증대하고 소득 증가를 도모하여 위축된 중소기업의 건전한 운영을 조장함으로써 균형적인 산업구조의 형성을 촉진하려는 것이다.

1960년 9월 30일

〈동아일보〉, 1960년 10월 1일

張總理 民院서 施政演說

……(중략)……

內閣責任制 政治下에서 行政府에 負荷된 責務를 遺憾없이 遂行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먼저 行政府 內의 紀綱 確立에 主眼點을 두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다. 政府로서는 公務員에 對한 整理 要綱을 作成하여 本分을 지키지 못한 公務員을 果敢히 整理하여 適材適所의 原則 아래 새로운 일꾼으로 이에 代置하는 한편, 監察委員會法, 公務員財産登錄法 등 강력한 特別法의 施行으로 紀綱을 바로잡는 同時 公務員의 精神訓練을 通해서 自律的인 廓淸을 圖謀하려는 바이며, 經濟 第一主義를 指標로 삼는 行政府의 施策을 完遂하기 爲해서는 不得이 全國民의 굳은 決意와 一部 特殊層의 自肅을 强調치 않을 수 없는 形便이다.

政府의 重要한 施策을 말하자면 첫째로 國際外交에 있어서 UN 加入을 爲한 宣傳政策의 樹立과 이에 對한 多大數 UN 會員國家의 支持를 獲得하기 爲한 모든 힘을 기울일 것이며, 職業外交官制度의 確立과 함께 外交 陣容을 刷新 强化해야 할 것으로 믿어서 有能한 人才로서 超黨派的인 適格者를 海外 公館長에 任命할 方針이다.

또한 國土統一問題는 UN 總會의 決議가 우리의 主權을 尊重하는 限 이에 協調하여 早速한 時日 內에 UN 監視下의 南北韓을 通한 總選擧를 實施하는 方案을 積極 推進할 것이다.

韓日關係의 正常化 또한 緊切한 問題이므로 過去 李 政權의 對日 感情外交를 止揚하고, 平等과 相互尊重의 原則 아래 眞摯한 會談을 通하여 懸案 解決에 最善을 다하고자 한다.

國土防衛를 위한 軍事面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政治에서 軍을 嚴重히 中立시킴으로써 軍氣를 確立시키고 둘째로 軍의 組織 및 編成의 檢討 調整으로 人事와 軍需體制의 改善을 圖謀하여 國防 豫算의 合理的인 節約을 期하고자 한다. 셋째로는 將兵의 處遇改善과 整軍을 行하여 士氣를 振作하여 軍內의 紀綱을 確立하려는 것이다. 넷째로는 友邦과의 共同防衛의 테두리 안에서 年次的으로 減軍을 實施할 計劃 아래 軍의 裝備를 精銳化하도록 推進하고자 한다.

內務 및 法務 行政에 있어서는 法秩序의 確立으로 國民의 權利와 自由를 保障하고, 3⋅15 不正選擧 關聯者의 處斷과 不正蓄財 處理에 있어서는 革命精神에 立脚하여 現行法을 適正히 活用하여 왔으며, 不正選擧 元兇의 處斷은 이미 公訴提起와 求刑을 한 터이므로 法院의 嚴正한 判決이 있을 것을 期待하는 바이다.

警察中立化를 위한 法律案은 이를 早速한 時日 내에 通過시켜 民主警察體制를 確立하여야 하겠다.

또한 名實相符한 地方自治의 育成 强化를 目標로 함과 아울러 地方議會의 議員 選擧와 地方自治團體 議長의 選擧가 時急하므로, 改正될 地方自治法의 施行節次가 끝나는 대로 遲滯없이 選擧를 實施할 方針이다.

다음은 警察 機構의 改編과 함께 大檢察廳 안에 中央搜査局을 發足시켜 各種 情報機關을 連結 調整하는 한편 科學的인 搜査 方法으로 共産傀儡武裝間諜의 南侵 防止와 索出은 물론 犯罪 搜査의 完璧을 期하려고 하는 바이다.

經濟 部門 行政에 있어서는 社會福祉의 增進을 最大 目標로 하여 急速한 經濟 成長을 圖謀하는 經濟 第一主義를 實踐하려 한다.

新政府가 企圖하는 바는 첫째로 過去 腐敗 政權이 취해 온 官權 經濟와 不均衡한 産業 構造 등을 止揚하는 것이 急先務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國營管理企業體의 運營을 合理化하며, 外國援助財源의 效率的인 配分 運營은 물론 外國援助나 政府 保有弗의 不正 管理와 隱蔽 補助를 一掃하기 爲하여 換率의 現實化 등 劃期的인 革新을 斷行할 것이며, 둘째로는 農漁村 中心의 投融資 計劃을 增大하고 所得 增加를 圖謀하여 萎縮된 中小企業의 健全한 運營을 助長함으로써 均衡的인 産業構造의 形成을 促進하려는 것이다.

1960년 9월 30일

〈東亞日報〉, 1960年 10月 1日

이 사료는 장면(張勉, 1899~1966) 총리가 1960년 8월 27일 민의원(民議院)에서 한 시정연설로, 긴급 과제 6가지에 대한 정부 방침을 발표한 내용이다. 1960년에 발발한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무너졌다. 그 뒤 약 4개월 동안의 과도기를 거쳐 제2공화국이 탄생하였다. 1960년 6월 15일 개정 헌법이 통과되고 6월 23일 새 선거법이 제정되어, 8월 12일 민의원⋅참의원의 합동 회의에서 윤보선(尹潽善, 1897~1990)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8월 23일 장면이 국무총리로 선출되었다. 제2공화국은 1차 내각이 이루어지고 다음 해인 1961년 5월 18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내각 총사퇴를 의결할 때까지 약 9개월 동안 존속하였다.

장면 정권으로 불리는 제2공화국은 이승만 정권의 제1공화국과는 달리 대통령중심제 대신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내각책임제를 채택하였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했던 제1공화국에서 이승만 1인 독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4⋅19 혁명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던 것이다.

1960년 6월 15일, 제3차 헌법 개정을 통해 헌법 제4호가 탄생하였다. 헌법 제4호를 통해 파악한 제2공화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여 자유를 최대한으로 신장하였다. 종래는 거주⋅이전의 자유, 통신의 비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헌법 조항을 두었으나, 제2공화국에서는 그러한 법률이 제정될 수 있는 여지를 배제하였다. ② 대통령은 의례적인 국가원수고, 정치적 실권은 국무총리에게 집중하였다. ③ 국무원 책임제로 하여 행정권은 국무원에 귀속시키고, 국무원은 민의원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④ 국무원의 민의원 해산권과 민의원의 국무원 불신임권을 제도화하여 책임정치를 지향하였다. ⑤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되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민의원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였다. ⑥ 지방자치단체(시⋅읍⋅면)의 장(長)을 주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게 하였다. ⑦ 경찰의 중립화를 제도화하도록 하였다.

장면 정권의 1차적인 과제는 민심의 소재를 파악하고 이승만 정권의 유산인 부패와 부정비리를 척결하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장면 정권은 1960년 8월 27일 ‘국무총리 취임 인사 시정연설’, 9월 30일 ‘민의원에서의 시정연설’에서 3⋅15 부정선거와 관련한 반민주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사회 질서를 안정시키며, 국가의 안보 체제를 확립하면서 경제와 사회 발전을 통해 국력을 신장하고, 한민족의 숙원인 평화적 통일을 이루겠다는 정견을 밝혔다.

그러나 4⋅19 혁명 이후 국민은 활발하게 개혁을 요구하였지만 장면 정권은 시민사회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또 민주당 내부에서 장면의 민주당 신파와 윤보선의 민주당 구파가 나뉘어 파벌 싸움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이 약화되어 원활하게 정책을 실행할 수 없었다. 결국 장면 정권은 부정부패와 비리 청산을 하지 못했고, 4⋅19 혁명의 이념을 구현하지도 못하였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소장과 육군사관학교 8기생이 중심이 된 김종필 중령 등이 군사 쿠데타인 5⋅16 군사 정변을 일으켰다. 그 뒤 제2공화국은 1962년 3월 22일 명목상의 대통령이었던 윤보선마저 퇴진했고, 우리나라는 제3공화국이 출범하기 전까지 군정 체제로 들어갔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1950년대 한국사회와 4⋅19혁명』, 고성국, 태암사, 1991.
『제2공화국과 한국민주주의』, 백영철, 나남, 1996.
『한 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장면박사 회고록』, 장면, 가톨릭출판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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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출범 경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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