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4⋅19 혁명과 민주당 정부

이승만 정부에 의해 자행된 반민주행위 처벌을 위한 제4차 헌법개정

제4차 헌법개정(1960. 11. 29)

헌법 중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부칙(附則)에 다음의 각 항을 신설한다.

⑯ 이 헌법 시행 당시의 국회는 단기 4293년(1960)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 부통령 선거에 관련하여 부정행위를 한 자와 그 부정행위에 항의하는 국민에 대하여 살상(殺傷)⋅기타의 부정행위를 한 자를 처벌 또는 단기 4293년 4월 26일 이전에 특정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현저한 반민주행위를 한 자의 공민권(公民權)을 제한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으며 단기 4293년 4월 26일 이전에 지위 또는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자에 대한 행정상 또는 형사상의 처리를 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

⑰ 앞 항의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하여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

⑱ 앞 2항의 규정에 의한 특별법은 이를 제정한 후 다시 개정하지 못한다.

부칙 (단기 4293년 11월 29일 공포)

이 헌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시사연구소 편, 『(시사자료) 광복30년사』, 세문사, 1977

第4次 憲法改正(1960. 11. 29)

憲法 中 다음과 같이 改正한다.

附則에 다음의 各項을 新設한다.

⑯ 이 憲法 施行當時의 國會는 檀紀 4293年 3月 15日에 實施된 大統領, 副統領選擧에 關聯하여 不正行爲를 한 者와 그 不正行爲에 抗議하는 國民에 對하여 殺傷 其他의 不正行爲를 한 者를 處罰 또는 檀紀 4293年 4月 26日 以前에 特定地位에 있음을 利用하여 顯著한 反民主行爲를 한 者의 公民權을 制限하기 爲한 特別法을 制定할 수 있으며 檀紀 4293年 4月 26日 以前에 地位 또는 權力을 利用하여 不正한 方法으로 財産을 蓄積한 者에 對한 行政上 또는 刑事上의 處理를 하기 爲하여 特別法을 制定할 수 있다.

⑰ 前項의 刑事事件을 處理하기 爲하여 特別裁判所와 特別檢察部를 둘 수 있다.

⑱ 前2項의 規定에 依한 特別法은 이를 制定한 後 다시 改正하지 못한다.

附則 (檀紀 4293年 11月 20日 公布)

이 憲法은 公布한 날로부터 施行한다.

시사연구소 편, 『(시사자료) 광복30년사』, 세문사, 1977

이 사료는 1960년 11월 29일에 공포된 제4차 개정 헌법 내용이다. 이는 1960년 3⋅15 부정선거 주모자들과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군중을 살상한 자들을 처벌할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개정되었다. 부칙에 이들에 대한 소급 입법에 의한 처벌 근거를 마련하여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등 일련의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4⋅19 혁명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3⋅15 부정선거 주모자와 4⋅19 혁명 전후에 발생했던 시위에서 군중을 살상한 관련자를 처벌하라는 요구가 점점 더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에 1960년 5월 3일 최인규가, 뒤이어 4⋅19 혁명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홍진기와 자유당 기획위원 전원이 구속되었다. 하지만 허정 과도 정부는 부정선거 관련자와 발포 책임자들을 기존 법률에 따라 기존 사법기관에서 심판하고자 했고, 장면 정권도 이에 따랐다.

1960년 10월 8일 법원은 경무대 앞 발포 사건과 관련해 실무 책임자인 서울시경 국장 유충렬과 서울시 경비과장 백남규에게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각각 선고하였다. 하지만 내무장관 홍진기, 치안국장 조인구, 경무대 비서실장 곽영주, 그리고 고려대학교 학생 습격 사건과 관련이 있는 정치 깡패 신도환, 임화수 등에게는 무죄 또는 경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흥분한 4⋅19 혁명 희생자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특별 소급 입법 제정을 요구하였다. 결국 곽상훈 의장은 의원 전원과 함께 혁명 입법을 하지 못한 것을 공개 사과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헌법을 개정하여 원흉을 처단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다짐함으로써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장면 정권은 반민주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시작하였다. 10월 17일, 헌법 부칙에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등 반민주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 근거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개헌안이 민의원에 제출되었다. 이후 11월 23일 민의원, 11월 28일 참의원을 통과하여 11월 29일 반민주 행위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소급 입법의 근거가 되는 제4차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헌법 개정안은 3⋅15 부정선거에 관련된 자와 이에 항의하는 국민을 살상했거나 또는 기타 불법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 1960년 4월 26일 이전에 특정 지위를 이용하여 반민주 행위를 한 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1960년 4월 26일 이전에 지위 또는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하게 재산을 축적한 자에 대한 행정상 또는 형사상 처리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위의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 재판부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도록 하였다.

1960년 12월 13일 반민주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부 조직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또 12월 31일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과 이승만 독재 시절 반민주 행위를 했던 정치인과 공무원의 공민권을 제한하는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도 공포되었다. 1961년 4월 14일 부정 축재자를 처벌하기 법안도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1961년 4월 17일 특별재판소는 마침내 부정선거 실행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내무부 관련자에 대해 1심 판결을 내렸다. 최민규에게는 사형이, 이강학에게는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다. 부정선거의 핵심이었던 한희석을 비롯한 자유당 기획위원회 관련자들의 1심 공판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곧 5⋅16 군사 정변이 발발하여 특별재판소 재판은 중단되었다.

1961년 5월 27일 「국가 재건 최고 회의령 제17호」가 공포되어 장면 정권 시기에 만들어졌던 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부 기능이 정지되었다. 국가 재건 최고 회의는 6월 21일 법률 제630호로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 조직법」을 공포하였다. 이 법에 따라 부정선거 책임자와 경무대 앞 발포 책임자 등 반민주 행위자, 5⋅16 군사 정변 주도 세력의 내분 과정에서 발생한 이른바 ‘반혁명 사건’ 관련자, 장면 정권 시기에 통일 운동, 진보적 사회운동을 했던 혁신계 인사 등을 재판하였다.

제4차 개정 헌법으로 반민주 행위자의 형사사건을 관장할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두게 되었으나,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예외를 두는 소급 입법으로 참정권과 재산권 등을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은 위헌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한국헌법 50년의 발자취」,『헌법학연구』4-1,권영설,한국헌법학회,1998,.
저서
『헌법학원론』, 정종섭, 박영사, 2006.
편저
『대한민국법령연혁집』, 법제처, 법제처,  
『기자가 본 역사의 현장-광복에서 제5공화국까지』, 한국편집기자회, 나라기획,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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