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박정희 정부와 민주화 운동

제5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사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수여하는 무궁화 대훈장을 이회창 국회의장이 수여했습니다. 다음은 축전에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사가 있겠습니다.

……(중략)……

나는 오늘 영예로운 제3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 중한 시기에 나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보람 있는 이 날의 조국을 보전하기에 생명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공산침략에서 나라를 지켜 온 충용스러운 전몰장병 그리고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한 영웅적인 사월혁명의 영령 앞에 나의 이 모든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중략)……

한 핏줄기 이 민족의 가슴 속에 붉은 피 용솟음치는 분발의 고동과 약진은 결코 멈추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반세기의 고된 역정은 밟았으되, 일본 제국주의에 항쟁한 3⋅1독립정신은 조국의 광복을 쟁취하였고, 투철한 반공 의식은 6⋅25동란에서 공산 침략을 분쇄하여 강토를 보위하였으며, 열화 같은 민주적 신념은 4월 혁명에서 독재를 물리쳐, 민주주의를 수호하였고, 이어 5월 혁명으로 부패와 부정을 배격함으로써 민족 정기를 되찾아, 오늘 여기에 우람한 새 공화국을 건설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중략)……

민주주의 정치 제도 운용의 역사가 얕다거나, 시행착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부담과 희생을 지불한 우리들이기에, 여기에 또다시 강력 정치를 빙자한 독재의 등장도, 민주주의를 도용한 무능, 부패의 재현도 단연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하한 이유로써도 성서를 읽는다는 명목 아래 촛불을 훔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새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나는 국민 앞에 군림하여, 지배하려 함이 아니요, 겨레의 충복으로 봉사하려는 것입니다.

……(중략)……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패배한 소수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그를 보호하는 데 더욱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평면적 종다수의결방식을 근거로 만능, 우월 의식에서 독선과 횡포를 자행하며, 소수의 의사를 유린할 때, 이 나라 민주주의 전도에는 또 다른 비극의 씨가 배태될 것입니다. 또 일방 진부한 관록이나 허망한 권위의식에서, 대국을 망각한 소아병적 도발로 정쟁을 벌이고, 정국을 어지럽히며, 사회를 혼란 시킨다면, 이 나라는 또 다시 역사의 뒤로 후퇴하는 슬픈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제와 책임을 수반하는 민주적 정치 질서를 확립해 가면서, 대중의 이익에 벗어나는 시책이나, 투명치 못한 정치적 처사에 대하여는 정당한 비판과 당당히 반대할 수 있는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인과 새 정부는 정치적 행동 방식에 있어서, 보다 높은 윤리 규범을 정립하여, 극렬한 증오감과 극단적 대립 의식을 불식하고, 여야의 협조를 통해 의정의 질서와 헌정의 상궤를 바로잡을 것이며, 유혈 보복으로 점철된 역사적 악 유산을 청산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복수 정당의 발랄한 경쟁과 신사적 정책 대결의 정치 풍토 조성에 선도적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중략)……

질서와 번영 있는 사회의 영광된 새 공화국 건설의 기치를 높이 들고, 다시는 퇴영과 빈곤이 없는 내일의 조국을 기약하면서, 나는 오늘 사랑하는 동포 앞에 다시 한 번 ‘민족의 단합’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지금 우리는 조국의 근대화라는 막중한 과업을 앞에 두고, 불화와 정쟁과 분열로 정체와 쇠잔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친화와 협조와 단합으로 민족적인 공동의 광장에서 새로 대오를 정비할 것인가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또한 한 핏줄기의 겨레, 우리는 이미 운명을 함께 한 ‘같은 배’에 탄 것입니다. 파쟁과 혼란으로 표류와 난파를 초래하는 것도, 협조와 용기로써 희망의 피안에 닻을 내리는 것도 오로지 우리들 스스로의 결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의 현명한 결단과 용맹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중략)……

본인과 새 정부는 안으로는 조속히 견실한 경제, 사회적 토대를 이룩하고, 현 군사력의 유지와 발전을 포함한 단합된 민족의 힘을 결속할 것이며, 밖으로는 유엔과 자유 우방, 그리고 전 세계 자유 애호 인민들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여 여하한 상황과 조건하에서도 공산주의에 대항, 승리할 수 있는 민주적 역량과 민족 진영의 내실을 기하여 우리의 숙원인 민족 통일의 길로 매진할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제 문제를 일일이 논급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경제 문제를 비롯한 난국 타개의 숙제는, 이미 공약을 통해 자청한 바 있으며, 신 정부는 이를 위하여 능률적 태세로써 문제 해결에 임할 것입니다. 시급한 민생 문제의 해결, 그리고 민족 자립의 지표가 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합리적 추진은 중대한 국가적 과제로서 여야 협조와 정부 국민간의 일치 단합된 노력으로써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목표를 향하여 인내와 자중으로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 나가는 근로 정신의 소박한 생활인으로 돌아가 항상 성급한 기대의 후면에는 허무한 낙망이 상접함을 명심하고, 착실한 성장을 꾀하는 경제 국민의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기에 우람한 새 공화국의 아침은 밝았습니다.

침체와 우울, 혼돈과 방황에서 우리 모든 국민은 결연히 벗어나 생각하는 국민, 일하는 국민, 협조하는 국민으로 재기합시다.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세로써 희망에 찬 우리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갑시다.

……(후략)……

1963년 12월 17일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http : //www.pa.go.kr/)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박정희대통령에게 수여하는 무궁화 대훈장을 이회창 국회의장이 수여했습니다. 다음은 축전에 따라서 박정희대통령의 취임사가 있겠습니다.

……(중략)……

나는 오늘 영예로운 제3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 중한 시기에 나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보람 있는 이 날의 조국을 보전하기에 생명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공산침략에서 나라를 지켜 온 충용스러운 전몰장병 그리고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한 영웅적인 사월혁명의 영령 앞에 나의 이 모든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중략)……

한 핏줄기 이 민족의 가슴 속에 붉은 피 용솟음치는 분발의 고동과 약진은 결코 멈추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반세기의 고된 역정은 밟았으되, 일본 제국주의에 항쟁한 3⋅1독립정신은 조국의 광복을 쟁취하였고, 투철한 반공의식은 6⋅25동란에서 공산 침략을 분쇄하여 강토를 보위하였으며, 열화 같은 민주적 신념은 4월 혁명에서 독재를 물리쳐, 민주주의를 수호하였고, 이어 5월 혁명으로 부패와 부정을 배격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되찾아, 오늘 여기에 우람한 새 공화국을 건설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중략)……

민주주의 정치제도 운용의 역사가 얕다거나, 시행착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부담과 희생을 지불한 우리들이기에, 여기에 또다시 강력정치를 빙자한 독재의 등장도, 민주주의를 도용한 무능, 부패의 재현도 단연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하한 이유로써도 성서를 읽는다는 명목 아래 촛불을 훔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새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나는 국민 앞에 군림하여, 지배하려함이 아니요, 겨레의 충복으로 봉사하려는 것입니다.

……(중략)……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패배한 소수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그를 보호하는 데 더욱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평면적 종다수의결방식을 근거로 만능, 우월 의식에서 독선과 횡포를 자행하며, 소수의 의사를 유린할 때, 이 나라 민주주의 전도에는 또 다른 비극의 씨가 배태될 것입니다. 또 일방 진부한 관록이나 허망한 권위의식에서, 대국을 망각한 소아병적 도발로 정쟁을 벌이고, 정국을 어지럽히며, 사회를 혼란시킨다면, 이 나라는 또 다시 역사의 뒤로 후퇴하는 슬픈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제와 책임을 수반하는 민주적 정치질서를 확립해 가면서, 대중의 이익에 벗어나는 시책이나, 투명치 못한 정치적 처사에 대하여는 정당한 비판과 당당히 반대할 수 있는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인과 새 정부는 정치적 행동방식에 있어서, 보다 높은 윤리규범을 정립하여, 극렬한 증오감과 극단적 대립의식을 불식하고, 여야의 협조를 통해 의정의 질서와 헌정의 상궤를 바로잡을 것이며, 유혈보복으로 점철된 역사적 악유산을 청산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복수정당의 발랄한 경쟁과 신사적 정책 대결의 정치 풍토 조성에 선도적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중략)……

질서와 번영 있는 사회의 영광된 새 공화국건설의 기치를 높이 들고, 다시는 퇴영과 빈곤이 없는 내일의 조국을 기약하면서, 나는 오늘 사랑하는 동포 앞에 다시 한 번 ‘민족의 단합’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지금 우리는 조국의 근대화라는 막중한 과업을 앞에 두고, 불화와 정쟁과 분열로 정체와 쇠잔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친화와 협조와 단합으로 민족적인 공동의 광장에서 새로 대오를 정비할 것인가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또한 한 핏줄기의 겨레, 우리는 이미 운명을 함께 한 ‘같은 배’에 탄 것입니다. 파쟁과 혼란으로 표류와 난파를 초래하는 것도, 협조와 용기로써 희망의 피안에 닻을 내리는 것도 오로지 우리들 스스로의 결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의 현명한 결단과 용맹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중략)……

본인과 새 정부는 안으로는 조속히 견실한 경제, 사회적 토대를 이룩하고, 현군사력의 유지와 발전을 포함한 단합된 민족의 힘을 결속할 것이며, 밖으로는 유엔과 자유우방, 그리고 전 세계 자유애호 인민들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여 여하한 상황과 조건하에서도 공산주의에 대항, 승리할 수 있는 민주적 역량과 민족진영의 내실을 기하여 우리의 숙원인 민족통일의 길로 매진할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제 문제를 일일이 논급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경제 문제를 비롯한 난국타개의 숙제는, 이미 공약을 통해 자청한 바 있으며, 신정부는 이를 위하여 능률적 태세로써 문제 해결에 임할 것입니다. 시급한 민생문제의 해결, 그리고 민족자립의 지표가 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합리적 추진은 중대한 국가적 과제로서 여야협조와 정부 국민간의 일치 단합된 노력으로써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목표를 향하여 인내와 자중으로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 나가는 근로정신의 소박한 생활인으로 돌아가 항상 성급한 기대의 후면에는 허무한 낙망이 상접함을 명심하고, 착실한 성장을 꾀하는 경제국민의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기에 우람한 새 공화국의 아침은 밝았습니다.

침체와 우울, 혼돈과 방황에서 우리 모든 국민은 결연히 벗어나 생각하는 국민, 일하는 국민, 협조하는 국민으로 재기합시다.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세로써 희망에 찬 우리의 새 역사를 창조해나갑시다.

……(후략)……

1963년 12월 17일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http://www.pa.go.kr/)

이 사료는 1963년 12월 17일 오후 2시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제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 대통령이 연설한 취임사이다. 국가 기록원이 소장한 ‘제5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음성 기록물 중 취임사 부분을 발췌하였다.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 소장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육사 8기생 군사 정변 주도 세력과 모의하여 장교 250여 명, 사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하였다. 이어 박정희는 군사 혁명 위원회를 구성해 전권을 장악하고, 「혁명 공약」 6개 항과 함께 군사 정변이 성공했음을 발표하였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혁명 위원회 포고 제4호에 의해 민의원, 참의원, 지방 의원 등 헌법기관이 해산되었다. 그리고 5월 22일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 제6호에 의해 정당과 사회단체가 해산되어 정당과 사회단체의 정치 활동이 완전히 금지되었다. 그 뒤 민주적으로 선출된 장면(張勉, 1899~1966) 내각이 붕괴되어, 3년 동안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한 군정 통치가 시작되었다. 군사 정변 세력은 군정 기간 중 「특수 범죄(반혁명, 반국가 행위)처벌법」, 「정치 활동 정화 법」 등을 통해 반대파를 제거하는 한편, 핵심 권력 기구로서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민주 공화당을 창당하여 대통령제 복귀 등을 포함한 헌법 개정에 착수하였다.

또한 군사 정변 세력은 전면적인 사회 개혁을 추진하였다. 「부정 축재 처리법」을 공포하여 7억 2000만 환을 환수했으며, 국민 의식 개혁을 위해 ‘재건 국민 운동 본부’를 설치하여 생활 간소화⋅가족계획⋅문맹 퇴치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농어촌 고리채 정리와 화폐개혁 등을 단행했으며, 국토 및 경제개발 계획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군정 기간 동안 중앙정보부에 의해 증권 파동, 회전 당구기(파친코) 사건, 워커힐 사건, 새나라 자동차 사건 등 ‘4대 의혹 사건’이 발생하여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다. 박정희는 처음부터 군정을 2년 동안 실시한 뒤 민정 이양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1963년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2⋅27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3월 16일 박정희는 기존 약속을 뒤엎고 군정을 4년 연장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국민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박정희는 군정 연장을 보류한다는 「4⋅8성명」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1963년 8월 대장으로 예편한 박정희는 그 해 창당한 민주 공화당에 입당해 총재로 추대되었다. 박정희는 조만간 원대 복귀하겠다던 애초의 「혁명 공약」 제6조를 번복하고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1963년 10월 15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는 84.99% 투표율을 기록하였는데, 박정희는 유효 투표의 46.65%인 470만 2642표를 얻어 야당 후보인 윤보선(尹潽善, 1897~1990)을 15만여 표 차이로 따돌리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같은 해 12월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5⋅16군사정변과 제3공화국: 정변의 실체와 민주공화당의 정당정치를 중심으로」,『한국정치외교사논총』15,편집부,한국정치외교사학회,1997.
저서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1,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서중석, 웅진지식하우스, 2005.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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