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박정희 정부와 민주화 운동

3선 개헌 반대 투쟁

역사 앞에 선언한다.

우리나라는 해방과 함께 38선을 경계로 공산독재체제와 자유민주체제의 세계사적 대결의 최전선이 되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체제를 확립 신장시켜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만 아니라 자유진영 전체가 요구하는 지상명령이다.

이북 4백만 동포가 모든 소유를 버리고 생명을 모험하면서까지 남하한 것은 이남에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동경한 까닭이었으며, 남하 후 극도의 곤경 속에서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자유민주의 가능성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우리가 외치는 것은 반공을 위한 반공이 아니라 자유민주체제의 확립과 신장을 위한 승공인 것이며, 우리가 염원하는 통일 역시 자유민주체제에서의 통일인 것은 우리 국민의 고귀한 불문율이다. 6⋅25 공산침략에 대결하여 세계 자유진영 16개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우리 국민이 피흘린 것도 이 자유민주의 제단이었으며 4월혁명의 정신도 이 자유민주에의 헌신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자유민주체제의 방향을 경시⋅왜곡 또는 역행하는 정권이나 운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민족사의 이단이다.

박정권 10년의 집권기록은 어떠한가? 자유민주체제의 마비와 말살을 지향하고 있다.

1. 학원은 세밀한 데까지 정부의 지시에 굴종하게 되고, 구김살 없는 민족정기의 기수인 젊은 학생들의 바른 외침은 무장경찰의 폭력 밑에 무자비하게 유린되고 있고, 국민의 자녀교육과 인재육성에 무리한 제재를 가하여 인물한국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2. 언론은 취재와 비판의 자유를 대폭 상실하였고 특히 정부에 대한 솔직한 비판은 거의 함구에 가까운 형편이다.

3. 국회는 부정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절대 다수의 여당의원과 소수의 야당의원으로 구성되었고 정부의 시녀화한 무력한 허수아비로 전락하여 변칙⋅횡포의 의사진행 등으로 민주헌정의 미덕을 상실한 지 오래다.

4. 사회는 대체로 공법이 집권자의 도구로 악용되고 자금이 매수의 만능약으로 신봉되는 오염기류에 덮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침묵 속에 감금되고 사찰이 악의 진원지를 건드리지 못하는 실정이므로 이제 절대 권력의 절대부패 현상이 각 방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5. 박정권이 가장 과시하는 ‘경제건설’은 어떠한가. 부패⋅의혹 및 특혜로 말미암아 중소기업과 농촌은 거의 전적인 몰락과정을 밟고 있다. 소수의 특혜기업도 속속 부실기업화하여 도산이 속출하는 가운데 수삼의 정상재벌이 남을지 모르나 관의 과대겸병 때문에 전 국민의 원부(怨府)로 화하고 있다.

고속도로, 고층건물, 공업단지 등이 견실한 경제이론보다도 정권연장을 위한 전시효과를 앞세우며 무리하게 결행되어 종내 국가경제의 파탄을 초래하고 있으니, 이것은 과잉의욕과 시행착오 정도로 눈가림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저주를 우리 역사에 심어 놓은 경제민주화의 역행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집권자는 자존망대하여 1인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에 이와 같은 배신과 우롱에 주권자인 국민이 묵종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 한국의 임종을 재촉하는 것밖에 다른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합법적인 법절차에 따라 헌법을 고친다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의 문제는 그 이전에 있다. 누가 무엇을 위해 개헌하려는 것인가 하는 근본을 문제 삼는 것이다. 특정인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의 종장은 무한전술에 의한 무한독재임이 자명하다.

박정권은 북괴침공의 위협을 선전한다. 그러나 박정권 자신이 민주국민의 충고를 무시하고 헌정을 말살하는 3선개헌을 강행하여 국론 분열과 사회의 격동을 조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북괴의 흉계에 호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3선개헌을 감행하여 자유민주에의 반역을 기도하는 어떤 명분이나 위장된 강변에도 현혹됨이 없이 헌정 20년 간 모든 호헌세력들의 공통된 신념과 결단 위에서 전 국민의 힘을 뭉쳐 단호히 이에 대처하려 한다. 집권자에 의해서 자유민주에의 기대가 끝내 배신당할 때, 조국을 수호하려는 전 국민은 요원의 불길처럼 봉기할 것이다. 우리는 날로 그 우방을 확장시키고 있고, 선악의 대결과 진부(眞否)의 결전에서 용솟음치는 결의를 가지고 있다.

자유국민의 조국은 영원하다.

영원한 조국을 가진 국민은 용감하다.

전 국민이여! 자유민주의 헌정수호 대열에 빠짐없이 참여하라.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1969년 7월 17일

김삼웅 편, 『민족⋅민주⋅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역사 앞에 선언한다.

우리나라는 해방과 함께 38선을 경계로 공산독재체제와 자유민주체제의 세계사적 대결의 최전선이 되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체제를 확립 신장시켜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만 아니라 자유진영 전체가 요구하는 지상명령이다.

이북 4백만 동포가 모든 소유를 버리고 생명을 모험하면서까지 남하한 것은 이남에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동경한 까닭이었으며, 남하 후 극도의 곤경 속에서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자유민주의 가능성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우리가 외치는 것은 반공을 위한 반공이 아니라 자유민주체제의 확립과 신장을 위한 승공인 것이며, 우리가 염원하는 통일 역시 자유민주체제에서의 통일인 것은 우리 국민의 고귀한 불문율이다. 6⋅25 공산침략에 대결하여 세계 자유진영 16개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우리 국민이 피흘린 것도 이 자유민주의 제단이었으며 4월혁명의 정신도 이 자유민주에의 헌신이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자유민주체제의 방향을 경시⋅왜곡 또는 역행하는 정권이나 운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민족사의 이단이다.

박정권 10년의 집권기록은 어떠한가? 자유민주체제의 마비와 말살을 지향하고 있다.

1. 학원은 세밀한 데까지 정부의 지시에 굴종하게 되고, 구김살 없는 민족정기의 기수인 젊은 학생들의 바른 외침은 무장경찰의 폭력 밑에 무자비하게 유린되고 있고, 국민의 자녀교육과 인재육성에 무리한 제재를 가하여 인물한국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2. 언론은 취재와 비판의 자유를 대폭 상실하였고 특히 정부에 대한 솔직한 비판은 거의 함구에 가까운 형편이다.

3. 국회는 부정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절대 다수의 여당의원과 소수의 야당의원으로 구성되었고 정부의 시녀화한 무력한 허수아비로 전락하여 변칙⋅횡포의 의사진행 등으로 민주헌정의 미덕을 상실한 지 오래다.

4. 사회는 대체로 공법이 집권자의 도구로 악용되고 자금이 매수의 만능약으로 신봉되는 오염기류에 덮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침묵 속에 감금되고 사찰이 악의 진원지를 건드리지 못하는 실정이므로 이제 절대 권력의 절대부패 현상이 각 방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5. 박정권이 가장 과시하는 ‘경제건설’은 어떠한가. 부패⋅의혹 및 특혜로 말미암아 중소기업과 농촌은 거의 전적인 몰락과정을 밟고 있다. 소수의 특혜기업도 속속 부실기업화하여 도산이 속출하는 가운데 수삼의 정상재벌이 남을지 모르나 관의 과대겸병 때문에 전 국민의 원부(怨府)로 화하고 있다.

고속도로, 고층건물, 공업단지 등이 견실한 경제이론보다도 정권연장을 위한 전시효과를 앞세우며 무리하게 결행되어 종내 국가경제의 파탄을 초래하고 있으니, 이것은 과잉의욕과 시행착오 정도로 눈가림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저주를 우리 역사에 심어 놓은 경제민주화의 역행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집권자는 자존망대하여 1인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에 이와 같은 배신과 우롱에 주권자인 국민이 묵종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 한국의 임종을 재촉하는 것밖에 다른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합법적인 법절차에 따라 헌법을 고친다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의 문제는 그 이전에 있다. 누가 무엇을 위해 개헌하려는 것인가 하는 근본을 문제 삼는 것이다. 특정인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의 종장은 무한전술에 의한 무한독재임이 자명하다.

박정권은 북괴침공의 위협을 선전한다. 그러나 박정권 자신이 민주국민의 충고를 무시하고 헌정을 말살하는 3선개헌을 강행하여 국론 분열과 사회의 격동을 조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북괴의 흉계에 호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3선개헌을 감행하여 자유민주에의 반역을 기도하는 어떤 명분이나 위장된 강변에도 현혹됨이 없이 헌정 20년 간 모든 호헌세력들의 공통된 신념과 결단 위에서 전 국민의 힘을 뭉쳐 단호히 이에 대처하려 한다. 집권자에 의해서 자유민주에의 기대가 끝내 배신당할 때, 조국을 수호하려는 전 국민은 요원의 불길처럼 봉기할 것이다. 우리는 날로 그 우방을 확장시키고 있고, 선악의 대결과 진부(眞否)의 결전에서 용솟음치는 결의를 가지고 있다.

자유국민의 조국은 영원하다.

영원한 조국을 가진 국민은 용감하다.

전 국민이여! 자유민주의 헌정수호 대열에 빠짐없이 참여하라.

3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1969년 7월 17일

김삼웅 편, 『민족⋅민주⋅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이 사료는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정부가 추진하던 3선개헌(三選改憲)을 반대하기 위해, 1969년 7월 신민당과 「정치활동정화법」 해금 인사와 재야인사가 규합하여 조직한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서이다.

3선개헌은 1969년 박정희가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대통령의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한 대한민국의 여섯 번째 헌법 개정이다. 3선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① 대통령의 3선 연임 허용, ②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결의 요건 강화, ③ 국회의원의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겸직 허용 등이다. 3선개헌안은 1969년 9월 14일 국회에서 변칙 통과됐고, 같은 해 10월 17일 국민투표에서 확정되었다. 개헌을 통과시킨 후 박정희는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3선개헌 논의는 1969년 초부터 본격화되었기에, 그해 1월 14일 야당인 신민당은 3선개헌 반대 투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호헌5인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후 당내 기구로 ‘3선개헌저지 투쟁위원회’를 설치하였고, 대도시 등지에서 ‘개헌 반대 시국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3선개헌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공화당 내에서도 김종필 계열의 반발이 있었으나, 박정희는 이들을 정리하고 1969년 7월 25일 “여당은 빠른 시일 안에 개헌안을 발의하고 야당은 합법적으로 반대 운동을 펴 달라”는 주장을 하였다.

1969년 2월 3일, 해금 인사들은 ‘3선개헌 반대 범국민발기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3월 31일에는 신민당과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일명 범국민투위)가 연합 전선을 형성하여 3선개헌 저지 투쟁을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유진오 신민당 총재는 “3선개헌은 민주주의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며 개헌 저지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였다.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 역시 시위, 농성, 단식 투쟁, 가두데모 등을 통해 개헌 저지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1969년 6월 5일 신민당과 「정치활동정화법」 해금 인사, 재야인사 등이 연합하여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는 같은 해 7월 17일 3선개헌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1969년 9월 14일 국민과 재야 세력, 야당의 반대가 거셌지만 3선개헌안은 국회 제3별관에서 변칙 처리됐다. 찬성 의원은 공화당 107명, 정우회 11명, 무소속 4명이었다. 3선개헌안이 변칙적으로 통과되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각 대학 등지에서 ‘개헌 무효 성토대회’가 잇따랐다. 야당은 ‘정권 타도’를 내걸며 원외 투쟁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학원에 경찰을 투입하고 휴교령을 선포하는 등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 끝까지 3선개헌을 고집하였다. 결국 1969년 10월 17일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총 유권자의 77.1%가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찬성이 65.1%에 이르면서 3선개헌안은 최종 통과되었다.

1969년 11월 1일,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는 불법적인 개헌을 저지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해체하였다. 하지만 3선개헌 반대 투쟁은 그 뒤 야당과 재야, 그리고 학생 운동권이 연대하여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 획책에 계속해서 저항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현대사 60년』, 서중석, 역사비평사, 2007.
편저
「종속과 독재와 저항」, 김종철⋅박현채 외, 돌베개, 1986.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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