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박정희 정부와 민주화 운동

유신 헌법 개헌 논의를 금지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1. 다음 각 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통신 등 공중전파수단이나 문서⋅도서⋅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다. 학교당국의 지도, 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의례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 관여 행위.

라.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2. 제1에 위반한 내용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배포⋅판매⋅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한다.

3. 재산을 도피시킬 목적으로,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을 국외에 이동하거나 국내에 반입될 재산을 국외에 은닉 또는 처분하는 행위를 금한다.

4. 관계서류의 허위기재,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해외이주의 허가를 받거나 국외에 도피하는 행위를 금한다.

5. 주무부장관은 이 조치위반자⋅범행당시의 그 소속 학교, 단체나 사업체 또는 그 대표자나 장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명령이나 조치를 할 수 있다.

가. 대표자나 장에 대한 소속 임직원⋅교직원 또는 학생의 해임이나 제적의 명령.

나. 대표자나 장⋅소속 임직원⋅교직원이나 학생의 해임 또는 제적의 조치.

다. 방송⋅보도⋅제작⋅판매 또는 배포의 금지조치.

라. 휴업⋅휴교⋅정간⋅폐간⋅해산 또는 폐쇄의 조치.

마. 승인⋅등록⋅인가⋅허가 또는 면허의 취소 조치.

6.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은 이 조치에 저촉되더라도 처벌하지 아니한다. 다만, 그 발언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한 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7.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도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倂科)한다.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 또는 음모한 자도 또한 이와 같다.

8.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

9. 이 조치 시행 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뇌물죄의 가중처벌)의 죄를 범한 공무원이나 정부관리 기업체의 간부직원 또는 동법 제5조(국고손실)의 죄를 범한 회계 관계 직원 등에 대하여는, 동법 각 조에 정한 형에, 수뢰액 또는 국고손실액의 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병과한다.

10. 이 조치 위반의 죄는 일반법원에서 심판한다.

11. 이 조치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주무부장관이 정한다.

12. 국방부장관은 서울특별시장⋅부산시장 또는 도지사로부터 치안질서 유지를 위한 병력출동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이에 응하여 지원할 수 있다.

13. 이 조치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부칙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1975.5.13】

14. 이 조치는 1975년 5월 13일 15시부터 시행한다.

대한민국 『관보』 제7045호, 1975년 5월 13일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國家安全과公共秩序의守護를爲한大統領緊急措置

1. 다음 各號의 行爲를 禁한다.

가. 流言蜚語를 捏造, 流布하거나 事實을 歪曲하여 傳播하는 行爲.

나. 集會⋅示威 또는 新聞, 放送, 通信 等 公衆傳播手段이나 文書, 圖畵, 音盤 等 表現物에 의하여 大韓民國 憲法을 否定⋅反對⋅歪曲 또는 誹謗하거나 그 改正 또는 廢止를 主張⋅請願⋅煽動 또는 宣傳하는 行爲.

다. 學敎當局의 指導, 監督下에 行하는 授業, 硏究 또는 學校長의 事前 許可를 받았거나 其他 依例的 非政治的 活動을 除外한, 學生의 集會⋅示威 또는 政治關與行爲.

라. 이 措置를 公然히 誹謗하는 行爲.

2. 第1에 違反한 內容을 放送⋅報道 其他의 方法으로 公然히 傳播하거나, 그 內容의 表現物을 製作⋅配布⋅販賣⋅所持 또는 展示하는 행위를 禁한다.

3. 財産을 逃避시킬 目的으로, 大韓民國 또는 大韓民國 國民의 財産을 國外에 移動하거나 國內에 搬入될 財産을 國外에 隱匿 또는 處分하는 行爲를 禁한다.

4. 關係書類의 虛僞記載 其他 不正한 方法으로 海外移住의 許可를 받거나 國外에 逃避하는 行爲를 禁한다.

5. 主務部長官은 이 措置違反者⋅犯行當時의 그 所屬 學校, 團體나 事業體 또는 그 代表者나 長에 대하여 다음 各號의 命令이나 措置를 할 수 있다.

가. 代表者나 長에 대한 所屬任職員⋅敎職員 또는 學生의 解任이나 除籍의 命令.

나. 代表者나 長⋅所屬 任職員⋅敎職員이나 學生의 解任 또는 除籍의 措置.

다. 放送⋅報道⋅製作⋅販賣 또는 配布의 禁止措置.

라. 休業⋅休校⋅停刊⋅廢刊⋅解散 또는 閉鎖의 措置.

마. 承認⋅登錄⋅認可⋅許可 또는 免許의 取消措置.

6. 國會議員이 國會에서 職務上 行한 發言은 이 措置에 抵觸되더라도 處罰하지 아니한다. 다만, 그 發言을 放送⋅報道 其他의 方法으로 公然히 傳播한 者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7. 이 措置 또는 이에 의한 主務部長官의 措置에 違反한 者는 1年 以上의 有期懲役에 處한다. 이 境遇에는 10年以下의 資格停止를 倂科한다. 未遂에 그치거나 豫備 또는 陰謀한 者도 또한 같다.

8. 이 措置 또는 이에 의한 主務部長官의 措置에 違反한 者는 法官의 令狀없이 逮捕⋅拘禁⋅押收 또는 搜索할 수 있다.

9. 이 措置 施行後, 特定犯罪加重處罰等에關한法律 第2條(賂物罪의 加重處罰)의 罪를 犯한 公務員이나 政府管理企業體의 幹部職員 또는 同法 第5條(國庫損失)의 罪를 犯한 會計關係職員 等에 대하여는, 同法 各條에 정한 刑에, 收賂額 또는 國庫損失額의 10倍에 該當하는 罰金을 倂科한다.

10. 이 措置違反의 罪는 一般法院에서 審判한다.

11. 이 措置의 施行을 위하여 必要한 事項은 主務部長官이 정한다.

12. 國防部長官은 서울特別市長⋅釜山市長 또는 道知事로부터 治安秩序 維持를 위한 兵力出動의 要請을 받은 때에는 이에 應하여 支援할 수 있다.

13. 이 措置에 의한 主務部長官의 命令이나 措置는 司法的 審査의 對象이 되지 아니한다.

 부칙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1975.5.13〉

14. 이 措置는 1975年 5月 13日 15時부터 施行한다.

대한민국 『관보』 제7045호, 1975년 5월 13일

이 사료는 1975년 5월 13일에 선포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이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朴正熙, 1917~1979)는 국회를 해산하고 국민의 기본권 일부를 정지시키는 긴급조치를 선포한 후 ‘시월유신’을 단행하였다. 같은 해 12월 27일 박정희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하였고, 「유신헌법」을 공포함으로써 유신 체제를 수립하였다. 그 뒤 제4공화국에서는 보다 강력한 긴급조치권을 헌법에 규정하여, 긴급조치를 9차례나 발동하였다.

유신 체제가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은 긴급조치권을 통해 사후적⋅진압적 비상조치뿐 아니라 사전적⋅예방적 비상조치까지 취할 수 있었다. 긴급조치권의 효력은 초헌법적이어서 입법부나 사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국민들은 긴급조치하에서 어떠한 비판도 할 수 없이 침묵해야 했다. 이 시기는 ‘긴급조치시대’라 불렸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는 ‘김상진 할복자살사건’을 계기로 선포되었다. 1975년 4월 11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정에서 오전 11시부터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정권 퇴진 등의 구호 아래 자유 성토대회가 열렸다. 이때 세 번째 연사로 등장한 김상진은 민주화의 제단에 피를 뿌릴 결연한 각오를 천명하는 양심선언문을 낭독한 뒤 할복,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 아침 끝내 숨을 거두었다. 김상진의 유해는 곧바로 화장되어 가족에게 넘겨졌다.

이를 계기로 「유신헌법」 철폐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1975년 5월 13일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가 선포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약 한 달 후인 5월 22일 1000여 명이 ‘김상진 열사 추도식’을 거행한 후, 긴급조치 9호 철폐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로 인해 한심석 서울대학교 총장이 사임하고 치안본부장⋅남부서장이 경질되었으며, 학생 29명이 구속되었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는 헌법 비방이나 반대, 유언비어 유포, 사전 허가 없는 학생 시위 및 집회 금지 등을 주요 골자로 이전 긴급조치 1호에서 7호까지의 내용을 거의 대부분 포괄하였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가 시행되면서 한국 사회는 전시 상태나 다름없는 비상 체제로 진입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언론이 반정부 활동을 보도하거나 전파하는 일까지 일체 금지했고, 조치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조치를 비방하는 행위 역시 1년 이상의 징역형에 10년 이상의 자격 정지를 부과토록 했다. 이러한 강압적인 기세에 눌려 반정부 운동은 잠시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같은 해 5월 22일 서울대학교 ‘민속가면극연구회’ 주도로 시작된 학생 시위는 민주 인사들의 「민주구국선언」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에 대한 저항이 거세져 갔다. 긴급조치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이후 같은 해 12월 8일 0시를 기해 해제되면서 막을 내렸다.

2010년 12월 16일 대법원은 「대통령 긴급조치 1호」에 의해 복역한 오종상에게 모든 혐의의 무죄를 선고하였다. 오종상은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1호」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는데, 대법원은 「대통령 긴급조치 1호」가 “당시 유신헌법상의 발동 요건조차 갖추지 않고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유신체제와 반유신 민주화 운동」,『유신과 반유신』,안병욱,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005.
「유신체제의 형성」,『유신과 반유신』,홍석률,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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