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박정희 정부와 민주화 운동

전국 민주 청년 학생 총연맹의 선언서

극심한 물가고와 공포 정치에 짓눌린 우리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우리의 동지인 한국신학대학, 경북대학교, 서강대학교, 연세대학교 학우들이 피의 항쟁을 벌여 왔다.

앞서간 애국 시민 학생의 뒤를 이으며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전국의 모든 학생들은 이 시각을 기하여 총궐기하였다.

국민이여 모두 민주 전선에 우리의 뜨거운 피를 뿌리자!

근로 대중이여 궐기하라!

핍박 받는 민중이여 궐기하라!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이여 궐기하라!

1. 굶어 죽을 자유 말고 먹고 살 권리 찾자.

2. 배고파서 못 살겠다. 기아임금 인상하라!

3. 유신이란 간판 걸고 국민 자유 박탈 마라.

4. 남북 통일 사탕발림 영구 집권 최후수단

5. 재벌 위한 경제성장 정권 위한 국민 총화

6. 왜놈 위한 공업화에 민중들만 죽어 난다.

1974년 4월 3일 전국 민주 청년 학생 총연맹

전국 민주 청년 학생 총연맹, 「민중⋅민족⋅민주 선언」, 1974년 4월 3일

극심한 물가고와 공포 정치에 짓눌린 우리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우리의 동지인 한국신학대학, 경북대학교, 서강대학교, 연세대학교 학우들이 피의 항쟁을 벌여 왔다.

앞서간 애국시민 학생의 뒤를 이으며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전국의 모든 학생들은 이 시각을 기하여 총궐기하였다.

국민이여 모두 민주 전선에 우리의 뜨거운 피를 뿌리자!

근로 대중이여 궐기하라!

핍박 받는 민중이여 궐기하라!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이여 궐기하라!

1. 굶어죽을 자유말고 먹고 살 권리 찾자.

2. 배고파서 못 살겠다. 기아임금 인상하라!

3. 유신이란 간판걸고 국민자유 박탈마라.

4. 남북통일 사탕발림 영구집권 최후수단

5. 재벌 위한 경제성장 정권 위한 국민총화

6. 왜놈 위한 공업화에 민중들만 죽어난다.

1974년 4월 3일 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

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 「民衆⋅民族⋅民主 宣言」, 1974년 4월 3일

이 사료는 1974년 4월 3일 전국 민주 청년 학생 총연맹이 유인물로 배포한 「민중⋅민족⋅민주 선언」의 일부 내용이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재임 제한 없는 영구 집권이 가능한 유신 헌법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1973년 8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김대중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본 도쿄에서 납치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대학생들의 반유신 시위에 불을 지폈다. 1973년 10월 2일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여러 대학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박 정권은 시위에 가담한 학생들을 무더기로 징계했지만 학생들은 구속 학생의 석방과 처벌 백지화를 요구하며 수업 거부와 시험 거부 투쟁을 벌였다. 이는 12월 24일 100만인 헌법 개정 청원 운동으로 이어지며 범국민적 투쟁으로 확산됐다. 그러자 1974년 1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헌법을 반대하면 영장 없이 구속하여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긴급조치 1, 2호를 발동했다. 이어 개헌 청원 운동의 주동자였던 장준하와 백기완 등은 긴급조치 1호로 연행 당했다.

개헌 청원 운동이 무산된 이후 유신 체제에 대한 조직적 저항을 목표로 전국의 대학들 간의 연대 투쟁이 모색되었다. 이들 학생들은 대학 외에도 사회 각계 각층과도 연계하여 반유신 투쟁을 벌일 계획이었다. 이들은 1974년 4월 3일, 유인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민주 청년 학생 총연맹(이하 민청학련으로 약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이 단체의 명의로 된 「민중⋅민족⋅민주 선언」과 「민중의 소리」, 「지식인⋅언론인⋅종교인에게 드리는 글」 등의 유인물을 배포하였고,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였다.

사료로 제시한 「민중⋅민족⋅민주 선언」에서 드러나듯 민청학련으로 활동한 학생들은 당시를 ‘극심한 물가고와 공포 정치’에 짓눌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74년 3월부터 잇따른 시위를 주도해 왔던 한국신학대학, 경북대학교, 서강대학교, 연세대학교 학우들을 거론하면서, 그들의 뒤를 이어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전국 학생들의 총궐기를 선언하였다. 더 나아가 ‘민주 전선’ 아래 근로 대중, 민중,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 등 모든 국민이 궐기할 것을 주장하였다.

민청학련의 입장과 주장은 위 선언문 속에 있는 6개의 구호에 잘 집약되어 있다. 이를 정리하면, 굶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권리와 이를 위한 임금 인상 요구,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는 유신체제 반대, 영구 집권을 위한 구실로 전락한 남북 통일 구호의 허위성 비판, 재벌과 일본 자본의 이익만 채우며 민중과는 괴리된 채 진행 중인 공업화에 대한 비판 등이다.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가지고 유신 독재 정권을 규탄하고, 민족⋅민중을 위한 민주화와 상생의 성장을 역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민중⋅민족⋅민주 선언」 등의 유인물이 배포되고 각 대학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4월 3일 22시를 기해 대통령 특별 담화로 데모 주동자에게는 사형을 선고할 수 있고 대학을 폐교시킬 수 있다는 내용의 긴급조치 4호를 발표했다. 이후 관련자 1,000명 이상이 연행⋅구속되었고, 그 중 205명이 기소되었다. 이들 중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 지학순 주교, 박형규 목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발생하여 그들이 민청학련을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발표되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군법 회의에서 여덟 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고, 민청학련 관계자들도 현 정부를 전복하려는 반국가 단체 가담자로 몰려, 사형과 무기 징역, 20년 형 등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위 선언문에서 드러나듯 민청학련은 반국가 용공 단체가 아닌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학생들의 조직이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3선개헌 반대, 민청학련 투쟁, 반유신 투쟁」,『역사비평』1,서중석,역사비평사,1988.
「유신체제하 범국민 민주화운동 선언문」,『한국근현대사연구』22,윤선자,한국근현대사학회,2002.
편저
『과거와 대화미래의 성찰 2- 주요 의혹사건편 上권』,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국가정보원, 2007.
『한국민주화운동사』2,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엮음, 돌베개, 2009.
『유신과 반유신』, 안병욱,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5.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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