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남북 관계와 통일을 위한 노력

진보당 사건의 재심 무죄 판결

대법원 2011.1.20. 선고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판결 【간첩⋅간첩방조⋅국가보안법위반⋅법령제5호위반】

[공2011상,508]

【전 문】

【피 고 인】 망 조봉암

【재심청구인】 피고인의 자 재심청구인 1외 3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법무법인 양재 담당변호사 김창국 외 6인

【재심대상판결】 대법원 1959. 2. 27. 선고 4291 형상 559 판결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1958. 10. 25. 선고 4291 형공 958 판결

【판 결 선 고】 2011. 1. 20.

【주 문】

원심판결과 제1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각 파기한다.

무기불법소지에 의한 군정법령 제5호 위반죄에 대하여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양이섭 관련 간첩의 점은 무죄.

제1심 판결 중 진보당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진보당 사건’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제 판결

1. 사안과 쟁점

가. 공소사실의 요지

⑴ 제1 공소사실 (간첩, 간첩방조, 국가보안법 위반)

⑵ 제2 공소사실 (국가보안법 위반)

⑶ 제3 공소사실 (군정법령 제5호 위반)

⑷ 제4 공소사실 (간첩)

……(중략)……

다. 대법원 2010. 10. 29.자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결정

⑴ 재심의 개시

피고인의 유족들은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법원은 2010. 10. 29. 수사권 없는 육군특무부대 조사관들이 민간인인 피고인과 양이섭을 피의자로 조사한 행위는 헌병과 국군정보기관의 수사한계에 관한 법률 제3조 위반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구 형법 제123조의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죄를 구성하고, 이들 범죄는 모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소정의 사법경찰관의 직무에 관한 죄에 해당하는데, 위 각 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으나 그러한 사실이 증명되었으므로, 재심대상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재심을 개시하였다.

……(중략)……

2. 판결 결과 및 판시사항

가. 【제2 공소사실 관련】진보당은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소정의 불법결사에 해당하지 아니함.

……(중략)……

⑷ 소결론

따라서 진보당과 관련한 국가보안법 위반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은 법리를 오해한 것으로 위법하다.

나. 【제4 공소사실 관련】양이섭 관련 간첩의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음.

 ……(중략)……

㈑ 소결론

무릇 형사재판에서 공소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0. 7. 28. 선고 2000도1568 판결, 2001. 2. 9. 선고 2000도4946 판결 등 참조).

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직접 판결

⑴ 원심판결의 파기

원심판결에서 유죄가 인정된 ‘진보당 결성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 양이섭 관련 간첩 부분, 군정법령 제5호 위반 부분’은 모두 파기되어야 한다.

⑵ 대법원의 직접 판결

㈎ 제1심판결의 제2 공소사실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진보당은 국헌에 위배되거나 북한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구성된 결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진보당 결성과 관련한 국가보안법 위반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은 정당하다.

㈏ 제4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양이섭 관련 간첩의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또한, 그 공소사실 기재 내용 자체만을 놓고 보더라도 형법 제98조 제1항에 규정된 간첩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 하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제4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이상 제1심판결과 같이 구 국가보안법 제3조를 적용하여 처벌할 수 없고, 더욱이 공소장변경 없이 그와 같이 심판할 수도 없다.

……(중략)……

④ 피고인의 정상 및 형의 선고유예

피고인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였다. 광복 이후 제헌국회의 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과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였으며, 1952년과 1956년 제2, 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또한, 초대 농림부장관 재직시에는 농지개혁의 기틀을 마련하여 우리나라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이다. 그러나 재심대상판결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이제 뒤늦게나마 재심판결로서 그 잘못을 바로잡고,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끝)

대법원 대법원종합법률정보 : 2011.1.20. 선고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1.1.20. 선고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판결 【간첩⋅간첩방조⋅국가보안법위반⋅법령제5호위반】

[공2011상,508]

【전 문】

【피 고 인】 망 조봉암

【재심청구인】 피고인의 자 재심청구인 1 외 3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법무법인 양재 담당변호사 김창국 외 6인

【재심대상판결】 대법원 1959. 2. 27. 선고 4291 형상 559 판결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1958. 10. 25. 선고 4291 형공 958 판결

【판 결 선 고】 2011. 1. 20.

【주 문】

원심판결과 제1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각 파기한다.

무기불법소지에 의한 군정법령 제5호 위반죄에 대하여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양이섭 관련 간첩의 점은 무죄.

제1심 판결 중 진보당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진보당 사건’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제 판결

1. 사안과 쟁점

가. 공소사실의 요지

 ⑴ 제1 공소사실 (간첩, 간첩방조, 국가보안법 위반)

 ⑵ 제2 공소사실 (국가보안법 위반)

 ⑶ 제3 공소사실 (군정법령 제5호 위반)

 ⑷ 제4 공소사실 (간첩)

……(중략)……

다. 대법원 2010. 10. 29.자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결정

 ⑴ 재심의 개시

피고인의 유족들은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법원은 2010. 10. 29. 수사권 없는 육군특무부대 조사관들이 민간인인 피고인과 양이섭을 피의자로 조사한 행위는 헌병과 국군정보기관의 수사한계에 관한 법률 제3조 위반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구 형법 제123조의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죄를 구성하고, 이들 범죄는 모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소정의 사법경찰관의 직무에 관한 죄에 해당하는데, 위 각 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으나 그러한 사실이 증명되었으므로, 재심대상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재심을 개시하였다.

……(중략)……

2. 판결 결과 및 판시사항

가. 【제2 공소사실 관련】진보당은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소정의 불법결사에 해당하지 아니함.

  ……(중략)……

  ⑷ 소결론

따라서 진보당과 관련한 국가보안법 위반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은 법리를 오해한 것으로 위법하다.

나. 【제4 공소사실 관련】양이섭 관련 간첩의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음.

 ……(중략)……

  ㈑ 소결론

무릇 형사재판에서 공소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0. 7. 28. 선고 2000도1568 판결, 2001. 2. 9. 선고 2000도4946 판결 등 참조).

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직접 판결

 ⑴ 원심판결의 파기

원심판결에서 유죄가 인정된 ‘진보당 결성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 양이섭 관련 간첩 부분, 군정법령 제5호 위반 부분’은 모두 파기되어야 한다.

 ⑵ 대법원의 직접 판결

  ㈎ 제1심판결의 제2 공소사실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진보당은 국헌에 위배되거나 북한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구성된 결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진보당 결성과 관련한 국가보안법 위반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은 정당하다.

  ㈏ 제4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양이섭 관련 간첩의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또한, 그 공소사실 기재 내용 자체만을 놓고 보더라도 형법 제98조 제1항에 규정된 간첩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 하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제4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이상 제1심판결과 같이 구 국가보안법 제3조를 적용하여 처벌할 수 없고, 더욱이 공소장변경 없이 그와 같이 심판할 수도 없다.

  ……(중략)……

  ④ 피고인의 정상 및 형의 선고유예

피고인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였다. 광복 이후 제헌국회의 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과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였으며, 1952년과 1956년 제2, 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또한, 초대 농림부장관 재직시에는 농지개혁의 기틀을 마련하여 우리나라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이다. 그러나 재심대상판결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이제 뒤늦게나마 재심판결로서 그 잘못을 바로잡고,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끝)

대법원 대법원종합법률정보 : 2011.1.20.선고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판결

이 사료는 2011년 1월 조봉암(曺奉巖, 1898~1959)의 유족이 청구한 대법원 재심에서 나온 판결문이다. 조봉암은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조선 공산당, 중국 공산당 등과 관련한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건국 준비 위원회 인천지부에서 활동하였고, 1946년 사회주의 계열인 민족전선에서 활약하였으며, 그 해 5월 공개서한을 통해 박헌영(朴憲永, 1900~1955)의 공산주의 노선을 비판하였다. 1946년 6월 조선의 건국은 ‘민족 전체의 자유 생활 보장’을 내걸고 노동 계급의 독재, 자본계급의 전제를 다 같이 반대한다는 중도 통합 노선을 주장하고 조선 공산당과 결별하였다.

조봉암은 1946년 8월부터 미군정 당국의 좌⋅우파 합작을 지지하고 협력하였으며, 1948년 5⋅10선거 때 인천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직을 맡았다. 정부 수립 후 초대 농림부 장관이 되어서는 농지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 부의장에 선임되었으며, 1952년 제2대 정⋅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다가 차점으로 낙선하였다.

조봉암은 책임 있는 혁신 정치, 수탈 없는 계획 경제, 민주적 평화 통일이라는 3대 정강을 내걸고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진보당을 창당하고, 1956년 5월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 대통령으로 출마하였다. 그리고 선거 직전 민주당 후보였던 신익희(申翼熙, 1894~1956)가 갑작스레 사망하여 야권의 대통령 단일 후보가 되었지만 다시 낙선하였다. 그러나 조봉암은 이 선거에서 투표율의 30.0%를 차지하는 216만 3808표를 얻어 이승만(李承晩, 1875~1965)과 자유당의 장기 집권을 위협하는 인물로 부상하였다.

1958년 2월 16일 검찰은 조봉암과 진보당 간부들을 수사하여 조봉암을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및 무기 불법 소지 혐의로, 간사장이었던 윤길중을 「국가보안법」 위반 및 간첩 방조 혐의로, 그 외 간부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였다. 검찰은 기소장에서 조봉암이 남파 간첩 및 재외 북조선 관련 단체와 접선한 사실이 있고, 진보당의 평화 통일론이 대한민국의 존립을 부인하며, 진보당의 정강 정책이 북한 노동당의 정책과 상통하므로 진보당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위반한 불법 단체라고 명시하였다. 기소 직후인 2월 20일 육군특무부대는 남파 간첩 사건인 이른바 ‘양이섭 사건’을 조작하여 양이섭과 조봉암과의 연관성을 발표하였다.

1958년 7월 2일 열린 제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조봉암에게 징역 5년을, 진보당 간부들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때 대한 반공 청년단을 자처하는 청년들이 법원 청사에 난입하여 난동을 벌여 대한민국 사법사상 최초의 재판 파동을 일으켰다. 같은 해 9월 4일부터 10월 25일까지 열린 제2심 재판에서 양이섭이 육군특무부대의 협박과 회유에 의해 허위 자백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재판부는 이를 무시하고 번복 진술에 대한 증거 조사도 채택하지 않았다.

1959년 2월 7일 최종 판결에서 대법원은 조봉암에 대한 기소 사유인 간첩, 「국가보안법」 위반, 무기 불법 소지 등을 인정하여 사형을 언도하였다. 그러나 판결문에서는 조봉암에 대한 기소 사유의 배경이 된 진보당의 강령이나 정강 정책, 평화 통일론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뒤 가족과 변호인단이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되었고, 결국 조봉암은 1959년 7월 31일 재심이 기각된 다음 날 교수대에서 운명을 달리하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2007년 9월 조봉암 사건을 ‘위협적인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이승만 정권의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 유린이자 정치 탄압’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 구제, 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권고하였다. 그 뒤 사건 발생 52년 만인 2011년 1월 2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권고와 유족의 요청으로 청구된 재심이 열렸고, 여기에서 재판부는 공소 사실 대부분을 무죄로 판시하였다. 즉, 22008재도11 「국가보안법」 위반 등 사건에서 ① 진보당은 구 「국가보안법」 제1조의 불법 결사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② 양이섭 관련 간첩죄의 공소 사실은 인정하지 아니하며, ③ 나머지 무기 불법 소지의 점에 대하여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내용의 전원 합의체 판결(재판장 대법원장 이용훈, 주심 대법관 박시환)이 선고된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조봉암 연구』, 박태균, 창작과 비평사, 1995.
『조봉암과 1950년대』, 서중석, 역사비평사, 1999.
편저
『2007년 하반기 조사보고서』4,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007.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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