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남북 관계와 통일을 위한 노력

닉슨 독트린

아시아 집단방위체 필요-소련 수뇌부와 월남(베트남) 문제 협의 용의(用意)

닉슨 대통령, 괌(Guam)에서 밝혀

【괌(Guam) 25일 ○○○ 특파원】

닉슨(Richard M. Nixon) 미국 대통령은 25일 아시아 국가들은 대미의존도를 버리고 그들의 국방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는데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며 미국이 또다시 월남전(베트남전)과 같은 사태에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아폴로】 11호의 귀환을 환영하고 아시아 5개국과 루마니아 순방길에 오르기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시아는 앞으로 15년 내지 20년 동안 계속 위험 지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으며 침략정책을 추구하는 중공(中共, 중국공산당)과 북괴((北傀) 및 월맹(越盟, 월남민주동맹)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미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 맺은 방위조약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며, 특히 핵공격의 위협을 받는 나라에서 한해서는 예외적으로 군사지원을 제공하겠지만 미국이 군사적 개입이나 군사 원조 계획은 점차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자체방위를 위해 그들 자신의 집단방위체제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닉슨 대통령은 또 미⋅소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 월남전과 중동 문제, 그리고 군축 문제해결에 유익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 미국과 소련의 정상회담을 서둘러 개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루마니아 방문은 소련에 대한 모욕이나 중공과의 접촉을 위한 제스처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동구와 가질 일련의 접촉의 시초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1969년 7월 26일

亞洲集團方位體 필요-蘇首腦와 越南問題協議 用意

닉슨 대통령, 괌島에서 밝혀

〈괌島 二十五日 ○○○ 특파원〉

닉슨 美國大統領은 二十五日 아시아 國家들은 對美依存度를 버리고 그들의 國防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는데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며 미국이 또다시 越南戰과 같은 사태에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協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아폴로〉 11호의 歸還을 환영하고 아시아 五個國과 루마니아 巡訪길에 오르기 앞서 가진 記者會見에서 아시아는 앞으로 十五年 내지 二十年 동안 계속 위험 지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으며 侵略政策을 추구하는 中共과 北傀 및 越盟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展望하고 미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 맺은 方位條約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며, 특히 핵공격의 위협을 받는 나라에서 한해서는 예외적으로 軍事支援을 제공하겠지만 미국이 군사적 介入이나 軍援 계획은 점차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自體方位를 위해 그들 자신의 集團方位體制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닉슨大統領은 또 美蘇頂上會談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 越南戰과 中東 問題, 그리고 軍縮 問題解決에 유익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 美蘇의 頂上會談을 서둘러 開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루마니아 방문은 蘇聯에 대한 侮辱이나 中共과의 접촉을 위한 제스처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東歐와 가질 一連의 接觸의 시초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東亞日報〉, 1969年 7月 26日

이 사료는 닉슨 미국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 1969년 7월 25일 괌에서 발표한 이른바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 또는 ‘괌 독트린(Guam Doctrine)’이다. 주된 내용은 동아시아 동맹국들의 자주 국방 능력 강화와 미국의 부담 감축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1969년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닉슨은 베트남 전쟁의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제 정세는 대결 상황에서 긴장 완화와 화해⋅협상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바뀌고 있었다. 이에 닉슨은 과거처럼 미국이 냉전의 한 축으로 아시아의 공산화를 방지하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전 개입 실패와 국제적 데탕트(détente) 무드에 따라 가능한 한 국제적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이미 약화한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경감하고자 하였다. ‘닉슨 독트린’은 1차적으로 아시아 국가가 아시아 방위 책임을 지고, 미국은 핵우산을 제공함으로써 소련에 대항하는 봉쇄 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 정책이 견지해야 할 원칙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미국은 앞으로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

2. 미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조약상 약속을 지키지만,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하여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하여 그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3. 미국은 ‘태평양 국가’로서 그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지만 직접적⋅군사적 또는 정치적인 과잉 개입은 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의사를 가진 아시아 각국의 자주적 행동을 측면 지원한다.

4. 아시아 각국에 대한 원조는 경제 중심으로 바꾸며 여러 나라 상호 원조 방식을 강화하여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피한다.

5. 아시아 각국이 5~10년의 장래에는 상호 안전 보장을 위한 군사 기구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미국은 ‘한국 안보의 한국화(Koreanization of Korea Security)’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닉슨 독트린’을 한국에 적용하였다. 1970년 7월 주한미군 감축이 한국 정부에 공식 통보되었으며, 이듬 해 6월 주한미군 2만 명이 철수하였다.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국제적으로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남한과 북한도 과거처럼 대립적인 관계만을 고집할 수 없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는 4대국에 의한 한반도 안전 보장이나 남북 교류를 주장하여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를 얻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런 국제 관계의 변화에 대처하고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남북 관계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이에 1972년 7월 4일, 「7⋅4 남북공동성명」이 공표되었다. 「7⋅4 남북공동성명」에 따라 1973년 6월까지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남북조절위원회 회의가 세 차례 개최되었다. 그러나 세 차례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데탕트라는 분위기에 부응하는 남북 관계 개선을 자신의 장기 집권을 보장하는 유신 체제로 전환할 명분으로 삼았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이렇게 발표하였다. “역사적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서 부득이 정상적 방법이 아닌 비상조치로서 남북 대화의 적극적인 전개와 주변 정세의 급변하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실정에 가장 걸맞는 체제 개혁을 단행해야 하겠다. ……(중략)…… 데탕트로 인한 강대국의 협상 과정에서 약소민족의 이해관계가 훼손될 위험성에 대처하고, 기존의 헌법은 냉전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남북 대화와 통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 체제의 수립이 불가피하다”

이후 10월 27일 개헌안이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공고되었다. 이에 따라 11월 21일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국회 동의 없이 실시되어 투표율 92.9%에 91.5% 찬성으로 확정되었다. 같은 해 12월 27일 박정희가 연임 제한 없는 간선 대통령에 취임하는 한편 「유신헌법」을 공포함으로써 유신 체제가 수립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미완의 계획: 1960년대 전반기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논의」,『한국과 국제정치』19-2,마상윤,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2003.
「전환기의 동맹: 데탕트 시기의 한미 안보관계」,『한국정치사 학술회의 발표문』,신욱희⋅김영호,,2000.
「유신체제와 반유신 민주화 운동」,『유신과 반유신』,안병욱,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005.
「유신체제의 형성」,『유신과 반유신』,홍석률,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005.
편저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하영선⋅김영호⋅김명섭 공편,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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